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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삶 (롬 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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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사우스 다코타(South Dakota)에는 네 명의 대통령의 얼굴이 큰 바위에 새겨져 있는 러쉬모어(Rushmore) 국립공원이 있습니다.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 흑인 노예 해방을 이룬 에이브라함 링컨, 그리고 데어도르 루스벨트 등 네 명의 위대한 대통령의 얼굴이 산꼭대기 거대한 바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 거대한 조각을 제작하는 데 1927년부터 14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가츤 보글럼이라는 사람이 시작했는데 중간에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바람에 그의 아들 링컨 보글럼이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하여간 엄청난 걸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그보다 더 위대한 작품들도 많이 있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역사가 짧기 때문에 그 정도 작품도 대단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사실입니다. 중국의 만리장성... 이집트의 피라미드... 그리스 신전들... 그 밖에도 인류가 만든 위대한 작품들은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일찍이 역사의 처음에 하나의 걸작을 만드는 작업이 있었습니다. 인류의 크고 작은 모든 작품들에 앞서서 그 토대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을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천지창조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작품들을 만드신 분은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의 맨 처음은 그 작업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모든 창조 작업이 끝나던 날을 성경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

  그 걸작 중의 최고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인간이 배신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인간은 죄를 범했습니다. 타락했습니다. 스스로를 망가뜨렸습니다. 하나님의 곁을 떠나 파멸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원래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아주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저주의 대상이 되어버린 인간을 사랑으로 고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어찌 보면 성경은 하나님이 그 큰 사랑으로 인간을 고치시고 회복시키시는 재창조 사역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인간의 구원의 문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는 로마서를 보면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고치시는지에 대해서 아주 잘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창조 사역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님이 말씀으로 그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창 1:3)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창 1:6~7)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창 1:9)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또 그 광명체들이 하늘에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창 1:14~15)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창 1:20~2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창 1:24) 심지어 사람을 창조하심에 있어서도 하나님이 말씀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두 번째 재창조 사역에 있어서는 친히 자신의 몸을 던지셨습니다. 자신이 친히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오셔서 친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범죄한 인간을 살리셨습니다. 그 주님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풀려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성경이 분명히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우리는 값없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쪽에서 보면 그냥 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보배로운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재창조 사역이 이뤄졌습니다. 애굽의 히브리 노예들이 애굽을 탈출하던 밤 구원받기 위애서 무엇을 했습니까?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뿌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피를 뿌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했습니까? 어린 양이 죽어야만 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주님이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허락된 은혜가 우리의 구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으로 재창조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손으로 다시금 새롭게 빚어진 작품이 바로 우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값을 치르고 산 생명들이 우리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참 대단한 존재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이 된 우리에게 성경은 오늘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작품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부터 오직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답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목사는 목사답게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목사 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아름답고 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사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명쾌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서 아주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야말로 하나님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때문에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답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답게 살기 위해서 과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로 그 대답을 우리는 오늘 사도 바울을 통해서 분명히 들을 수 있습니다. 육신의 일을 생각하지 말고 영의 일을 생각하라고 그는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고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기 때문에 영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의 일은 과연 무엇입니까? 여기에 대해서도 그는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롬 8:9~10)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게 하는 것이 영의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게 하는 것이 영의 일이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하나님의 영, 즉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사는 것이 영의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영의 일인 것입니다. 성령 충만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성령 충만은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이 우리를 온전히 지배하시고 주장하시는 상태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삼손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힘으로 그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그를 떠나시자 그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지배하시지 않을 것 같으면 우리도 삼손과 같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간절히 기도했던 것입니다. 선지자 나단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을 듣고 그는 먼저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 51:11) 그렇습니다!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게 마련입니다. 성령에 붙들려 사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게 마련이라는 말입니다. 성령이 주장하시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순항할 수 있게 됩니다. 독수리가 날개치며 창공을 높이 올라가는 것처럼 우리도 상승할 수 있게 됩니다. 영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삶, 즉 성령이 기뻐하시는 삶을 우리의 삶의 방식으로 삼을 것 같으면 한없이 풍성한 삶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걸작답게 살지 않을 것 같으면 성령이 우리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간구하실 것이라고 그는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제는 내가 너를 놓치지 않으리라... 이제는 다시 너를 죄악 가운데 버려 두지 않으리라... 이제는 내가 너를 포기하지 않으리라...” 오늘도 하늘 보좌 우편에서 성령의 간구와 기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답게 살아야 한다는 성령의 강한 기대를 엿볼 수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답게 살게 하옵소서!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온 마음을 두고 살게 하옵소서! 그 감격이 사라지지 않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내 속에서 복음의 능력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그 즐거움이 사라지지 않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성령이 인도하시는 삶을 사는 가운데 이 모든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강석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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