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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창 13:14-18, 행 1:6-8, 눅13: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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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내가 TV시청습관과 관계된 열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그러면 “그렇습니다”, 아니면 “아닙니다”라고 속으로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렇습니다”는 몇 개이고 “아닙니다”는 몇 개인가 통계를 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 아침에 TV를 보다가 지각한 적이 있다. 둘, TV에 나오는 물건을 보고 사달라고 조른 적이 있다. 셋, TV를 볼 때 리모콘을 손이 닿는 곳에 놓고 본다.  넷,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보기위해 가족 중 누군가와 싸운 적이 있다. 다섯, 밥을 먹을 때 TV를 켜놓고 먹는다. 여섯, 가족과 대화를 나눌 때도 TV를 켜놓는다. 일곱, TV를 볼 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여덟, TV를 보기 전에 볼 프로그램을 미리 정해놓지 않는다. 아홉, TV를 보다가 누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한 적이 있다. 열, 저녁밥을 먹고 잠 잘 때까지 TV를 켜놓는다.

이상 열 가지 질문에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한 것이 몇 개인가 아시지요? 그것을 가지고 진단해 보겠습니다.

a.하나도 없다 : 시청습관이 아주 좋습니다. b.1-3개 : 시청습관이 비교적 좋은 편입니다. c.4-6개 : TV시청 중독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d.7-10 : 잘못된 시청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한 말로 하면 지금 TV에 중독 되어 있다 그 말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치료를 받아야 하고 잘못된 습관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잘못된 TV시청 습관 즉 TV중독증에서 벗어나 매체와의 바람직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검은 천으로 TV를 가려 놓는다든지, 플러그를 뽑아 놓거나 아예 안방으로 TV를 옮겨 놓는 것도 그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가족끼리 시청시간을 정한다든지, TV시청대신 함께 할 수 있는 대안활동을 모색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로서는 일상생활은 물론 우리 영성생활을 위하여 잘못된 습관을 고치고 영적건강과 성장을 위한 바른 습관을 익히는 것이 아주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상 하는 일들이지만 매양 습관적으로 계속만 할 것이 아니라 한번쯤 서서 뒤를 돌아보고 나아가야 할 진로를 새롭게 설정하는 것은 목표 달성을 위하여 훨씬 효과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은 2005년도 하반기 첫 주일입니다. 옛말에 “세월이 살같이 빠르다”든지, “여류광음(如流光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새해를 맞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6개월이 후딱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그냥 달려만 갈 것이 아니라 일단 서서 다시 한번 출발할 때의 목표와 결심을 새롭게 확인해 보는 것이 매우 유익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만일 지난 6개월 동안 정신없이 또는 정신 잃고 살아오느라고 우리가 목표로부터 벗어났다면 더 늦기 전에 진로를 수정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이나 우리 주님이 외친 메시지의 주제가 무엇이었습니까? “회개하라”는 말씀 아닙니까? 무슨 뜻입니까? “U-turn하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잘못되었으니 그 길에서 돌아서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 말씀이 새롭게 하반기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인줄 믿습니다.

우리는 금년에 “동서남북을 바라보라”는 표어로 출발했습니다.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멀고 먼 여행을 거쳐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 온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이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 시점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까? 그리고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1.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는 말씀은 에벤에셀의 하나님 은총을 확인하고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 우상숭배의 땅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부르심의 은총입니다. 온 세상을 살펴서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부르실 때 아브라함을 보시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뜨이고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는 이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막3:에 보면 예수께서 산에 오르셔서 많은 사람들 가운데 12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은총의 선택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이와 같이 주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큰 은혜와 복을  받은 사람들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다시피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 까지는 엄청난 거리였습니다. 교통수단이 열악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도로 사정이 얼마나 조악(粗惡)했는지 모릅니다. 도처에 얼마나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무사히 약속의 땅에 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멀고 험하고 긴 여정 끝에 마침내 그 땅에 발을 디뎠을 때 눈물이 나도록 감격스럽지 않았겠습니까? 이것이 에벤에셀의 은총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사히 인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사무엘은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총을 기억 하면서 기념비를 세우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와주셨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 80년의 역사도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운안동-안기동을 거쳐 일제 때는 안동교회와 병합-해방 후 성서신학원에서, 1952년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 금곡동 124번지로, 그리고 여기서 50여년의 세월을 지나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에벤에셀 은총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또 우리는 지난 2002년 12월 18일을 기하여 역사적인 새 성전 기공식을 가진바 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4월 13일 시공업체의 부도로 공사가 중단되고 1년의 세월을 지나왔습니다. 그야말로 아픔과 고통과 눈물의 1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으로 만드시면서 마침내 새롭게 출발하도록 역사해 주셨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도와주시는 은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점에 우리에게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시는 것은 주님의 도우시는 은총을 기억하고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면서 모든 것이 오직 주님의 은총뿐인 것을 확인하시고 우리 모두 함께 에벤에셀의 은총을 감사하십시다.

2.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는 말씀은 이제 우리가 감당해야할 사명을 확인하고 동서남북을 향하여 일하러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임마누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내가 네게 복을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내가 네게 복을 주리라”고 선언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고는 “너는 복이 되어라” 또는 “너는 복의 근원이 되어라”고 하셨습니다. 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복이 되라고, 복의 근원이 되라고 복을 주셨습니다. 왜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복을 주셨습니까? 세상에서 복이 되라고, 복의 근원이 되라고 우리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선교적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의 복은 정말 우리 것이 되어 우리가 그 복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요나를 잘 아시지요. 하나님은 요나를 선지자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요나야 말로 남다른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남다른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고 하셨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에게 복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에게 복의 근원의 역할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그에게 주신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남다른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명을 팽개쳤습니다. 그래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그러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다 한가운데서 큰 풍랑을 만나 고기 뱃속에 까지 내려가는 엄청난 시련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 명령을 거부하고 그 사명을 팽개친 요나에게 하나님은 무섭게 진노하셨습니다. 주신 은혜, 주신 복을 모조리 빼앗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했습니다.

오늘 사도행전 말씀을 잘 들으십시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했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임마누엘 약속입니다. 이보다 더 큰 은혜와 복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찬송가에 “왜 내게 성령 주셔서 내 맘을 감동해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로 하여금 복이 되라고, 사명을 감당하라고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의 말씀은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 받은 제자들은 온 세상을 향하여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증인이 되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는 말씀은 우리 각 사람이, 우리 서부 교회가 우리들 가정에서, 직장에서, 우리 이웃들에게, 또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라는 말씀입니다.

유명한 선교 신학자 부룬너는 “타지 않는 것은 불이 아니듯이 선교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오늘 우리 교회가 정녕 그리스도의 교회입니까? 그러면 오늘 우리가 가장 먼저, 가장 힘써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두 말할 것도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사명을 감당할 것을 촉구하십니다.

3.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는 말씀은 미래 지향적인 비전을 가지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이레의 비전입니다.

잠언29:18에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고 했습니다. 이 구절을 KJV에서는 “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오늘 우리 형편이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우리 성도들이, 우리 교회가 비전을 가지기만 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비전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누가복음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온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 말씀을 앞으로 우리가 완성하게 될 새 성전과 결부해서 생각합니다. 아까도 말씀 드렸듯이 우리는 지난 일년 동안 새 성전 건축의 중단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또 앞으로 완공하기 까지, 완공하고 나서도 상당기간 우리는 그 짐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짐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십자가를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를 피하지 말고 지고 따르라고 하십니다. “십자가 없으면 면류관도 없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다소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분명한 비전이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건축하는 새 성전을 통하여 놀라운 일을 이루어주신다는 비전입니다. 시107:2-3에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그들을 모으셨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께서 이 말씀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확실한 비전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신실한 약속 붙잡고, 지금은 다소 힘들고 어려워도 참으시면서 조금만 더 기다리십시다. 십자가를 지고 따릅시다. 그러면서 에벤에셀 은총에 감사하고, 임마누엘의 능력으로 사명을 감당하면서 여호와 이레의 비전을 가지면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이르러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그리고 놀랍게 응하게 될 줄 믿습니다. 
(김오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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