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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쳤습니다.(창 2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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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해 보시기로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아!”하고 부르셨습니다. “어서 말씀하옵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네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거라. 거기 내가 일러 준 산에서 그를 번제로 나에게 바쳐라.”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 일어났습니다. 나귀에 안장을 얹었습니다. 두 종과 아들 이삭을 데리고 떠납니다. 제물을 태울 장작을 쪼갰습니다. 이것들을 나귀에 싣고 하나님이 일러주신 곳으로 서둘러 떠났습니다. 길을 떠난 지 사흘이 지났습니다.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 머물러 있어라. 나는 이삭과 함께 저리로 가서 예배를 드리고 오겠다.” 합니다. 그는 번제물을 태울 나무를 아들 이삭에게 지웠습니다. 그는 불씨와 칼을 챙겨 들었습니다. 그리고 둘이서 길을 떠나는데 이삭이 아버지께 “아버지 불도 있고 장작도 있는데 번제로 바칠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묻습니다. “번제물로 드릴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손수 마련하신단다.” 말을 마치고 둘은 길을 떠나 하나님이 일러 주신 곳에 도착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거기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거기 장작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묶었습니다. 제단 위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칼을 높이 빼어들고 아들을 막 찌르려고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머리털 하나도 상하게 하지 마라. 나는 네가 얼마나 나를 공경하는지 알았다. 너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마저도 서슴지 않고 나에게 바쳤다.” 아브라함이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보니 뿔이 가시덤불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숫양 한 마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양을 잡아 아들 대신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곳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 곧 “하나님께서 이 산에서 준비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읽은 말씀의 줄거리입니다. 정말 대단한 사건이지요.

오늘의 우상이 돈입니다. 돈이 현대인의 우상이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 가지의 회심이 필요하다. 가슴의 회심, 정신의 회심, 돈 지갑의 회심이다.” 이 세 가지 가운데 현대인들로서는 돈 지갑의 회심이 가장 어렵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돈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과부의 적은 헌금” “부자 농부의 돈”에 대한 말씀도 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눅 6:24)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마 6:19)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보다 쉬우니라.”(마 19:24)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눅 12:15)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라”(눅 12:33) 그 외에도 많습니다. 예수님의 재물관은 엄격하고 명백합니다. 돈을 탐하는 것이 일만악의 뿌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돈의 위력을 자주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돈은 좋은 것도 많습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 이상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신앙이 있고 없고는 ‘감사 하느냐? 않느냐?’ ‘감사를 많이 하느냐? 적게 하느냐?’에 있다고 봅니다.

저는 6월 14일 새벽기도회때 신명기서 15장을 강해 설교했습니다. 그 때 우리 교인은 구약시대에 비하면 대단한 부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제직들은 한 달에 한 번 이상 감사헌금을 하고, 한 달에 한 번 이상 형편에 따라 구제헌금을 했으면.. 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은 땅이나 소떼나 양떼보다 더 귀한 아들입니다.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그를 하나님이 제사로 바치라고 한다고 두 말 없이 바친 것입니다. 이런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갓난아이도 아닙니다. 청년이 되었습니다. 이 아이 때문에 사연이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번제로 태워 바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려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도 정말 대단하시고 아브라함도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머뭇거림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삭을 목숨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다 바치기로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아들을 하나님을 위해 바치기로 한 것입니다. 오늘 맥추감사주일에 즈음하여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쳤습니다.”라는 말씀으로 같이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Ⅰ. 아브라함에게 시험이 왔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시험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 집을 짓는 것과도 같습니다. 어떤 이는 금이나 은으로 짓습니다. 어떤 이는 나무로 짓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짚으로 짓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불로 시험합니다. 불에 타는 것은 든든치 못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우리에게도 시련이 있습니다. 시험이 옵니다. 그리스도인의 인격은 시험을 통해 형성됩니다. 전쟁 시의 갑옷과 마찬가지로 인격도 시험을 받아 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늘 예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더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너무 힘든 시험을 하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것 잘 압니다. 그에게는 벅찬 시험입니다. 그렇다고 그는 며칠을 고민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다음 날 일찍 짐을 챙겨 길을 떠난 것입니다. 그 아들이 보통 아들이 아닙니다. 아들을 낳는다는 약속을 25년이나 기다리다가 얻은 아들입니다. 이 아들 때문에 실수도 했습니다. 가정불화도 있었습니다. 그런 아들을 하나님이 달라고 하십니다. 차라리 어릴 때 달라시면 마음의 골은 이 만큼 깊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삭의 피를 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원하신 것입니다. 그 아들을 바치느냐? 않느냐?를 아시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결정적인 시험을 반드시 겪게 됩니다. 누구나 생애에 몇 번쯤은 슬픔보다 더욱 혹독한 시험을 겪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시험을 주십니다. 우리는 시험을 만나면 주저앉습니다. 넘어집니다. 그것이 건강일 수 있습니다. 직장, 결혼, 취직, 돈일 수도 있습니다. 가장 힘든 시험을 이기고 나면 정말 통쾌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가진 모든 것이 네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입니다. 왜 그래야 되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언제 드릴까요? 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이상합니다. 양으로 대신 드리면 안 됩니까? 라고 묻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하라 하시는 대로 한 것입니다.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겠습니까? 사람은 자기가 당하는 시험이 제일 힘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시험이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은 시험을 만나거든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저울질 하십니다. 시험을 통해 우리의 믿음의 깊이를 시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사랑하는 것을 내게 줄 수 있느냐는 것을 알아보시려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브라함이 직접 잡아 바치라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다른 사람에게 양자로 보내라는 것 아닙니다. 그 아들을 주면 다른 사람이 번제로 드리라는 것 아닙니다. 직접 그 아버지가 그 아들을 칼로 죽여 바치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것을 소설에서도 불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명령이 다시 내려지기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들이 그의 소망인데 말입니다.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태연했습니다. 물론 그 밤에 잠인들 잘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꼭 남의 일처럼 하나하나 아들을 바치는 일을 진행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실천한 것입니다. 우리도 머뭇거리다 실패합니다. 그러다가 넘어지는 사람을 숱하게 많이 봅니다. 늘 우리도 이런 시험을 당합니다. 하나님은 악으로 우리를 시험 하시지 않으십니다. 또 감당치 못할 시험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아브라함은 언제나 하나님이 최우선이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 먼저였습니다. 그래서 그 아내와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장본인인 아들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사 지낼 장작도 가져갑니다. 불도 가져갑니다. 제물인 양이 없습니다. 아들이 물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러나 곧 진정했습니다. “하나님이 준비 하신다”는 대답을 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 그 아들을 반드시 살려주신다고 믿었다(롬 4:16-22)고 했습니다. 제단을 쌓았습니다. 장작을 올려놓았습니다. 아들을 묶었습니다. 이삭은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도 고난이 옵니다. 하나님은 이기게 하십니다.

Ⅱ. 아들을 바친 아브라함

우리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도 합니다. 자기가 속한 어느 기관이나 단체에 충성 합니다. 오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달라고 하십니다. 내게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남편, 아내, 자식, 애인.... 집문서를 내놓으시겠습니까? 땅문서를 내놓으시겠습니까? 과연 우리는 어떤 식으로 감사합니까? 얼마 전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이 귀국했습니다. 그가 저지른 일로 우리의 세금 30조를 투입했답니다. 그의 경영실패로 국민들이 짊어진 빚입니다. 이 돈을 1만원권으로 바꾸면 89억 7,000만 장이랍니다. 만 원 권을 가로로(16.1cm) 쭉 늘여 놓으면 지구를 12 바퀴 정도를 돌 수 있는 거리라 합니다. 서울 강남의 34평 아파트(7억 원)를 4만 2,428채를 살 수 있답니다. 작년 기준 전 국민에게 1인당 약 61만 6,182원씩 나눠 줄 수 있는 돈이랍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에게 큰 벌을 줘야한다, 아니다, 그 동안 끼친 공이 있으므로 풀어줘야 한다고 합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축복을 받고 삽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방랑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에 가면 이런 절기를 지키라 하십니다. ①유월절 ②맥추절 ③초막절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식을 위해서는 아무리 써도 아까워 하지 않습니다. 병원 치료비는 당연히 고마운 마음으로 냅니다. 치료비를 에누리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헌금 드리는 것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제안을 새벽기도회 때 설교했습니다. 이것은 축복 받는 지름길입니다. 그리고 감사헌금은 직분자들은 한 달에 한 번씩만, 힘드시지만 감사헌금을 드렸으면 합니다. 구제헌금은 두 달에 한 번씩만 형편이 되는 대로 하시면 정말 좋겠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가실 때 빈손으로 가십니다. 우리의 내일을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 주신 것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것 가지고 선심 쓰고 축복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대중가요에 “있을 때 잘해”라는 것 들어 보셨습니까? 우리 주머니에 돈이 있을 때 하나님 창고에 저축하십시다. 이것 다 상 받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많은 것 주셨습니다. 지난 번 제가 여행을 갈 때 미국 돈 510불을 주셨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전에도 그 분이 500불을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뭘 드릴 것이 없어요. 기도만 할 뿐입니다. 있을 때 잘 합시다. 지금은 형편이 다 어렵습니다. 얼마 전 저의 친구 목사님 교회에서 임직식을 했답니다. 임직 받으시는 분들이 6천만 원(장로 1인당 1천만 원, 안수집사 500만원, 권사 400만원)을 해서 교회가 필요한 것을 했고 개인적으로 감사헌금을 정성껏 해서 교회가 힘이 되었다고 자랑을 합니다. 우리는 내년을 모릅니다. 전주 횃불제일교회 이기희 목사님은 개척교회를 시무한답니다. 갑자기 찾아온 만성신부전증으로 투석과 약물치료로 9년 동안 병마와 싸우고 계신답니다. 친구 목사 3명이 신장 기증을 해서 6월에 이식수술을 한답니다. 그런데 치료비가 엄청나답니다. 1만원만 도와달라고 편지가 왔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파요. 가슴이 죄어 와서 힘들었습니다. 작년 1년 치료비가 1,576만원, 우리 건강한 것만 해도 돈 벌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맺는 말 :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면 무엇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금년 맥추감사주일은 정말 감사다운 감사를 해 봅시다. 다 어렵습니다. 다 힘드시지요. 이런 분이 더 감사를 잘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들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까? 마음이야 다 있지요. 그러나 실제로 끈으로 묶고 칼을 심장에 내리 꽂아 불 태워 드리는 것을 다 주저하실 것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주저 했다면 “하나님 이것만은 정말 못 하겠습니다. 제 재산 다 가지세요. 이삭만은 달라고 하시지 마세요.” 했다면 아브라함은 믿음의 아버지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헌금을 하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 하시는 것입니다. 과연 용기 있게 바칠 수 있느냐를 보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어려우신 줄 잘 압니다. 금년은 작년보다 더 많이 해 봅시다. 목적이 있으신 분 용기 있게 감사해 보세요. 시험, 취직, 유학, 결혼 하나님께 먼저 감사드리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은 정확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더 주십니다. 아들을 바친 아브라함 같이 살아 주 안에서 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005.7.3 -충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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