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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가지 전쟁 (삿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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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민족에겐6.25 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상처와 아픔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파괴된 전차에는 녹이 슬고 풀이 무성해서 모든 것이 지나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 겨레의 가슴속에 응어리진 상처와 아픔이 결코 끝나지 않은 전쟁의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이 상처들을 바르게 풀지 못한다면 이와 같은 비극은 또 다시 이 한반도에 일어날것이라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역사가 이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을 진정으로 종식시키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자문을 구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생각할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이 우리민족처럼 동족간에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한 레위인이 친정으로 돌아간 자기 첩을 찾아오면서 기브아라는 곳에 하룻밤을 묶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베냐민 지파 소속인 기브아의 깡패들이 레위인을 하루 쉬게 해주었던 그 사람집으로 몰려가서 이 집에 들어온 손님을 내어놓으라고 위협합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동성애를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이 집주인이 자기 딸과 이 레위인의 첩을 그들에게 주어서 문제를 무마시키려고 합니다. 이 기브아 깡패들이 레위인의 첩을 밤새 욕보이다가 새벽미명에 풀어주었는데 이 여인이 죽고 말았습니다. 이 레위인이 너무 분하여서 집에 돌아가 그 시체를 각 지파의 숫자대로 12조각을 내어서 각 지파로 보내어서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 깡패들이 한 짓을 고발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즉각 총회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대표단을 베냐민 지파로 보내어서 그 깡패들을 처벌하겠다고 하자 베냐민 지파는 오히려 반발하며 이스라엘 전체와 전쟁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에는 2만 6천명의 군과 그 외에 물매로 돌을 던지는자 7백명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연합군은 40만명이었습니다.

그런데 1차 전쟁에서 이스라엘군 1만 2천명이 전사하고 물러섭니다. 2차 전투에서는 1만 8천명이 전사합니다. 그때에 비로소 이스라엘 군이 깨닫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져 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론의 후손을 제사장으로 세우고 예배를 드린 후 전쟁을 치르러 나갑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베냐민 사람 2만 5천명을 죽이게 됩니다. 베냐민 사람들 중 광야로 도망간 600명 이외에는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베냐민 족속의 아이와 여자들까지 진멸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자신들의 딸을 베냐민 지파에게 주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이들이 벧엘에 이르러서 대성통곡하며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슬퍼하는 장면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승리가 주는 감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통곡하였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 진정한 승자는 없다는 허무함과 비참함 때문입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상처와 아픔만 남은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백성이 진정으로 승리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이었을까요 ? 오늘 본문은 6.25동족 상잔의 비극속에서 진정한 승리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해답을 제시해 줍니다.

이스라엘 연합군은 베냐민지파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세가지측면을 회복한 후 싸웠을 때 승리 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실질적으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이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에서 진정한 승리를 위해서 세가지면에서 우리가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을 끝내고 진정 승자로 서기 위해서 우리가 관심 갖고 이루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이 한반도에 참된 평화와 진정한 승리를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

첫째, 의를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이 사건 전후로 사사기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말이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17장 6절에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그리고 18장 1절에는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라고 나와있습니다. 사사기 기자는 상황의 앞뒤 전후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이 방자히 행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사기의 결론을 담고 있는 21장 25절에 ‘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자기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라고 말씀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정의가 사라지고 서로 옳다고 싸우고 분열하는 시대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베냐민 기브아 족속들이 동성애 하는 장면, 한 여인을 여러 남성들이 욕보이는 탐욕과 잔인함, 그리고 이스라엘 총회의 결정으로 이들을 벌하려고 할 때에 오히려 베냐민 지파는 그들을 옹호하며 감싸고 전쟁을 일으켰던 그 모습들은 바른 의가 없었던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스라엘은 기브아 사람들에게 정의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실패하자 내부의 모순과 갈등이 증폭되면서 전쟁을 치루게 된 것입니다.

박태균씨의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 한국전쟁’이라는 책에서 전쟁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전쟁원인에 대해서 여러 가지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하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일반적으로 전쟁은 사회적인 갈등과 모순이 증폭되어 폭발하는 지점에서 나타나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해석 하고 있습니다. 결국 역사적인 관점에서 받아들여지는 6.25의 원인은 사회의 내부적인 갈등과 모순과 다툼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해방 이후에 좌파와 우파, 친일파와 독립군파의 갈등이 도처에서 일어났습니다.  자기의 방식과 이론을 따를 때에 참된 행복과 해방이 있다는 것을 각기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이 모순과 혼란이 증폭되고 인간의 죄악과 연결되면서 한국전쟁은 일어났다고 보는 것 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베냐민 지파에게 기브아 깡패들을 내어놓으라고 했을 때에 베냐민 지파는 옳고 그름의 잣대가 없습니다. 단지 ‘내 자식, 내 동족, 내 편’이라는 관념만 있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분별력이 없었고, 오히려 악을 합리화시키며 그것으로 자기기준을 삼았습니다. 이스라엘 총회가 결정했는데도 베냐민 지파가 이를 거절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총회의 권위가 무너졌음을 시사합니다. 이스라엘의 권위가 무너지자 정의가 무너지게 되었고, 정의에 순종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러한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은 단순히 도덕적 윤리적 이유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없었기 때문이였습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섭리하시는 그 하나님이 자신들을 다스린다는 사실을 다 잊어 버린 것 입니다. 더 이상 이들 속에는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저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껍데기신앙만 있었습니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느새 자신들이 왕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삶이 그 시대를 좌지우지 하게 된 것입니다.

레위인도 하나님의 법을 무시한 채 첩을 두고 있었습니다. 신앙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신앙의 껍데기만 있는 것입니다. 첩이 친정에 돌아가면 그곳에서 편히 지내기를 바라야 하는데, 이 레위인은 첩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이 첩이 죽게 되자, 그 시체를 12토막 내어 다른 지파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함으로써 민족의 전쟁으로 치닫게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을 보십시다. 6.25 전쟁은 민주주의를 세우고, 자유를 위해서 불의와대항
해서 피를 흘린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과연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세워졌습니까? 이 땅에 진정한 자유가 있습니까? 돈 많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자유가 있고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돈 없고 밑바닥 사람들에게는 민주주의란 그림의 떡밖에 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이 살아가는 시대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하여 동료를 죽인 김일병 사건입니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나를 괴롭히지 않은 병사의 유가족에게는 미안하다. 그러나 나를 괴롭힌 병사의 유가족에게는 사과하지 못하겠다.”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이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적입니다. 이 사람의 기준에서는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이 죽은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자신이 심판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기준으로 모든 것을 정당화 합니다. 자신의 기분이나 성공이 기준입니다. 정부도 정당하지 못한 일을 하면서 이를 묵인합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이러한 정부를 신뢰하고 있지 않습니다. 윤리나 도덕의 기준이 사라지고 부패와 타락의 냄새로 가득한 이 땅에 정의를 올바로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인권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에, 우리나라 정부는 이에 대해서 한마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실을 묵인함으로써 어떤 이득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저 이 땅의 불의의 모습을 가슴 아프게 바라봅니다.

각자 자신의 삶이 모든 것의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도 자신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말하는 자를 돌로 쳐서 죽이는 시대입니다. 모함하고 매장하는 것, 음모를 꾸미는 것이 만연하고 부동산 투기로 전국의 열기가 더해가는 이 땅에 하나님의 의가 어디 있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돌이키지 않는다면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역사와 성경이 사회의 모순과 불의를 경고 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전쟁을 끝내고 싶습니까? 다시금 하나님의 의를 세우고 그 말씀 앞에 우리를 돌아보며 신앙과 믿음을 회복할 때, 또한 그것을 위해 진정한 회개의 무릎을 꿇을때  전쟁은 끝나게 되고 진정으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전쟁의 고통과 아픔 그리고 두려움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의를 세워가십시오. 그곳에 화평과 평화의 하나님 나라가 임할 것입니다

둘째,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공동체를 회복해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군대가 베냐민 족속을 600명만 남겨놓고 다 죽였다고 합니다. 두번의 패배로 4만명의 전사자가 생긴 이후였기 때문에 이 승리는 아주 귀한 것 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대성통곡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께서 12지파를 허락하셨고, 광야에서 동거동락한 소중한 형제인 베냐민 지파를 죽여야만 하는 현실을 슬퍼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할 수 없음을 알기에, 이스라엘 지파들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립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하나님과 공동체가 서로 화목하기를 바라는 화목제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라엘 지파가 모두 하나되어 사랑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서로 죽고 죽이다가 증오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승자도 패자도 없는 현장입니다. 이때에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6.25라는 비극이 오늘 우리의 죄로 인해서 이루어 진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서야 합니다. 우리가 다시금 민족성을 회복하고 하나됨을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회개의 자리에 들어서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가 되며 하나님께 축복을 구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오늘 우리를 찢으셨지만, 회복시키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공동체 회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 사이에서도 때로는 원수처럼 여길 때가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위해주어야 하는 사이지만 미움과 원망으로 분열되어 불행하게 사는 모습을 봅니다. 이 사회와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서로 싸우기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 되고, 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 앞에 나가기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분별은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민족이 하나되지 못하고 오히려 죽고 죽이는 비극을 겪은 것을 가슴 아파하면서 하나님 앞에 아픔을 부여잡고 나아가는 공동체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악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구하며 북한의 동족을 위해, 그들의 아픔을 보며 탄식하며 하나님께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때만이 여기에 진정한 승리의 길이 열려진다는 것입니다. 이 큰 일보다 앞서 우리 안에 가정의 공동체성, 교회의 공동체성과 복음 안에서 하나됨의 사랑이 깨져 있다면 다시 하나로 회복해야 합니다. 한 공동체로 묶어주시어 하나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겸손함으로 간구해야 합니다

셋째, 이 전쟁이 끝나기 위해서는 죄로 부서지고 무너진 지체를 회복시키는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베냐민 지파를 초토화 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이제 광야로 도망간 600여명의 사람뿐이었습니다. 베냐민 지파가 빠져나간 성 안에 있는 가축까지 모두 몰살시켰기 때문에, 남자 600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이  베냐민 족속들도 이스라엘의 한 형제임을 다시금 깨닫고 그들이 회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웁니다. 광야의 바위에 숨어 사는 불쌍한 도피자들과 유리한 대로 조약을 새로이 맺습니다. 그들을 사면해줍니다. 용서해줍니다. 더 이상 적이 아니라 동족으로 받아주겠다고 공적으로 약속하며 그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이들을 위해 아내들을 구해주기로 합니다. 후손이 번성 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야베스길르앗  족속의 여자들을 데리고 와서 베냐민 지파의 아내들로 삼게 만듭니다.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의 딸들은 베냐민 지파들에게 시집 보내지 않기로 하나님께 언약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자, 실로에서 잔치하고 있는 여인 200명을 납치하여 베냐민 지파들에게 보내주었고, 이들은 마음을 진정하고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아 올리며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갔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오늘날 민족간의 전쟁으로 인한 아픔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산가족의 아픔이 있습니다. 우리 동포의 마음이 무너지고 부서지는 아픔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세워주기 위한 일들을 구체적으로 가정과 사회에서 진행해야 합니다. 무너진 아버지와 어머니, 깨어진 가정과 교회를 다시 세우는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혹시 북한이 자신들의 죄로 인해서 고통 받는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마음을 바꾸어 저들 속에 하나님의 복음이 임하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수용소의 노래’라는 책을 지은 강철환 기자의 글을 보면, 북한에서는 엄청난 고통과 아픔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조차도 없다고 합니다. 저들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일에 우리가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의 형제자매인 그들에게 분노와 증오의 손을 거두고 하나님께 그들을 위해 간구 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2장 8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고 합니다. 이제는 상대방을 향한 손가락질 대신, 손을 들어 이북땅을 향한, 평양의 부흥이 다시 일어나길 위한 기도를 해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죽음과 고통 속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힘을 주어야 합니다.

1990년대 후반에 북한에서는 적어도 백 만명 이상이 아사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북의 정권은 핵무기와 군사력을 증진시키면서 진정 관심을 두어야할 곳에 두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는 교회와 민족이 다시 일어나서 거룩한 손을 들어야 할 때입니다. 무너진 저 땅, 깨어진 저 땅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의와 희락과 화평이 저 땅에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 해야 합니다. 가까이 있는 탈북자들을 돌보는 일도 중요합니다. 북한에 구호물자를 보내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북이 복음으로 다시 하나되고, 영적으로 다시 깨어나는 곳이 되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저들을 회복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헌신과 결단 없이는 전쟁은 끝나지 않습니다. 한반도의 전쟁이 끝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비극이 끝나도록 내 마음에서, 내 가정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때로는 내 자존심이 무너질지라도, 하나님의 의가 세워질 수 있다면 기꺼이 해야 합니다. 정의와 공의가 흘러 넘칠 그때에 이 땅의 아픔은 점차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온 세계에 있는 열방과 민족에 대해서 우리가 한 형제 자매라는 것을 깨닫고, 거룩한 성을 다시 건축하는 일에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땅에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합니다.

6.25 전쟁 55주년을 맞이하는 주일입니다. 우리 크리스쳔들이 오래전의 전쟁이라고 지나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다시금 회복할 것에 대해서 기대해야 합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의와 공동체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일, 저들 속에 무너진 사랑과 신앙의 모습이 회복되고 백성들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들이 이북의 정권자들에게 역사하도록 간구하십시다.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민족이 진정한 평강과 평화를 위해 나가는 이 일에 믿음으로 하나되어 진정한 평화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김형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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