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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반포된 하나님의 성품 (출 3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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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서론

모세는 시내산에 두 번 올라갔습니다. 두 번 모두 40일 동안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모세의 금식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금식과는 다른 점이 많습니다. 출애굽기 34장 28절을 보게 되면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일 사십야를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모세의 금식은 완전금식이었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언약의 말씀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습니다. 모세의 금식은 물을 안 먹고 사십일 한 것입니다. 그것을 두 번이나 했습니다. 사람이 물을 마시면서는 사십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물을 안 마시면 삼일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금식기도 사십일 한 것과 물도 안 먹고 삼일 금식한 것은 똑같은 가치를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사십일 동안 떡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모세가 홍해를 가른 것도 기적이지만 짧은 기간을 사이에 두고 사십일을 금식했다는 것도 기적인 것입니다. 이렇게 사십일 금식을 두 번하고 나니까 모세의 육신과 온 영혼이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출애굽기 34장 29절을 보니까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백성들은 두려워서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나 모세 자신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유명한 침례교 설교자 알렉산더 맥클라렌(Alexander MacLaren)은 19세기 말에 영국에 많은 설교를 남겼습니다. 그분이 이 본문을 가지고 한 설교가 ‘복된 무의식’(blessed unconsciousness)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이 자기의 얼굴꺼풀에 광채를 내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죄인들은 죄를 짓고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것을 맥클라렌 목사님은 ‘비극적 무의식’(tragic unconsciousness)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여러분, 비극적 무의식의 주인공이 되지 마시고 복된 무의식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복된 무의식,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있어서 본인은 모를지라도 남들은 알아보는 그런 은혜가 있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세가 첫 사십일 금식에서 십계명 두 돌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아온 첫 번째 돌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여호와라하고 절하며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모세가 대노해서 두 돌비를 산 아래 던져 깨뜨려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상숭배자 삼천명을 죽이고 나머지는 역병으로 멸하시고 다시 계명을 주십니다.

1. 첫 번째 돌비와 둘째 돌비의 차이

그런데 모세가 첫 번째 받았던 돌비와 두 번째 받았던 돌비는 확실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 16절에 “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첫 번째는 그 돌비 자체를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돌비에 쓴 말씀도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입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34장 1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 네가 깨뜨린바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쓰신 말씀은 같지만 첫 번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판이요 두 번째 판은 모세가, 즉 사람이 만든 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기 이전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판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셨습니다. 그러나 범죄하고 난 이후에는 사람이 만든 판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신 것입니다. 내용은 같지만 기록된 판이 달랐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의 구원과정에 적용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에는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돌비에 기록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아담의 심비에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에덴동산의 모든 실과는 먹어도 좋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그런데 아담은 자기의 심비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위반하고 범죄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심비는 깨지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심비에 기록하지 않으십니다. 범죄한 이후에는 인간이 만들 돌비, 문서, 종이에 하나님 말씀을 기록하셨습니다. 이것이 두 돌비의 십계명이요, 이것이 성경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에게는 마음에 말씀을 기록하십니다. 히브리서 8장 10절에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고린도후서 3장 3절에도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아담처럼 심비에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죄인들에
게는 하나님이 심비에 기록하지 아니하시고 돌비에 말씀을 기록하십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 있지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차원에만 머물러 있다고 한다면 그는 아직도 골고다 언덕에 오르지 못한 사람이요 그는 아직 모세처럼 시내산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요 그는 아직도 법아래 있는 사람이요 그는 아직도 심비에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마음의 심비에, 영혼의 심비에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있는 사람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골고다 언덕을 지나온 사람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과하여 온 사람이요 은혜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돌비에 기록된 말씀, 종이에 기록된 말씀이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오늘 우리의 심비에 기록되기를 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모세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성품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돌판 돌을 잘 깎았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여호와의 명대로 시내산 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시며 이렇게 반포하십니다. 그 내용이 6-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이것은 하나님이 친히 하나님 자신의 이름과 성품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표 이름은 무엇입니까? 여호와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대표이름은 여호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머릿속에, 심비에 그래도 새겨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복잡한 것 같지만 삼각형으로 그리면 이렇게 됩니다.

(첨부 그림 참조)
삼각형의 맨 위는 인자(love)와 진실(faithfulness)이 많으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한이 없으십니다. 그리고 믿고 신뢰할만한 하나님이십니다. 삼각형의 왼쪽을 보면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측 편으로 가면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이며, 인자를 천대까지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할 때 이런 삼각형을 머리에 그려야 합니다. 신약성서를 봐도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이렇게 은혜롭고 체계적으로 계시된 곳이 없습니다. 얼마나 은혜롭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심비에 새겨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성품을 수시로 주장해서 하나님의 성품에 따른 은혜와 축복과 용서를 체험하며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두 가지 의문

그런데 이 말씀을 볼 때에 지나칠 수 없는 질문 두 가지를 갖게 됩니다. 7절 중반을 보세요.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또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조금 전만해도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더니 이제는 아비의 악을 자녀손 삼사 대 까지 보응한다고 하시니 이 말씀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두 가지 질문은 이것입니다. 첫째, 어떤 사람에게는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며 또 어떤 사람에게는 형벌 받을 자로서 결단코 면죄하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이 결단코 면죄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이며 또 하나님이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시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밝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 두 개의 구절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요엘서 2장 12-13절에는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요엘 선지자는 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악에 빠져 하나님이 메뚜기 재앙을 내리시니까 출애굽기 34장 6절 말씀을 인용해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출애굽기 34장 6절의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까? 죄를 지었을지라도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 돌아오고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인자와 용서와 축복을 베풀어주시는 줄로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나 회개치 않는 자는 형벌을 받을 자요 결단코 면제받지 못할 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받을 사람은 회개
하는 사람이요 형벌 받을 사람은 회개치 않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에 앉아서 예배하고 있을지라도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단 한번의 회개도 없었다면 오늘 회개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내가 우상숭배자요, 내가 죄인입니다.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기도는 여러분의 생애를 바꾸는 기도가 될 것입니다. 요나서 3장 10절과 4장 2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요나도 출애굽기 34장 6절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니느웨 백성들이 요나의 말씀을 듣고 슬퍼하고 회개하며 왕도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회개하자 하나님이 은혜로운 성품을 따라 용서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있으면서도 회개치 않는 사람은 결단코 면죄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죄 짓고도 회개치 아니하면 형벌 받을 자입니다. 그러나 죄가 있어도 마음을 찢고 회개하며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에게 용서와 축복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신줄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무엇입니까? 7절 후반에 보니까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어떤 집안은 하나님이 천대까지 인자를 베푸시고 어떤 집안은 아비의 죄악은 삼사 대까지 보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문제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와 우리의 후손이 하나님의 복수하심을 보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인자를 보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아비의 악을 자녀손 삼사 대에 갚겠다는 말에 대한 대답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4-6절에 모세가 이미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선포했습니다. 이것이 십계명 가운데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이것이 제 2계명입니다.

아비의 악을 자녀손 삼사 대까지 복수하는 가정은 우상을 만들고 우상에게 절하며 섬기는 가정입니다. 왜 삼사 대입니까? 할아버지가 절하면 아버지도 절합니다. 아들까지 있으면 삼대고 손자까지 있으면 사대인 것입니다. 어느 가정이 하나님이 악을 보응하시는 가정입니까? 우상을 만들고 섬기고 절하는 가정입니다. 이 가정에는 하나님이 삼사 대에 걸쳐서 복수하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섬겨도 바른 방법으로 섬겨야 합니다. 우상을 만들고 절하는 것은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우상을 통해서 섬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심령에 새기고 그것을 통해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은 4장 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과 진리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지 우상을 통해 섬기는 것은 아닙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섬기는 가정에는 천대에 걸쳐서 인자를 베푸시는 줄을 확신하시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집에 지금도 우상이 있습니까? 부적이 있습니까? 버리시기 바랍니다.

결론

시내산에서 계시하신 하나님의 성품은 요약하면 두 가지입니다. 사랑과 공의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 수도 있고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우상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를 씻음 받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섬기며 살겠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천대에 걸쳐서 인자와 축복과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줄을 확신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우상숭배하면서 회개치 않는 사람은 결단코 면죄치 않으시고 그 자녀손 삼사 대까지 벌하실 것입니다.

이 말씀을 받은 모세는 어떻게 했습니까? 첫째는 땅에 엎드려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여러분, 말씀 앞에 교만하지 마시고 엎드려 경배하며 겸손하게 이 말씀을 받아들이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모세는 회개했습니다. “우리는 목이 곧은 백성입니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소서.” 그리고는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중에 함께 행하시고 우리로 주의 기업을 삼아 주옵소서.” 모세같이 위대한 분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이렇게 반응을 보였다면 우리도 마땅히 이런 반응을 보여야 할 줄 믿습니다. 아직도 우상숭배하시는 분들이 있습니까? 우상을
버리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죄 가운데 행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를 베푸시고 우리의 죄와 과실과 악을 용서하시는 하나님 앞에 회개함으로 나와서 사하심을 얻고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 원문에 첨부 그림이 열리지 않아 첨부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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