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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좋은 것들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대상 2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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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다윗이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라고 고백한 말씀의 의미는 「인간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여호와 하나님께 드릴 수 없었을 것이요, 오직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이 세상에서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라는 겸손하고도 위대한 신앙의 고백이며, 우리 미스바교회 성도들이 본 받고, 실천해야할 신앙의 올바른 자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사는 인생들이 자신의 노력이나, 부모의 유산이나, 그동안 수고한 땀의 댓가로 얻은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건강, 물질, 재산, 직장, 사업터, 이 땅에 소유한 모든 것들, 심지어 나의 생명까지고 하나님의 선물이요, 맡겨주신 은사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본문 구절에서 '이처럼'이란 의미의 배경은 다윗 왕과 그의 모든 방백들이 성전 건축을 위해 힘써 그들의 재물들을 여호와 하나님께 바친 사실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우리에게도 다윗과 같은 신앙, 믿음의 고백이 있어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본문의 '힘이 있었나이까'라는 말씀 부분을 히브리 원어로 살펴보면 단어의 의미를 특별하게 갖고 있습니다. 즉 '능력', '수단',' 권력'을 의미하는 '코흐'와 '에워싸다','유지하다', '할 수있다'란 뜻의 '아차르'가 합성된 설의법 문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은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다윗 자신이나 방백들에게 없었음을 솔직히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삽니다라는 다윗의 감사 신앙이 나타난 대목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왕이었지만 인간의 연약함과 부족함이 있음을 깨닫고, 모든 좋은 것을 후히 주시는 선한 목자되시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도우심을 구하며, 백성들을 통치하였습니다.

히스기야 왕도 침략한 적군인 랍사게의 협박장 편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에 달려가 기도했습니다. 열왕기상 19:4절을 보면

“히스기야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궁내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를 입혀서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저희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이 오늘은 곤란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가 임산하였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랍사게가 그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와서 사신 하나님을 훼방하였으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저의 말을 들으셨을지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들으신 말을 인하여 꾸짖으실듯하니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소서 하더이다.” 라고 하나님의 도우심만 바라보며, 기도하였더니 적들이 서로 충돌하여 자멸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와 도우심으로 적을 물리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다니엘서 10:8절에서 “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이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라고 고백하였고, 16절에서 “인자와 같은 이가 있어 내 입술을 만진지라 내가 곧 입을 열어 내 앞에 섰는 자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주여 이 이상을 인하여 근심이 내게 더하므로 내가 힘이 없어졌나이다” 라고 인간이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께로 부터 왔으며, 하나님께 드려진 많은 헌물로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고백하여 진정한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위대한 신앙을 모범으로 우리에게 교훈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것을 다시금 되돌려 드렸을 뿐이라는 다윗의 위대한 신앙 고백에서 모든 것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다는 「다윗의 청지기적 사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눅 17:10절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것 뿐이라 할찌니라” 고 알려주셨습니다.

시편 24:1절에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이러한 믿음의 고백은 위대한 신앙의 표현으로서 올바른 물질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재물을 단지 보관하고, 관리하는 청지기라는사실을 명심해야 마땅한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쓰시겠다고 감동을 주실 때 순조하여 쓰임받는 청지기가 되며, 더 많은 것으로 맡기움을 받는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시기를 복빌어 드립니다.

또한 나의 재물을 성경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영원히 나의 것이라고 착각하며, 내  소유의 대상으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2:42~ 43절에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나에 맡겨주신 것들, 즉, 내가 지닌 모든 소유는 하나님나라 확장에 사용되도록 마땅히 드려 헌신하여야 당연합니다.

이러한 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다윗과 같은 감사의 마음이 필요합니다.(본문 이해: Meaning & Significance)


1. 감사는 “내가 무엇이관대”에서 시작됩니다.

사람이 철이 든 증거 가운데 하나가 고마워 할 줄 아는 태도입니다. 어린아이가 “고맙습니다”하며 감사 인사를 할 때 매우 귀엽고 예뻐 보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먼저 “고맙습니다”란 인사 말 부터 가르치며 훈육합니다. 인성 교육이 바로 감사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실상 동물도 자기를 키워주는 주인을 따르며, 먹이를 던져주는 사람에게 감사하는 것을 쉽게 봅니다. 그래서 동물 사유사들은 먹이를 가지고 그들을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이로 볼 때 감사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흥부와 놀부”란 동화에서도 다리 부러진 제비를 고쳐주었더니 강남 갔던 제비가 박씨를 물고 와서 흥부 가족에게 큰 사례를 한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무엇을 받았기에 드리는 사례 차원에 머물면 안됩니다. 그렇다면 배부른 강아지가 먹이를 준 주인에게 꼬리를 흔들며 고개를 굽신거리는 모습과 별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 중에 세리와 바리새인의 성전 기도 장면이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감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감사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기의 더 나음을 자랑하며 드리는 감사였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눅 18:11-12)라고 자신의 공로를 내세웁니다.

그러나 이와 달리 당시에 죄인으로 조롱을 받던 세리의 기도는 성전에 올라와 기도할 수 있음 그 자체를 두고 감격하여 기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눅 18:13)

오늘 본문에서 다윗 임금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골로새서 2장 17절에 보면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믿음과 감사는 정비례합니다. 믿음만큼 감사하게 되고, 감사하는 만큼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그 사람의 믿음이 얼마나 좋은지 안 좋은지 하는 평가는 그 사람이 평소에 얼마나 감사하고 사는지 아닌지, 감사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위대한 믿음은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입니다. 기쁜 일이 있든지 슬픈 일이 있든지, 일이 잘 풀리든지 안 풀리든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최고의 미덕이요 최고의 믿음입니다. 범사에 감사할 때 축복이 나타나고, 기적이 생깁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에비 로빈슨]이라는 트럭 운전기사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불의의 사고로 시신경을 다쳐 시각 장애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행히 독실한 기독교인이어서 낙심하지 않았고, 절망하지 않았으며, 자포자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는 저녁만 되면 자기 집 잔디밭에 앉아서 무릎을 꿇고 늘 감사기도 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까지 빛을 주시고, 생명을 주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시신경이 회복되어 물체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3개월만에 일어난 기적입니다. 지금은 완전히 회복되어 예전처럼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감사의 기도가 이와 같은 기적을 가져왔습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병상 7계명]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 중에 6번째는 믿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었고, 7번째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질병으로부터 빨리 회복되기 원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믿음을 가져야 하고 믿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신시내티에 있는 [프록터 갬블 비누회사]를 설립한 [할레이 프록터]라는 사람은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회사가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십일조를 철저히 드리는 독실 기독교인이었습니다. 한번은 직원이 비누 만드는 기계를 규정된 시간보다 더 오래 가동시키는 바람에 엉터리 비누가 만들어지고 말았습니다. 물에 둥둥 뜨는 비누가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 직원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했고 이 일로 회사가 큰 손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 보통 최고 책임자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화부터 내게 됩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전해들은 [프록터]사장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화부터 내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묵상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때 한가지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고 합니다. 감사로 기도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의 영감이 임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에게도 하나님의 축복의 영감이 임했습니다.??

'목욕탕에서는 물에 뜨는 비누가 훨씬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엉뚱하게 만들어진 이 비누를 [아이보리]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 비누는 나오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고, 마침내 그는 거부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아이보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범사에 감사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감사의 원리는 감사할수록 풍성해지고, 감사할수록 감사할 일이 생깁니다. 감사는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감사함으로 받는 축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항상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윗 임금은 먼저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라고 자기를 비하하는 겸손을 보이고 있습니다. 겸손이야말로 감사의 출발입니다. 아니 참된 감사의 마음입니다.

“내가 무엇이관대”란 마음이 있을 때 감사는 범사에 할 수 가 있을 것입니다. 남과의 비교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받은 무슨 조건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찬송가 가사에 있는 그대로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믿음의 고백과 감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복빌어 드립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이제껏 내가 산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주시리


2. 감사의 태도는 “즐거운 마음으로”해야 합니다.

본문은 심지어 감사하는 마음 그 자체를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물을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그 행위 자체를 기뻐하는 그 마음이 바로 참된 감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하는 태도를 주의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감사한다면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드리는 태도도 있어야 합니다. 감사의 익숙한 버릇으로 억지 감사는 하나님이 결코 원하지 않으십니다.

미국의 어떤 부흥사가 집회 장소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는데, 어느 뚱뚱한 흑인 여자가 아이를 다섯이나 데리고 옆에 앉더랍니다.

이 흑인 여자가 아이들과 함께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자기는 구석으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는데, 이럴 경우는 무슨 감사를 드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잠시후 그 감사의 조건을 찾아내고는 그리고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옆의 이 여자가 내 아내가 아닌 것을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모든 일들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려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그 때 기쁘게 감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일본의 내촌감삼은 "하나님께서 만일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질병이나 실패 그리고 배신이나 죽음으로 저주하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그리고 성경을 읽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막힌 귀로, 또한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도록 메마른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분명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셔야 가질 수 있는 마음입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10명의 한센병자를 고쳐주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중에 한 사람만 예수님께 와서 감사했습니다. 그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었스니다. 고침 받은 9명의 한센병자들도 감사하는 마음은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감사를 표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감사는 불행을 멈추고 기적을 창조하는 은총의 도구입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일으키시기 전에 먼저 감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감사는 기적을 창조하고 더 큰 감사를 낳습니다. 그래서 스펄전은 “불행할 때 감사하면 불행이 끝나고 형통할 때 감사하면 형통이 연장된다.”고 말했습니다.

감사한다고 당장 환경이 바뀌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할 때 우리 자신이 바뀝니다. 우리의 마음이 풍요로워집니다. 인생을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 맥추 감사절기가 지난 주 였지만 우리는 매일 삶속에서 감사를 표현하는 사람이 됩시다. 감사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감사하는 영혼의 질은 탁월합니다. 감사하는 영혼이 되어 이 세상을 주님의 향기로 가득 차게 하시기를 복빌어 드립니다.

바울 사도의 권면의 말씀을 보면 빌립보서 4:4-7절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 .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3.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께로 부터 왔음”을 인정하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주일예배 때마다 반드시 날씨에 대한 감사기도를 드리는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어느 몹시 추운 겨울, 눈보라가 치고 빙판길이 되어 운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악천후의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겨우 모인 20여명의 성도들이 예배 전에 주고받는 농담이 있었습니다. 오늘 예배에는 목사님이 날씨에 대해 감사기도를 하지 않으실 꺼라며 생각 했지만 그날의 목사님의 감사 기도의 내용은 여전 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 오늘과 같은 나쁜 날씨의 주일을 1년에 겨우 한 두 번만 주심을 감사합니다.”라고 기도 하시더랍니다. 얼마나 귀한 신앙의 모범이 됩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온갖 은총을 바라보며, 감사하는 것은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입니다. ㅇ이런 성숙한 신앙이 되기위해서는 우리의 주소를 완전히 바꾸어야 합니다.

따라합시다. “ ‘투덜촌’에서 ‘감사촌’으로 바꿉시다.” 그렇게 사시겠습니까? 우리는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범사에 감사촌’으로 바꾸어야만 진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의 언어와 행동이 ‘감사촌’으로 완전히 이사할 때 비로서 진정한 감사가 나의 여혼 깊은 곳에서 나의 가슴 깊은 곳에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신령한 감사가 넘쳐나옵니다. 그러나 현주소를 ‘불평촌’에 그대로 두고, 한 두번 감사해 보았자 그 감사는 결단코 오래 가지 못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서 ‘불평촌’을 못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로운 신앙생활도 아니고, 더군다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신앙생활이나 하나님 나라에서 상급을 받는 신앙 생활이 되기는 더군다나 힙이듭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완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속죄 구원 받은 사람은 주소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할 이유가 확실히 있습니다. 시편 100 편 기자는 우리는 “그의 백성이기 때문에 감사하여야 한다”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 개개인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저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요, 천국 시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1:3절 에 보면 “소도 제 주인을 알고 나귀도 제 주인의 구유를 아는데 내 백성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렸다.”고 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십자가에서 저와 여러분의 죄를 위해 희생해 주셨습니다. 구원은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값진 선물이요, 축복입니다. 믿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인생 살아가는 동안에 그저 다른 것 부족해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일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없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자의 아버지가 되시지만 감사하는 자녀에게 아낌없이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시는 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부족한 것 때문에 불평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말고, 감사함으로 더 좋은 것으로 후히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복빌어 드립니다.

찬송가 중에 봉헌송이 여러곡 있습니다만 본문의 내용과 관계된 신앙고백적 봉헌송은 바로 찬송가 70장에 있습니다.

♬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 이 예물을 주께 바치나이다. <아멘.>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의 감사의 신앙도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먹을 때는 감사의 절기를 지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했습니까? 오히려 그들이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얻은 첫 수확물을 들고는 손으로 얻은 곡식단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맥추절의 절기를 지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음을 믿는 신앙에서 축발해야 합니다. 비록 사람이 땀흘려 만든 수확입니다. 밤잠 자지 않고 좇아 다닌 소득입니다. 온갖 험한 일들을 다 겪으며, 손에 쥔 결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의 손에 있는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음을 믿고 고백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들이 드리는 모든 헌금과 헌물과 헌신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이기에 주께 돌려드리는 믿음의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하늘 나라에 갓 도착한 성도가 베드로의 영접을 받았답니다. 베드로는 그분에게 하늘 나라를 두루 두루 구경시켜 주시더랍니다. 둘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서 천사들로 가득 붐비는 거대한 한 작업실에 들어섰습니다. 베드로는 첫 번째 부서로 가서 걸음을 멈추며, 말했답니다.

"여기는 접수처라네. 하나님께 기도하는 온갖 청원을 이곳에서 접수한다네."

성도가 그 접수처를 유심히 바라보니 천사들은 쉬지않고, 끔찍할 정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더랍니다. 수많은 천사들이 세상 도처 사람들이 보내 온 두툼한 분량의 종이에 적힌 온갖 청원들을 분류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을 나와 둘이 다시 걷다가 두 번째 부서에 당도했답니다. 그 때 베드로가 그에게 들려준 말은

"여기는 포장 및 발송처라네. 사람들에게 보내 줄 은총과 축복이 이곳에서 포장되어 지상의 청원 당사자들에게 발송되는 거지."라고 알려 주더랍니다.

성도가 보니 이곳 역시 정신없이 분주하더랍니다. 이 부서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천사들이 일하고 있더랍니다. 그만큼 많은 축복이 포장되어 지상으로 배달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끝으로 작업실 가장 후미진 구석에 마지막 부서가 있었고, 둘은 거기서 발걸음을 멈추었는데. 이곳은 놀랍게도 천사 단 한 명이 아무 할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확인처라네."

베드로가 영혼에게 일러주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곳은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는 겁니까?"라고 물어 보았더니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서글픈 일이야. 지상 사람들은 부탁한 축복을 받고 나서, 확인서를 보내는 일이 거의 없거든."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물어보았답니다.

"축복을 어떻게 확인하는 건데요?"

베드로가 말하더랍니다.

"간단하다네, 그저 '주님, 감사합니다.' 하면 되는 거지."라고??앤드류 마리아 저서인, 「이야기 속에 담긴 진실」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면서 자기의 소유로 착각하고, 자기를 자랑하며, 자신의 소유이기에 자기를 위해 사용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심지어 신앙인마져서 분명히 하나님께 간구하며, 기도한 것의 응답임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한다고 주님이 알려 주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받은 복을 감사하며, 사는 자가 적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모든 좋은 것들이 하나님께로 부터 왔음을 분명히 알고 믿고 있었기에 시편에 이런 감사의 찬송을 남겼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3:1-5)라고 선언합니다.

시편 100편에서 밝힌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기르시는 양이기 때문에 우리를 기르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 찬양(감사)하라 내 영혼아!
♪ 찬양(감사)하라 내 영혼아!
♩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감사)하라. <아멘>

미스바교회가 모든 성도는 오늘 이시간 우리는 다윗의 위대한 신앙르 본받아야 할 줄 믿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이르기까지 감사가 넘치는 신앙생활을 하는 목동이었던 다윗을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 축복해 주신 놀라운 은총이 감사하는 신앙생활, 모든 것을 맡겨주신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로 쓰임받으므로 여러분의 삶속에 감사하는 자에게 주시는 놀하운 은총과 축복이 재현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복빌어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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