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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의 마음으로 중보기도를 하라 (눅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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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1:5)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눅 11:6)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눅 11:7)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눅 11: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눅 11: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눅 11: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눅 11: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눅 11: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聖靈)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밤중에 떡을 구하는 나그네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중동지방에서는 낮의 열기(熱氣)를 피해 밤에 여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날 여행 중의 굶주린 친구가 밤에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집에 대접할 음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당시의 관습은 손님에게 소홀히 하는 것을 손님에 대한 모욕으로 보았습니다. 자신은 궁할지라도 손님접대만큼은 후하게 했던 겁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가난한 주인은 넉넉하게 사는 친구 집에 가서 떡을 구했습니다.

  이미 잠자리에 든 친구는 너무 귀찮았습니다. 더구나 당시는 온 가족이 한 방에서 잠을 잤기 때문에 한 사람이 일어나면 모두 깨게 되므로 그냥 무시하고 자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간절히 대문을 두드리며, 간청하지 어쩔 수 없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친구의 요구를 들어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형제와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는, 중보기도에 대한 놀라운 교훈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중보기도의 은혜를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1. 여행 중에 찾아온 친구는 영육 간에 굶주리고 있는 우리의 이웃을 가리킵니다.
  우리 인생(人生)은 여행자와 같습니다. 성경은 인생을 나그네와 행인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벧전 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우리 모두 지금 고달픈 나그네와 행인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야곱이 애굽에 가서 바로왕을 만났을 때 뭐라고 지난 세월을 고백했습니까? 

(창 47:9) 내 나그네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나그네의 길은 험한 길입니다. 위험한 길도 있습니다. 배도 곺으고 목도 마릅니다. 그래서 굶주린 친구가 떡을 구하러 왔던 겁니다. 인생은 그야말로 모두 길 잃은 나그네입니다. 

  # 나는 길 잃은 나그네였네 죄 중에 헤매이는 데

  사랑의 왕 내 목자 예수- 나를 집으로 인도하네

  한번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뭔가 여러분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가파른 골짜기에서 강도를 만나 옷을 벗기고 피 흘리며 신음하고 있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나그네 여행길에 고통 당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영육 간에 굶주리고 있으면서 먹을 양식을 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 때문에 따뜻한 위로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육신의 아픔 때문에 고통 하는 형제도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여행길에 여러분을 찾아온 손님들입니다. 우리가 이들을 돌봐주어야 합니다. 필요를 채워주어야 합니다. 먹을 것도 주고 목마른 자에게는 마시게 해야합니다. 이들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그냥 못 본체하고 지나쳐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강도 만난 자의 참 이웃이 되어주기를 원하십니다(눅 10:36, 37).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여기 갑자기 밤중에 손님을 맞은 가난한 친구의 입장이 우리의 처지와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2. 우리는 가난한 주인처럼 힘이 없고 무능하나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가난한 주인의 처지가 참 딱합니다. 한밤중에 손님이 찾아와서 먹을 것을 구했으나 줄 것이 없습니다. 마음은 간절한데 손이 비었습니다. 귀한 손님이 왔는데 쌀독에 쌀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주인은 탄식하였습니다. 

(눅 11:6)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이것이 우리의 솔직한 고백이 아닐까요? 나그네 인생길에 지치고 상처받은 이들을 보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너무 가난하고 너무 무력(無力)하고 무능(無能)할 뿐입니다. 

  영혼이 굶주린 사람을 어찌해야 합니까? 육신이 병든 사람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합니까? 시험과 환란 중에 있는 이웃들, 물질시험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 여러 가지 갈등 때문에 고민하며 고통 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우리가 무슨 수로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렇다고 모른 체 하면 됩니까? 안됩니다. 우리를 찾아온 손님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들을 돕기를 기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보고 그들을 책임지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세상 속에서의 교회의 사명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책임입니다. 교회는 굶주리는 이웃들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합니다. 배 곺아 찾아온 사람을 마땅히 먹여야합니다. 문제를 가지고 온 사람에게 답을 주어야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교회를 세우신 목적입니다.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저들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때 저들의 육신이 허기져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여기는 빈들이고 날도 이미 저물었으니 빨리 무리들을 보내어 각자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십시오’ 일종의 책임회피를 하는 거지요. 어쩌면 평소에 우리가 늘 써먹는 수법인지 모릅니다. 속으로 ‘알아서 하겠지!’ 이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마 14:16)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다같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예수님은 우리보고 책임지라는 겁니다.

  요한복음 2장에 보면 가나 혼인집에 손님으로 갔던 마리아가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때 마리아는 책임지는 자세를 가졌습니다. 주인의식을 가진 겁니다. 그래서 즉시 이 문제를 예수님께 가져갔습니다. 

(요 2: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결국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놀라운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문제에 대하여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섬길 청지기로 부름 받은 자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주인입니다. 주인이 책임지고 해결하려고 힘써야합니다.

  여기 한 밤중에 배 곺은 나그네를 맞은 가난한 주인은 그런 책임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이 문제를 처리했습니까? 다른 방법 없습니다. 떡을 구하는 나그네의 문제를 가지고 부자집 주인을 찾아간 겁니다.

3. 부자집 주인은 전능하시고 모든 것에 부요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는 전능(全能)하시고 모든 것에 풍요로우신 분임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 가면 무슨 문제든지 해결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아버지를 멀리 떠나 방탕하며 살다가 거지가 된 둘째아들이 뭐라고 탄식했습니까? 

(눅 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하나님 아버지 집에는 양식도 많고 품꾼도 많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주리게 된 겁니다. 흉년을 만나 굶주리는 인생, 거지인생을 사는 겁니다.

  전능하시고 모든 것에 부요하신 하나님께 나아오십시오. 하나님은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인생의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실 때에 무엇인들 못하시겠습니까? 비록 내 수중에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모든 것에 부요하신 하나님을 찾아가면 하나님께서 넉넉히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눅 18:27).

  육신의 부모는 마음은 있어도 형편이 안되면 자녀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부요하신 분이므로 마음만 먹으면 못하시는 것이 없습니다(마 7:11). 

  그래서 가난한 주인은 부자집 주인을 찾아가서 떡을 구하였습니다(눅 11:5). 우리도 여기 가난한 주인처럼 하나님께 나아가 구합시다. 간절하게 강청하여 구하시기 바랍니다. 강청하는 기도가 무엇입니까?

4. 강청하는 기도는 사랑의 마음을 쏟아 붓고 하는 기도입니다.

  여기 가난한 주인은 부자집에 찾아가서 강청했습니다. ‘내 벗이 여행 중에 찾아왔는데 내게 먹일 것이 없으니 좀 달라.’(눅 11:5, 6). 그랬더니 안에서 뭐라고 합니까? ‘나를 괴롭히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다.’고 거절했습니다(눅 11:7).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거듭 거듭 문을 두드리며 강청했습니다. 결국에 가서 부자집 주인이 항복하고 잠자리에서 일어나 떡을 내주었습니다. 강청기도에 손을 든 겁니다. 

(눅 11: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여러분도 강청하는 기도를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여기 ‘강청(强請)’이란 말은 원어에 ‘아나이데이아’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스러움’을 뜻합니다. 정말 뻔뻔스럽게 기도하는 겁니다. 뻔뻔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오밤중에 친구집에 찾아가 잠자는 사람보고 떡 내놓으라 소리칠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기도를 할 때 이런 거룩한 뻔뻔스러움이 있어야합니다. 

  그러면 이런 뻔뻔스러운 강청기도가 어떻게 가능했겠습니까? 한마디로 형제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배곺은 형제를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 때문에 강청기도를 한 겁니다. 자기 자신이 먹기 위해서라면 이렇게 강청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보기도의 참된 정신을 알 수 있습니다.

  중보기도란 ‘다른 사람의 문제를 내가 사랑으로 짊어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는 기도이다.’ 형제의 문제를 끌어안고 사랑을 쏟아 붓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형제에 대한 사랑이 이런 기도를 만들어 낸 겁니다.

  우리 대신, 우리가 져야할 십자가를 끌어안고 피눈물을 흘리며 중보 기도하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형제의 문제를 끌어안고 기도를 하는 겁니다.   

  문제는 사랑의 마음을 갖는 겁니다. 형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어야합니다.

(롬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

(다같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으소서!’

  금번 전교인 수련회 주제로 정하면 좋겠습니다.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부으소서!’ 그러면 사랑을 쏟아 붓는 중보기도가 가능합니다.

  기도의 대가인 조지 물러가 일생을 통하여 5만 번 기도응답을 받았답니다. 하루에 적어도 3번씩 50년 간 기도응답을 받은 셈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조지물러는 고아만 보면 ‘저 애는 내 책임이다’. 이런 마음을 가졌습니다. 고아가 자기 자식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고아의 아버지가 된 겁니다.

  그는 그 자식들을 하루 세끼 굶기지 않기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정말 사랑을 쏟아 기도했습니다. 그런 사랑의 마음을 쏟은 기도였기에 하나님께서 들어주셔서 그 많은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겁니다. 

  우리도 형제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강청하는 기도를 합시다. 놀라운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5. 하나님께서는 최상의 기도응답으로 성령(聖靈)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기도할 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불완전한 육신의 부모도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지 않습니다. 알을 달라고 하는데 알 대신 전갈을 주지 않습니다(눅 11:11-12). 여러분도 똑같은 마음일겁니다.

  하물며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좋은 것을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구한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가장 꼭 주시고 싶어하는 선물이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聖靈)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바로 성령(聖靈)입니다. 성령만큼 좋은 것은 없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자신을 주시는 겁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좋은 것’이라고 표현했는데,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성령’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마 7:11). 

  성령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왜 성령이 가장 좋은 겁니까?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을 받은 자는 이 세상에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을 다 소유한 겁니다.

  또한 ‘성령은 기도응답의 보증서’입니다. 보증서를 갖고 있으면 현물은 받은 것이나 똑같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성령의 감동이 오면 응답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응답의 보증으로 성령을 주신 겁니다(고후 5:5).

(고후 1: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그리고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온전한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기도는 반드시 응답될 수밖에 없습니다.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 

  성령을 받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우선 무엇보다도 성령을 주시고 싶어하십니다. 성령 안에 모든 좋은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약 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독생자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서 그 외에 무엇을 아까워하시겠습니까? 그 외 것도 응답해 주실 줄 믿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가 우리 주변에 있는 형제와 이웃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저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저들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우리는 사랑의 통로, 축복의 통로, 생명의 통로가 되는 겁니다.

  지난주일 말씀처럼 길 잃은 양을 찾기 위하여, 죄를 범하고 있는 형제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합심하여 중보기도를 드립시다. 영적으로 ‘매고 푸는 기도’를 합시다. 주님이 저들을 구해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영육 간에 굶주리고 있는 형제들을 위하여 ‘사랑의 마음으로 중보기도’를 합시다. 목장에서, 기관에서 강청하여 합심 중보기도를 합시다.

  행3장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매일 구걸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는 못 본체하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닙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과 부은 바 되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였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하면 됩니다. 

(행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이것은 베드로의 경건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 이름의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히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여러분도 예수 이름의 능력을 행사하십시오. 놀라운 응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찬송가 484장을 부릅니다. 

1.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슬픈 마음 있을 때에라도 주 예수께 아뢰라

2.  눈물나며 깊은 한숨 쉴 때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은밀한 죄 네게 있더라도 주 예수께 아뢰라

3.  괴로움과 두렴 있을 때에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주 예수께 아뢰라

4.  죽음 앞에 겁을 내는 자여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하늘나라 바라보는 자여 주 예수께 아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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