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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라사랑, 민족사랑 (롬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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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푹푹찌는 여름입니다. 요즘. . . 총기난사 사고로 나라가 떠들썩합니다. 화나게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우리 사회에 . .
오늘부터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다고도 하지요? 좀 더위도 가라 안고. . . 정신이 들었으면 합니다.
6월을 호국의 달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애국선열과 전몰장병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추모하는 기념일인 현충일이 있고 잊을 수 없는 6.25 전쟁이 있는 달이기도 합니다. 또 남북 장관급회담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원탁회의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간 우리는 전방 모 부대에서 한 병사의 수류탄 투척과 총기를 난사하는 대형 사건으로 모든 국민들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만나고서 어리둥절하고 있습니다.

매일 언론을 통해서 유족들의 슬픔의 소식을 듣고 기가 막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총기 사건은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오늘 우리 사회의 문제를 드러내는 한 예라고 보아지는 것입니다.
동족상잔(同族相殘)의 현대사에 가장 큰 비극의 전쟁이 일어난 1950년 6월 25일, 벌써 5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도 희미한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중앙일보에서 20대에게 물었습니다. 3명 중 1명은 6.25전쟁(한국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잘 모르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현대사에서 가장 큰 비극인데도 ‘1950년’이라고 정확하게 답한 비율은 66%에 불과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균관대 김일영(45.정치학)교수는 “20-40대에서는 전반적으로 전쟁에 대한 불감증이 엿보인다”고 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주일 이른 아침. . . .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북한의 군대들이 남쪽으로 침략해 들어왔습니다. 전쟁은 본래 조그마한 분쟁이 불씨가 되어 선전 포고를 하고, 정식으로 싸워야 하는 것인데. . . . 평상시도 아닌 휴일인 주일 이른 아침에 기습을 해 온 것입니다.

그때 조국을 지키기 위해 훈련되지 않은 젊은이들이 분연히 일어섰다가 총탄 앞에 피를 흘리며, 동족상잔의 제물로 산과 들, 강바닥에 쓰러졌습니다.
군국장병의 전사자는 212,554명이었고 경찰관이 34,000명이 죽었으며 민간인 사망자가 224,000명이나 되었다. 그 외에 실종자가 215,000명이며 부상자가 125,000명였다. 그뿐만 아니라 미군의 사망자가 75,434이었고 한국전쟁에 참전한 16개국의 UN군의 전사자가 8.694명이었다. 그리하여 6.25를 통하여 생긴 전사자가 999,065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외에 학도병이나 군번없는 청년들의 죽음을 합친다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많습니다.
미망인 이십만 명, 고아 십만, 가구 손실 육십만 채, 이산가족 일천만 명. . 이것이 6.25가 남긴 비극입니다.
요즘 8명 군인의 죽음으로 인해 온 나라가 떠들썩하고 매스컴이 마비될 지경인데 6.5 때를 생각한다면 어떻했겠습니까? 결코 잊어서는 안될 사건입니다. 다시 이땅에 전쟁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6.25 노래 박두진 김동진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 맨주먹 붉은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무리 쫓고 또 쫓아 /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겨레”
이제는 이 노래도 옛 추억의 그림자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시각들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안보에 대한 안이한 생각은 금물입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휴전의 상태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의 통일, 복음으로 말미암는 통일의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 복음화를 위하여 늘 깨어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과거에 고생하던 때를 쉽게 잊어버리는 백성은 과거보다 더 심한 고난을 당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신32:7에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 .

옛날에 이스라엘 선조들이 출애굽하고 광야생활을 하며 고생한 것과 가나안 땅 정복할 때 고생한 것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부모와 어른들은 후손들에게 가르쳐서 잊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도 부모님 시대에는 보릿고개(나무껍질, 꽃닢, . .‘보리고개 때에는 딸네집도 가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풀죽, 쑥개떡, 꿀꿀이죽, 강냉이죽, 부대찌개, 구호물자 . . . 전쟁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에게도 이런 아픔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런 때가 있었나?’ 할 정도로 흔적도 없어진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정신을 차려야 할 것입니다.

덴마크의 영웅, 그룬트비 목사가 자원도 없고 돌작밭 투성이인 그 나라를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자. 나라를 사랑하자. 땅을 사랑하자’는 표어를 가지고 국민의 정신을 개혁한 결과 덴마크는 오늘날, 지상 낙원이라고 할 만큼 잘사는 나라가 되었는데, 그 나라 젊은이들은 호화로운 파티에 들어갈 때 먼저 선조들이 굶주리며 고생했던 것을 상기하기 위하여 맛없는 까만 보리빵과 냉수를 먹고 나서 파티장에 들어가 좋은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논다고 합니다. 대단히 중요한 의식이라고 봅니다.

바울은 자기 민족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 민족을 향한 마음의 고통

바울의 마음은 동족을 향한 마음이 불타고 있습니다. ‘민족’이라는 말이 얼마나 좋은 말인지 모릅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이웃보다 자기 가족을 더 사랑하게 되고, 우리가 세계 모든 인류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자기 민족을 더 사랑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이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다고 외칩니다.

갈2:8“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행9:15에는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 . .
사도 바울은 이방을 위한 주님의 택한 그릇으로 부름을 받았고 충성을 다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그 어느 사도보다도 많은 수고를 했고, 그에 따른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신약 성경 27권 중 반 이상을 바울이 기록했습니다.
그 이방인들은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쁘게 받아들였고, 구원의 역사가 아시아와 유럽에서 일어났습니다. 본래 그들은 택함받지 못한 자들인데 복음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의 대열에 서는 놀라운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에게는 마음에 큰 고통이 있었습니다.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이방에 나아가 구원의 복음을 전하였을 때는 참으로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행10:45). 그러나 정작 자신의 형제이요, 골육지친인 이스라엘 민족들은 외면하는 것입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늘 마음에 근심으로, 그치지 않는 고통으로 자신의 가슴을 짓눌러 왔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사도 바울과같은 민족을 향한 그치지 않은 고통이 있습니까? 내 민족, 내 겨레의 구원을 위하여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소원하는 민족복음화의 기도가 있습니까?

2.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 .

3절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 . ."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다는 것은 저주 중에 저주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얼마나 민족이 주께 돌아오기를 갈망하였든지 그렇게 소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마음은 모세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40일간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받아오는 동안 산 아래에 있는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대신하여 섬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내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모세는 기도합니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출32:32)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다고해서 생기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희생할 뿐인 것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개인주의 이기주의 배금주의 안일주의가 팽배한 것 같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적인 경향은 샤머니즘적 종교심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런 사고에 대해서 잘못된 샤머니즘적 신앙의 책임도 있습니다.

샤머니즘은 기복적 신앙을 자기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윤리적이며 영적인 축복관을 보 여주고 있는데 반해, 샤머니즘은 철저히 현세적이고도 물질적인 기복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금을 드리는 것이나, 교회 봉사 등의 행위가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현세적인 복락을 더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상은 철저히 인간의 기본적 요구를 충족시키는데 중점을 두어 이기심을 조장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고학력의 시대인데 시림들의 생각은 매우 이기적입니다. 매우 이기주의, 개인주의적입니다. 한마디로 샤머니즘적 요소가 다분합니다. ‘공주병’ ‘왕자병’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 같습니다. 나만이 주인공이기를 바라는 생각들이 가득한 것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들은 ’병신‘ 취급을 받는 시대입니다.
또 이런 개인주의, 이기주의 현상은 집단 형태를 띠고 집단 이기주의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집단 이기주의로 요즘 유행하는 현상들 중에 님비현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NIMBY가 무엇입니까? Not In My Back Yard. 내 집 뒷마당에는 안 된다는 말. 지역 발전에 저해가 된다고 생각되는 시설물이 자신의 주변에 들어서지 못하도록 강하게 반대하는 표현입니다. 즉, 쓰레기 소각장, 핵폐기물 처리장, 하수 종말 처리장, 화장터 등 . .

또, 반대로 집단 이기주의 중에는 지역에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 줄만한 사업을 자기 지역에 유치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는 현상들이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핌피’라고 합니다. PIMFY가 무엇입니까? Please in my front yard. ‘제발 그 건물을 제 앞마당에 지어주십시오’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동네에 이익이 되는 물건이나 건물 따위를 세워달라는 것입니다. 일례로 자기집 앞에 전철역이나 고속 철도 역을 유치하기 위해 억지로 노선을 구부려서 그 지역을 통과하도록 각종 행정 기관에 압력을 넣는 것들을 가리킵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이런 이기적인 일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전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 .자기만 잘되면 된다는 개인주의와 집단이기주의가 판치고 있습니다. 원칙도 소용이 없습니다. 장기적인 시각도 관계가 없습니다. 국민이나 후손들이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관계 없습니다. 이런 것들이 이기주의요, 개인주이인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
2차 대전 때, 유비에프의 이야기는 무척 감명스럽습니다. 독일의 공습으로 인해 런던은 밤낮으로 폭탄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심술궂은 히틀러는 많은 폭탄에 시한장치를 하여 투하하였습니다. 그래서 공습이 지난 뒤에도 시민들은 폭탄이 언제, 어디에서 폭발할지 몰라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폭탄이 투하되자마자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은 30분, 또 어떤 것은 1시간, 그리고 또 어떤 것은 몇 시간 후에, 또는 며칠 후에 폭발되도록 시한장치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공습경보가 끝나도 런던 시민들은 안절부절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때, 영국의 귀족인 써포크 공작은 저녁에 기도하던 중에 바로 이 일을 그가 담당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강한 부름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즉시 이 써포크 공작은 자기 운전기사, 여비서와 함께 시한폭탄을 처리하는 유비에프라는 결사대를 조직하였습니다. 이들은 시한폭탄이 떨어진 곳을 찾아가 죽음을 무릎쓰고 무려 34개의 시한폭탄을 해체한 것입니다.
35개째를 처리하던 순간 폭탄이 터져 써포크 공작과 일행은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이름도 빛도 없이 죽었으나, 많은 런던 시민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 일이 하나님의 소명으로 여겨졌기에 그들은 용기 있는 희생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명예나 지위나 돈은 문제가 아니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은 주어지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면 내가 그 일을 하겠습니다.”하는 불타는 소명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는 발전합니다. 그리고 미래가 밝은 것입니다.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창조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9, 눅17:33)

3. 저희로 구원 얻게 함이라

전에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나왔습니다. 또 '대학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출판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성경적입니다. 요12:25절에 보면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고 말씀합니다. 뭔가를 잃는 대신 얻어지는 것이 있음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형제들에 대해서 고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고통은 자신이 마치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듯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처지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4,5절을 보면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양자됨', '영광', '언약들', '율법', '예배'와 '약속'과 '믿음의 조상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께서 나셨습니다. 이것은 특권입니다. 이 특권은 세상의 어떤 민족도 누려보지 못한 오직 이스라엘만이 누린 매우 놀라운 특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특권을 소중히 여기고 그 특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유일한 선민으로서의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했고 제사장적 사명을 성실히 감당하는 나라가 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교만했습니다. 신앙이 형식적이었습니다. 결정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이 얼마나 망령된 일입니까? 이 얼마나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모독하는 일입니까?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모든 특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2천년간 나라없이 방랑해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에게만 주신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일찍 복음을 우리에게 주시고 왕같은 제사장이 될 것을 허락하신 우리를 향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또 복음을 일찍 받은 우리나라, 교회들을 향해서도 주시는 말씀입니다.
나라사랑 민족사랑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임경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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