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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금은 진정으로 거듭나야 할 때 (요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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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격무에 시달리고 퇴근을 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버지를 이제 갓 돌이 지난 어린 아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반깁니다. 그래서 이 아버지는 아들이 너무 귀여워서 엄지손가락에 살짝 뽀뽀를 해줬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손가락을 계속 내미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귀엽기도 해서 이번에는 살짝 깨물어 주었습니다. 이 아들이 이번에는 '어어∼'하면서 손가락을 다시 내밀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아들의 손가락을 쭉 빨아주었습니다. 이런 게 사랑이 아닐까 생각을 하는데, 부엌에서 일하다 나온 아내는 부자간의 사랑에 질투라도 하는 듯 밝지 못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 이 녀석이 글쎄…. 똥구멍 판 손가락 냄새를 맡아보라고 그러지 뭐예요."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생각만 하면 마냥 행복한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나의 시간과 물질, 은사와 환경을 모두 드리고 그냥 기쁘기만 한 그 무엇 말입니다. 시인 워드워즈는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뛴다고 노래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생각만 하면 가슴이 마구 뛰고 행복해 하는 그 무엇이 있습니까? 저는 예수님만 생각하면 행복합니다. 예수님만 생각하면 제 마음이 평안을 얻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예수님만 생각하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이 찬송이 제게는 위로가 됩니다.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수님, 이 말만 들어도 갑자기 행복해지고 가슴이 설레이십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이름을 들어도 그저 무덤덤합니까? 여러분은 밤을 세워 이야기해도 행복할 수 있는 대상이 있습니까? 대가를 바라지 않고 땀흘려 수고를 해도 행복할 수 있는 대상이 있나요? 있다면 그는 정말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예수, 그 이름만 생각해도 감격하고 행복해 할 수 있었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의 심장에 예수님을 모십시오. 주님과 함께 생각하고, 주님과 함께 인생 여정을 걸어가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잘 믿으십시오. 제대로 믿어 보십시오.

저는 여러분들이 주를 잘 믿어서 생명의 복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을 잘 믿어서 이 땅에서도 물질의 복을 풍성하게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잘 믿어서 자녀들에게 좋은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내 자녀들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은 무엇일까? 믿음이어야 합니다. 옛 말에 부자는 3대를 못 내려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아무리 많은 재물을 물려준다고 해도 그것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다릅니다. 믿음의 유산은 자자손손 대대로 물려줄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의 유산은 영원합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아무리 부귀 공명을 다 누려도 지옥에 간다면 그의 인생은 실패입니다. 자녀들에게 아무리 많은 재물을 물려주어도 그 자녀들에게 믿음이 없다면 그는 인생을 잘못 살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아무리 가난하고 어려움을 당해도 마지막에 천국에 갈 수 있다면 그것이 영원한 축복입니다. 내 아이에게 넉넉한 재물을 주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었다면 그는 아이들에게 가장 멋진 삶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가 이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믿어서 성공하십시오. 세상에서 부자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부자가 되십시오. 이 땅에서 행복해 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을 누리십시오. 인생 여정에서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교회에 보면 명목상의 교인과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한국 교회의 심각한 문제는 명목상의 교인들을 만들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나름대로의 직분도 받았습니다. 헌신도 합니다. 찬송 생활도 합니다. 기도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랜 세월동안 교회 생활을 하면서 기독교를 하나의 문화적 습관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구주로 믿는 것이 아니라 그냥 거부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들은 교회에 다니면서도 신앙 생활에서의 감동이 없습니다. 거듭남에 대한 신앙적 체험이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기 이전의 생활과 달라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아니 조금 달라진 척 할 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빌려서 말한다면 그들은 입술로 "주여, 주여"라고 외치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향해서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주여, 주여 한다고 다 하늘의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회칠한 무덤이라고 말입니다.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말입니다. 자신도 천국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도 못 들어가게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잘 믿으십시오. 제대로 믿으십시오. 여러분이 믿는 그 믿음의 내용을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보여주십시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하지 않습니다. 찬송하는 모습을 보고 박수를 치지 않습니다. 방언으로 말하고, 예언하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믿는 그 믿음의 내용을 보고 싶어합니다. 믿어서 변화된 삶의 모습을 보고 싶어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본받아서 낮은 자리에로 내려가십시오. 가장 낮은 곳을 섬기십시오. 그러면 세상은 우리를 향해서 감동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 앞에 나오실 때에 어떤 기대를 가지고 오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오늘 어떤 은혜를 주실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나에게 어떤 복을 주실까? 여러분에게는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이루어주실 어떤 기대감이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이 기대감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내 삶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쁜 짓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자식이라고 다 똑같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귀엽고 사랑스러운 자식이라도 계속해서 미운 짓만 하면 밉습니다. 아무리 아내가 이뻐도 계속해서 바가지만 긁어대면 밉습니다. 마찬가지로 믿는 자가 미운 짓만 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합니다. 믿는 자는 믿는 자답게 살아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복 받을 짓을 많이 해서 넘치는 복을 받으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사랑 받을 짓을 많이 해서 더 많은 사랑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사십시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드려야 합니다. 신부된 우리는 신랑되신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누르고 흔들어 넘치는 복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훗날에 주님을 뵈올 때에 우리 주님께서 기쁨으로 두 팔 벌려 맞아주실 것입니다. 이 은혜와 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사람은 과거의 습관에 얽매여 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과거의 습관에 얽매여 살지 마십시오. 과거에 우리는 모두가 어둠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과거에 우리 모두는 사단의 권세에 얽매여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갑니다. 지금 우리는 빛의 자녀로 살아갑니다. 지금 우리는 과거의 풍습과 과거의 습관에 얽매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설 그날을 바라보면서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전 것은 지나가 버렸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존재로서 주 앞에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심장에 주님을 모시고 살아갑니다. 나 한 사람을 통해서 이루실 주님의 비전을 품고 살아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셔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죄성에 강하게 이끌리게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지 않는다면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성령께서 바라는 것과는 정반대로 악한 일을 하기를 좋아하는 육체적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인도하는 길을 따라 살며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은 우리 본성의 욕망과는 정반대의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이 두 힘은 서로 우리를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끊임없이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양쪽 틈에 끼여서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고백합니다. "속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고 싶어하면서도 내 속 깊은 곳에는 어떤 다른 것이 있어서 죄의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면서 그는 탄식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성령께서 인도하는 대로만 따라 살면 더 이상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성령께 내 생각과 행동과 삶을 의탁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죄의 노예로 끌려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어쩌다가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어쩌다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자신만 불행해집니다. 그러면 그는 망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나를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분명한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주님의 뜻을 깨달아 도구로 쓰임을 받기만 하면 됩니다. 지금은 내가 나를 생각해도 연약하지만 주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기만 하면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놀라운 강한 능력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나를 생각해도 초라하고 볼품없지만 주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는 날에는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지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들어 쓰시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무엇을 이루려고 아둥바둥 거리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루어주시기를 바라십시오. 내가 바라는 모든 소망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다만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으십시오.

앙드레 말로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21세기는 영적인 세기가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영적 시대입니다. 사단은 더 강력한 흑암의 권세로 우리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 흑암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강력한 영적 능력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마다 때마다 성령의 도우심을 요청하십시오. 성령의 임재하심을 경험하십시오. 내 힘만으로는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없습니다. 내 힘만 의지하면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게는 나를 대신하여 싸워주실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싸우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악한 사단의 진을 파괴하십시오.

오늘 본문에서 니고데모는 영적인 갈증을 해결하고자 한 밤중에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어쩌면 지금 니고데모의 영혼도 어두운 밤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지금 영혼의 깊은 밤거리를 방황하고 있습니다. 사실, 니고데모는 어린 시절부터 종교적인 가르침을 받아왔습니다. 그가 바리새인이었다는데서 우리는 그가 얼마나 종교적인 행위에 충실했었는가를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종교적인 행위에 충실할수록 영적으로는 더 깊은 갈증을 느껴야만 했었습니다. 그는 영적인 갈증을 해소하고자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영혼의 깊은 밤에서 깨어나고자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도 그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겠다고 고백했다는 기사는 성경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인 만족을 갈망하는 사람들은 과거에도 많았고, 지금도 많으며 미래에도 계속 있을 것입니다. 개중에는 주님을 만나 진정한 만족을 얻는 사람도 있겠지만 니고데모처럼 아무런 변화도 얻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영적인 만족을 갈망하는 인간의 영적 고민과 투쟁은 어느 시대에서나 있어 왔습니다. 문제는 인간이 어떻게 해야만 영적인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내면의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영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관원이요 바리새인인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향해서 아주 거창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니고네모의 모습에서 그가 심령 깊은 곳에서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그 문제를 터치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저는 본문을 대하면서 니고데모가 좀더 솔직해졌으면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저 같으면 예수님을 만나서 다짜고짜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예수님, 제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고 천국에 갈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고, 묻고 싶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진실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중심을 다 아시는 주님 앞에서 자신의 내면을 숨기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쩌면 이 니고데모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주님 앞에서 좀더 솔직해 지십시오. 주님 앞에서 좀더 진실해 지십시오. 빌립이 나다나엘을 부르기 전에 먼저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셨던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오기 전에 먼저 내 형편과 처지를 다 알고 계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 앞에서 자신을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주 앞에 나오십시오. 우리 주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십니다. 가식과 위선의 탈을 벗어버리십시오.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하나님 나의 마음 만져 주소서.
하나님 나의 영혼 새롭게 하소서"♬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어떤 이적을 행하셨는가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떤 내용을 가르치셨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나름대로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고, 하나님의 권능을 가지신 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의 이 찬가에 대해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습니다. 엉뚱하게도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셨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그가 방언으로 말하고, 예언을 하고, 능력을 행하기 때문에 그가 예수를 믿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더불어 예수님의 삶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니고데모의 모습에서 자신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한 시간 주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립니다. 은혜로운 찬송을 불렀습니다.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무엇인가 마음속에 느끼고 깨닫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이 이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니고데모입니다. 니고데모도 그날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의 깊은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날 밤 예수님 곁을 떠나갔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정한 시간에 정한 장소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인터넷으로 시간마다 말씀을 듣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니고데모처럼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말씀을 따라 거듭난 삶을 살지 못하는 이름뿐인 그리스도인들이 오늘 이 땅에는 얼마나 많습니까? 저는 우리 모두가 니고데모처럼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은 진정으로 거듭나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진정으로 성령과 물로 거듭나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한 시간 주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드린 만큼 내가 거듭나야 합니다.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생각이 거듭나야 합니다. 우리의 행위가 거듭나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거듭난다'는 것은 헬라어로 '처음부터', '완전히', 그리고 '위에서부터'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의해서 어느 한 부분만의 개선이 아니라, 인간 본성 전체가 새롭게 되고 변화되는 사건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에서 '본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물체나 형상을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하여 '경험하고, 참여하며,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와 영적 세계는 거듭나지 않고서는 그것에 대해서 느끼고 이해하거나 볼 수 없습니다. 거듭나지 않고서는 하나님도, 천국도, 구원도, 예수님에 관해서도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아무리 지혜롭고 지식이 많아도 그것만 가지고는 신앙생활을 바르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좀더 이야기하자면 그가 아무리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고, 그래서 직분을 맡았다고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솔직히 니고데모를 보십시오. 그는 바리새인입니다. 당시에 나름대로는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자부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사람은 거듭나야 하늘 나라를 본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사람이라는 말은 '누구나'를 의미합니다. '거듭나야 한다'라는 말은 영어로 'Must be'인데, 이것은 아주 강한 명령입니다. 그러니까 거듭나도 좋고, 거듭나지 않아도 그만인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니고데모는 아직까지 거듭나지 못한 종교인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나오는데 거듭나지 못한 교인이 많습니다. 집사, 권사, 장로의 직분은 받았는데 아직 거듭나지 못한 분들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년 말이 되어 당회를 하는데 어느 중직에 있는 교인이 불만을 퍼뜨리면서 교회를 너무 어지럽게 했습니다. 목사님이 그에게 충고했습니다. "그렇게 교회를 어지럽히다가 지옥가면 어찌하려느냐?" 그랬더니 그 분이 이렇게 대답을 하면서 달려들더랍니다. "천당과 지옥이 있는지 어떻게 아느냐?" 말을 더하다가는 그의 입에서 하나님이 있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할까봐 더 이상 말을 안 했다고 합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오늘 이 땅에는 교회에는 나오는데 거듭나지 못한 명목상의 교인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로 저들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고나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들을 보면서 저들이 정말로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그래서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렇게 행동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헐버트 웨스의 '대 주교의 죽음'이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대 주교가 성당에 가서 늘 기도하는데 어느 날 "내가 네 기도를 들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음성을 들은 대 주교가 너무 놀라서 그만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늘 기도는 하지만 형식적이고 습관적이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들으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솔직히 여러분, 오늘 우리들 가운데는 그런 사람이 없는지요? 제발 없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듭나십시오. 지금은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거듭나야 할 때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거듭난다고 했을 때에 그것이 내 힘과 능력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새 출발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꼴 수 백번도 더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꼴 수 백번도 더 무너졌던 경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다짐을 하지만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잘못된 습관, 잘못된 가치관을 정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가능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는 새롭게 거듭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성령의 능력이 내 속에 역사하실 때에 우리는 새로운 결단을 할 수 있습니다. 거듭난 변화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힘들고 어려울 때에 주님의 손을 꼭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유혹 앞에 무너지려고 할 때에 주님을 생각하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거듭나고 변화된 모습을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보여주십시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의 두뇌는 종이와 같아서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서 세모꼴 또는 네모꼴도 될 수 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서 인격과 삶이 결정됩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들의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나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 삶 속에서 일어난 놀라운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모두가 거듭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우리는 거듭나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위해서 거듭나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내 가족과 자손들을 위해서 거듭나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내 노력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내 결심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본문 8절에서 그 해답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그렇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면 나도 모르게 변화가 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면 어느 한 순간에 내 삶 속에서 거룩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그래서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내면의 깊은 아픔과 상처까지도 씻어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어느 자매가 결혼한 지 20 년 간 매일 싸웠다고 합니다. 친구의 권유로 부부가 함께 교회를 나갔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듣던 남편이 눈물을 흐리더라는 것입니다. 한번도 우는 것을 보지 못한 부인이 놀랐습니다. 집에 온 남편이 "여보, 미안해. 내가 부족했던 것 같아!"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며칠을 울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를 진정으로 영접하고 거듭나면 삶에 변화가 옵니다. 그런데 이 변화는 자신의 내면의 변화를 말합니다. 이것이 세상과 다릅니다. 세상은 남이 변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네가 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제도와 체제가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자신의 영적인 변화를 말합니다. 내가 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누가 때문에 못한다고 남의 탓을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자신의 내면의 영적인 변화가 없이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토레이 박사는 말합니다. "성령 받기 전에는 모든 것이 남의 탓으로 보이고, 성령을 받으면 다 내 잘못으로 느껴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을 받으십시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거듭난 인생이 되십시오. 교회에는 다니지만,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2장 2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불쌍한 영혼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거듭나야 한다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요, 생명입니다. 교회 안에서 관록이나 직분만으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거듭나야만 천국에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예배를 드리면서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 모두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시기를 축복합니다. 거듭나시기를 축복합니다. 거듭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거듭나야 할 때입니다.

존 뉴튼이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내가 마땅히 되어야 될 사람도, 또 내가 되기를 소원하는 사람도 아직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내가 옛날의 그 사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거듭나 새 생명을 얻은 사람의 고백입니다. 그는 아직도 여러 모로 부족하지만, 적어도 자기 속에 예수의 새 생명이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아직도 여러 가지로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옛날에 죄악 가운데서 방황하던 그 사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 분명한 것은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생명을 얻으십시오. 성령께서 저와 여러분을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나십시오. 새 생명을 얻은 새 사람으로 살아가십시오. 거듭나면 여러분 앞에는 놀라운 새 생활이 펼쳐질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는 그저 예수 믿는 것은 한 주일에 한 번 산보 삼아, 기분 전환도 할 겸 예배당에 나와서 찬송도 부르고, 성경 말씀도 듣고, 그 밖의 교훈대로 하나씩 둘씩 고쳐나가는 수양을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이라고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독교라고 한다면 세상의 다른 종교보다 나을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분명히 들으십시오. 그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수양이 아닙니다. 개선이 아닙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그 성품이 죄로 말미암아 부패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혼이 죽었습니다. 때문에 기독교의 요구는 근본적으로 다시 나지 아니하면, 새사람이 되지 아니하면, 그 본성이 변화하지 아니하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새 차원의 세계를 말합니다. 새사람이 되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새 생명으로 나는 것을 말합니다. 새로 난 사람은 새로운 성품과 새로운 마음을 받습니다. 새로 난 사람이라야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나 때문에 내 가족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면 진정으로 거듭나십시오. 우리 교회 때문에 이 땅에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우리 모두는 진정으로 거듭나야만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지금은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거듭나야 할 때입니다. 거듭나십시오.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당신이 믿는 그 믿음의 내용을 보여주십시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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