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창 39:19~23, 몬 1~3)

  • 잡초 잡초
  • 482
  • 0

첨부 1



  저는 춤을 잘 췄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입니다. 그 때 어린이날에 시 대표로 우리 학교 1학년 남녀 5명씩 짝을 지어 무용을 하는데 제가 전교에서 남자 대표로 뽑혀 무용을 했습니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이란 노래에 맞춰 무대 양쪽에서 남자 아이, 여자 아이 하나씩 달려 나오면서 짝을 맞춰 춤을 추었습니다. 그 때 제 짝이었던 여자 아이는 생각도 나지 않지만 무용을 지도하던 선생님의 말씀은 기억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텝이란 것입니다. 양쪽에서 무대로 나올 때에 동작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의 다리가 올라갈 때 같이 올라가고 내려올 때 같이 내려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의 춤은 그런 것도 없이 그냥 혼자서 흔들어대는 것이 많은 것 같아요. 레너드 수윗은 “다른 사람과의 만남은 모두 춤이다. 대인 관계의 어떤 부분은 사람들이 지닌 상이한 스텝과 리듬을 배우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대인관계는 그 사람에게 나를 맞추는 것입니다. 내가 그 사람처럼 낮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한 기본 동작입니다.

  바울은 춤을 잘 췄습니다. 그는 스스로 그리스도의 종을 자처했습니다. 당시의 노예란 신분은 형편없는 것이었지만 그는 종 된 것을 자랑했습니다.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만난 종의 신분을 가진 오네시모를 극진하게 동정하고 형제라고 합니다. 마침내 그를 다시 주인에게 돌려보낼 때에 편지를 써서 쥐어 보냅니다. 스스로가 종이 되었기 때문에 종인 오네시모를 이해하고 사랑한 것입니다.

  바울이 가지고 있던 종의 인격은 네 가지 분야에서 낮아져야 합니다. 머리, 가슴, 무릎 그리고 혀입니다. 1000년 전 달력이 서기 1000년으로 넘어갈 때 세계 인구는 약 2억 7500만 명이었습니다. 지금 이 세계의 인구는 60억이 넘습니다. 1900년 미국의 다수는 농업에 종사했고 두 번째 많은 직업은 하인이었습니다. 지금은 농사에 종사하는 사람은 2%에 못 미치며, 하인은 눈을 씻고 봐도 없습니다. 지금은 종의 신분을 가진 사람은 없지만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언제나 종이어야 합니다.

  빌레몬서는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낸 개인적인 편지입니다. 그러나 이 편지의 수신자가 빌레몬, 압비아, 아킵보 및 그 집 있는 교회라고 한 것으로 보아 엄밀하게 말하면 사신이 아닙니다. 빌레몬은 골로새인이었습니다. 그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3년을 머물면서 두란노서원에서 강의할 때 전도를 받은 신자라고 추측합니다. 이 편지의 목적은 빌레몬의 종이었던 오네시모가 주인의 돈을 훔쳐 도망 와서 바울을 통하여 예수를 믿게 되었으니 이제는 유익한 사람으로 용납해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다음에 자신의 돈으로 갚아주겠다는 것입니다.

  이 편지는 개인적인 것이어서 성경으로 채택될 때 문제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영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어서 채택되었습니다. 죄의 종인 인간이 예수님의 중보로 하나님께 용납이 되고 예수님은 친히 우리의 빚을 대신 갚아 주셨습니다. 이번 여름에는 빌레몬서를 강해하려고 합니다. 짧은 편지지만 읽을 때마다 저는 많은 은혜와 감동을 받습니다. 너무 좋아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이번 여름에 빌레몬서가 우리의 청량제가 되고 깊은 은혜가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편지의 서두에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된 바울”이라고 자기를 소개합니다. 일반적으로 자기소개서는 좋은 말, 자랑하는 말을 씁니다. 그런데 바울은 ‘갇힌 자’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갇힌 자’가 바울의 자기소개서에 으뜸인 까닭을 들으시고 깊은 은혜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바울은 예수님을 위하여 갇힌 자입니다.

  바울의 서신 가운데 옥중서신이라 불리는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가 있습니다. 이 편지들은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쓴 편지들입니다. 바울이 갇힌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 때문입니다.
  3차 전도여행을 끝내고 난 바울은 예루살렘에 기근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바울은 이방교회의 봉헌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오는 길에 체포되어 가이샤라 감옥에 2년을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로마 황제에게 호소하여 로마까지 가게 되고 로마 감옥에 갇힙니다. 이 때 쓴 편지가 빌레몬서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의 고소 때문에 감옥에 갇혔습니다. 로마인의 핍박 때문에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이나 로마인 때문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가 갇힌 것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만 아니었다면 바울이 감옥에 갇힐 이유가 없습니다.

  요셉은 창세기 45:8에서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니라”고 합니다. 그는 팔리고, 종살이하고, 감옥살이하고 억울한 일을 많이 팔려 애굽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그가 형님들을 만났을 때에 형님들 때문에 내가 이곳까지 팔려왔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라고 합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 예수의 죄수”라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 앞에서 죄인인 것을 시인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죄수가 된 것은 영광이지요! 모세는 히브리서 11:26에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수모를 당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 것을 의미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매를 맞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하지 말라고 하는 압력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5:41에는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2:10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갇히고, 매를 맞고, 죽을 뻔하였지만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갇힌 것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랑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일이니까 가능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일이라면 갇힌 것도 자랑입니다. 고난당하는 것도 기쁨입니다.

둘째, 바울은 예수님께 갇힌 자입니다.

  바울은 육적으로는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이었습니다. 영적으로는 그리스도 예수께 갇힌 자이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거기에서 바울을 사로잡았습니다. 이 때 바울은 예수님께 갇힌 자가 되어 그 후로는 예수님 안에서 순간도 나오지 못하고 그 안에 살았습니다.
  그리스도에게 잡혀 그 안에 살고 있는 자는 안정하고 평안합니다. 예수님께 갇히면 예수님이 알아서 모든 것을 챙겨주십니다. 감옥에 갇히는 일이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 안에서 필요한 것은 알아서 다 공급합니다. 내가 걱정할 일 아닙니다. 옷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밥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안에 있는 동안에는 모든 필요를 다 충족시켜 줍니다. 거기서 빨리 나갈 걱정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는 그 걱정도 필요 없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갇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배당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배당하여 “나는 죽었소”하고 사는 게 얼마나 편한데요? 사랑하는 것(love)과 사는 것(live)은 철자 하나 차이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는 그 사람 안에 갇혀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 안에 갇혀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사는 것은 예수님 안에 갇혀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디모데후서 2:26에는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라고 합니다.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야 하나님께 사로잡혀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갇혀 살려면 세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하나님의 장중”이란 표현을 씁니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것은 가장 편안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루터는 “갇힌 자만이 자유롭게 될 것이다. 가난한 자만이 부자가 될 것이다. 약한 자만이 강하게 될 것이다. 겸손한 자만이 높임을 받을 것이다. 빈 손만이 채움을 받을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만이 무언가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갇힌 자만이 자유롭다는 말을 들으면 빌립보서가 생각이 납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서 편지를 씁니다. 갇힌 바울이 갇히지 않은 밖의 성도들에게 감사하라, 기뻐하라고 권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가지고 있는 갇힌 자의 자유였습니다. 갇힌 자의 기쁨입니다. 이런 자유와 기쁨이 예수님 안에 갇혀 있는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웨인 다이어는 이 세상에는 오리 형과 독수리 형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리는 하루 종일 하는 일없이 꽥꽥거리며 온갖 시끄러운 소리만을 냅니다. 반면 독수리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며 사람들 위로 높이 날아다닙니다. 고객 중심의 조직에서는 독수리 형이 번성하고, 사장의 만족과 맹종만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오리형이 증가합니다.
  세상의 지배를 받고 세상에 갇힌 자들은 말이 많고 시끄럽고 실천은 적고 결과 없이 텅 빈 마음으로 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지배를 받고 예수님께 갇힌 자들은 말이 적고, 자기 변명이 없고, 실천하며, 열매 있는 삶을 삽니다.

  세상에 갇힌 세상의 종이 아니라 예수님께 갇힌 자가 되어 예수님을 위하여 일하는 예수님의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