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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듣고 수용하는 인격 (롬 10: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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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예배에 참석한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께서 본문(17절)을 통해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가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느냐? 라는 자문 자답을 통해서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 미암느니라" 고 선언하고 있으며, 이시간 우리에게 듣고 수용하는 안격이 되라고 권고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난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않고, 믿음이 자라는법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은혜생활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며, 더군다나 예수님의 성품과 인격을 닮을 수는 없습니다.

어둔 바다를 비추는 등대의 빛이 크고 작은 배들의 갈길을 인도해 줍니다. 인격은 사람에게 올바르게 살길을 보여주는 등대의 빛과도 같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사람다웁게 살고, 또한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결정적인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분들은 지혜나 학식이라고 대답 합니다. 어뻔 분들은 재주나 재물이라고도 생각 합니다. 더러는 여러가지 조건들을 제시할 줄 압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성공하는 사람, 위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성숙된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도산 안창호는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의사가 되려고 하지 말고, 그대가 먼저 건전한 인격이 되라. 백성의 질고를 어여삐 여기거든 그대가 먼저 의사가 되라. 의사까지는 못되더라도 그대의 병부터 고쳐서 건전한 사람이 되라" 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무엇보다도 성숙한 인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인격이 성숙해 지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인격은 생각과 행동과 습관을 거처서 이루어 집니다. 그러나 빛나는 인격을 만들어 주는 요소는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과 같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가능해 집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성경은 귀가 있어 들을 수 있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요한 계시록에는 7교회 성도들에게 거듭선언하고 있는 내용이 “성령이 교회에 하는 말을 들으라”고 권고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그의 인격이 보석처럼 빛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훌륭한 인간 관계를 가지며, 성공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됩니다.

음악에서 합창을 할때 서로 어울어져야지 다른 목소리가 툭 튀어 나오면 화음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목소리를 죽이고 옆사람의 소리에 맞춰서 조절을 하면 훌륭한 화음이 됩니다. 인격이란 이런 조화를 말합니다. 조화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줄 알때 가능해 집니다. 그러나 인간의 비극이란 자기의 욕망, 이기주의적인 마음이나 자기의 고집을 주장하면서 남의 말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줄 모르는 고독인 것입니다. 폐쇄적인 인격은 결코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성숙한 인격자가 되려면 잘 '들을 줄'(hearing) 알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창의적인 청취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신학자 폴틸리히는 [들어주는 사랑] [listening love. 리스닝 러브] 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의 존경과 추앙을 받는 사람은 잘 들을 줄알고 그 의견을 수용하는 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성숙한 인격자가 되기 위하여 무엇을 들어야 하며, 누구의 말을 수용하여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할 최소한의 3가지 대상이 있습니다. 어떤 대상의 말을 들고 받아들여야 인격이 성숙해 집니까?


1.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14, 17절)

오늘 본문 말씀인 14절에 보면 "듣지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그리고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 미암았느니라" 하셨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는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미혹케하는 마귀의 음성도 있도, 양심에 들려오는 음성도 있고, 아무런 유익도 되지않고, 사탄의 도구로 쓰임 받는 사람의 어리석은 음성도 있고, 사람을 통해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 등 여러가지 음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먼저 우리가 귀를 귀울이고 들어야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되어야 합니다.

'들음'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아코에스' 로 '듣는 행위'(act of hearing)나 '들려 오는 것'(that which is heard)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믿음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福音)에 근거한다고 명백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조각가 로댕은 3번이나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에 낙방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호구지책으로 은세공이 되었습니다. 그는 먹기 위해서 그는 날마다 열심히 일에 몰두했습니다.

어느 날 동료가 “눈에 보이는 나뭇잎만 만들지 말고, 내면의 것을 만들어 보라”고 충고했답니다. 그때 로댕은 순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지 생각도 하지 못했던 점을 지적당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는 그때까지 먹고 살기 위해서 보이는 것에만 몰두해 살았습니다.

그는 비로소 내면을 보는 눈으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4년 후 마침내 불후의 명작 ‘생각하는 사람’을 내놓은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모두 보이는 것에 몰두해 살아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더 소중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인의 불행입니다.

세상에 좋은 친구의 말을 귀담아도 수지맞는 일이 생기는데 하물며, 나를 사랑하여 독생자를 십자가에 까지 내어주신 좋으신 나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 위해 말씀을 듣는데 어지 좋은 것을 선물로 주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겨야 하는 많은 것들 중에서 가장 귀한 하나를 선택하라면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구원과 영생과 천국과 하나님의 은총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귀한 믿음은 기도하므로 생기지 않습니다. 기도는 믿음의 열심을 일으키는 에너지인 것입니다.

전도를 잘한다고 해서 믿음이 생기는것 아닙니다. 전도는 물론 믿음의 열매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전도하지 않는다면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므로 거짓말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전도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봉사를 잘한다고 해서 믿음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봉사는 믿음이 자라나는 토양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봉사는 신자의 기본적인 생활이기 때문에, 구원 받은 사람은 사랑에 빚진라로서 마땅히 열심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믿음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알고 바로 믿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인 성경말씀을 읽거나 들어야 믿음이 자라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믿음은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나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 그 어떤 시간이나 이 세상에 가장 귀한 그 무엇보다도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하며, 가장 중요한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믿고 말씀듣는 일에 승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영혼을 소생시키고, 믿음을 얻게하며, 성숙한 신앙인으로 만드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이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으로 예배에 참석해야만 합니다. 예배 순서에는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설교 말씀이 있습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음성을 쉽게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하는 귀한 하나님의 가룩한 도구입니다. 말씀응 우리들의 믿음이 생겨나게 하며, 믿음을 자라게 하는 촉진제로 쓰이는 귀한 은총의 수단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구원받은 성도는 마땅히 설교에 귀를 기울여 잘 들어야 합니다. 따라합시다. “ 빗자루가 내려가면 귓구멍이 닫히고, 귓구멍이 닫히면 마음의 문도 닫힘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고 계시겠지요? 그렇습니다. 눈꺼풀이 내려와서 조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 속에 들어와 역사하며, 깨닫게 하며, 영혼을 소생시키며, 믿음이 생겨나게 합니까? 그러므로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겨야 그 말씀을 실천하게 되고, 신앙이 성장하며, 좋은 예수님을 닮은 온전한 인격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믿음이 자라야 신앙생활에 신바람나는 즐거움이 있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그리스도인으로 범ㅂ사에 담대함과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래서 역경과 어려움을 돌파하고 이기게 되며, 사방 팔방에 우겨쌈을 당하는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게 됩니다. 봉사하는 능력을 얻게 되고, 성숙한 인격자가 되어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버하며, 쉬지아니하고 기도생활을 통해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성숙한 인격자가 됩니다.

인격자란 학식이 많은 지식인이나 능변가가 된다는 뜻은 아니지 않습니까? 권력이나 재주가 좋은 사람을 말하는 것도 아니요,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데 그 인격이 잘못될리는 없지 않습니까?

아들이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일곱 살이고 하나는 다섯 살인데, 어머니의 생일날이 돌아오자 각자 어머니께 선물을 드린다고 부산을 떨었습니다. 저금통을 깨뜨려 그간에 모아 놓았던 돈을 가지고 백화점에 물건을 사러 나갔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큰 아이는 그래도 생각이 있어서 어머니의 립스틱(루즈)을 하나 사 들고 왔습니다. 어머니가 아침마다 바르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둘째 아이는 장난감을 사 가지고 왔습니다. 자기 생각에는 그게 제일 좋아 보이니까, 어머니도 틀림없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게 바로 미숙아라는 것입니다.

어머니를 위한다면 어머니가 기뻐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는 제 시각에서, 자기 중심적(egocentric) 생각으로 사랑하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 장난감을 가지고 어머니 앞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 13:11)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미국의 역사를 뒤바꾸어 놓은 링컨 대통령은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도 훌륭한 정치 사상가가 되었습니다. 링컨의 사상은 저 유명한 케티즈버어그의 연설입니다. 그 연설은 우연이나 노력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그의 연설이 있기 전에 링컨은 어느 초라하고 작은 시골교회에서 예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전도자의 설교 중에서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 라는 말씀을 듣고 낡은 편지봉투에 메모했습니다. 그리고 연설하기 위하여 타고 가던 마차 위에서 그 유명한 연설문을 작성했던 것입니다.

베드로와 사도 바울을 비교해보면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도 바울이 많이 배웠고 로마시민권을 가졌으며, 믿음을 갖추었기에 큰 일을 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원래부터 무식했습니다. 반평생을 어부로 살았으며 가난하고 성품도 잘 다듬어지지 않았습니다. 자랑할 만한 것이 없는데 그가 수제자가 되고 하나님의 귀한 일을 감당하고 또 신앙의 완성을 보고 하늘의 큰 자가 되었다 하는 것은 이해가 안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베드로가 어떻게 신앙의 완성을 보았고, 수제자가 되었고 로마를 뒤엎는데 앞장서는 능력의 사자가 되었는가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깊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이 죄인인 것을 가장 먼저 고백합니다. 누가복음 5장 8절에 보면 사도 베드로가 밤새도록 고기를 못 잡았지만 결국 주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여 다시 그물을 던졌을 때 차고 넘치게 잡았습니다. 바로 그때 그분이 주님인 것을 깨달았고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고 고백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기회가 됩니다. 말씀을 통하여 내가 죄인인 것을 알지 못하면 아무리 교회에 오래 나와도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말씀중심의 신앙으로 삽니다. 우리의 신앙에는 여러 측면이 있습니다만 이적과 기적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을 우선하며 사는 신앙인이 있습니다. 물론 예수 믿고 받은 신령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 중심의 신앙이 되면 거기에 이적도 따라올 수 있고. 기도의 응답도 신속하게 받게 됩니다. 그런데 말씀과 상관 없이 신령한 것만 축하여 이적과 기적만 따라가다보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베드로보다 이적과 기적을 더 많이 본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베드로는 그것 때문에 주님을 따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요,영생의 말씀이기 때문에 따른 것입니다. 베드로의 신앙 완성이 말씀에 기초하여 생겨난 것이기에 예수님의 수제자로 위대한 대 사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말씀에 의지하여 두번씩이나 그물을 내리다가 엄청난 물질적 축복과 주님에게 발탁되어 스임 받게 된 것처럼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으로 계속 전진하다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귀한 인격의 믿음과 신앙으로 완성되시기를 복빌어 드립니다.

말씀을 듣는 자에게 하나님은 선택하시어 자신의 귀한 도구로 사용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신앙자세가 성숙한 인격자가 되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여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조화된 인격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본이 되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사람이므로 모든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은 제일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 음성에 순종하는 신앙이 되시기를 복빌어 드립니다.니다.


2. 자기를 인도하는 자의 말을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야 완전합니다. 양은 10미터도 제대로 앞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가지 못합니다. 우리 인생도 양과 다를바 없습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면 위험
한 낭떠러지나 사나운 짐승의 피해를 받지 아니합니다. 편안히 울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숙한 인격자는 인도자의 소리를 듣습니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사람은 고독한 사람이요, 소외 당하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런 폐쇄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결코 좋은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야 하듯이 성도들은 영혼의 인도자인 목회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야 합니다. 목회자의 말은 강단에서 외치는 설교만은 아닙니다. 성도의 생활속에서 요구되는 각양 여러모양의 음성을 듣고, 신앙의 지도에 순종해야 합니다.

여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목회자가 친히 겪은 체험담 입니다. 그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는 자매가 있었습니다. 기도도 잘하고 품행도 흠 잡을 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남편이나 자녀들은 결코 교회에 나오는 일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이 목회자가 그의 가정을 방문 하였습니다.

마침 그의 남편과 단둘이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되었습니다. 목회자는 그 남편에게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교회생활 할것을 권하였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의 아내가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은 잘 압니다. 그러나 제 아내는 불같은 고약한 성질을 가지고 있답니다. 집에서 한번 화를 냈다하면 아이들과 저는 숨어 버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정도랍니다. 저는 이러한 것이 올바른 교회의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회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채 그 집을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곧 이 남자의 부인을 만나서 자신이 들은 말을 사실대로 모두 이야기 했습니다. 목사의 말을 들은 자매는 진실하게 뉘우치며 앞으로는 잘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 자매는 목사님과 무릎을 꿇고 기도까지 한후 헤어졌습니다.

이 일이 있은지 얼마 후였습니다. 그의 남편이 낚시대를 가지고 집안으로 들어 오다가 그만 실수를 했습니다. 비싸게 구입한지 얼마 안되는 조명등 즉 산데리아를 산산조각으로 깨뜨린 것입니다. 당황한 남편은 불같은 성질의 아내로부터 벼락이 떨어질 것으로 알았습니다. 멈칫 서서 기다렸으나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환히 미소를 지은 아내가 빗자루를 들고와서 깨어진 유리조각을 쓸어 담으면서 말했습니다. 여보 괜찮아요. 라고 치웠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의날 아침예배에는 그의 남편과 아이들이 나란히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는 그의 마음을 그리스도께 완전히 바치고 새사람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목회자의 신앙지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 목회자의 손을 잡고 울고 불면서 기도 하지만 아무런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것은 목회자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 입의 말은 강단에서 외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전도자의 지도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들어서 순종하면 이와 같은 변화가 일어 납니다. 이런 사람의 인격은 한결 성숙해 지는 것입니다.


3. 가까운 사람들의 말을 들을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아는대로 인류역사에 놀랄만한 기적을 일으킨 민족은 유대인 입니다. 노벧상 수상자의 24 % 가 유대인 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대학교수 중에는 30 % 가 유대인 입니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 지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을 움직이는 30인 중에 5 % 가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미국 전 인구의 3,2 % 밖에 안되는 650만명의 유대인이지만 이들은 미국의 금융계, 교육계, 언론계, 정치계에 막중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두뇌가 반드시 우수한 민족이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어린시절 가정에서부터 철저하게 교육을 받습니다. 유대인 어머니의 교육은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배운 어머니의 교육을 철저하게 생활 속에 구현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어디를 가든지 우수한 민족으로 추앙을 받는 것입니다.

성숙한 인격자가 되려면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들을줄 아는 귀를 키워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을 성공적으로 기르려면 부모의 말을 철저하게 듣고 생활속에 실천하는 습관이 되도록 양육해야 합니다.

어떤 부모들을 보면 어린이가 우상이 되어서 부모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어린 아이의 하인이 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진정으로 자녀를 성공시키려면 이런 교육방법에서 떠나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가정은 사람이 생활하는데 가장 가까운 생활 테두리입니다. 어린이가 부모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하는 것처럼 서로의 말을 들어줄줄 알아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의 말을 남편은 아내의 말을 잘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부부는 평생의 동반자인 동시에 피차의 선생인 것입니다. 서로 잘못된 것이 있으면 조심스럽게 지적하고 그것을 겸손히 듣고 고쳐야 합니다. 잘하는 일은 기쁜 마음으로 칭찬해 줄때 인격은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이웃이 어깨를 맞대며, 밀접하게 생활하는 공동체 입니다. 그러므로 동네에서도 이웃의 말을 잘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어른의 말도 귀담아 들어야 하겠지만 나보다 아랫사람의 말도 잘 들을줄 알아야 합니다. 서로의 말을 들어줄 때에 인격이 존중되고 성숙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숙한 인격자요, 존경받는 인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저 갈보리 언덕에서 천근 만근도 더되는 우리들 죄의 짐으로 뚤뚤 뭉쳐진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갈보리로 올라가신 주님을 생각합시다. 십자가에 못박혀 방울 방울 보혈을 흘려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신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의 음성을 듣고 믿어서 구원받은 성도들이니 거룩하고 성숙한 인격자들이 되어야 되지않니겠습니까?

첫째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창조해 주시고, 둘째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비인격적인 속되고 더러운 것들을 깨끗하게 해주셨으니 아 ! 우리는 참으로 훌륭한 인격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인격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 놀라웁고 크신 사실을 깨달아 훌륭한 인격자들이 되십시다. 부끄럼이나 손가락질을 받지 않도록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아직 인 이 성숙되어 있지 않다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 설 때 가장 부끄러운 일입니다.

「 정상에 도전하라! 」는 책자에 보면 “ 성공자가 되려면 3가지를 바꿔야한다”고 쓰여져있읍니다, 그 첫째가 말을 바꾸라는것이며, 둘째는 생각을 바꾸라는 것이고, 셋째는 자화상을 바꾸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는 대뇌학자의 말을빌어 말하기를 “사람은 뇌세포의 98%가 말에 지배를 받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어느 남여가 열열히 사랑끝에 결혼을 했는데 3년후에 이유없이 이혼을 했 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니까 이들부부는 평소에 노래를 좋아했는데 전 축위에 꼿혀있는 레코드판 30개중에 25개가 이별곡이였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여러분 ! 구원에 이르는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입으로 시인하는 긍정 적인 신앙을 의미합니다. (출3:11-13)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애급으로 가서 이스라엘 백 성을 구원하라고 할때 자기는 할수없다고 다섯번씩이나 거절을 했읍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4:5절에서 하나님께서 노를 발하시며, “내가 너와함께 할것이며, 너 말하게 하리라” 는 말씀에 모세는 순종하기로 결단하며, 불순종의 자화상을 순종하는 삶으로 바꾸므로이스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는??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좋은 아버지를 둔 아이들은 행복합니다. 비록, 자기 자신은 가진 것도 없고, 연약해도 아버지의 사랑과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든든한 회사, 좋은 사장님 아래에서 일 하는 회사원들도 별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그 회사가 평생 직장을 보장하고 있다면 더욱 신바람 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의 보호와 인정을 받으며 산다면 얼마나 더 행복하겠습니까?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시고, 구원자로 믿고 그 말씀대로 순조하여 사신다면 성도 여러분도 그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 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10: 28,29)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을 크게 키우시고, 수용하여 순종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목회자의 신앙 지도는 말할것도 없고, 하나님 뜻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사람의 말도 잘 듣고, 받아들여 성숙한 인간관계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복음과 구세주 그리스도를 입으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과 인품 속에서 울어 나오는 향기로 전하시는 성도들이 되는 진정한 인격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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