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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복의 근원이다 (창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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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은 B.C. 2241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갈대아 우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데라였습니다. 하나님께서 75세 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러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 가나안 땅으로 갔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거부가 되었고, 100세에 자식을 얻었으며, 175세까지 살다가 평안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의 족보를 보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에서와 야곱을 낳고, 야곱의 열두 아들은 이스라엘의 12지파가 되어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축복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되었고 온 인류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라고 말씀에 기록된 대로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갈3:13,14 말씀에 근거하면 아브라함의 복은 아브라함만 위한 복이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 모두를 위한 복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복의 근원이 되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에게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그 말씀대로 믿고 믿는 대로 살아서 아브라함의 복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1. 말씀대로 순종하라(1절).

  하나님은 75세의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 아브라함은 75세의 노인이며, 시대적으로 힘이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다는 것은 생명을 내거는 모험이 필요합니다. 잘못했다가는 복은 고사하고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인간적으로 보면 지나칠 정도입니다. 창22장에서는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과연 순종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무모할 정도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테스트해보신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성령님은 역사하시고 성경에서처럼 우리들에게 여전히 기적을 행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 성도들 가운데 실제로 성령이 주시는 기적을 경험하고 사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이 주시는 음성에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지금 이 시대의 성도들과의 차이가 있다면 하나님의 음성이나 성령의 감동을 받느냐 못받느냐 보다는 그 음성과 감동에 순종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입니다.

2. 큰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으라.

  제대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하나님의 수준에서 생각하고 하나님의 수준에 맡는 일들이 일어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은 우리의 자연적인 생활에 하나님을 초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들의 자연적인 능력으로 큰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연적인 능력은 큰 역사를 이룰만한 능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고 창대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심지어 3절에서는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약속하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만큼 약속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 이상의 약속을 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전능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떤 약속을 하시든지 이루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우리들이 생각하기에는 불가능할 것 같은 약속들을 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들이 이루어지는 것이 불가능하게 보여도 하나님은 능히 이루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성취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세속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의 능력이 그 일을 이룰만한가 그렇지 않은가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적인 차원에서 보면 그 사람의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문제입니다. 그 사람의 믿음이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을 시작하여 주님 안으로 들어가면 그 때부터는 믿음의 법이 그 사람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에게 “만약 주시오면 나를 바다위로 걷게 하소서”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 “오라”고 하셨고 그는 믿음을 가지고 바다 위를 걸었습니다. 바다 위를 걷던 베드로가 파도에 시선을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이 무너지면서 바다 위를 걷던 사람이 갑자기 바다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들은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네 열심대로 될찌어다”, 혹은 “네 행위대로 될찌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의 믿음은 변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작게 믿는 믿음으로는 작은 일 밖에 할 수 없습니다. 크게 믿는 믿음을 가져야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지십시오. 나는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이다. 나의 이름은 창대케 될 것이다. 나로 인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얻게 될 것이다.

  저는 여러분들이 신28:1 말씀으로 도전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우리는 반이나 학교에서만 뛰어난 이름을 가져도 감사하고, 만족하는데 하나님은 그 정도가 아니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존재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복을 흘려보내라(2절).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 됩니다. 이 말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이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복을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브라함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은 내가 복을 받는 일에만 신경을 쓰고 살아왔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내가 받은 복을 나누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 방식의 생활로는 절대 복의 근원으로 살 수 없습니다.
  우물물은 퍼내면 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물이 나와서 다시 우물을 채웁니다. 만약 우물물을 퍼내지 않는다면 우물물은 썩게 되고 새로운 물이 나오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받은 복을 나누는 것이 복의 근원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복을 나누면 하나님이 주시는 신선한 복을 다시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받은 복을 나누지 않는다면 우물물이 썩는 것 같이 그 복이 썩게 될 것이며 새로운 복도 오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받은 복이 어떤 복입니까? 어떤 복이 되었든 복을 흘려보내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복을 받았습니까? 그럼 기도의 복을 흘려보내십시오. 교회를 위하여 목회자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전도대상자나 선교사들을 위하여 그리고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재정적인 복을 받았습니까?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헌금하십시오. 선교사들을 후원하므로 물질의 복을 흘려보내십시오.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 당신이 받은 물질의 복을 흘려보내십시오. 하나님께서 신선한 우물물을 주실 것입니다. 달란트의 복을 받았습니까? 열심히 흘려보내십시오.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사용하십시오. 기회가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흘려보내시기 바랍니다. 그것도 사용하지 않는다면 썩고 말 것입니다. 열심히 사용한다면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신선한 우물물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이번 휴가를 단기선교에 헌신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받은 복음을 휴가 기간을 통해서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흘려보내기를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이 단기선교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헌신하셔서 자신 속에 있는 복음을 나눈다면, 여러분의 영혼의 우물은 신선한 우물물이 솟아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자기 속에 있는 복음을 나누지 않는다면 나를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하게 했던 그 복음이 빛을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4. 자신의 가치를 알라(3절).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면서부터는 아브라함의 존재 자체가 변화됩니다. 그의 존재는 어떤 부분에서는 하나님과 동일시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아브라함을 저주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저주하시는 것입니다. 그가 그런 존재로 변화된 것은 하나님과의 만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부터입니다.

  고후 5:17에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갈2:20에서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들은 주님과 하나 되어 주님 안에 거하는 복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실제로 자신이 복된 존재이며 자신은 주님과 동일시되는 엄청난 존재인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우리가 가진 영적 신분을 생각하면 너무나 쉽게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엄청난 존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신분 세 가지만 생각해 봅시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그분은 나를 살리기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신 사랑의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 안에 사는 존재들입니다. 세상적으로도 어떤 사람의 수준과 가치를 그가 만나는 사람들 그가 교제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우리의 아버지가 하나님이시라면 우리의 가지라 어느 정도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굉장한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성막에도 솔로몬의 성전에도 계시기에 적당하지 않을 만큼 신성하고 고귀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예수를 믿는 우리 속에 찾아오셔서 우리의 주인이 되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성전 삼고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만큼 우리를 존귀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별 볼일 없는 존재로 생각하신다면 우리 안에 찾아오시겠습니까? 만약 그분이 우리를 하찮은 존재로 생각하신다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그분의 성전 삼으시겠습니까? 우리는 그만큼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아시기 바랍니다.

  셋째, 우리는 주님의 신부입니다. 우리교회에 청년들은 좋은 신랑신부를 만나서 결혼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어떤 청년이 인격도 능력도 훌륭해서 누구에게든지 프로포즈를 하면 응할만하다고 생각해봅시다. 그 청년이 신부감을 고른다면 어떤 사람을 고를까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고를 것입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좀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고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만약 좀 부족한 사람을 아내로 선택했다고 생각해봅시다. 선택된 아가씨는 좀 부족하지만 그 때부터 존귀해지는 것입니다. 자신 때문이 아니라 자기를 선택한 청년 때문에 그 아가씨의 가치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눈은 우주에서 가장 높은 눈을 가지셨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자신의 신부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부족하다 할지라도 그분 때문에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가치 있는 존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자신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크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보시는 눈으로 우리 자신을 보십시오. 좀 능력이 부족해도 도덕적으로 완벽한 삶을 살지 못해도 주님이 나를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5. 자신을 보지 말라(4절).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과 거리가 먼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우상 장사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주신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가지 않고 자신만 바라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바다 위를 걷다가 파도를 바라봐서 바다에 빠졌던 베드로처럼 불신앙의 바다에 빠져서 결국은 보통 노인들처럼 죽음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환경이 보이고 현상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환경과 현상 앞에 서 있는 자신의 연약한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다릅니다. 환경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보이며, 현상을 극복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보입니다.

  믿음의 눈을 뜨십시오. 그리고 성경을 보십시오. 보통 사람은 항상 환경과 현상에 제한을 당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환경과 현상을 극복했습니다.
  출애굽에 관한 내용은 모두가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환경 앞에 무능력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환경 앞에 무능력한 자신들만 바라봤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무능력함만 바라볼 수 밖에 없었으나 하나님은 모세라는 지도자를 세우시고 자신들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환경과 현상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부모의 능력을 믿는 아이들은 부모를 믿기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없는 일들을 부탁하고 부모의 도움으로 자신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학교를 다니는 것도 학원을 다니는 것도 다 그런 것 아닙니까! 아이들이 자신들의 능력으로 어떻게 학교를 다니고 학원을 다니겠습니까? 안됩니다. 그러나 부모의 도움으로 다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그런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지만 주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구원도 우리의 능력으로 안 되지만 주님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처럼 구원 이후의 모든 생활도 우리의 능력이 아닌 주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에 집중하여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능력을 믿으시고 그분으로 할 수 있다고 말하십시오.  (마경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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