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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금은 예수를 잘 믿어야 할 때 (요 1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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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교회의 여전도회 회장으로 있는 그 이름도 유명한 "땅 사랑"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부동산 투기가 한창 기승을 부릴 즈음에 한몫을 잡으려는 땅 집사님은 여전도회 헌신예배가 있는 것도 잊어버린 채 일 주일 내내 열심히 아파트와 땅을 보러 발이 닳도록 돌아 다녔습니다.
그리고 주일날 저녁 여전도회 헌신예배 시간이 되었지만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땅 집사님은 급하게 찬송가를 찾아서 사회석에 올라섰습니다. 신앙고백을 틀리지 않고 무사히 한 후에 찬송을 부를 순서가 되어서 아주 거룩하고 자신 있게 한마디합니다. "우리 모두 찬송가 109동(!)을 부르겠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주변인이 있고 중심인이 있습니다. 어느 모임이든 단체에서든 구경꾼이 있고 동참자가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에 쉽게 흔들리는 사람은 주변인입니다. 물끄러미 바라만 보는 사람은 구경꾼입니다. 그들은 형통한 날에는 충성을 과시하다가 시련의 날에는 온갖 핑계를 다 내세우면서 교회를 떠나갑니다. 그러나 중심인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크게 요동하지 않습니다. 주변인은 언제나 남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단체는 비하시킵니다. 그러나 중심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를 존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변인이 되지 말고 중심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평상시에는 잘 몰라도 시련의 때에 그의 믿음의 가치가 드러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크게 쓰임 받는 중심 인물이 되시기 바랍니다. 결코 주변 인물이 되지 마십시오. 구경꾼이 되지 마십시오. 방관자가 되지 마십시오. 남의 이야기를 하지 말고, 내 이야기를 하십시오. 내가 속한 내 교회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십시오.

지금의 이 땅은 말세입니다. 갈대로 갔습니다. 남의 생명을 헌신짝처럼 취급합니다. 음란과 퇴폐의 문화가 이 땅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이 혼탁한 시대에 우리가 사는 길은 예수를 바로 믿는 것입니다. 이 유혹 많은 시대에 내 가정과 아이들을 지키는 길은 예수를 똑바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를 똑 바로 믿으십시오. 기왕에 믿어야 할 것이라면 좀 제대로 한번 믿어보십시오. 기왕에 주를 섬기려고 하셨다면 정말로 멋지게 한번 섬겨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예수님만을 바라보면서 후회 없이 살아보십시오.

인생은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의 남은 인생이 얼마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이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는 순간에 어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두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의 길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이 계시는 천국으로 갈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잘 믿어서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려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부활의 영광을 맛보아야 합니다. 행여 꿈에라도 지옥에는 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를 제대로 믿으십시오. 잘 믿으십시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십시오.

사람은 누구나 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상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22명의 선수들이 운동장을 누비며 축구경기를 합니다. 엄격한 경기규칙을 지켜야 경기가 진행되고 골을 넣어도 인정을 받게 됩니다. 경기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옐로우카드로 경고를 주고 반칙이 반복되면 레드카드 경고와 함께 운동장에서 퇴장을 당하게 됩니다. 누구나 학교를 다닙니다. 그러나 모두가 다 졸업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학교가 원하는 학칙대로 공부하고 학교 생활을 한 사람만 졸업이 가능합니다. 누구나 사업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성공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돈버는 것도 윤리가 있고 규칙이 있고 규범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는 사람만 성공하게 됩니다. 누구나 정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백성의 존경을 받는 정치가가 되려면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을 버리고 먼저 국가와 민족을 생각해야 합니다.
누구나 교회를 다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구원을 받고 모범적인 교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생활에도 규칙이 있고 교회 생활에도 규범이 있고 윤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

사실 우리 교회는 모든 시설이 열악하기 그지없습니다. 예배 공간도 비좁고, 어느 교회들처럼 교육관 시설도 없습니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편하게 쉴만한 곳이 없습니다. 더구나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도 없습니다. 오늘 차를 몰고 오신 분들은 모두가 불법주차를 하신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주일 이 교회를 찾아와서 예배하는 여러 교우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재정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열악한 상황에서도 헌신하는 여러분들을 하나님께서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영신교회에 출석한 이후의 교회생활입니다. 그가 어느 교회에 출석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교회에 다닌 이후의 달라진 생활이 중요합니다. 그가 몇 천명이 모이는 큰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큰 교인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처럼 외형적으로 초라한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그의 신앙이 초라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예수를 믿고 교회에 출석하면서 달라진 삶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종종 드리는 말이지만 우리의 교회 생활은 종교 놀이가 아닙니다. 교회 생활은 신앙생활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기로 결심하셨고 그래서 이 교회에 나오셨다면 이후의 여러분의 신앙생활에는 뭔가 달라져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나를 부르신 부름의 상을 얻으려고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야 합니다. 물론 가다가 지칠 수도 있습니다. 힘들어서 잠시 쉬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주 주저앉아버리지는 마십시오. 영원히 쉬지는 마십시오.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하면서 이런 불평, 저런 원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원망하지는 마십시오. 믿음의 자리를 떠나지는 마십시오.

간혹 보면,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어느 교회를 가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교회 저 교회를 전전합니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들은 예수까지 버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교회를 옮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옮기면 안됩니다.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교회를 떠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로부터 떠나면 안됩니다. 교회의 어떤 사람이 마음에 안 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마음에 안 들면 안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멀리하면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행복도, 인생도 끝나고 말 것입니다. 교회 생활이 행복하면 인생이 행복합니다. 그러나 교회 생활이 무너지면 인생도 무너집니다. 기억하십시오. 인생이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고통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그는 사단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예수 없는 인생은 어둠과 저주의 그늘 아래에 머물게 됩니다. 때문에 하나님 없는 인생은 어디를 가도 평안이 없습니다. ♬"세상 어딜 가나 실망뿐이고"♬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세상 어디를 가도 실망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잘 믿으십시오. 정말로 예수를 잘 믿으십시오. 지금은 우리의 믿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분명한 교회 생활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발 잘 믿으십시오. 제대로 믿으십시오. 똑바로 믿으십시오.

우리는 흔히 열심을 내는 사람들을 보고 믿음이 좋다고 합니다. 물론 믿음과 열심은 관련은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없어도 열심을 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도 얼마든지 기도를 많이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도 얼마든지 믿음 있는 척 할 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단의 사술에 빠져서 잘못된 열심을 내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사람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사람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기 때문에 다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바로 믿어야 합니다. 바로 믿되 잘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로 믿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우리가 바로 믿기 위해서는 우리가 믿는 믿음의 대상이 분명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바로 믿으려면 내가 믿는 믿음의 대상이 분명해야 합니다. 믿음의 대상이 희미하면 믿음의 생활도 희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믿는 믿음의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서 그의 믿음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무를 자신의 믿음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해와 달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물질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렇게 섬기는 신들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바울이 아덴에 갔을 때에 보았던 것입니다. 그가 아덴에 갔더니 아덴 사람들은 자신들이 예배하는 그 대상을 알지 못해서 제단에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썼었습니다. 결국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그 믿음의 대상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바르게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믿는 그 믿음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여러분이 정말로 바르게 보다 더 잘 믿기를 원한다면 내가 믿는 그 믿음의 대상이 분명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참된 믿음이란 참된 믿음의 대상을 참되게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분은 크고 위대하신 분이기에 그 분 안에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에 빠져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나와 내 가족이 구원을 받는 길은 하나님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대상이 분명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믿음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은 적극적인 사고 방식이 아닙니다. 적극적 사고 방식은 인간의 가능성을 믿는 것이지만 믿음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닙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유사시 급할 때만 사용하는 스페어 타이어가 아닙니다. 믿음은 자기가 가는 방향과 맞을 때만 올라타는 고속버스가 아닙니다. 믿음이란 내 의지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내 신념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그의 생애 전체를 내가 닮아 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나의 인격이 되고, 예수께서 나의 생각과 삶을 주장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우리의 생각 속에, 우리의 삶 속에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밥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생활할 때도 항상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낮이나 밤이나 그 분을 생각하고 그 분을 의지하고 그 분의 도움을 받고 그 분을 전적으로 믿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믿음이 더 확실하게 담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2장 2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근원이시며 우리 믿음을 완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믿음의 근원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다 완전하게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바라보고 더 바라보십시오. 지금은 희미하지만 우리가 주만 바라보며 살아갈 때에 어느 때엔가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를 바라볼 때에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믿어야 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내 삶의 중심이십니다. 나의 소망이 되십니다. 내 맘에 타오르는 생명의 불이십니다. 내가 믿는 믿음의 대상을 분명히 하십시오. 이것도 믿고, 저것도 믿는 희미한 신앙생활을 하지 마십시오.
둘째로, 우리가 바로 믿고 잘 믿기 위해서는 믿음의 내용이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부분적인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에서는 예배를 잘 드리고, 세상에 나가서는 자기 멋대로 사는 것을 온전한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주일 하루만 거룩하게 살고, 나머지 6일은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보고 그가 예수를 잘 믿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잘 믿는다는 것은 그의 삶 속에 나타난 믿음의 내용이 분명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세상을 향해 나가는 성도는 주님의 자녀답게 믿음으로 살아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잘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변화된 내 삶의 이야기가 있어야 합니다. 내 삶의 노래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믿음은 우리 삶의 원동력이요 기초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믿음 때문에 살고 믿음을 따라 죽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야고보서 2장 18절에서 사도 야고보는 믿음에 대해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현대어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이르는 길은 믿음만 있으면 될 뿐 아무 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선한 행동도 동시에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선한 행동이 없이는 당신에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행동을 보여야만 사람들이 내게 믿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 지금은 우리가 예수를 잘 믿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예수를 잘 믿기를 원하신다면 변화된 내 삶의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말이 아니라 삶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잘 믿는 사람에게는 믿음의 내용이 분명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가 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기 위해서는 주변에 믿는 사람들을 많이 두시기를 권면합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은 친구를 사귀어도 잘 믿는 친구를 사귑니다. 결혼도 믿음이 좋은 사람하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끼리끼리 모입니다. 방탕한 사람은 방탕한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춤바람 난 사람은 춤바람 난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술주정뱅이는 술주정뱅이들과 어울리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믿음이 좋은데 방탕한 사람과 어울려 다닌다면 그는 바른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간혹 교인들 가운데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 사람은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 된다고 재단하듯이 말합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 사람하고 어울리기를 좋아합니다. 같이 즐깁니다. 같이 돌아다닙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 사람이 더 나쁜 사람입니다. 분명히 그래서는 안 된다고 비난하고 정죄하면서 자신이 그와 함께 그것을 즐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정말로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같은 사람들에게서 돌아서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과 같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정말로 바로 믿는 사람이라면 믿음이 약한 사람을 바로 세워주어야 합니다. 그 바람에 같이 희희낙낙 즐기는 것이 아니라 신앙 안으로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 자신도 잘 믿어야 하지만 우리에게는 잘 믿는 가족이 필요합니다. 예수 잘 믿는 친구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약해지고 넘어질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울 때에 옆에서 잘 믿는 가족이나 친구가 붙잡아주고 일으켜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주변에 잘 믿는 사람이 많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주변에 잘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러분 자신이 예수 잘 믿는 그 한 사람이 되어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귀엽고 사랑스러운 자식이라도 계속해서 미운 짓만 하면 밉습니다. 아내가 아무리 이뻐도 바가지만 긁어대면 밉습니다. 마찬가지로 믿는 자가 미운 짓만 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합니다. 믿는 자는 믿는 자답게 살아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복을 받습니다. 믿는 자답게 산다는 것은 결국 내 삶에서 믿음의 내용이 확실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야 할 믿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오늘 본문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하루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시기하고 다투었습니다. 서로 높아지려고 하는 것은 지극히 세상적인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에는 서로 높아지려는 경쟁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높아져서 섬김을 받으라. 그래서 세상에서는 낮은 자가 높은 자를 섬깁니다.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섬깁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인간 사회의 질서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먼저 된 사람이 나중 된 사람의 발을 씻겨야 된다고 하십니다. 먼저 배운 사람이 나중 배운 사람의 발을 씻겨야 한다고 하십니다. 먼저 믿은 사람이 나중 믿은 사람의 발을 씻겨야 한다고 하십니다. 가진 사람이 못 가진 사람의 발을 씻겨야 한다고 하십니다.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의 발을 씻겨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믿음의 내용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그렇게 본이 되라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주 중요한 동사가 4개 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먼저 예수님은 일어나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주라고 하는 자리에 계십니다. 선생님이라고 하는 자리에 계십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시기 위해서 하늘의 보좌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따뜻한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편안한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대접받는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섬김을 받으려는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이것은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우리의 변화된 삶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둘째로, 예수님은 겉옷을 벗으셨습니다. 옷은 신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에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낮고 천한 곳에 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신분의 옷을 벗으십시오. 그리고 예수를 본받아 낮고 미천한 자리에로 내려가십시오. 그리고 셋째로, 예수님은 수건을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허리에 수건을 두르셨다고 하는 것은 종의 차림입니다. 주님께서 스스로 종의 형체를 취하셨습니다. 넷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제자가 선생님의 발을 씻기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제자의 발을 씻겼다는 것입니다. 높은 사람이 아래 사람을 섬겼다는 뜻입니다. 주인이 종을 섬겼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베드로의 발을 씻깁니다. 요한의 발도 씻깁니다. 더러운 먼지가 발에 끼어서 발 냄새가 얼마나 지독했을까요? 그러나 그 냄새까지도 향기로 맡으면서 기쁜 마음으로 씻기십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을 배반할 가룟 유다의 발도 씻기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죽음으로 너희의 발을 씻는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의 이러한 행위를 "끝까지 사랑했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원수까지도 섬기면서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겼다는 것은 섬겼다는 뜻이요,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은 섬김으로 나타나고, 섬김의 상징적인 의미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섬기러 왔노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믿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를 잘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저 사람은 참으로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할 때에 무엇을 보고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그가 기도를 많이 하기 때문입니까? 물론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기도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믿음이 없는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도 기도를 많이 합니다. 어떤 이단의 사람들은 우리들 보다 훨씬 더 많이 기도를 합니다. 각양의 은사를 많이 체험한 사람이 예수를 잘 믿는 사람입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각양의 은사를 많이 체험한 사람들 가운데 교만에 빠져서 이단으로 넘어간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신앙적 우월주의에 빠져서 다른 교인들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땅의 교회 역사 가운데서 소위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웠던 일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소위 뜨겁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지탄을 받았던 일이 또 얼마였던가요?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중요한 믿음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섬김입니다. 원수까지도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섬김은 사랑이 없으면 못합니다. 이 섬김은 스스로 자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이 섬김은 자신이 죽음으로 섬긴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십자가에 온전히 죽여야만 남을 섬길 수가 있습니다. 자기를 죽이지 않고는 남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런데 이 발은 가장 낮은 곳에 있습니다. 발을 만져주므로 가장 낮은 것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로 내려가는 것,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런가 하면 모든 지체가 다 중요하지만 이 발은 인체에서 더욱 중요합니다. 발이 없으면 걷지를 못합니다.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발은 우리 지체의 모든 것을 홀로 담당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중한 모든 지체를 발이 버텨주고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있습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의 모습이 바로 이러해야 합니다. 만약에 우리 모두가 겸손한 마음으로 섬김의 자리에로 내려가지 않으면 교회 공동체는 무너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더럽고 냄새나는 곳을 외면한다면 우리의 교회는 무기력증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머리로 살려고 합니다. 이론으로 살려고 합니다. 대접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발 아래로 내려가라고 하십니다. 말과 이론이 아니라 행함과 실천으로 본이 되라고 하십니다. 섬김의 자리에로 내려가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올라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내려오려고 합니다. 땅에 속한 자는 올라가려고 교만하고, 시기합니다. 계속해서 인간적인 경쟁을 합니다. 그런데 하늘에 속한 자는 하늘로부터 내려올 수밖에 없습니다. 더 올라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땅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올라가려고 바둥거리지 말고 내려가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낮은 곳에 임하셨던 것처럼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십시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내려가야 합니다. 내려가야 그 밑에서 강도 만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내려가야 그 밑에서 병든 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유다까지도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도 집단 이기주의로 변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구원에 대해서 말할 지라도 실상은 위선에 대해서 말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낮은 자가 높은 자를 섬기는 것은 아무런 감동이 없습니다.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섬길 때 아름다운 공동체가 이루어집니다. 교회가 세상으로 내려가서 섬길 때에 세상은 변화되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태산같은 믿음을 가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섬김의 자리에로 내려가십시오. 섬기되 대충 대충 섬기려 하지 말고 몸과 마음을 다해서 섬기십시오. 제대로 한번 섬겨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감동하시도록 섬기십시오. 사람들이 감동하도록 그렇게 섬겨보십시오. 우리가 그렇게 성심을 다해서 섬길 때에 세상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믿음을 말하게 될 것입니다.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잘 믿으십시오. 제대로 믿으십시오. 우리가 믿는 믿음의 내용을 세상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보여주도록 믿으십시오. 지금은 우리의 믿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이 변하면 우리의 인생도 변합니다. 성경에 보면, 주를 잘 믿어서 횡재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렇고, 요셉도 그렇습니다. 다윗왕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잘 믿어서 인생이 잘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믿음을 업그레이드시키십시오. 우리의 믿음을 업그레이드시키면 인생도 반드시 업그레이드될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믿음을 버리게 하는 모든 것들을 버리십시오. 당신의 믿음을 파괴하려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십시오. 당신의 믿음을 포기하도록 하는 수많은 유혹들과 맞서 싸우십시오. 그리고 이기십시오. 우리의 믿음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가장 좋은 길은 섬김의 자리에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결국 주님을 따라 섬김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금보다 귀한 믿음은 참 보배되도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금보다 귀한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우리가 바로 믿어야 약속의 땅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믿어야 내 자손 대대로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믿어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내 삶의 모습을 보고 저절로 믿음이 생기도록 그렇게 한번 살아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아십니까? 지금은 정말로 예수를 잘 믿어야 할 때입니다.

영국 속담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동안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라. 일주일동안 행복하려거든 여행을 하라. 한달 동안 행복하려거든 집을 사라. 일년동안 행복하려거든 결혼을 하라. 일평생 행복하려거든 이웃을 섬기라"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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