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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승리하는 신앙생활(3) - 하나님의 자녀 (롬 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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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교수가 줄기세포를 연구해서 난치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연장시킨다해도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는 없다. 이유는 죽음이 죄의 소산물이기 때문이다.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삶의 질이 향상된다 할지라도 죄와 죽음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국민 소득이 늘어나고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면 죄가 어느 정도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유전공학과 의학의 발달로 어느 정도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국적으로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그러므로 죄와 죽음의 문제가 모든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크고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에 대하여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과학자들과 정치인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인류 역사 가운데서 어떤 과학자나 정치인이 병원이나 경찰서를 몰아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선진국일 수록 병원과 경찰관과 변호사가 많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훌륭한 정치적 지도자가 나온다 할지라도 경찰서를 없애지 못할 것이다. 황박사보다 더한 과학자가 나온다 할지라도 병원을 없애지 못할 것이다.

나는 사역상 병원을 자주 드나들게 된다. 그 때 마다 마음으로 기도한다. “주님, 병원 심방은 얼마든지 감당하겠지만 제가 병원에 들어 눕지는 않게 하옵소서.” 이런 기도를 하게 되는 것은 내 마음 속에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 속에서 죄와 죽음이 존재하고 있는 한 인간의 삶은 행복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인생에 있어서 당면한 이 불행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1-2에서 그 해답을 명확하게 제시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함을 얻을 수 있는 비결은 과학이나 정치력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하심이란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 불안한 행복을 누리며 생명을 연장해 가는 것보다 죄와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단 하루라도 천국과 같은 삶은 누리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이 놀라운 축복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미 주어졌음을 믿으시기 바란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다. 이 사실을 바로 아는 것이 불안한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의 첫 번째 비결이다.

두 번째 비결은 내가 성령에 속한 사람이란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몰랐을 때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하나님과 관계 없이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이후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영의 사람들이 된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실패하며 스트레스 받는 삶을 사는 이유는 자신이 하나님께 속한 성령의 사람이란 것을 잊어버리고 살기 때문이다.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은 그 마음 속에 성령을 모신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불렀다. 이 사실을 잊지 말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다. 이것이 세상을 이기는 두 번째 비결이 된다.

오늘은 승리하는 신앙생활의 세 번째 순서이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함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속에는 성령께서 내주하신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1.몸의 행실을 죽이라는 것이다(12-13)
롬8:12-13,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 된 우리가 육신에게 져서는 안되는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1)근본적인 이유
첫 번째 이유는 빚진 자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빚을 졌는가? 성령님께 빚을 졌다. 어떤 빚을 졌는가? 죄와 사망의 법에서 건져냄을 받은 것이다. 사랑의 빚을 진 것이다. 그것은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탕감을 받은 것과 같은 것이다. 탕감 받았기 때문에 채무는 없어 졌지만 심정적 채무는 안고 있는 것이다.

나는 종종 혼자 가슴을 칠 때가 있다. 사람들이 물질적으로 빚진 것에 대하여는 심한 부담감을 가지고 산다. 그러나 주님께 대하여는 빚진 자의 의식이 없이 산다. 나의 죄를 인해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그 사랑을 받았는데 그 은혜에 감격해서 주님 앞에 빚진 자로서 순종하고 헌신하기 보다는 육신의 정욕을 위해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불순종하는 모습을 볼 때 그렇다. 사람에게 빚진 것에 대해 부담감을 갖는 것 만큼 주님 앞에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산다면 우리는 결코 육신에게 져서 육신의 정욕을 따라 죄 짓는 삶을 살지는 않을 것이다.

2)실제적인 이유
두 번째 이유는 영적 죽음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령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함을 얻은 자 되었다면 또 다시 죄를 범하여 사망에 이르는 행동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만약 육신대로 산다면 반드시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 죽음은 육체적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육체적 죽음은 신자나 불신자나 다 당하게 된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죽음은 두 번째 죽음 곧 영적 사망을 의미하는 것이다. 영원한 저주 아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세례 받았다고, 오래 교회 다녔다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지 말라. 표면적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이면적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다. 자신에게 속지 말라는 뜻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육신에게 져서 죄의 종노릇하는 생활을 반복적으로 되풀이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실제적인 삶의 현장에서 우리의 모습은 육신에게 져서 끌려다니는 형국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고민이 있다. 그러나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이 그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3)어떻게 해야 하는가?(13b)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곧 성령의 능력으로 몸의 행실을 죽일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에 속한 사람이요 성령을 모신 사람들이다. 성령의 사람들은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다. 나의 힘으로는 죄의 법을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안에 내 주하신 성령의 인도함을 받게 되면 죄를 범케하는 몸의 행실을 능히 죽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권성수목사님은 몸의 행실을 죽이는 구체적인 방법 5가지를 제시하였다.
1.죄가 우리 속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
2.항상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시켜야 함.
3.하나님의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
4.기도로 하나님과 대화를 유지
5.철저한 회개와 철저한 순종


2.자신의 변화된 신분을 누리는 것이다 - 하나님의 자녀(14-16)
롬8:14-16,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지난 6월 마지막 주간, 목요일 귀국할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단동에서 선양으로 왔다. 시내 구경도 하고 쇼핑도 할 겸 시내로 나왔다. 그때 한 어린 소녀가 변목사에게 와서 구걸했다. 약간의 돈을 줬다. 조금 지나니까 또 다른 소녀가 달려와서 구걸했다. 그 때 우리를 인도하던 선교사님이 주지 말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소녀가 양복 상의를 잡고 늘어졌다. 주지 말라고 한 이유는 이 소녀들의 우두머리가 구걸한 돈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소녀들은 두목의 세력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노예와 같은 신세였다.

만약에 우리의 자녀들이 이런 짓을 하고 있다면 부모된 입장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아니 너 지금 무슨 짓 하고 있는거야? 네가 엄마가 없어 아빠가 없어. 집이 없어, 먹을 것이 없어.” 당장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모습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마귀에게 종노릇하면서 마귀 좋은 일만 시켜주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을 듣기 바란다.
-“너는 내 아들이야, 너는 내 딸이야. 나는 너의 아버지야.”

15절의 말씀을 잘 보기 바란다. “너희는 다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하나님 아버지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성령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친밀하고 인자하신 아버지이시다. 이 사실을 믿기 바란다.

뿐만아니라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고 계신다.
고후1:21-22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저의 부친은 대단히 엄격한 분이셨다. 마음으로 존경했지만 아빠라고 불러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후 육신의 아버지로부터 받아보지 못한 다정하고 따뜻한 사랑을 느끼고 받고 산다. 새벽마다 “아버지”라고 부르면 사랑으로 품어주시는 손길을 느낀다. 전능하신 분, 나를 창조하시고, 죄악에서 건져내신 사랑으로 인해 더 이상 죄악의 길에 서지 않을 것을 다짐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된 특권이 우리에게 부여되어 있다. 이것을 잊지 말라. 육신에게 져서 패배하는 인생이 되지 않을 것이다.


3.영광스러운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다(17)
롬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1)후사
후사란 상속자를 가리킨다. 나는 육친이 계시지 않는다. 상속 받을 것이 없다. 때로는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아버님이 좀 더 오래 살아 계셨더라면 맨 땅에 헤딩하듯 고생하지는 않았을 텐데... 예)결혼할 때. 빌린 돈 50만원이 전부였다.

이근재집사님이 근무하는 장학재단의 기금이 4000억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자식들에게 상속한 재산까지 회수하려고 법정 싸움까지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유는 부자지간에 관계가 안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변함 없이 항상 좋은 분이시다. 친밀하게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신다.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너는 나의 상속자야.” “눈물도 질병도 고통도 없는 행복의 나라를 그리스도와 함께 할 나라를 너에게 영원히 줄 것이다.” 우리가 받게 될 영원한 유업을 생각할 때 결코 낙심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썩어질 육신의 재물을 쌓기 위해 범죄하고 타협하는 유치한 행동들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유는 영원한 하늘의 유업을 받을 하나님의 후사들이기 때문이다.

2)그리스도와 함께 할 영광
뿐만아니라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영광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 영광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다. 아마 우리가 기대한 것을 훨씬 넘어서는 엄청난 영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영광은 거져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고난도 함께 받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영어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영어란 웃고 들어 가지만 울고 나오는 것이다.” 영어를 십년 이상 공부했고 지금도 영어책을 보고 있지만 어렵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영어를 마스터하기 위해 고생한 만큼 기쁨도 얻을 것이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구원받은 후 신앙의 연단이 없으면 신앙의 성장도 없다. 고난이 닥치는 것은 곧 영적 성장을 위한 하나님의 훈련임을 알아야 한다. 특별히 믿음으로 살려는 성도들에게는 고난이 많다. 야고보 선생은 이렇게 교훈하고 있다.
약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고난은 장차 얻게 될 영광을 위한 예비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들 앞에 놓여 있는 고난에 대하여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인내로 극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 속에 성령을 보내 주셨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후사로 삼아 주셨다.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 이제는 그의 자녀된 권세를 가지고 죄악을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죄를 짖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선한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이미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너는 내 아들이다. 너는 내 딸이야. 그리고 이 세상은 나의 것이다. 나의 자녀답게 살아라.” 이것이 험한 세상 가운데서 육신에게 종노릇하지 않고 승리하는 삶의 비결이다. 이번 한 주간도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식하고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 (원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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