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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 (행 4: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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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안다고 할 때 그것은 그 사람의 이름을 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과 그의 이름은 같은 대접을 받습니다. 솔로몬은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고 했습니다(전 7:1).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이름이 있으니 우리나라를 왜군의 침략에서 건져낸 이순신 장군입니다. 사람들은 일본에 어학연수 중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고 숨진 故이수현 씨를 의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아름다운 이름을 남겼습니다.

그런가하면 권세 있는 이름도 있습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다니엘이 정적들의 계략에 의해 죄를 뒤집어쓰고 사자 굴에 던져졌는데, 돌을 굴려다가 굴 아구를 막고 왕이 어인과 귀인들의 인을 쳐서 봉했습니다. 왕이 어인으로 인봉했으므로 누구라도 감히 인봉을 떼어내고 다니엘을 구해 낼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왕조시대에는 왕의 이름이 그만큼 권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걸출한 군왕의 이름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비하면 하찮은 이름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하고 권세 있는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나폴레옹은 알렉산더에 버금가는 영웅이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말년에 말하기를 “나는 수백만의 군대로 세계를 정복코자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는 단 한 명의 병사도 없이 오직 사랑과 희생으로 세계를 정복했다"고 했습니다. 나폴레옹과 예수 그리스도, 둘 중에 어느 이름이 더 위대한 것일까요? 이 시간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라는 제목으로 성도님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존귀한 까닭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본질상 하나님과 동등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성자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복음 1장 1절로 3절에 보니 “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 14절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구절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초에 계셨던 말씀이시며, 창조주시며, 하나님과 동등하신 성자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라는 이름은 사람이 지은 것이 아닙니다. 양부 요셉이나 모친 마리아가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주의 사자를 요셉에게 보내서 알려주신 것입니다.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말하기를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의 이름이 인류의 구원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이름이 귀한 것은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은 근거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착한 행실로 인한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죄의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10)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고 했습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죄인으로서 하나님과 불화한 상태에 있습니다. 제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기준에 비추어보면 다 죄인입니다. 그리고 죄인들 위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큰 부자가 되고 노벨상을 타고 권세를 부릴지라도 죄 사함을 받지 못했다면 결코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그 사람은 영원한 죽음을 면할 수 없습니다. 지상의 행복은 잠깐이지만 내세의 형벌은 영원합니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성도들이 행복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죄 사함은 수양을 하거나 적선을 한다고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억만금을 가지고도 죄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죄 사함의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10장 9절 이하에 이같이 말씀합니다. “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가 무한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를 사하실 권세를 갖고 계십니다. 마가복음 2장에 보면, 이런 일화가 나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있는 집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와서 입추의 여지가 없게 되었습니다. 마침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왔으나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께 데려갈 수 없었습니다. 이에 그들은 주님이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 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기를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의논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하시고 저들에게 이르시기를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중풍병자가 곧 일어나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데서 걸어 나가니 거기 있던 사람들이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 한 마디로 중풍병자를 온전하게 치료하심으로 자기에게 죄 사함의 권세가 있음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죄 사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길밖에 없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불신 이웃에게 부지런히 전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아직 주님을 믿지 않는 부모님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해 주는 것처럼 큰 효도는 달리 없습니다. 불신배우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해 주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주의 이름을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요사이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자들은 말하기를 “예수만 믿어야 구원 받는다는 성경 말씀은 잘못된 것이다. 부처를 믿건, 산신령을 믿건 진실하게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고 합니다.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기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고 했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구세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으십니다. 그런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날마다 죄 사함의 은총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기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치료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 수많은 병자를 고쳐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마태는 증거하기를 “23)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마 4:23,24)고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그를 믿는 자들을 치료해 주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으로는 우리를 떠나 계시지만 영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할 때 치료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를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 주의 이름으로 병을 치료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17)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18)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을 고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앉은뱅이는 걸인이었는데, 자기 발로 걸어서 올 수 없으므로 날마다 사람들이 메어다가 성전 미문 곁에 두었습니다. 그 날 오후 3시에 두 사도가 기도하러 성전 미문을 들어가려는데 이 걸인이 보고 손을 내밀어 구걸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그 걸인을 주목하며 “우리를 보라”고 했습니다. 걸인은 두 사람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기대감을 갖고 바라보았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랬더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었습니다. 두 사도와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이 사건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얼마나 권세가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그러나 두 사도는 이 일로 인해 공회에 붙잡혀 갔습니다. 이튿날, 대제사장은 산헤드린 의회의 의원들을 소집하고 두 사도를 가운데 세우고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같이 말했습니다.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베드로와 요한은 자기들의 능력으로 앉은뱅이를 고쳤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또는 공회원들을 두려워해서 그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두 사도는 분명히 말하기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공회원들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이 확신에 차서 증거 할 뿐 아니라, 나면서 앉은뱅이 되었던 그 사람이 온전케 되어 두 사도와 함께 섰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제사장은 공회원들과 의논하기를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 저희로 인하여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저희를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두 사도를 불러 경고하기를 “앞으로는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도는 담대하게 대답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핍박과 시련 앞에서 자주 넘어지는 것은 다른 데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실감나게 체험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막연히 지식으로만 알 뿐이고 주님의 능력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에 어려움을 만나면 믿음으로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성령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든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야고보 선생은 말씀하기를 “14)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찌니라 15)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16)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고 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병자를 위해 기도하면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마음 든든한 약속입니까! 그런즉 성도님들께서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힘입어 병을 이기고 건강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마귀를 물리치는 권세가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신 내용이 자주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도적에 비유하시고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고 하셨습니다. 마귀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법이 없습니다. 마귀는 인간들의 영혼을 멸망시킬 뿐 아니라, 육신도 병들게 합니다. 마귀는 사로잡은 자들의 삶을 철저하게 파괴합니다.

마귀와 그의 졸개인 귀신들은 원래 천사들로 지음 받은 자들입니다. 마귀는 천사장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교만한 마음을 품고 그를 따르는 천사들과 반역을 꾀하다가 천상에서 쫓겨나서 마귀가 되었습니다. 마귀는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교만한 생각을 넣어주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하여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타락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 마음이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은 약자들에게나 필요하지 자기들처럼 강한 자들에게는 필요치 않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이처럼 교만한 것은 마귀에게 그 마음이 점령당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편이냐, 아니면 마귀의 편이냐, 둘 중 하나이지 중립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인들이 마귀와 대항해서 영적 싸움을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에베소서 6장 12절에는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인간보다 지혜롭고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혜와 힘으로 마귀를 물리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무슨 방법으로 마귀를 물리칠 수 있을까요? 오직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물리칠 수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서 마귀는 힘을 잃고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주하고 맙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때때로 시험이 다가옵니다.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시험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공격 대상은 불신자들이 아니고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다가오는 것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생각하면 안 됩니다. 마귀는 감히 예수님을 시험하기까지 했습니다. 광야에서 40일 금식 기도하신 예수님께 마귀가 나아와 세 번이나 시험했습니다.

첫 번째 시험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고 물리치셨습니다. 이에 마귀가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말하기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심으로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세 번째로 마귀가 예수님을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며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고 하시니, 마귀는 완전히 패하여 물러갔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시험했습니다. 십자가 고난을 몇 달 앞둔 때에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말하기를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고 했습니다. 언뜻 보면 베드로가 충심으로 스승이신 예수님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마귀의 꾐에 빠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기를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 16:23)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마귀가 얼마나 끈질기게 시험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주님을 시험했던 마귀가 성도들을 시험하지 않을 리 있겠습니까? 마귀는 우리가 깨어 기도하지 않고  방심한 사이에 교만한 마음을 넣어 주어 시험에 들게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시험한 것처럼, 마귀는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서 시험하기도 합니다. 마귀는 재물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가룟 유다를 시험해서 넘어뜨렸습니다. 그리고 명예욕을 가지고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시험해서 넘어뜨렸습니다. 데마에게는 세상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시험해서 사명을 버리게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마귀는 때로는 우는 사자같이, 때로는 광명의 천사처럼 꾸미고 다가옵니다. 그러나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서 제 목자인지 아닌지를 알듯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따른다면 얼마든지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마귀는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할 때 물러갑니다. 성도들은 실질적으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여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마귀의 시험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입으로만 주여, 주여 외친다고 마귀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런즉 성도님들께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말씀의 검으로 무장하고, 깨어 기도하심으로 능력 있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를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역사상 수많은 영웅호걸과 성현들이 출현했으나 그들의 이름은 더 이상 권세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본질상 우리와 같은 연약한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시므로 그 이름의 권세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즉 지금도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의 은총을 받아 누리며, 병을 고침 받으며, 마귀의 시험을 물리쳐야 합니다. 주님 앞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쓰는 그 날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힙입어 끝까지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양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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