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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죽도록 충성하라 (계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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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아버님인 손양원목사를 향한 특별한 역사를 이루신 곳은 나환자 수용소인 애향원에서 부터입니다. 아버지가 1939년 애향원에 전도사로 부임하시면서 피고름나는 나환자를 불쌍히 여기시며 섬기셨는데,1940년 39세 되시던해 신사참배거부로 투옥 되시면서 우리 가정의 환란은 시작되었습니다. 어머님도  “신사참배를 하면 나의 남편이 아니다”하셨고 우리 형제들도 신사참배 거부로 등교를 못했습니다.

  우리는 아버님의 투옥으로 사택을 쫓겨나 부산 범태고 산꼭대기에서 어렵게 살아갔습니다. 아버님은 여수 경찰서, 광주 구치소, 광주 형무소, 경성구금소, 청주 구금소등으로 옮기셨는데, 아버님은 눈만 떳다하면 전도를 하므로 독방에 갇히게 되었고, 영양실조로 두눈이 멀어가고 있어서 할아버님이 매우 걱정하시면서 편지를 쓰신 기억이 납니다. 그때 큰오빠인 동신오빠에게 군대 영장이 나와서 온식구가 걱정하며 금식기도 중 마지막날 온 가족이 뿔쁠이 흩어져 버리기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오빠가 군대에 가면 매일 신사 참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오빠가 신사참배를 안하는 방법은 그것 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동생과 함께 고아원에 보내졌는데 다행히 1년 만에 해방이 되어 다시 가족과 함께 살게 되고 우리는 햇수로 6년 만에 애향원으로 돌아가게 되어 너무도 행복할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순천 매산중학교 1학년때 여순반란 사건이 이어나 동인 동신 두 오빠가 순교 당하자 나는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하면서 하나님을 미워하며 원망했습니다. 오빠들의 시신을 끌어안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 하신 일이 고작 이런 것들인가요? 어찌 이럴 수가 있나요?“ 다시 살려 내라고 목이 쉬도록 하나님을 원망하며 내가 다시는 예수를 안믿겠다고 소리소리 질렀지요.

  하지만 아버님의 생각은 저와 달랐습니다. 아버님은 오빠들의 원수인 강철민을 용서하시고 아들 삼겠다는 겁니다. 나는 용서하면 됬지 아들은 또 뭐냐고 그럼 그가 내 오빠가 된다는 것이냐고 그것은 절대 안된다고 우겼습니다. 아버님은 ”동희야. 난 어차피 하나님의 1계명과 2게명을 지키기 위해 감옥살이를 했고 너희들 까지 고생시켰는데, 1,2계명이 하나님의 계명이라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도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 성경 말씀에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용서만 가지고는 안된다.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아들 삼아야 되지 않겠느냐”하셨습니다. 아버님과 나의 세계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내가 아버님의 그 광대한 세계를 이해 할 수 없지만 한가지 우리 아버님은 이세상 누구의 말 보다도 하나님의 명령 한 마디면 끝난 겁니다. 아버님을 절대 이길 수가 없습니다. 강철민 구명운동에 나덕환 목사님이 바쁘신 아버님 대신에 애를 많이 쓰셨고 결국 그를 아들 삼아 부산 고려 고등 성경학교에 입학시켜 독실한 크리스챤이 되게 했습니다.

  아버님은 장례식 예배에서 9가지 감사를 말씀하셨는데, 1)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이 나게 하셨으니 감사, 2) 허다한 많은 성도 중에 어찌 이 보배를 주께서 하필 나에게 주셨는지 감사, 3) 삼남 삼녀 중 가장 아름 다운 장자 ,차자를 바치게된 나의 축복에 감사, 4)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를 허락하시니 감사, 5) 예수 믿다가 누워 죽어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가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께 감사, 6)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 보다 더 좋은 천국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감사, 7) 내 사랑하는 두 아들 총살 시킨 원수 회개 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한 마음 주신 하나님께 감사, 8) 두 아들 순교의 열매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 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감사, 9) 이 같은 역경 속에서 이상의 감사와 진리와 신애를 찾는 기쁜 마음 여유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께 감사.

  그후 저는 이화 여중으로 전학오고 3학년 18살 때 6.25사변이 터졌습니다. 그때 모두들 피난 갈 것을 아버님께 권했지만 “나는 감옥에서 죽었을 사람이다. 이 난국에 이 불쌍한 나환자들을 버리고 나 혼자 살겠다고 어디로 도망을 가겠는가 “하시며 “주의 이름으로 죽는 다면 이 보다 더한 영광이 있겠는가”하시고 순교를 각오하고 하루 세번씩 부흥집회를 인도하시며 마지막 날 요한 계시록 2장 10절 말씀을 가지고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설교를 하셨고 순교에 대해서 첫째도 순교요. 둘째도 순교요. 셋째도 순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9월 13일 평소와 같이 강단 뒤에서 기도를 하시다가 공산당이 아버님을 미국 놈 스파이. 앞잡이, 공산당을 악선전한다고 여수 감옥으로 끌고 갔는데 9월 28일 미평 과수원에서 총살순교하셨습니다. 저는 한 때 하나님이 어데 있느냐고 반항하며 방황했습니다. 한시대의 역사는 어지러운 그 시대에는 뭐가 뭔지 잘 모릅니다. 믾은 세월이 흐른 후 그 당시의 역사의 진상을 알듯이 나는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점을 딱 찍어놓고 하나의 믿음의 표본을 만드시려고 그렇게 하셨다는 사실을 뒤늦게 나마 깨달았습니다. 우리 두 오빠 , 아버님, 많은 순교자들, 그들은 죽었지만 죽은 것이 아니라 싹이 나고 움이 터서 이땅의 수 많은 영혼들을 께워주는 하나의 믿음의 표본을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아멘 (손동희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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