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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감사하는 것만큼 (살전 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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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단 구석에 장미 한 송이가 화사하게 피었습니다. 그런데 그 장미는 언제나 불평이 가득했습니다. 눈만 뜨면 불평을 털어놓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장미는 밤이면 춥고 어둡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래서 따뜻하고 환한 거실로 옮겨 달라고 주인을 졸랐습니다. 주인은 장미를 화분에 옮겨서 거실에 두었습니다. 얼마 후 장미는 또다시 주인에게 불평을 했습니다. 여기는 나비가 찾아오지 않으니 창가에 옮겨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장미를 창가에 옮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장미는 창가에 고양이가 다녀서 싫다며 방안 꽃병에 꽂아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장미를 싹둑 잘라서 꽃병에 꽂아 주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장미는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다시 햇살이 비치는 바깥 화단으로 옮겨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러나 장미는 이미 뿌리가 잘려 시들어버렸습니다. 주인은 장미를 뽑아 쓰레기통에 버리고 말았습니다. 장미처럼 아름다운 꽃이 왜 쓰레기통에 버려져야 했을까요? 자신의 자리에서 만족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감사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데살로니가 교회는 많은 분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었습니다. 바울이 바라볼 때 무척이나 염려가 되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염려들은 디모데가 전해준 소식으로 인해 감사로 바뀌었습니다. 사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긍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던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디모데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요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에게 기쁨의 소식들만을 전하였습니다. 감사의 시각을 가지고 교회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감사는 결국 모든 일에 기뻐하게 하며 주야로 기도하게 하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에 사도바울은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하며 기뻐합니다. 매사를 감사의 필터를 가지고 바라보면 모든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아무리 좋은 집에서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어도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조금은 불편하고 힘들어도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만족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과연 어떤 사람이 더 행복할까요?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감사하는 것만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고 살게 하십니다.

첫째로 감사하는 것만큼 믿음을 주십니다

믿음과 감사는 정비례합니다. 믿음만큼 감사하게 되고, 감사하는 만큼 믿음의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6-17절은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고 말씀합니다. 즉 믿음의 평가기준은 얼마나 감사하고 사는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기쁜 때나 슬픈 때나 형통하든 그렇지 않던지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야말로 믿음의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환경과 여건에 따라서 감사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환경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것을 생각하면서 먼저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감사는 여건과 상관없는 믿음의 감사입니다. 참된 성도는 믿음 가운데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고 생활이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믿어도 여전히 가난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변함 없이 어려운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사업에 망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주어진 환경과 여건이 모두 나아지고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환경을 극복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감사만이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줄로 믿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 장애인 송명희 자매가 있습니다. 신체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소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태어나서부터 단 한차례도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똑바로 고개를 하고 싶어도 자꾸 옆으로 기울어지고 그래서 7살이 되도록 누워만 있었으며 10살이 되어서야 간신히 숟가락을 쥘 수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무슨 희망이 있었겠습니까? 그녀는 부모님과 하나님을 수없이 원망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기도 했고 몇 번이나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17살이 되었을 때에 이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내가 죽더라도 하나님을 만나서 따져보고 죽어야 되겠다. 도대체 나를 왜 이 모양으로 세상에 태어나게 했으며, 이런 몰골로 세상을 살아야 할 의미가 무엇인가." 그녀는 목숨 걸고 하나님께 따지듯 기도했습니다. 결국 오랜 기도 가운데 송명희 자매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내가 너를 버리지 않겠다' 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녀는 계속 기도를 하는 가운데 수많은 찬송시를 쓰게 되었고, 전국의 교회를 다니면서 뒤틀린 입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간증했습니다. 송명희 자매가 지은 '나' 라는 시의 내용입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그녀는 남이 가진 것은 못 가졌지만 남이 갖지 못한 것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셨으니 자신은 그 누구보다도 절대로 덜 받지 않았다고 공평하신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주어진 외형적인 조건이나 환경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데도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주어진 환경과 여건이 좋아서 감사함이 아니라 어떠한 환경에서도 감사함으로 믿음이 생겨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골로새서 2:7절은“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가 감사하는 것만큼 믿음을 주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환경이 좋아지고 여건이 나아짐으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감사함으로 믿음의 눈이 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사하는 만큼 믿음을 허락하심을 아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감사하는 것만큼 능력을 얻습니다

1917년에 워너 솔맨이라는 젊은 화가가 있었습니다. 결혼하고 얼마 안 된 젊은 나이에 그만 중병에 걸렸습니다. 의사가 말합니다. "당신의 병은 임파선 결핵입니다. 앞으로 3개월밖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그의 아내는 임신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얼마 살지 못한다고 하니 아내에게 미안하고 또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니 죄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가 몹시 괴로워하고 있을 때 사랑하는 아내가 그를 위로합니다. "여보! 3개월밖에 못산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3개월을 허락해주셨다고 생각하고 감사하세요. 아무도 원망하지 마세요. 3개월이 어디예요? 천금같은 3개월을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 갑시다." 두 사람은 3개월이나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솔맨은 열심히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감사로 열심히 살다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병이 씻은 듯이 다 나았던 것입니다. 바로 그때 그가 그린 그림이 예수님의 얼굴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의 얼굴을 자비하신 분으로 혹은 고난 당하시는 얼굴로 그렸는데, 그는 예수님을 지도력이 있고 강인한 인간성을 지닌 인물로 표현했습니다. 후에 그 그림은 유명해져 수백만 장이나 복사되어 세계 곳곳의 가정마다 걸려지는 명화가 되었습니다.

감사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감사를 통하여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시편 50편 23절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때 하나님은 그것을 기쁘게 여기십니다. 또한 감사를 드리는 사람에게 삶을 이겨나가는 능력을 주십니다. 밀러는 "감사의 역량에 따라 행복의 크기가 결정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가져오는 감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언제나 감사하는 것만큼 능력을 체험하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감사하는 것만큼 축복을 받습니다

미우라 아야꼬는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었습니다. 77년 일생의 대부분을 병과 싸웠습니다. 24세부터 결혼하기 전 37세까지 13년 동안 꼼짝 못하고 침대 위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다 예수님을 알면서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그 감격을 전하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사람의 비극은 자신만이 억울하게 고통 당한다는 생각의 오해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마음속의 빙점을 극복하면 어느 누구도 절망에 빠질 필요가 없다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일평생 결핵성 척추염, 대상포진, 직장암, ,파킨슨씨병 등의 난치병과 싸우면서도 고백했습니다. "내가 병으로 잃은 것은 오직 건강뿐이고 그것 때문에 오히려 신앙을 갖게 되어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순수한 마음으로 감사하는 자에게 축복하시고 형통의 삶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삶의 위기가 있을 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 위기가 곧 축복의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망했을 때도 좋은 교훈을 주셨다며 감사하고, 차가 부딪쳐도 몸이 다치지 않았음을 감사하고, 병에 걸려도 더 큰 병에 걸리지 않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또 문제가 생겨도 더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아서 감사하며, 사업이 안 되어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하고, 자녀가 다쳐도 더 크게 다치지 않아서 감사하고, 극심한 고난이 있어도 감사의 신앙으로 나아간다면 마귀와 질병과 저주는 순식간에 결박당하며 하나님께서 축복의 대로를 활짝 열어주실 것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현재 우리의 삶 속에서 불평하고 원망할 거리를 찾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힘들며 고통스러워 할 일들도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여건과 상황이 아닙니다. 신앙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과 여건 속에서도 감사하며 살 수 있도록 지음 받은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우선되지 않는 기도는 효과가 없습니다. 감사가 빠진 찬송은 의미가 없습니다. 감사의 자세가 없이 드리는 예배는 역사 하는 힘이 없습니다.

감사지수는 높을수록 좋습니다. 그 이유는 감사하는 것만큼 믿음이 더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것만큼 더 능력 있는 삶이 되어지며, 감사하는 것만큼 더 축복 받는 삶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불평하고 원망하던 것과 만족하지 못한 일들을 거꾸로 뒤집어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형편에서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 앞에 감사한다면 감사하는 것만큼 복된 삶을 살게 하실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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