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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좋은 소문 난 교회 (살전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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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회는 비전 공동체

성공하는 사람들은 "삶의  목적이 있고 비전"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꿈에 자극을 받아 그 꿈을 달성하기 위해 계속 앞으로 나가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보다 큰 꿈을 품고, 그 꿈을 달성하기 위하여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비전을 품은 자가 자포자기만 하지 않으면 반드시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주님은 더 큰 비전을  품고 오직 믿음으로 나아가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의 미래는 현재보다 천 배나 더 나아지는 축복의 기적이 펼쳐질 것입니다. 달려갈 푯대를 향하여 늘 전진하는 비전의 사람의 되시길 바랍니다.

비전을 이루는 방법 가운데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우리 각자의 머리와 마음속에, 우리가 품은 그 비전을 비쥬얼라이즈(Visualize) 하는 거예요. 그 비전을 우리 마음에 품고, 머리에 새기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작업은 우리의 모든 학습 활동에, 하는 일에 이용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테니스를 배울 때, 코치가 처음에 하나부터 열까지 자세히 설명을 합니다.
라켓과 그립은 어떻게 잡고, 스텝은 어떻게 밟아야 되고, 볼이 오면 백스윙을 한 다음에 포핸드를 친다고 가르칩니다. 가르치는 이가 설명을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하더라도, 또 그 설명을 철저히 이해한다고 해서 잘 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가장 잘 가르치는 코치는, 자기가 설명한 그 테니스의 원리들을 학생(선수)의 머리 속에 비쥬얼라이즈, 즉 그림으로 심어주는 거예요.

미국의 어느 목사님이 아들이 7살 때 테니스를 가르쳤습니다.
개인 레슨을 받는데 코치가 나이가 60세 정도 된 할머니예요. 할머니 코치가 뭘 얼마나 가르칠까 생각했는데, 그 목사님의  실망한 눈빛을 알아챘는지 그 분이 자기 소개를 합니다. 자기가 바로, 그 옛날 여성 테니스계를 15년 간 휩쓸었던 나브라틸로바를 가르쳤던 코치라고 해요. 목사님이 속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안심하고 맡겼어요. 그 아이를 가르치는 것을 보면서 목사님이 그 코치에게 물었어요.
"당신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주력하는 것이 뭐냐,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뭐냐?"고 했더니, 그 사람이 딱 한 단어를 얘기했어요.
"비쥬얼라이즈(Visualize)!" 계속해서 "비쥬얼라이즈(Visualize)!"
설명을 해 달라고 했더니, 머리 속으로 테니스를 어떻게 치는가를 늘 생각하라는 거예요. 그리라는 거예요. 내가 테니스를 잘 칠 수 있다. 포핸드를 친다고 하면 포핸드 하는 그림을 날마다 그리라는 겁니다.

여러분, 이 그림을 그리면 사람이 달라져요.

어느 분 이야기가 미국에 있을 때 골프 레슨을 좀 받았는데, 두 달 정도 되니까 어느 날 설교를 하는데 성도들의 머리가 다 공으로 보였습니다. 당구를 배워 보세요. 당구를 배우면서 밥상을 받으면 밥그릇의 각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렇죠? 이게 비쥬얼라이즈(Visualize)예요.

우리가 이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비쥬얼라이즈(Visualize)가 필요합니다.
이 비전을 마음에 품는 거예요.

저는 우리가 이 주님의 비전에 동역하는 교회라는, 브리스베인 순복음교회의 우리의 이 비전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 방법을 찾기 위해 지난 몇 주 동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성전 봉헌 1주년을 맞아 제가 이 비전을 이루는 방법을 성도들의 마음속에 비쥬얼라이즈(Visualize) 시켜야 되겠는데, 그림을 그려줘야 되겠는데, 어떤 본문으로 어떻게 설교하면 좋겠습니까?"하고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렇게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한 교회가 저의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놀랍게도, 신약성경 그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께서 Example, 본이 되고, 패턴이 되는 교회라고 소개한 교회가 없는데, 오직 한 교회만 하나님께서 "이 교회가 세상의 모든 교회 가운데 패턴이요, 너희가 본받아야 할 교회"라고 소개해 준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가 바로, 오늘 아침 저와 여러분이 살펴보는 데살로니가 교회입니다.

제가 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살펴보면서 굉장한 감동 몇 가지를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기간에 어떻게 데살로니가 교회를 세웠는가?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거기에 적혀 있습니다.

사도행전 17장과 데살로니가전서 전체를 살펴 보면,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들어가서 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세우기 위해 보낸 기간이 너무나도 짧았다는 거예요.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그는 세 안식일을 그곳에서 보냈어요. 그러니까 오늘날로 말하면 4주 동안을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그 4주 동안 데살로니가 교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수많은 큰 무리가 하나님께 돌아왔다고 얘기합니다. 그저 한 종류의 사람들만 돌아온 게 아니고, 헬라의 많은 귀부인들과 수많은 계층의 사람들이 다 몰려들었어요.

그런데 사도 바울이 4주간 그곳에 머물고 그 데살로니가를 떠난 이후, 이제 이 서신서를 적은 기간까지는 1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1년도 되지 않은 데살로니가, 햇병아리 같은 이 교회가 얼마나 부흥을 했던지, 얼마나 하나님 앞에 올바른 방향으로 자라나갔던지, 데살로니가전서를 기록하며 사도 바울은 그들을 크게 칭찬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패턴, 본받아야할 본이 되었노라. 세계의 어떤 교회가 있다면 너희 교회를 본받아야 하며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의 본이 되었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참으로 이 교회를 보며 큰 감동과 충격을 받았습니다.
1년도 되지 않은 이 교회가 그 세계에 있는 모든 교회들이 본받아야 할 교회라고, 하나님은 이 교회를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교회를 연구하며 궁금증에 사로잡혔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1년도 되지 않은 교회인데 도대체 그 교회는 어떤 기술을 사용했단 말인가?
무엇을 했기에 이 교회가 이렇게 영향력 있는 교회로 변화되었단 말인가?

성경은 이 교회가 이렇게 짧은 기간에 대 부흥을 이루고, 수많은 교회의 모델 교회가 될 수 있었던 명백한 이유 몇 가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아침에 우리 교회가 주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원리 몇 가지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주의 비전에 동역자로 세워져서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비전에 동역자가 될 수 있겠는가?

[2]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붙잡아야 할 원리

1.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받으라

데살로니가 교회가 위대한 교회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그들의 말씀을 받는 태도가 남달랐기 때문이라고 소개해 주십니다. 4절을 봅시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얼마나 큰 축복의 말씀이에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5절을 읽겠습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어떻게 임했다고 말씀합니까?
말씀이 들려올 때 그들은 그것을 논쟁거리로 삼지 않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읽을 때, 그들은 그것을 토의할(discussion) 논제로 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말씀으로 들었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단순한 말에 그친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그 말씀을 받았다고 증언하십니다. 전하는 자도 그러했고 받는 자도 그러했습니다.
이것이 데살로니가에 복음의 지진이 일어났던 이유였습니다. 이것이 데살로니가 교회가 주의 비전의 동역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었던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성령의 음성을 듣고 계시나요?
예배에 나와서 주의 말씀을, 설교 말씀을 들을 때, 큰마음의 확신을 가지고 돌아가십니까? 오늘날 현대 교회의 문제가 있다면 수많은 말씀의 홍수 속에 살면서, 이 말씀의 능력과 성령의 확신을 느끼는 사람들이 점차 적어지고 있다고 하는 비극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비전을 이룰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수 있습니까?
먼저 다른 일을 하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받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님은 우리에게 주문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태도가 우리 신앙 생활에 얼마나 중요하셨던지, 마태복음 13장이라고 하는 한 장에 큰 구절들을 사용해서 우리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씨뿌리는 비유입니다.
그 씨 뿌리는 비유에 네 가지 밭이 등장하죠.

첫 번째는 길가, 두 번째는 돌짝, 세 번째는 가시밭, 마지막 옥토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이 비유 가운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네 가지 밭, 똑같은 말씀이 네 가지 밭에 떨어졌는데, 그 열매가 무엇에 따라 좌우되죠? 밭에 따라 좌우됩니다.

어떤 밭인가에 따라 열매가 좌우되었어요.
여기에 뿌려진 씨가 어떤 씨예요?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말씀이죠? 바위도 깨는 방망이 같은 말씀이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태울 수 있는 불과 같은 말씀이요,
좌우의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관절과 골수와 우리의 혼과 영과 마음의 생각까지 다 감찰하시는 능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사람의 마음 밭에 와서는 맥도 추지 못하고, 뿌리도 내리지 못하고 죽어 버린다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이게 가능합니까? 예! 주님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왜입니까?
우리의 마음 밭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능력이 있어서일까요? 아니에요.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한가지 독특한 특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유의지예요. 선택의 권리예요.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만드실 때, 로보트와 같이 우리를 만들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 중에 가장 독특한 특권 중에 하나가 취사선택(取捨選擇) 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다는  거예요. 내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능력의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받아들일 수도 있고, 받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의지의 인격을 주셨다는 겁니다.

오늘 똑같이 예배를 드리고,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가 전파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가 하면, 길가의 밭이 있는가 하면, 돌짝밭이 있는가 하면, 가시밭들이 있어서 받지 않는 자들도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 밭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태도가, 인생의 앞길을 좌우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그 말씀을 어떻게 받았습니까?
큰 성령의 능력과 확신으로 받았을 뿐만 아니라, 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여러분,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받았던 환난들이 도대체 어떤 것들입니까?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여러 가지 환난을 얘기하지마는 그 중에 대표적인 것 한가지만 들라고 한다면, 모든 유대인들과 주위의 사람들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모함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모함했는지 아십니까?
오늘날로 말하면, 저들은 국가 보안법 상 국가반역죄를 지었다는 겁니다.

우리가 사극(史劇)을 보면 다른 죄는 다 용서해도 반역죄는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로마 정부도 그랬어요. 세계의 모든 나라를 정복하고 다스려야 했기 때문에, 다른 것은 몰라도 반역죄는 철저하게 다스렸어요. 그래서 삼족(三族)을 멸하고 구족(九族)을 멸하지 않았습니까? 반역죄는 십자가 처형을 반드시 시켰습니다.

그런데 주위의 유대인들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자,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해 "저들이 가이사에게 반역을 꽤하고 있다"고 모함했던 거예요.
여러분, 이 모함이 보통 모함입니까?
그러나 오늘 성경 본문에서는 무엇을 얘기합니까?
그러한 모함과 수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다고 누가 당신을 그렇게 핍박합디까?
그러나 그들은 그 핍박 가운데 주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환경 탓하지 마십시다. 건강 탓하지 마시고, 시부모 탓하지 마시고, 날씨 탓하지 마시고, 내 사업 때문에 말씀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사업 탓하지 마시고, 내 고민거리를 탓하지 마시고, 내 환경을 탓하지 마시고, 일생 내내 하나님의 도를 전심으로, 기쁨으로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우리가 어떻게 주의 비전에 동역자가 될 수 있는가?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받아야 합니다.

"당신은 믿음과 당신의 꿈만큼 당신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그 말에 반대할 자는 없을 것입니다.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를 꿈꾸었고, 실제로 비행기를 만들었습니다.
로버트가 만들어지고 컴퓨터가 만들어진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꿈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꿈은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말씀 안에서 꿈을 꾸게 하십니다. 아무리 큰 문제와 심각한 어려움이 있다해도 성취해야 할 꿈은 말씀안에서 가져야 합니다. 꿈이 있는 자야말로 있는 사람이요 꿈이 없는 자는 진짜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안에서 환상과 Vision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꿈이 있어 그 꿈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 그 시대를 이끌어 갑니다. 미래를 바라보며 저 건너편으로 건너갈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먼저 꿈이 있고 목표가 있고 계획이 있습니다. 영적 자본가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은 영적 자본입니다.

오늘 두 번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주의 동역자가 되기 위한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실천하라

2절, 3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오늘 여기에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 등장하죠?
데살로니가 1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를, 아마 집사 이상 되시는 분들은 다 믿음, 소망, 사랑이라고 얘기할 거예요.

데살로니가 교회가 왜 본이 되는 교회가 되었는가? 그 짧은 시간에 대부흥을 이루었는가? 그것은 단순히 추상적인 믿음, 소망, 사랑이 아니라고 얘기합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성경을 들여다보십시오. 3절입니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
오늘 원어 성경에 보면 믿음, 소망, 사랑이 강조된 게 아니라, 역사와 수고와 인내가 강조된 거예요.

2절에서 3절은 사도 바울이 기도하다가 데살로니가 교인을 생각한 거예요. 데살로니가 교인! 하면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무엇이 떠올랐는가?
왜 데살로니가 교회는 주님의 비전을 이루었는가?
소망의 인내와, 사랑의 수고와, 믿음의 역사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믿음의 역사는 무엇인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간 것을 얘기한 것입니다.
사랑의 수고는 무엇인가?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신 것을 얘기한 거예요.
소망의 인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의 강림하심을 기다리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1)  믿음의 역사 (9절)

우상을 버리고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 왔어요.

여러분, 우상이 뭡니까?
우리는 '우상(偶像)' 이라고 하면 그저 돌부처 앞에 가서 절하는 것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만 우상 숭배가 아니에요. 오늘날 현대인들 가운데 성황당 앞에 가서, 고목 나무 앞에 가서 비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현대인들이 우상을 섬기지 않을까요?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견책하셨던, 백성들을 책망하셨던 가운데 하나가 우상숭배였습니다. 그러면 신약 시대에 사는 저와 여러분의 죄는 무엇이겠습니까?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의 우상숭배를 지적하시고 질타하십니다.
우상이 무엇인가요?
하나님 대신에 내 마음에 중요하게 자리 잡고 앉아 있는 것, 그것이 우상이에요.
어떤 사람은 돈이 우상이고, 어떤 사람은 인생에서 성공하는 것이 우상이고, 어떤 사람은 쾌락이 우상이고, 어떤 사람은 취미가 우상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내 자신이 우상이에요.
취미가 우상이에요. 형태만 다를 뿐, 우상숭배는 여전히 우리들의 문제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어떻게 했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올 때 그 말씀에 순종해서 우상을 버려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오늘 교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배드리는 성도는 많아져도, 교회에 나와 설교는 듣고 있으면서도, 그 마음 안에 하나님의 눈으로 쳐다보면 마음속에 우상을 섬기고 있는 자들이 너무나 많다고 하는 거예요.
아직도 하나님이 자기 인생 속에 Priority, 넘버원에 자리 잡고 있지 못해요. 우선 순위에 있지 못해요.
아직도 하나님보다 자녀가 더 중요하고, 출세가 더 중요하고, 돈이 더 중요한 그리스도인들이 오늘 우리 주위에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이래서야 우리가 주의 비전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이런 우상을 이 시간에 다 버리십시다. 아멘!

믿음을 붙든 자들에게는 길이 보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던 아브라함이 믿음을 붙드니까 길이 보였습니다. 요단, 홍해, 여리고, 광야 등과 같은 어떠한 악조건이라 할지라도 믿음을 붙드니까 보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하면서도 믿음을 붙들었더니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이 보였습니다. 믿음을 붙들면 길이 보이고, 사업의 문이 열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마음이 확정된 자를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 마귀들을 늘 우리들을 유혹해서 마음이 확정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적 삶은 혼미하게 만듭니다.
오늘 이 말씀이 꼭 들려지길 축원합니다. 믿음을 붙들면 마음이 확정되니까 여러분의 삶의 모든 것이 저절로 되어지고 하나님의 큰 복이 넘쳐날 줄 믿습니다.
시행착오, 문제, 고통, 고민을 만나도 믿는 자에게는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믿음을 붙들고 나면 하나님께서 어려움을 주신 목적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믿음 붙들고 확정되면 꿈과 비전이 보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체질로 바뀌어 집니다.
믿음을 붙들면 새벽기도가 하고 싶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체질로 바뀌고 하나님의 영적인 존재로 바뀌고 밥 세끼 먹고 명예, 권세를 얻으려고 사는 것이 아니고 온 마음이 하나님께 가 있게 됩니다.  할렐루야!

마음이 확정된 사람은 의심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마음이 정해지면 의심을 할 필요가 없는 것 입니다. 의심이 없으니까 에너지를 좋은 쪽으로 사용할 수 있고 성공의 길을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의심치 않는 사람에게는 좋은 말이 나오기 때문에 믿음이 확정된 사람은 입으로 복을 받습니다. 믿음 안에서 승리함으로 여러분의 입으로 복을 받는 확정된 여러분이 되십시오.

오늘부터 여러분 모두는 입으로 복을 빌기 바랍니다. 지금부터는 부정적인 염려, 걱정, 고민은 싹 밀어내고 어떤 말을 듣든지 여러분의 입에서는 남을 축복하십시오. 남에게 믿음으로 복을 빌고 입으로 시인하며 살아갈 때 여러분에게 승리가 넘쳐날 줄로 믿습니다.

(2) 사랑의 수고

사랑의 수고가 뭘까요?
사랑의 수고를 왜 하나님을 섬기는 '섬김'으로 표현했을까요?
사랑과 하나님 섬김은 다른 것 같아요. 그러나 이렇게 연결해 보세요.
사랑의 수고 = 하나님을 섬김! 그것은 같아요.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수고'입니다.
사랑의 수고라는 말은 뭡니까? 봉사예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곧 봉사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를 예를 들어서 한 번 돌아보십시오.

교회 가운데는 두 가지 종류의 교인이 있습니다.
이 사랑의 수고에 관한 한, 한 종류의 교인은 전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사랑의 수고와 봉사를 하지 않는 교인들이에요. 예배만 드리고 돌아갑니다. 왔다갔다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어요.

그러나 어떤 교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아요. 수고를 합니다.

우리가 지난 5일 동안 새벽기도를 했습니다. 새벽기도가 그냥 이루어진 것 같습니까?
예배당 문을 열고 새벽 추운 날씨에, 여러분 오시기 전에 종범 형제가 나와 떨면서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새벽 기도 후에 70세가 되신 장로님과 권사님이 호미와 삽을 들고 주차장 화단과 통로를 매일 정리하고 청소하시고 부엌 정리를 하시고 돌아갔습니다.
또한 수시로 관리부서 집사님과 형제가 오디오 시설 정비와 교회 관리 보수를 위해 땀을 흘리십니다.

사랑의 수고가 있었기에 교회가 유지되는 거예요.

여러분, 아십니까?
금요일마다 시티 시내에서 매주일  CAM 전도회 회원들이 나와 돌아 다니며, 1년 내내 노방전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까? 우리 교회 성도 중에 누군가가요.
교회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비전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사랑의 수고를 하고, 누군가가 자기의 물질을 내 놓았기 때문에, 이 일이 가능한 거예요.
이것을 성경은 사랑의 수고라 얘기하고, 이것을 하나님을 섬기는 섬김이라 말씀합니다.

이 시간에 부탁드립니다. 제발 교회에 손님이나 구경꾼이 되지 말아 주십시오.
오래 교회를 다니고서도 손님으로, 사랑의 수고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성도들이 오늘 교회 안에 있다고 하면 그것은 비극이에요.

교회나 개인이나 꿈을 이루려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비전은 가지고 있으나 대가를 치르는 것은 거부하고 있습니다.

슈바이처에게 한 젊은이가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저도 선생님과 같은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들은 슈바이처는 그 젊은이에게 장작을 패는 일, 물을 길러오는 일 등을 시켰습니다.  사흘이 지난 후 젊은이는 슈바이처 박사에게 되물어 따졌습니다.
"저는 이런 일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하고 계시는 일을 하고 싶어 온 것입니다."  슈바이처 박사가 그 젊은이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처음부터 했던 일이 그런 일일세. 그러니 그런 일을 못 하겠거든 그만 돌아가게나."
결국 젊은이는 돌아갔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너무 많은 비전을 아무 고생도 하지 않고 이루려고 합니다.
그나마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이 지금보다 명예를 얻고 중요하게 여김을 받게 하기 위한 비전을 붙들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비전을 주신 후에 그것을 이루는 과정으로 고난의 코스를 통과하게 하십니다. 요셉은 바로 그러한 코스를 통과한 사람입니다. 요셉은 나이 열 일곱에 하나님께로부터 비전을 받았습니다. 그는 나이 30세에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기까지 피나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요셉은 나이 30세에 당시 세계에서 최강국이었던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결국 한 사람의 훌륭한 인물이나 소문난 교회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태도가 좋아야 하고, 꿈을 이루기 위한 대가를 치러야 하고, 하나님께로 꿈을 받아야 하고 관리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많은 고난의 대가를 치러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개미」라는 소설을 쓴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 분은 그 소설을 쓰기 위해 개미 2천 마리를 잡아다가 유리 통 안에 두고 날마다 연구를 하면서 소설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는 개미 2천 마리를 구하기 위해서 개미굴에 갔다가 여왕개미를 잘못 건드려서 죽을 뻔한 위기를 당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 청년이 한 회사에 입사하려고 이력서를 보냈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393통의 이력서를 계속해서 보냈습니다. 그래도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침내 연락이 없는 그 회사를 직접 찾아갔습니다. 수위실에 가서 자신이 393통의 이력서를 보냈는데 연락이 없어 찾아 온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경비실에서는 그 청년을 곧바로 사장실로 안내를 하였습니다. 사장실에 들어섰더니 미리 연락을 받은 사장이 그 청년에게 사장이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우리 회사에 반드시 찾아 올 것으로 믿었습니다. 당장 일을 시작합시다."

요셉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많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구덩이에 빠지는 대가, 인신매매로 팔려 가는 대가, 종이 되는 대가, 감옥가는 대가, 유혹 당하는 대가 등 수많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사랑의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이 주님의 비전을 이룰 수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역사해야 하고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3) 소망의 인내

무엇을 소망합니까? 주님이 다시 오심을 소망해요.
여러분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그 소망을 머리로 그치지 아니하고, 오늘의 현실을 주님이 다시 오실 것 때문에 참았다고 말씀합니다.

남편의 핍박을 참았습니다. 직장의 조롱을 참았습니다. 가난을 참았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참았습니다. 인내(忍耐)가 있었다고 말씀하는 거예요. 무엇을 얘기합니까?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추상적인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니고, 그들의 믿음과 들려온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주위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지진(地震)을 일으킨 줄로 믿습니다.

사람은 소망의 목표(目標, goal)가 있어야 합니다.
목표가 곧 힘이라는 뜻입니다. 목표란 눈으로 표적을 삼는 곳을 말합니다. 목적하고 지향하는 초점입니다. 목표는 중요합니다. 목표가 사람을 이끌고 가니까요. "푯대를 향하여"(14절)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12절)라는 말은 목표가 곧 힘인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목표가 있어야 집중력이 생기고 집중력이 있어야 목표에 도달합니다. 시선이 목표를 바라보고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해 나아가게 합니다.
목표는 내가 도달해야 할 지점입니다. 우리는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불타는 마음입니다.
무엇이 인간의 영혼에 불을 지를까요?
사냥개가 먹이의 냄새를 맡고 달아나는 짐승을 좇아가듯이 목표가 사람으로 뛰게 합니다. 사람의 마음에 감동이 없으면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새벽 3시에라도 일어나 짐을 챙겨 새벽길을 떠납니다. 그는 낚시 줄에 매달린 고기를 상상하며 자기 몸을 일으킵니다.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열정이 목표를 향해 깨어나도록 하는 것이 Vision입니다.
위인이 도달한 최고봉(最高峰)은 어느 날 갑자기 뛰어오른 것이 아닙니다. 한걸음 한걸음 기어올라온 결과입니다.

Vision은 멀리 내다보게 합니다. 목표를 세우고 달려가게 합니다. 목표는 바라봄으로 얻게 되는 영감으로 모든 것을 견디도록 도와주는 힘입니다. 목표는 일의 마지막이요 끝입니다. Vision의 사람은 항상 일의 마지막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시력으로는 마지막이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 목표를 세우고 목표 지향적인 사람이 되십다. 그 목표가 우리를 높은 곳에 세워줄 것입니다.

이 소망의 날에 우리 교회가 이러한 교회가 되십시다.
말씀을 실천하는 교회! 그래서 변화를 체험하는 교회!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작년과 올해가 달라지는 교회!
하나님을 올바로 믿었기에 내 가정생활이 달라지고, 내 말씨가 달라지고, 이 땅에서 사는 방법이 달라지는 그리스도인!
우리의 마음속에 이러한 소원이 있을 때 주님의 비전은 이루어 질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방법은 올바른 방법으로 선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믿음의 본을 보이라

우리는 모든 일에 믿음의 본을 보이며 좋은 소문으로 올바른 방법으로 선교해야 합니다.

8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믿음의 소문이 쫘악 퍼져서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어요. 설교가 필요 없어요.
1년도 안된 교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어요!

여러분, 우리에게 이것이 필요해요.
당신의 믿음의 소문은 어디까지 퍼졌나요?
당신의 믿음의 소문은 어디까지 번졌습니까? 당신의 아이들에게는 도착했나요?

여러분, 세상에서 자녀를 하버드 대학에 보내는 교육을 시켜도, 당신 자녀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면, 그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지 못하면, 마지막날 심판에서 주님 앞에 꾸중 받을 것을 아십니까?
자녀들에게 성경 과외 시켜 보셨나요? 무엇으로 자녀 교육시키겠습니까?
주일 학교에 보낸다고요? 아니요. 여러분의 믿음의 소문이 그의 가슴에 와 닿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믿음의 본을 자식과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야 합니다.

인도에 선교사로 나간 고든 맥스웰이라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하루는 힌두교 수도승에게 찾아가서 인도어를 가르쳐 달라고 했어요.
왜요? 영어와 인도말,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어야 자기를 가르칠 수 있는데, 그 당시 인도에는 공부한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거든요.
이 힌두교 수도승이 마침 미국에서 유학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안 된다고 해요.
"당신 날 전도하려고 그러지?" "아니요, 내가 전도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언어만 가르쳐 주시오" 그래도 안 된다고 해요.
그러면서 그 사람이 "지금까지 당신하고 지낸 사람 치고 그리스도인이 안된 사람이 있소?" 라고 했어요.

여러분, 이 얼마나 놀라운 얘기예요. 이러한 소문이 우리에게서도 번져나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저 사람하고 같이 몇 달을 지내면, 그리스도인이 돼요. 변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라요. 이것이 바로 영향력입니다.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겁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마 5:14,15"
앞으로 내내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3]  결 론

미래에 대한 꿈이 없다면 지금 보다 더 나아질 수 없고 당당한 주역으로 살아 갈 수도 없습니다. 하늘을 찌를 것 같은 거목도 작은 씨앗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꿈은 씨앗입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Vision을 품고 그 힘으로 인생을 경영하십시오.
거룩한 욕망을 품고 그리스도를 목표로 삽시다! 주님께 충성하여 상을 받아 영광스럽게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겐 너무나도 많은 사명이 있고 세상에 할 일이 많습니다.
지역, 민족, 세계를 복음화 해야하고 교회당 본당과 크리스챤 학교를 지어 주의 복음을 증거해서 이 지역을 복음으로 초토화시키고, 종교 다원주의에 빠져있는 이 세상을 오직 예수로 구원할 수 있는 능력으로 채워지게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는 역사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향하신 계획에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교회로 만들어 나갑시다!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께 확정되었다면 믿음으로 의심하지 말고 늘 극복할 수 있다는 오늘 말씀을 꼭 기억하고 아름답게 소문난 명문 교회의 축복을 누리고 여러분에게 주어진 삶을 잘 이루어 가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우리가 주의 동역자가 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으로 받으십시다. 
들려온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십시다.
가정, 직장, 교회에서, 개인의 삶 속에서 말씀을 실천합시다. 그 결과 우리의 믿음의 소문이 우리 가정의 담을 넘어서서 내 직장으로, 내 주위로 번져나가게 하십시다.

할렐루야!
(홍요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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