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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싸우는 날에 (삼상 13:15b-23, 엡 6:10-19, 막 9:2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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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택사스 인 갑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10만 에이커의 땅과 수천마리의 소와 유전(油田), 방이 29개나 있는 거대한 저택과 그리고 아름다운 딸이 있었습니다. 이 택사스 인 갑부가 그야말로 택사스 식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딸과 결혼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수많은 청년들을 그 잔치에 초대했습니다.

한창 잔치가 무르익어갈 즈음 그는 “여러분, 할 말이 있으니 모두 풀(pool)장으로 나와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올림픽 경기장 규모의 그 풀장에는 그 갑부가 미리 악어, 뱀 등을 잔뜩 집어넣어놓았기 때문에 그것들이 득실거리며 풀장을 휘젓고 있었습니다. 청년들을 모아놓은 갑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제일 먼저 이 풀장을 가로질러 저 건너편까지 헤엄쳐 가는 사람에게는 3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자격을 주겠소. 100만 달러의 돈이든지, 천 에이커의 땅이든지, 아니면 결혼식 날 내 딸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것입니다.” 택사스 인 갑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저쪽에서 한 청년이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의 수영속도는 가히 올림픽 기록 수준이었습니다.

마침내 건너편에 도착한 청년에게 택사스 인 갑부가 물었습니다. “청년은 무엇을 원하는가? 100만 달러의 돈인가?” 청년은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천 에이커의 땅인가?” 청년은 역시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결혼식 날 내 딸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가는 것을 원하는구나.” 그런데 놀랍게도 청년의 대답은 이번에도 “아닙니다”였습니다. 택사스 인 부자가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청년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르신, 제가 원하는 것은 도대체 내 등을 떠밀어 나를 물에 빠지게 한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고 싶습니다.”

이 청년은 누군가 자기를 물에 떠밀어 자칫하면 악어나 뱀에게 물려 죽을 뻔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찾아서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복수 일념에 다른 것을 생각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이 헛된 생각 때문에 그는 100만 달러의 돈도, 천 에이커의 땅도, 갑부의 사위가 되는 행운도 놓치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어쩌면 오늘 수많은 사람들이, 아니 우리 자신들도 이 청년 같은 어리석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정말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 정말 어떤 인생을 택해야하는지 알지 못해서 실패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그들은 자신들을 선민으로 택하신 하나님, 애굽의 풀무 불같은 고난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 가나안 땅을 자신들에게 유업으로 주신 하나님, 역사적으로 고난의 때마다 건져주신 하나님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는 일이 저 이방인들이 섬기는 허망한 우상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다른 나라들같이 되어야 하겠다”고 하면서 왕을 세워달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예레미아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질책한 말씀도 그랬습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것이 악이요 이것이 고통인줄 알라고 했습니다.

2. 이미 우리가 살펴 본대로 사울도 이런 백성들의 여망에 따라 왕이 되어서인지 얼마가지 못해서 궤도에서 이탈하였습니다. 그 결과 자기도 망하고 나라도 쑥대밭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사무엘서 본문을 보면 사울 당시 이스라엘이 처한 취약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울 왕은 즉위 2년에 블레셋과 전쟁을 하게 되었는데 적군인 블레셋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힘에 있어서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1) 먼저 지리적 위치에 있어서 이스라엘은 블레셋에 비하여 매우 불리하였습니다. 블레셋은 전략상 중요하다고 하는 지점을 점령하고 있었고 그 중요한 곳마다 수비대를 주둔시켜 놓고 자기들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나 기습할 수 있었습니다.

(2) 블레셋은 군사력에 있어서도 이스라엘에 비하여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습니다. 13:5에 보면 블레셋의 군사력은 병거가 3만, 마병이 6천에다 백성은 해변의 모래같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이에 비하여 이스라엘의 상비군은 겨우 3천인데 그것도 도망병이 생겨서 간신히 6백 명의 군사만 남아있었습니다. 중과부적입니다.

(3) 블레셋은 고도로 발달한 철 무기를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최신형 무기를 개발해서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겨우 청동기 문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전쟁 무기라야 활과 투석기 정도였습니다. 미국의 고도로 발달 무기에 비하여 상대도 되지 않았던 이라크와도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을 한다면 백번 싸우면 백번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것이 이스라엘 군인들을 잔뜩 위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스라엘에게는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방패와 무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시인들이 끊임없이 읊기를 “여호와는 산성이시요, 방패요, 활이요, 칼이시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본 따서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도 그의 유명한 찬송가에서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신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원래부터 자기들의 힘으로 승리해 나온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면, 출애굽 때 이스라엘이 어떻게 애굽과 대항해서 이기고 그 압제를 벗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실 때 천하의 대제국 애굽도 그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이스라엘 역사에 항상 있어온 일입니다.

오늘 22절에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바야흐로 싸우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게 취약적 문제가 있었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실패나 승리는 여기서 좌우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모시고 있느냐 모시고 있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여호수아가 군인들을 이끌고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는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거기서 모세는 전쟁을 위하여 손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모세의 손이 올라갈 때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승리했습니다. 반대로 모세가 피곤하여 그 손이 내려오게 되면 적군인 아말렉이 승리했습니다. 전쟁의 승패가 군인들이나 무기에 의하여 좌우된 것이 아니라 산꼭대기에서 기도하는 모세의 손에 의하여 좌우되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현상입니다. 그래서 아론과 훌이 모세의 기도 협력자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큰 반석을 가져와서 모세로 하여금 앉게 했습니다. 그리고 양쪽에서 모세의 손을 부축하여 해가 지도록 손이 내려오지 않게 했습니다. 그 결과 여호수아의 군대가 아말렉을 진멸하고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땅에서 두 사람이 합심하여 기도하면 하늘에서 응답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 개인이나, 우리 교회가 처한 현실이 어떠하든지 그 현실에 절대적 비중을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을 해결하시고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히12:2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우리 복음 성가에서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 이 믿음으로 승리하고 성취하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여호수아 같이 일선에서 수고하는 일꾼이 필요하고, 여호수아와 함께 싸움터에 나가는 십자군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모세와 함께 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손을 들고, 손을 붙잡아 주면서 기도하는 중보 기도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이런 우리에게 놀라운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철연장이나 철 무기를 제대로 가추고 있지 못했다는 것은 적에게 빌미와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이런 취약점을 알기 때문에 블레셋은 틈만 있으면 이스라엘을 노렸습니다. 컴퓨터를 예로 든다면, 내가 아무리 컴퓨터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뛰어난다고 해도 옛날에 사용하던 286이나 386을 가지고서야 어떻게 첨단기기와 경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우리 교회가 새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엄청난 비전을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성전 건축하는 일 때문에 기도는 물론 마음고생도 많고, 여러 가지 수고도 해야 하고, 많은 제약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시편의 말씀처럼 “울면서 씨를 뿌리는 사람은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두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하나님은 우리를 구비시켜 주십니다. 무장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엄청난 일을 준비하고 계획하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께서 어떻게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셨습니까?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앞에 있는 기쁨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부활과 죄인의 구원과 천국의 승리가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도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신 이 기쁨, 이 소망, 이 상급을 인하여 오늘의 힘든 것을 참으시기 바랍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 교회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진정한 싸움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과의 싸움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영적인 싸움입니다. 사탄과의 싸움입니다. 이 싸움은 돈으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지식으로도 승리할 수 없습니다. 권세로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라”고 했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도 물론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야 합니다.

엡6:에 나오는 전신갑주를 봅시다.

(1)진리의 허리띠를 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진리이십니다. 우리를 지켜 주시는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2)의의 가슴막이로 가슴을 막으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 받은 확신입니다. 이 확신이 우리 신앙의 생명을 지켜줍니다. (3)발에는 평화의 복음의 신을 신어라고 했습니다. 어디가든지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4)믿음의 방패를 손에 가지라고 했습니다. 적이 쏘는 불화살을 막아내는데 방패역할을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5)구원 투구를 머리에 쓰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어 구원받았다고 하는 이 확신이야말로 승리의 원동력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도 너희를 내 손에서 빼앗아 갈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6)이제 가장 강한 무기를 권합니다. 그것은 직접 적과 싸워 넘어뜨리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넘어뜨리고 나서 달려가 그 칼을 빼서 목을 잘랐습니다. 여기 결정적인 승리가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무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광야 시험 때 이 말씀으로 마귀를 넘어뜨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강력한 무기, 필승의 무기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 위에 한 가지 당부가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때 우리는 승리자가 됩니다. 우리 성도들이 기도하는 것만큼 우리 영역이 확장되어질 줄 믿습니다. 이것이 이 마지막 때 “싸우는 날”에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힘써 해야 할 일인 줄 믿습니다. (김오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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