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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의 원칙 (골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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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기도처럼 중요한 것은 달리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쉬지 않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숨 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기도를 호흡에 비유한 것입니다. 누구나 숨 쉬는 것을 싫어하거나 힘들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숨을 원활히 쉴 수 없을 때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과 같습니다. 기도에 힘쓰는 성도는 영적으로 활기가 넘칩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새 힘을 공급받기 때문에 시련과 역경이 다가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이겨냅니다. 반면에, 기도를 등한히 하는 성도의 영적 삶은 무기력합니다. 작은 시련 앞에서도 용기를 잃고 낙심합니다.

기도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배들을 보세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기도에 힘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분들이지만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들의 위대한 생애는 기도생활의 결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기도에 힘쓰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광야에 가셔서 40일 동안 금식하시며 기도하셨습니다. 공생애 기간에도 자주 새벽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막 1:35). 중요한 일을 앞두시고는 한층 더 기도에 힘쓰셨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는 산으로 가셔서 밤이 맟도록 기도하셨으며(눅 6:12), 십자가 고난을 앞두셨을 때에도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얼마나 힘쓰고 애써 간절하게 기도하셨던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눅 22:44).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처럼 기도에 힘쓰셨다는 사실은 기도의 중요함을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이 시간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기도의 원칙이 무엇인지 말씀해 드림으로 성도님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항상 기도하라”고 한 것은 기도의 중요성을 말씀한 것입니다. 기도는 항상 해야 할 만큼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백금이나 황금과 같은 귀금속이나 다이아몬드나 진주와 같은 보석을 귀하게 여깁니다. 그러한 것들은 재산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황금이나 보석보다 더 귀한 것은 우리에게 항상 필요한 것들입니다. 매일 끼 때마다 먹는 밥이 사실은 황금보다 귀한 것입니다. 아무리 희귀한 보석이라도 우리가 마시는 물과 공기보다 더 귀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황금, 보석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밥과 물과 공기가 없어서는 생존 그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기도는 성도들에게 밥과 물과 공기와도 같습니다.

항상 필요한 것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가 항상 필요하다고 했으니 이는 기도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해야 할 정도로 기도는 중요한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기도를 등한히 하는 이유를 생활이 바쁜 데 돌립니다.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도 바쁘기 때문이고, 봉사를 하는 못하는 것도 바쁘기 때문이요, 기도하지 못하는 것도 바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일보다 더 바쁜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기도할 시간도 낼 수 없으리만치 바쁘다면 생활의 우선순위가 잘못 설정되어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바쁘다는 핑계를 대면서 기도를 등한히 한다면 우리의 영적 생명이 고갈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영적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공급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때 생명을 유지하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주님 안에 거할 때 주님의 생명을 공급받아 생명력이 넘치는 신앙생활을 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항상 기도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도는 성도들의 생명줄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과 사랑의 교통을 나누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영적으로 대화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대화가 필요하듯이, 하나님 아버지와 그 자녀 된 성도들 간에도 대화가 필요합니다. 문제아들을 보면 하나 같이 부모와 대화의 통로가 막혀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 역시 대화의 결핍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어제 신문을 보다가 충격적인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에 알코올에 중독된 여성이 55만 명이 넘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보건사회연구원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전국 남녀의 25.3%가 경증 이상의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인의 8.6%, 청소년의 14%는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의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알코올 중독이나 우울증에 걸리는 원인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한데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곁에 자기의 진심을 나눌 대상이 없을 때 외로움을 느끼게 되며, 그로 인해 술을 마시거나 우울증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께서는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하기 위해서는 물론이요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도 가정에서 가족 간에 대화의 시간을 많이 갖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가하면 대화는 성도들의 영적인 삶에도 절대로 필요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충분한 대화를 나누는 성도는 고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살기 때문에 늘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련을 만났을 때라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한없는 위로를 부어주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시련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런즉 항상 기도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기도에 힘쓰라고 말씀합니다. 기도하되 건성으로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기도 하면서 머릿속에는 온갖 걱정과 번잡한 생각이 가득하다면 그런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집중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천지의 주재이신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므로 정돈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힘써 기도하라 함은 간절하게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그는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일로 형 에서의 보복을 피해서 머나 먼 하란으로 도망쳤습니다. 거기서 20년 동안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는 동안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단란한 가정도 이루었습니다.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사람을 형 에서에게 보내어 그의 귀향을 알렸더니, 사자가 돌아와서 하는 말이 에서가 4백인의 군사를 거느리고 달려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얍복강가에 이르러 가축 떼와 아내들과 자식들을 다 건네고 뒤에 혼자 남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혼자 남은 것일까요? 예, 기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밤에 있었던 일을 창세기 32장 24절 이하에는 이같이 증언합니다.

“24)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26)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28)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은 기도하되 환도뼈가 위골되기까지 힘쓰고 애쓰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미천한 인간이 어찌 하나님과 겨루어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힘써 기도할 때 “그래, 내가 너에게 졌다”고 말씀하십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 선지자가 올린 기도를 보십시오. 아합 왕을 비롯해서 수많은 백성이 둘러서서 바라보는 가운데 그는 바알의 선지자 450인과 기도의 대결을 벌렸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이 하루 종일 바알의 이름을 불렀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바알은 신이 아니고 우상이므로 응답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제 엘리야 선지자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는 돌로써 단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벌려놓고 그 위에 송아지를 잡아 각을 떠서 올려놓았습니다. 그 다음, 제단 위에 물을 붓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뭇게 했습니다. 그렇게 세 번이나 부었습니다. 물이 제물과 나무를 적시고 단 주위에 파놓은 도랑에 넘쳤습니다.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하늘을 우러러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그러자 기도가 끝남과 동시에 하나님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았습니다. 엘리야는 긴 시간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기도는 지극히 짧았습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기도는 힘을 다해 드린 기도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힘써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응답을 믿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응답을 믿지 않는다면 구태여 힘써 기도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기도에 힘쓰라는 것은 끈질기게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한두 번 기도해 보고 그만 두지 말고 응답을 받기까지 포기하지 말고 기도를 계속하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이 과부는 재판관과 안면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재판관에게 뇌물을 바칠 형편도 못되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과부였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과부는 생면부지의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가서 자기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재판관이 이 과부의 청을 들어줄 리 만무합니다. 그렇지만 과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같이 찾아가서 자기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과부의 끈덕진 호소에 이 재판관은 두 손을 다 들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얻지 못함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요, 기도해도 얻지 못함은 간절하게 구하지 않기 때문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도님들께서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에 힘쓰심으로 위대하신 하나님의 응답을 풍성히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단지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빚을 지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빚쟁이가 빚진 자에게 갚기를 요구하듯이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먼저 받은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생활을 하던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번은 이스라엘 자손이 울며 말하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고 했습니다.

광야에서 살다보니 생선도 먹을 수 없고, 수박이나 부추나 파나 마늘 같은 것도 먹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원망과 불평의 빌미가 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농사도 지을 수 없고 무역도 할 수 없는 광야에서 매일 같이 만나를 내려서 이스라엘 자손을 먹이셨습니다.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았는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고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어 먹었는데,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맛 같았다고 했습니다.

광야에서 만나처럼 적합한 음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맛도 좋고 영양가도 골고루 들어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만나를 내려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마땅할 것입니다. 또한 고기가 먹고 싶으면 모세에게 가서 하나님께 구해서 고기를 먹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매일 만나를 주셔서 양식 걱정을 하지 않게 해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기왕이면 하나님께 기도해서 고기도 먹게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것들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고 광야에서 구할 수 없는 것들을 들추어내어서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모세가 마음이 상해서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주께서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나로 주의 목전에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잉태하였나이까 내가 어찌 그들을 생산하였기에 주께서 나더러 양육하는 아비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가로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찐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재미있었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으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이십일만 먹을 뿐 아니라 코에서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일개월간을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거하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고 함이라 하라“고 하셨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바람을 불게 하셔서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이스라엘 자손의 진 사방에 내리게 하시니, 백성이 메추라기를 잡아서 싫증이 나도록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진노하셔서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예, 그들은 감사할 줄을 몰랐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시편 50편 23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셨습니다. 감사가 없이 드리는 제사는 아무리 살진 송아지를 제물로 바칠지라도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합니다. 감사가 없이 단지 의무적으로 드리는 예배 역시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하십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가 빠진 기도는 원망이요 아우성에 불과하므로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되지 못합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 기도할 때 우리의 필요를 구하기에 앞서서 하나님의 은총을 생각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할 때 우리 마음 문이 열리고, 영안이 밝아지고, 마땅히 구할 바를 알게 됩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형통할 때에도 감사하고, 어려울 때에도 감사하고, 건강할 때도 감사하고, 병들었을 때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어떤 성도님이 병에 걸려 고통스러울 때 “오, 주님, 저로 하여금 주께서 당하신 고통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도록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성도님은 사업이 망해 사글세방으로 이사 갔으나 “주님께서는 머리 둘 곳도 없이 사셨는데, 저는 이렇게 편히 쉴 수 있는 집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라고 감사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심으로 더욱 풍성한 기도 응답을 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네 번째로,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은 영적으로 항상 깨어 있어야지 졸고 잠자면 안 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성도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구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반면에 영적으로 졸며 자는 성도는 기도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고 근심합니다. 기도생활에 힘쓰는 것은 그 사람이 깨어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기도를 등한히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영적으로 잠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이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가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기도하러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다 잠이 들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과 같이 우리도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물질만능주의 시대를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고 재물을 얻기 위해, 또는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꿩 잡는 게 매”라고 과정이야 어찌되었든지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생각이 팽배합니다. 현대는 먹고 사는 것은 넉넉해 졌는지 몰라도 믿음을 지켜나가기에는 매우 불리한 시대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것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특히, 마귀는 물질로써 성도들을 시험합니다. 요즘 성도들이 받는 시험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 물질로 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지 돈을 사랑하면 시험에 들고 맙니다. 그리고 현대는 이단과 사이비가 기승을 부립니다. 복음의 진리를 왜곡한 가르침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단과 사이비가 노리는 것은 불신자들이 아니고 교회에 속한 신자들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인류 역사의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세력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베드로전서 5장 8절에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했습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먹이를 찾아다닐지라도 깨어 기도하는 성도들을 넘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깨어 기도하는 성도들은 마귀를 대적해서 물리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시대의 징조를 분간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잠자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줄 알고 자나 깨나 이 세상일에만 몰두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깨어 있는 성도들은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사건 소식을 들으면서 주님의 예언을 떠올립니다. 이라크 전쟁을 보면서 단지 강대국이 정치적, 경제적인 이익을 노리고 일으킨 전쟁이라고만 생각하지 않고,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날 것이라’고 하신 주님의 예언을 생각합니다.

이단들이 활개 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하신 예언을 생각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재난이 빈발하는 것을 보면서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는 성도들은 강림 하시는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유비무환이라는 말이 있듯이, 항상 영적으로 깨어 기도하심으로 모든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사도는 복음을 전하는 그와 그의 동역자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능력 있는 분이 기도를 부탁했다면, 저와 같은 사람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기도하실 때마다 담임 목사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 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분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구역장님들을 위해서, 교회학교 선생님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도님들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목회자와 온 성도들이 기도로써 능력 받아 주님께서 맡기신 복음 전파의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해야 할 줄 믿습니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음으로 언제나 생명력이 넘치는 은혜로운 신앙생활을 영위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양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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