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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원의 항구를 향하여 (마 14: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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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렐루야! 무더운 더위가 계속되는데 오늘 여러분들을 아주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갈릴리 바닷가로 모시고 가려고 합니다. 자, 갈릴리 바다로 여행할 준비가 다 되셨습니까? 

  한밤중, 갈릴리 바다에 몰아치는 풍랑 중에 일어난 놀라운 사건을 통해서 영적인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인생은 마치 소원의 항구를 향하여 나아가는 항해와 같습니다. 우리는 이 인생의 항해를 통해서 순풍을 만나기도 하지만 역풍을 만나서 고생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너무 거친 태풍을 만나서 항해를 중도에서 포기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그 항해를 승리로 마치는 분들도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보통의 경우, 불순종한 사람들이 이 태풍을 만나고 역풍을 만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요나입니다. 그런데 그 ‘요나’라는 게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앞의 “요 나”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그런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증거 하라고 했는데, 가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을 치다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풍랑을 만났고, 바다에 던져져 고기 뱃속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불순종하여 가다가 태풍을 만난 사람이 바로 요나라는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불순종한 사람만이 태풍을 만나겠습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순종하며 가다가도 태풍을 만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욥과 같은 사람입니다. 욥은 동방의 의인이요,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하루아침에 모진 태풍이 몰려왔습니다. 가산을 다 빼앗겨 버렸습니다. 열 자녀를 다 잃어 버렸습니다. 건강마저 잃어버렸습니다. 고통가운데 신음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는 무죄하였지만 고난의 태풍 앞에서 시련당하는 인물이 된 것입니다.
  요셉을 봐도 그렇습니다. 요셉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던 젊은이였지만, 하루 아침에 노예로 끌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인생의 거친 태풍 앞에서 하염없이 추락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 곳 저 곳을 왕래했지만, 가는 곳마다 환영받기 보다는 박해받고 고통당하는 일이 더 많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배를 타고 건너가다가 큰 풍랑을 만나서 고생한 기사가 오늘의 성경 본문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본문의 배경을 살펴보자면, 광야에서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달게 들었습니다. 이후 이제 돌아가려는 그들을 보니까 너무 허기져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얘들아, 저들에게 줄 것이 좀 없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아무것도 없는데, 한 소년이 가지고 온 도시락이 있었습니다. 열어보니 오병이어, 말 그대로 보리떡 5개와 소금에 저린 생선 2마리였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높이 들고 축사하시고 나눠주셨는데, 5000명의 무리가 다 먹고 12광주리가 남았더라는 것입니다.

  자, 이런 기적을 체험한 이 많은 무리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야! 바로 이 분이야 . 이 분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야. 이 분을 우리의 임금으로 삼자. 그러면 우리가 굶주리지 않고, 배불리 먹고 살아갈 수 있지 않겠어?” 그 군중들의 움직임 속에 제자들도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다 숨겨진 욕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예수님 앞에 충성한다고 따르지만 사실 속으론 예수님 따라가서 출세하려는 그들의 욕망에 사람들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위험을 인지하시고, 무리들을 다 돌려보내신 후 제자들을 배를 태워서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본인은 한적한 산으로 올라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여 배를 타고 건너가다가 얼마 못가서 거친 풍랑을 만나서 밤새도록 고생하게 됩니다. 그들이 출발한 시간은 저녁 때가 다 된 시간인데, 그들이 한 밤중에 고생하다가 예수님을 만난 시간이 밤 사경이라고 했습니다. 사경이란 시간은 유대의 시간으로 새벽 3~6시입니다. 1경은 저녁이 시작되는 6시~9시, 2경은 9~12시, 3경은 12시~새벽 3시까지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새벽 이후에 밤 3시까지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윽고 예수께서 그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풍랑을 잔잔케 하시고, 물 위를 걷다가 빠져가는 베드로를 일으켜서 구출해주시는 주님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소원의 항구를 향한 우리의 인생 항해에서 우리가 승리자가 될 수 있는 법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인생 항해의 성공자가 되려면, 우리에게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우리가 인생 항해의 승리자가 되려면 첫째,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망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많은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소망이 없는 사람은 가장 비참한 사람입니다. 그것이 없더라도 마음속에 타오르는 소망의 불꽃이 있는 사람은 미래가 있는 사람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지금 현재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똑같은 병을 앓아도 낫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 건강에 대한 소망이 있는 사람들이 더 빨리 쾌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동일한 고난 속에서도 소망이 있는 사람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녁때부터 시작한 태풍으로 인한 고난이 새벽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바다 가운데서 그들은 고난을 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 어찌 보면 그들도 이제 모든 소망을 다 잃어버릴 즈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그 시간에 예수께서 그들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세상을 우리가 살아가면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들 가운데 물이 있습니다. 물이 없으면 못삽니다. 옷은 없어도 살지만, 물 없으면 못삽니다. 또한, 공기 없으면 못 삽니다. 돈을 주고 공기를 사지는 않지만, 공기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공기처럼 물처럼 중요한 것이 바로 소망입니다.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은 소망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암 전문의 버니시걸 박사는 돌보는 암 환자들에게 꼭 묻는 물음이 있답니다. 그 첫 번째 질문이 “당신은 100세까지 살고 싶습니까?”라고 합니다.  그 질문을 던져보면 누가 병마를 이기고 회복할 수 있는 사람이고, 누가 도중에 포기하고 결국 사라질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소망을 가지고 “예, 저는 100살까지 살고 싶습니다.”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생존할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에 소망의 등불이 켜져 있다면 그 사람은 미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날마다 소망을 공급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늘 소망으로 충만할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너는 끝난 인생이 아니다. 너는 살아야 할 가치가 있다. 너의 인생의 가장 좋은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예레미아 29:11에 보니까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함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옥이란 어떤 곳입니까? 지옥은 소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 것을 소망하면서 살아가는 성도들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수많은 유태인들이 히틀러에 의해서 나치 수용소에 수용되고 고통 받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수용소에서의 세월이 길어지면서 점점 소망을 잃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인생을 포기하기도 하였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가는 사람들도 늘어갔습니다. 그 때 한 유대인 랍비가 사람들을 격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러분 포기하지 마세요. 여러분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언젠가 자유의 선물, 해방의 선물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들에게 이런 노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밤은 지나가리. 밤은 지나가리. 새벽은 밝아오리 메시아는 오시리 곧 오시리.’ 사람들은 그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고 마음에 소망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랍비를 존중하고 그를 사랑하며 따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세는 연합군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소문만이 들려오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둘 지쳐가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가스실로 끌려가면 감감무소식, 돌아오질 않았습니다. 드디어 어떤 이들은 랍비에게 분노를 터트렸습니다.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그 하나님이 살아있다면 어찌 이 많은 사람들이 가스실에서 죽어가고 있습니까? 당신은 사기꾼이오.”라고 랍비를 향해 손가락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랍비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그 노래,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절망의 나날 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기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제 2차 대전이 종식되고, 수용소의 굳게 닫혔던 문이 활짝 열리고, 해방의 선물이 그들에게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수용소의 사람들은 서로 껴안고 기뻐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이 랍비를 자기들의 무등에 태우고는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밤은 지나가리. 밤은 지나가리. 새벽은 밝아오리. 메시아는 오시리. 곧 오시리.’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인생의 풍랑 속에 오늘 비록 고난을 당하고 있을지라도 우리 주님은 반드시 오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여러분을 반드시 도우실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소망입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떤 좌절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인생을 포기 하지 않습니다. 이 소망 안에 날마다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인생 항해의 성공자가 되려면 인생의 풍랑 속에 찾아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셔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24절, 25절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내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아멘.

  제자들은 예수님을 떠나서 갈릴리 바다를 건너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들은 주로 출신이 갈릴리 어부 출신이 많았고,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기에 그 정도 태풍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한 두 시간에 지나가는 태풍이 아니었습니다. 저녁때부터 새벽 3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칠흑같은 어둠이 몰려 왔습니다. 별빛 하나 볼 수 없었습니다. 배는 곧 뒤집힐 것처럼 출렁거렸습니다. 앞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역풍을 만났습니다. 그렇다고 돌아올 수도 없었습니다. 갈릴리 바다 한 복판에서 고난의 깊이가 점점 극심해 갔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들의 마음속에는 원망과 불평도 생겼을 것입니다. “아니 도대체 우리 예수님은 뭐하느라고 오시지도 않고... 이럴 때 좀 오셔서 도와주시지.”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어려움이 계속 이어질 때 마음에 불평이 생기고, “하나님이 내 기도를 안들으시나. 왜 하나님이 나를 좀 도와주시지 않나.”하고 투덜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밤 사경, 이제 새벽이 동터오기 전 가장 캄캄한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 바다 물 위를 걸으셔서 제자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이 사경에 예수님이 찾아 오셨다는 것은 가장 절망스러운 시간에 인간의 한계 상황 속에 “이제는 포기다. 이제는 끝이다.”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 때나 찾아오시는 분이 아니신 것 같습니다. 적절한 시간을 기다리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고난 받는 것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그 분은 기도하면서, 갈릴리 바다 한 중간에 풍랑 당한 제자들의 모습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마치 은을 세공하는 세공업자처럼...

  은을 깨끗하게 세공해서 아주 값비싸게 파는 세공업자들은 이 풀무불에 은을 넣습니다. 뜨거운 열을 가하면 은이 녹아서, 불순물이 다 빠져버립니다. 그런데 너무 빨리 은을 건져도 안됩니다. 너무 늦게 오래 두어도 안됩니다. 이 불순물이 다 빠져버리고 은이 너무 깨끗해서 얼굴을 비춰도 얼굴이 비춰질 정도의 깨끗한 모습이 되었을 때 얼른 끄집어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시간을 놓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공업자는 그 은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이 풍랑당해, 고통당하고 있는데 그것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더 두어야 하나? 조금 더 기다려야 하나? 그것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가장 적절한 시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주님을 신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아이를 낳았는데 조금 커서 기어 다니다가 뒤뚱 뒤뚱하며 걷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길을 나서면 아이가 먼저 자랑하듯이 뛰어갑니다. 뒤뚱뒤뚱..... 부모는 그것을 보면서 따라갑니다. 가다가 아이가 넘어집니다. 넘어진다고 넙죽가서 일으키는 부모는 없습니다. 지혜로운 부모라면 그냥 내버려 둡니다. 그러나 아이는 울어요. 울다가 아무도 안도와주니까 스스로 일어납니다. 무릎을 털고 눈물을 닦으며 일어납니다. 그러다 또 뒤뚱거리며 뛰어갑니다. 부모는 안타깝지만 흐뭇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아이고 우리 얘가 넘어져도 일어날 줄을 아네?”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아기에게 아주 위험한 순간이 온다면, 달려가서 아이를 끌어안고 그 위험의 자리에서 피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부모는 도와주고 싶어도 노력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당하는 자리를 주님은 이미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십니다. 다만 가장 적절한 시간까지 기다리고 계실 뿐 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보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란 말씀이 있습니다.
  이처럼 시련과 고난을 통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를 위해 주님은 기다리고, 바라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주님이 가장 깊은 사경에 찾아오셨습니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그 시간에 주님은 깨어 계셨고,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바로 그 주님은 사랑의 주님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이 사랑의 주님을 신뢰해야 인생의 풍랑 속에서 성공적인 항해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제자들이 만난 두려움은 배를 뒤집어 놓을 것 같은 출렁이는 바닷물입니다. 바닷물만 잠잠해 진다면 두려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두려움인 바다 위를 예수님은 걸어서 올라오셨습니다. 그분은 파도란 문제를 머리에 이고 오신 것이 아니라 발로 밟고 오신 것입니다. 인간들이 두려워하는 그 파도를 정복하고 밟고 오신 주님, 이는 문제를 정복 하셨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 인생의 문제가 질병입니까? 주님은 질병을 정복하시는 분입니다. 그 문제가 가난입니까? 주님은 가난을 또한 정복하신 분 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부유케 하시고자 가장 가난한 자가 되셨습니다. 심지어 우리 주님은 죽음까지 정복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파도 위를 걸어오시는 주님, 죽음까지도 정복하신 주님은 우리인생의 문제를 이미 정복하시고, 승리하신 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을 의지할 때, 우리는 인생의 항로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주님은 손을 잡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바닷물 위를 걸어오니까 제자들이 두려움 속에 떨다가 예수님인지 미처 몰라보고 유령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때 예수님이 걷는 것이 멋있어 보여 자기도 걷고 싶어했던 베드로는 “주여 당신이 주님이시거든 저를 명해서 걸어오게 하소서”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거절하지 않고 “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훌륭하게 걸어가기 시작했지만, 예수님만 바라보던 베드로에게 바람이 불고 풍랑 치는 바다를 보고 의심하는 마음과 두려움이 생기니 물속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주님 살려주세요.”라고 소리쳤습니다. 예수님은 다가가셔서 손을 내밀어서 베드로의 손을 잡아 그를 끌어 올리셨습니다. 베드로에게 그랬듯이 우리에게도 손을 내밀어 손을 잡아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위기의 물속에, 실패의 물속에 빠져갈 때, 주님은 우리 손을 잡아 끌어주시는 구원의 주님 이십니다. 여러분 이처럼 사랑의 주님께서 한밤중에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를 위기 가운데서 건져주시는 주님을 신뢰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인생의 항해에서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인생의 항해에서 승리자가 되려면, 주의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 주님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주님은 두려운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물위를 걸어가고자 하는 베드로의 소원 앞에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가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가니 정말로 물위를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역사이며,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그랬듯이 우리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불가능을 가능한 일로 바꿔 놓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고, 생명력이 있는 말씀이며 기적을 일으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어려운 인생의 항해 속에서 늘 여호와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통해 용기와 격려를 받고, 그 말씀을 통해 우리가 나아갈 길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보면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바른 길로 인도받는다는 뜻이며, 폭풍우 치는 인생의 항해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는 뜻입니다.

  E-Land 기업을 일으키신 분은 박 성수 장로님으로, 사랑의 교회 장로님 이십니다. 1980년대 자본금 300만원에 두평 짜리 점포 하나를 얻어서 의류업을 시작 했습니다. 그 업체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발전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세계적인 기업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IMF가 왔을 때, E-Land도 힘들었다고 합니다. 구조조정과 직원도 감축했는데, 하나님 중심의 경영을 하기로 결정하고, 주일날 정직하게 문 닫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월요일 오전 시간에는 다 강당에 모여서 말씀 듣고, 묵상하고, QT하며 예배드렸다고 합니다. 다른 회사들은 월요일 아침에 분주하고 바쁜데 E-Land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한 주간을 맡기고 월요일 점심 식사 후에 일과를 시작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의 축복 하에 2002년도에 1300억이란 매출을 올리게 되었고, 그 매출의 십일조인 130억을 선교와 복지를 위해서 아낌없이 다 투자 했다고 합니다. 또한 2004년도엔 무려 약 3조에 이르는 엄청난 매출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회사를 경영하려고 하니 하나님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축복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중심의 기업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축복하는 기업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양다리를 걸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에 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것 같이 하지만, 세상에 나가면 세상적인 방식대로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굶어 죽지는 않겠지만, 큰일은 못하는 합니다. 기업을 해도 큰 기업을 이루기가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풍랑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중심으로 세상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성공적인 인생의 항해를 위해서는 기도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기도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켜서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고 인기가 끝없이 올라갈 때에도 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공적인 사역을 할 때가 가장 위험한 시기임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자신을 돌아보면서 기도 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성공했을 때, 일이 잘 될 때, 더 겸손하게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정 앞에서도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낼 때도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셔서 “주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 했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고, 부활로 승리 하셨습니다.
여러분 기도란 무엇입니까? 바로 주님을 바라보는 것, 주님께 시선을 고정 시키는 것입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내가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보기 전에, 세상을 보기 전에 먼저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 베드로는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시켰을 때 물위를 훌륭하게 걸었지만, 바람을 보고 무서워서 의심하는 마음이 생길 때에는, 물속에 빠지기 시작 했습니다. 주님에게서 시선을 떼었을 때, 실패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너희가 깨어서 기도하라”고 했지만, 베드로는 잠들어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결국 기도 안하면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훗날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4장 7절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여러분은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깨어 기도 하십시오.”라고 기록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그렇게 우리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란 우리를 위기 속에서 건져내는 유일한 무기입니다.

  한번은 미국의 제임스 어윈이라는 대령이 다른 동료들과 함께 달을 탐사 했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가 지구상에서 달을 보는 것보다 달에서 지구를 보는 것이 더 아름답다고 합니다. 지구가 완전한 총 천연색이고, 만리장성이 다 보인다고 합니다. 아마 앞으로 10여년만 지나면, 여러분도 달 여행을 하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그 때 그곳에서 지구를 바라보고 서울이 어딘지 한번 찾아보십시오.
  달 탐사 캡슐이 내려오다가 지구 가까이 오면, 두개의 낙하산이 펴서 서서히 안착하게 되는데, 어윈대령이 달 탐사를 마치고 캡슐을 타고 내려오는 중에 지구 가까이 와서 낙하산을 펴려고 스위치를 누르자, 하나만 펴졌다고 합니다. 낙하산 하나만 펴져서 그 속도가 이루 말 할 수없이 빠르고 그대로 내려오면 폭발해 버리는 상황이 되었고 나사 본부에 연락하여 이런 저런 방법을 지시받아 과학적인 모든 방법을 다해도 낙하산이 안 펴졌다고 합니다. 이제는 나사 본부에서도 포기하고, 사람들과 승무원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도했다고 낙하산이 펴진 것은 아니었고, 지구 가까이 왔을 때 지상에서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내려오는 캡슐과 맞부딛쳐서 속도가 반절로 감해 져서 마치 낙하산이 두개 편 것처럼 안전하게 내려왔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이처럼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찾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기도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어떤 역경 속에서도 소원의 항구에 도착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107편 30절에 보면,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 도다.”란 말씀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그들을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셨습니다. 성경은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고, 그들의 갈 길을 열어주셔서 소원의 항구에 도착 했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32절에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이 탄 배에 오르실 때, 풍랑이 잔잔해 졌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항해에 승리하는 길은 예수님을 모시고 항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배에 계신다면 폭풍이 몰려와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셨고, 제자들만 있었는데, 이제 풍랑이 몰려와서 배가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을 때 제자들이 겁나서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예수님이 일어나셔서 풍랑을 꾸짖으니 풍랑이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이 우리 인생의 배에 함께 계신다면 염려 하실 것이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 인생의 배에 함께 계신다면, 반드시 소원의 항구인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전도사 때, 청년들 열 명을 데리고 인천에서 좀 떨어진 낙도에 선교하러 가셨답니다. 갈 때는 300명 정도 타는 큰 배를 타고 가서 바다가 두렵지도 않고, 수영 못해도 괜찮았답니다. 사역을 다 마치고 돌아오는데, 시간이 지체되어 배를 놓쳤습니다. 그 곳 교회 집사님 한분이 통통선을 가지고 있어, 인천까지 태워주겠다고 했고, 그것을 타고 오후에 출발했는데, 얼마 못가서 어두워지고, 비가오고, 태풍이 몰려와 정신이 없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청년들을 안전하게 돌려보내야 했기에 더 걱정이 많았습니다. 돌아보니 보이는 것은 바다뿐이고, 불빛 하나 보이지 않고, 가도 가도 끝없는 바다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키를 잡은 집사님이 오랜만에 전도사님을 모시고 가게 되어 너무 좋아서 밑에서 올라와서 섬에 온 배경과, 지금 어떻게 살고, 아이들은 어떻고 등등 이야기 하는 하는 바람에 배가 다른 곳으로 갈까봐 더욱 더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니 집사님, 좀 내려가 계세요 불안해서 못살겠습니다.”하고 내려 보내면, 전도사님은 걱정 되어 죽겠는데, 남 속도 모르고, 내려갔다가 잠시 후 또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칠흑 같은 바다 속을 5시간을 달려 가니 인천 앞바다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것이 보여 “이제 살았구나”하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이 또 올라와서 “전도사님 걱정 할 것 없어요. 운전대 키를 고정해 놓고 시동만 걸어 놓으면 제가 알아서 목적지 까지 갑니다. 걱정할 것 없어요.”라고 말 했다고 합니다.
  그 때 그 전도사님은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때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사방이 보이지 않는다고 불안해하고, 염려할 때가 많지만 인생의 목표를 예수님께로 향하고 함께 한다면 풍랑이 몰아쳐도, 안개가 와도, 밤이 와도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꺼지지 않는 소망의 등불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 하십시오. 또한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의 끈을 놓지 마십시오. 그러면, 지금 풍랑 속에 거할지라도 그 인생의 풍랑 속에서 여러분은 무사히 항해를 마치고 영광스런 종착역에 도착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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