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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성숙한 믿음의 감사 (합 3: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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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감사하는 태도를 보아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습니다. 분명히 감사할 일이 있는데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짐승보다 못한 사람입니다. 짐승도 때론 감사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생애에 가장 소중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 대한 감사입니다. 감사하는 생활에는 언제나 그 마음에서 기쁨이 터져 나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이 내 인생을 보람있고 기름지게 합니다. 내 가정을 행복하게 하며, 우리의 생애에 하나님의 무한한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합니다.

로마 시대에 그런 이야기가 전해 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핍박을 피해 산을 배회하다가 사자를 만났습니다. 그 사자가 몹시 괴로워하는 모습을 하면서 드러누워 있는데 가만히 보니 발바닥에 가시가 박혀 꼼짝을 못하는 것을 보고 그 사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가까이 가서 가시를 빼내어 주었습니다. 사자는 고마운 듯이 그 사람을 보고는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이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붙잡혀서 처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원형 경기장에 이 사람을 넣고는 사자를 풀어 물어 뜯기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을 향해서 달려오던 사자가 이 사람을 보더니 그 앞에서 절을 하듯 하며 전혀 해치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전에 산에서 만난 그 사자였습니다. 그 사자가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을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관중들이 그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고, 사자도 알아볼 정도면 살려야 한다고 소리쳐서 살아남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인지 꾸며낸 이야기인지는 몰라도, 짐승도 은혜를 안다는 교훈을 가르쳐 주는 이야기입니다. 짐승도 감사할 줄 아는데 사람이 감사하지 않는다면 짐승보다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감사할 일이 있는데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고,

감사할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전혀 감사하지 않는, 계산적인 감사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의 감사는 사실 이런 감사가 많습니다. 좋은 일을 만나고, 무엇이 생기면 감사하다가 일이 내 맘대로 되지 않고 가진 것이 줄어들면 감사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보통 수준을 넘지 못하는 평범한 감사입니다.

그러나 감사할 만한 일이 없는 데도 감사하는 차원 높은 감사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고상한 인격의 사람, 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박국 선지자는 바로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평안한 가운데 감사한 사람이 아닙니다. 무엇을 많이 가져서 감사한 것은 더군다나 아닙니다. 그는 힘들고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감사를 드렸고, 세상에 필요한 모든 것이 없는 가운데서도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의 감사를 차원높은 성숙한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맥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이 하박국의 감사를 본 받기 바랍니다. 하박국처럼 차원 높은 감사를 드리며, 성숙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드러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하박국의 감사는 어떤 감사였습니까? 어떤 면에서 차원 높은 성숙한 민음의 감사였는지 말씀을 통하여, 본받을 수 있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본문 이해: Meaning & Significance)


첫째로, 고통과 어려움과 환란 중에 드린 감사였습니다.(16절)

16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 도다"

세상에 <걱정> <근심> 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탄생하면서 울고 나오고, 또 한평생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이 울면서 살아갑니까! 어려서는 어려서 장난감 때문에 싸우며 울고, 젊어서는 젊은 시절에 갖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때문에 울고, 늙어서는 황혼에 오는 인생고에 울면서 살다가, 결국 죽으면, 사랑하는 가족과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이별이기에 죽으면서 눈물을 나게 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인간의 삶은 항상 이렇게 걱정과 근심과 눈물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따져보면, 쓸 데 없는 걱정근심이 태반입니다. 「어니 젤린스키」라는 분은 걱정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발표하였습니다.

1)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했고,

2)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라고 했고,

3)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이고,

4)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고,

5) 걱정의 4%는 우리가 바꾸어놓을 수 있는 것에 대한 걱정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사실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을 미리 걱정하면서 사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걱정이라는 것은 하면 할수록 커지고, 그것을 잘 관리하고 다스리면 아무런 걱정 근심이 없는 것처럼 평안하게 낙천적으로 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지금 환난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박국 당시의 국제정세는 강대국이었던 앗수르 제국이 멸망하고, 애굽 역시 그 국운이 기울면서 신흥국가인 바벨론이 강력한 세력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하고 있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바벨론이 유대를 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머지않아 말을 타고 창검을 번뜩이며, 유대나라를 침략하리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국내사정은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는 물론, 군사적으로도 바벨론과 맞서 싸울만한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모든 것을 안 하박국은 창자가 흔들리며, 입술이 떨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뼈가 썩는 것 같았고, 온 몸은 부들부들 떨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박국이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불렀다는 점입니다. 그냥 찬송한 것이 아니라, 여기 보니까, 영장을 세우고, 수금에 맞추어 찬송하고 있습니다. 말이 그렇지, 환난 날에 찬송을 부른 것과 전쟁이 시작되고 바벨론 군대의 말발굽 소리를 들으면서도 "감사 합니다"라고 찬송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말 성숙한 믿음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차원 높은 감사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런 성숙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모든 일이 잘 되고 평안할 때 누가 감사를 못하겠습니까? 그것도 못한다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언제나 그렇게 평안하고 형통할 수만은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릅니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 일어난 테러사건을 보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누가 그런 일이 얼어날 것이라고 짐작이나 했습니까? 우리의 건강이 어떻게 될지, 우리의 사업이 어떻게 될지, 우리의 자녀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옛날에 어느 임금이 병에 걸려서 죽게 되었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인데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병은 점점 더 악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나라에서 유명하다는 사람이 찾아와서는 이 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벗겨다가 입으면 병이 나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사람들을 전국에 파견하여 가장 행복한 사람을 찾아보았으나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모두가 행복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의 병은 더욱 커져 갔습니다. 나중에는 왕자가 직접 행복한 사람을 찾아 나섰으나 모두 허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오두막집 앞을 지나가는데 그 집에서 기쁨에 넘치는 아름다운 노래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가만히 안을 드려다 보니 감사의 기도를 마치고, 감사와 기쁨에 넘쳐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순간 왕자는 이 집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의 집이라 여겨 그 집에 들어가서 궁궐 안에 있었던 사정을 얘기하고 속옷을 벗어 달라고 했으나 그들은 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얘기해도 통하지 않자 칼로 위협하고 겉옷을 벗겨보니 그 가족들은 모두 속옷을 입고 있지 않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가난해서 속옷을 입지 못했던 것입니다. 행복은 속옷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합시다. “행복은 감사에서 나옵니다. 감사가 곧 행복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모든 일이 잘 되고 형통할 때, 기쁘고 감사한 일이 있을 때 감사하는 것은 누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정말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에게 재난과 같은 일 닥쳤을 때도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이런 때에도 성숙한 믿음의 감사를 드렸습니다. 우리 미스바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들은 환경을 초월하여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의 삶을 사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두 번째로, 하박국은 감사의 조건이 없는 가운데서 드린 성숙한 믿음의 감사였습니다.(17절)

성경에 나온 감사절의 배경은 이미 출애굽기에 나와 있습니다. 출23:16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켜야 할 절기를 주시고, 그 절기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일에 대하여 명령하고 있습니다.

'맥추절과 수장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국가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할 때는 그들의 나라가 부흥하고, 기름진 것으로 윤택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에서 감사가 사라졌을 때는 역사적으로 보면 그들은 외국의 침략을 받았고, 원수의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 많은 고초를 겪었으며, 굶주림과 고난 속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본문 17절을 보십시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그러나 여기 본문을 분석해 보면, 하박국에게는 전부 없는 것들뿐인 것 같습니다.

여섯 가지가 없다고 했는데, 사실, 여기 없다고 지적한 것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반드시 절대적로 꼭 필요한 것이며, 삶에 필요한 것으로 꼭 있어야 할 것들입니다. 무화과는 양식의 일종입니다. 포도는 음료수의 주종을 이루는 포도주를 담그는 것입니다. 감람나무는 당시 귀하게 쓰이던 식용과 약용 기름입니다. 밭의 식물은 하루 세 끼 먹어야 하는 일용할 식량입니다. 양은 그 털로 옷을 만드는 의복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소는 밭을 갈고 일하는 생활수단입니다. 그 외에도 양이나 소는 하나님께 제사하는 헌신의 제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활필수품들이 모두 없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쌀독의 쌀도 떨어지고, 옷장에 옷 한 벌도 없으며, 자동차의 휘발유가 떨어지고, 주머니에 돈도 떨어지고, 통장에 잔고도 바닥이 났다는 그런 말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런 때에도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박국은 이런 때에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차원 높은 성숙한 믿음의 감사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풍부하고 모든 것이 다 갖추어 있을 때 누구인들 감사하지 못하겠습니까? 그런 때에도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환경과 조건이 그렇지 못하는 때에도 감사하는 것, 그것이 차원 높은 신앙인의 감사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있을 때에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없을 때, 심지어 모자랄 때 그 때가 진정으로 감사해야 할 때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어렵고 없다고 해도,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직도 우리에게는 감사할 것이 많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의 미래 즉, 인생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면 그처럼 괴롭고, 슬프고, 답답하고, 불안스러운 것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한번 생각해 보시다.

1) 우선 내가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언제 몇 월 몇 일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2) 또 우리는 내일을 모르고 삽니다. 내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살기에 오늘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만일 내일 일을 다 알고 산다면 매일 매일 행복하게 살 수 없을 것입니다.

3) 그리고 내 몸에 무슨 병이 있는지 모르고 살기에 지금도 잘 먹고 잘 지냅니다. 알고 보면 불안해서 살 수 없습니다. 모르고 사는 즐거움! 참으로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4) 또 역사의 종말이 언제 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감사요 행복입니다. 만일 그 날과 그 시를 알고 있다면 지금 사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회가 유지되지도 못할 것입니다.

5) 또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고 있는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그래야 항상 긴장하고 깨어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미래를 모르는 것이 감사할 때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현실이 암담하지만 그 것으로 인해 기뻐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직도 건강이 있고, 가족이 있고, 섬길 교회가 있고, 친구가 있고, 사지가 멀쩡한데, 생각하기 나름이지 얼마나 감사할 것이 많은 사람입니가? 그런데 우리는 가지고 있던 것이 조금만 줄어들어도 감사하지 못합니다. 어리석게도 아직도 하나님이 주신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박국은 우리들 보기에는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꼭 필요한 것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드린 것입니다.

내가 발견하고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구원 받은 것을 어떻게 금전으로 환산이 가능하겠습니까???다윗은 감사의 내용을 역대상 16장 35절에 말합니다.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여 만국 가운데서 건져 내시고, 모으시사 우리로 주의 성호를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도 구원의 하나님이 나를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여 건져내셨음으로 주님의 성호를 감사합시다. 다윗의 감사의 내용은 구원이었습니다. 우리의 감사의 내용도 오로지 구원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쫒아내고, 권능을 행하며 전도사역에 승리한 제자들이 전도결과를 보고 하는 자리에서??70인의 제자들에게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인하여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없다고 하여도 온 천하보다 더 귀한 구원을 얻었다면 하박국처럼 참된 감사가 넘쳐나는 성숙한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복 빌어 드립니다.


세번 째, 하나님 때문에 감사를 드렸습니다.(18~19절)

하박국이 어려움과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어떻게 그런 감사를 할 수 있었습니까? 오늘 말씀 18절과 19절을 봅시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박국의 감사의 조건은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하박국 첫 부분은 그의 원망과 불평, 하나님께 항의하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는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볼 때,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왜 이 땅의 의인은 핍박받고 악인이 득세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는 유대 나라가 하나님을 모르는 다른 나라에 의해서 공격을 받고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지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따지고 불평을 합니다. 그리고는 망루에 올라가 기도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기꺼이 응답해 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시편 50:15절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예레미야 33: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이사야 58:9절에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하리라.”고 말씀합니다.

미스바교회 성도여러분!

이 모든 말씀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참으로 우리가 믿음으로 부르짖을 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대로 우리의 기도에 귀 기울이시고, 작은 신음에도 간섭하시며, 기꺼이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잠잠히 계신 것은 더욱 큰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때를 기다리고 계신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계속하여 부르짖어 기도할??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응답하시며, 역사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박국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간절한 기도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계시로 말씀해주시길 하나님의 정한 때가 있고, 그 때가 되면 하나님의 공의가 세워지고, 그 뜻이 이뤄진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온 우주 만물을 주장하시고 계신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하박국은 하나님 앞에 진정한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비록 환난의 소식을 듣고, 가진 것이 없어도 이제부터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다, 하나님으로 인해 찬송하고 감사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며, 짜증을 내고 살아가는 것은 우리 환경이 어렵고 힘들며, 가진 것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외적인 환경이나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발견하고 그 분이 어떤 분인지 안다면 어떠한 환경과 조건이나 어려움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차원 높은 감사를 할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미의 선한 인도하심을 믿고 하박국처럼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근심과 걱정으로 살아가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기도란 자신의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기에 우리의 사정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알고 계시지만,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 합니다.라고 간절히 아뢰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바로 믿는 재미입니다. 믿음의 생활은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재미없는 것을 어떻게 믿으라고 하겠습니까? 참으로 바른 신앙생활을 하면 신바람이 생깁니다. 세상의 모든 것에 간섭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성경책은 신앙으로 살고 간 많은 사람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 주실 것을 약속한 약속의 기록입니다. 그래서 언약의 책이라고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약속은 변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는 희생의 사랑으로 우리를 건져주셨고, 그리고 아들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다 주시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단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서 살아라, 그리하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면서 사는 것을 다 허락해 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정말 감사가 안 되면 하박국처럼 시간을 내어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붙잡고 씨름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성경을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우리에게 얼마나 감사할 조건이 많은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박국은 이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박국은 하나님이 자신의 구원이 된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또한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하나님이 자신의 힘이 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이 세상에는 돈을 자기의 구원이나 힘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돈이 늘어나면 안정감을 느끼고 돈이 줄어들면 위기감을 느끼며 삽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건강을 그렇게 믿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몸이 건강하면 무엇이 될 것 같고, 건강이 안좋으면 침울해집니다.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를 그렇게 의지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을 잘 알아 위기 때에 덕을 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의지하고 힘으로 삼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늘 감사할 수 없습니다. 차원 높은 감사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하나님을 나의 힘으로 삼는 사람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함과 무한함으로 인해 언제든지 하나님을 의지해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당한, 그런 때에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찾으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보면 그런 사람들이 나옵니다.

욥과 같은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욥도 한 때는 잘 나갔습니다. 자식도 많고 재산도 많았습니다. 아주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는데, 갑자기 재난이 닥쳤습니다. 대적들이 쳐들어와 짐승들을 다 약탈해갔습니다. 많던 재산을 하루아침에 날린 것입니다. 또 자식들이 큰 형 집에 모여 밥을 먹는데, 태풍이 불어 닥쳐 집이 무너져서 모든 자녀들이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 때에도 욥은 하나님을 자기의 구원과 힘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라"고 하며 자기 입술로 범죄치 않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지금 교시협의회 후원으로 문화행사로 오늘까지 양재동 교육문화원에 손양원 목사님을 주제로한 연극을 하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 교회사를 볼 때에 손양원 목사님이라는 분은 여순 반란사건 때 공산당원에게 두 아들을 잃은 분입니다. 그 때 그는 너무나도 괴로워서 식음을 전폐하고 이불을 뒤집어쓰시고 기도하시기를 "하나님 너무 하십니다"라는 말만 계속 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가운데 결국은 두 아들의 장례식 때 모든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자를 낳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한 아들이 순교해도 감사한데 두 아들을 순교하게 하셨으니 더욱 감사합니다. 아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려 했는데 그보다 좋은 천국으로 유학 갔으니 이것도 감사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병들어 죽어도 복인데 전도하다 순교를 당했으니 더더욱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여 모든 분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손목사님이 어떻게 이런 감사를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감사의 정도는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발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맥수 감사절에는 좀더 하나님을 아는 시간이 됩시다.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되시는 것을 확실히 압시다.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 되시는 것을 확실히 압시다.

우리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은 이번 맥추감사절을 맞이하여 우리에게 감사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동안 평안한 날을 보내며 우리 가정과 사업, 그리고 교회에 감사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도들 가운데 보면 지난 반년이 지루하고 길었던 분도 있고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 사업이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 자녀를 잃은 사람들, 부모를 잃은 사람들, 그리고 가정에 여러 가지 환난과 재난을 당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때에도 감사절에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까? 반문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담대히 말씀드리기를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장래를 생각해 봅니다. 얼마 되지 않는 땅덩어리에 인구는 많습니다. 그래도 이제까지 우리가 잘 먹고 잘 산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우리나라의 앞날을 생각하는 사람은 걱정이 많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볼 때, 이제 여러분도 몸이 옛날 같지 않습니다. 얼마나 앞으로 많은 돈을 모으고 살지 노후에는 어떻게 될지 불안합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직ㅈ이나 사업을 항 나이가 얼마 남지 않았고,??그동안 그나마 모아둔 물질도 조금씩 줄어들며, 걱정이 가득한 분들도 있습니다. 자식에게 기대를 걸고 사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자녀들이나 후대들은 자신의 삶을 자리 잡기도 어려운데 무엇을 기대하겠습니까? 이 나라의 경제나 사회체제가 우리의 노후를 보장해주겠습니까? 사실 우리가 장래를 생각해보면 암담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여호와로 인해서, 그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이 되시고, 힘이 되어주시기 때문에 이런 때에도 감사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면서 하박국과 같은 차원높은 신앙을 가지고 성숙한 감사를 하면서 어려운 때를 뚫고 나가면 하나님은 절대 우리 소망을 부끄럽게 하시지 않는 분이십니다.

시편에는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시작되는 시가 많이 있습니다. 시편 106:1, 107:1, 118:1, 118:29, 135:3, 136:1이 이 말로 시작합니다.

선하심과 인자하심 때문에 여호와께 감사해야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보편적 명령입니다. 성경에서 반복적으로 명령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과 인자에 대한 감사입니다. 선하심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선하다는 영어 ‘Good’은 ‘God’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하나님만이 선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 관원이 예수님께 나와서 “선한 선생님이여”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막 10:18)고 하십니다. 온전한 선은 유일한 하나님만의 속성입니다.

성도 여러분! 일찍이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하나님을 버리고 타락한 인간들의 모습을 이렇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 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 졌나니” 라고 말합니다.

또 디모데 전서 3장 2절에서도 말세에 나타날 징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라고 말씀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타락한 인간들의 모습 속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이 감사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 부모에게 대한 감사, 스승에 대한 감사 등등. 마땅히 감사해야 할 대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잃어버리고 있는 세대가 바로 지금 우리 시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인이 먼저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의 대표적인 감사의 시 100편에 보면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또 신약의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 5:18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선포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에베소서 5장에서 이렇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누추하고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자, 한번 따라 합시다.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그렇습니다. 감사해야합니다. 그 이유는 시편 50편 23절의 말씀처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맥추감사절에는 모든 조건과 환경과 현실에 닥쳐온 어려움을 뛰어 넘는 성숙한 신앙을 가집시다. 나의 현실에 닥쳐온 여러 가지 난관이나 시험이나 고통이나 환경을 바라보고 낙심하거나 좌절하거나 괴로워하고 살 것이 아니라 이러한 모든 것을 초월하여 선하시고 좋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차원 높은 성숙한 믿음의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저와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복 빌어 드립니다. (황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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