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맥추감사절] 아무리 배고파도 종자씨는 먹지 않습니다 (대하 20:20-..

  • 잡초 잡초
  • 509
  • 0

첨부 1


어떤 유람선이 난파를 당하여 섬에 표류했답니다. 걱정이 태산같은 사람들은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섬의 이곳 저곳을 탐험하던 중 예전에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을 발견하였답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밭도 꽤 넓은 것을 찾았고, 곡물의 씨앗도 발견하였답니다. 종자씨입니다. 이제 살았다고 환호를 지르며 부지런히 밭을 갈기 시작을 했답니다. 그런데 밭을 갈다 보니 밭의 이곳 저곳에서 금덩어리가 나오기 시작했답니다. 사람들은 너무도 기뻐 금덩어리 깨는 재미로 시간가는 줄 몰랐답니다. 사람들은 밭가는 일 대신 금덩어리 찾는 일에 매달리게 되었답니다. 급한 김에 어렵게 찾아낸 종자씨 마저 먹어버렸답니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농부는 3년 흉년이 든다하여도 종자씨만큼은 먹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종자씨가 있어야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 어릴 때 자라신 분들은 아버님이 종자씨를 귀중하게 여기신 것을 보고 자랐을 것입니다. 옛날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에는 음력 4-5월 경이 되면 먹을 것이 없어 참 힘들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묵은 쌀은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추수 때가 되지 않아 가난한 농가는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배가 고파도 종자씨 만큼은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종자씨만 있으면 언젠가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 생활에서도 종자씨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존재, 관계, 사역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떤 존재가 되는냐? 하나님과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사는냐? 일평생 어떤 사역을 하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이시간 오늘 본문을 통해 사역에 있어서 종자씨, 존재에 있어서 종자씨, 관계에 있어서 종자씨가 무엇인지 살펴 보며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기도는 승리하기 위한 사역의 종자씨와 같습니다./사역

사람은 누구나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성공하려면 여러 가지 요인이 필요합니다. 동아대 학생생활연구소에 따르면 대학생들은 성공 요인으로 가장 큰 것은 `재력'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 `인간관계', `실력', `노력', `학벌', `권력', `가문 및 배경' 등의 순으로 꼽았습니다. 우리 신앙인이 성공하기 위해서 종자씨와 같이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머니 머니 해도 머니입니까? 물론 이 모든 것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없다고 해도 꼭 한 가지 있으면 됩니다. 그것은 기도입니다.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지 못하고 낙심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는 돈이 없어도 어떤 일을 하게 합니다. 기도는 학벌이 없어도, 실력이 없어도 우리에게 날개를 달아 줍니다. 우리에게 비전을 주고 희망을 주고 힘을 줍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유다의 4대왕 여호사밧 때에도 참 힘겨운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따르는 왕이었습니다. 종교 개혁 정책을 수행하여 우상을 제거했습니다(대하17:3). 레위인을 통해 율법을 가르치기에 힘을 쏟았습니다(대하17:7,9). 정치를 잘 하였습니다. 오랫동안 적대 관계에 있던 북쪽 이스라엘과 화해했습니다.(대하18:1-19:3) 사법 개혁을 하였습니다. 사법과 소송 절차는 모세 오경으로 규정하였습니다.(대하19:5-11) 과세와 병역을 부과하기 위해 재판 제도 학대하였습니다. 대 제사장이 종교 재판소의 수석 재판장이 되게 하였습니다(대하19:11) 물론 자기 아들을 아합의 딸과 정략 결혼을 시켜(대하18:1) 선지자 예후 책망을 받기도 했고 이 동맹으로 무익한 전쟁 두 번이나 참전해야 하는 고통도(왕상22 대하 18 왕하3) 겪었지만 선정을 베푼 왕입니다. 이 정도 되면 나라가 평안해지고 잘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위기가 찾아 왔습니다.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 몇 마온 사람들이 연합군을 조성해서 여호사밧 왕을 치기 위해 왔습니다(1). 전쟁만큼 큰 위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승리해도 패전해도 심각한 피해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생명이 위협을 받습니다. 이제까지 모은 재산을 다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애지중지 기른 자식들이 한 순간 운명을 달리할 수 있습니다. 유다 나라는 그 큰 무리를 대적할 능력이 없었습니다(12). 능력도 없고 작전 계획도 없습니다. 군인도 비교가 안됩니다. 뛰어난 무기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때 우리 신앙인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신앙의 사람 여호사밧왕은 어떻게 했는가 보십시오. 3,4절을 읽어보십시오. 온유다 백성이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아이들까지 온 가족이 전심전력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사역의 종자씨와 같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다 해도 기도의 종자씨가 남아 있으면 언젠가 주렁주렁 사역의 열매가 맺을 수 있습니다. 올해 가뭄이 있고 내년에 가뭄이 있으면 내 후년에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21:22)"고 하셨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
적당히 하면 안됩니다. 이들은 온 가족이 금식하며 전심전력을 다하여 부르짖었습니다. 얼마나 절박하겠습니까? 한나가 아이를 잉태하지 못하여 인생을 절망적으로 살아갔을 때 실패한 인생 같은 자신의 삶을 승리의 삶으로 돌이키기 위해 술취한 여인처럼 기도했습니다. 모세도 위기를 당할 때마다 기도로 문제를 풀어갔습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종자씨와 같은 것입니다. 기도하면 언젠가는 응답을 해 주십니다. 성공적인 모세의 삶, 승리하는 다니엘의 삶, 세계 복음화를 꿈꾸고 실현해 갔던 바울의 삶 속에는 기도의 종자씨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기도하는 유다사람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해 주었습니까? 9절을 보십시오. "환난 가운데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서 싸워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요즈음 참 생활하기 힘드신 분들 있을 것입니다. 식구의 질병으로 안타까워하시는 분을 봅니다. 생각할 때마다 저 자신도 어찌할 수 없어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한 알에 낳을 수 있는 약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무능력을 고백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가정 경제로 어려운 가정들이 있습니다. 신앙 생활도 잘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노력하는데 일이 잘 풀리지 않습니다. 생각하면 어떻게 도와 줄 길이 없습니다. 제가 돈 몇 십억 있으면 좀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능력이 없어 참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와 우리 성도님을 위해 주신 것이 있습니다. 기도입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금식하며 온 가족이 온 교회가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기도하면 승리케 해주십니다. "(출17: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 줍니다. "(민11:2)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생명을 연장시켜 줍니다. "(왕하20 : 5-6) 너는 돌아가서‥‥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겠고 네가 네 날을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생사를 결정합니다. "(창20:7)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 병을 고쳐 주십니다. "(약5 : 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눈을 열어 줍니다.(왕하6: 17-18) 엘리야는 비를 오게하도 오지 아니하게 하였습니다.(약5:17-18) 귀신을 내어 쫓게 하였습니다. 사도들은 기도를 통해 교회를 부흥시켰습니다. "(행2 : 42-47)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하나님을 찬미하며‥‥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기도할 때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맥추 감사절입니다. 추수한 것이 없다고 어렵다고 원망하며 좌절하지 맙시다. 어려울 때일수록 기도해야 합니다. 전심전력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기도는 종자씨가 되어 우리에게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 줄 것입니다.

2. 믿음은 삶의 형통을 위한 존재의 종자씨와 같습니다./존재

기도하였는데도 응답받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 이유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주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기 때문에 응답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잠28 : 9)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②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하15 : 2)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 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③ 하나님을 진노케 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3 : 26) 여호와께서 너희의 연고로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마음의 완악으로(슥7 : 12-13) 사랑이 없음으로(잠21: 13), 마음에 죄악을 품음으로 마음이 완악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시66 : 18)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사59 : 2)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④ 동기가 잘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약4 :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⑤ 타인의 죄를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6: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⑥ 의심을 갖고 구했기 때문입니다. "(약1:6-7)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⑦ 믿음이 적기 때문입니다.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마 17:20)

한 마디로 무엇을 말씀하는 것이니까? 존재의 문제입니다. 내가 어떤 존재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금을 담을 만한 그릇이 되느냐 못되느냐의 문제입니다. 기도 응답을 맏을 만한 존재이냐 못되느냐는 문제입니다. 자식이 칼을 달라고 하면 다 주겠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포도 나무요 우리는 가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농부라고 말합니다. 포도 나무 가지에 포도가 많이 열리려면 우선 우리가 건강한 포도나무 가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느냐? 사탄의 종이 되느냐?에 따라 인생은 엄청한 차이가 납니다. 신앙의 사람 여호사밧은 기도를 드린 후 위기 상황 속에서 백성들을 향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2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를 신뢰하라고 합니다.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떤 존재가 되느냐의 문제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가진 사람은 아버지를 신뢰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니면 신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것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은 이 부분에서 실패했습니다. 홍해가 다가 와도 하나님을 믿으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못합니다. 불평합니다. 원망합니다. 먹을 물이 없으면, 먹을 양식이 없으면, 쓴물이 나면 계속 원망합니다. 정탐꾼이 정탐하고 와서 가나안에 대하여 보고해도 원망하며 좌절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너무 크게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여호사밧을 향하여 하나님의 어떤 것을 신뢰하라는 말입니까?
선지자의 어떤 것을 신뢰하라는 말입니까? 15절을 보십시오. 야하시엘이 말합니다. 이 큰 무리를 인하여 두려워 말라고 합니다. 놀라지 말라고 합니다. 이 전쟁에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레위 사람으로 하나님의 신에 크게 감동된 사람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때 그 말을 듣고 여호사밧은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께 경배하고 백성들을 향하여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고 말씀합니다.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 구원해주시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견고해 질 것을 말씀합니다. 형통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선지자를 신뢰하는 것은 형통을 위한 종자씨와 같다는 말입니다. 이 신뢰를 가지고 살면 인생길에 있어 형통의 열매가 맺힌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사 60:22)"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

그러기 때문에 12절을 보십시오. 백성들에게 말하기 전에 자신이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오직 주만 바라보겠다고 합니다. 철저히 하나님만 신뢰하는 것입니다.

신뢰, 끝까지 변함없이 믿고 따르는 것은 형통을 위한 종자씨와 같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 어려움과 고난이 있었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따라갑니다. 결국 형통을 거두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모세를 보십시오. 다니엘을 보십시오. 바울을 보십시오. 어느 누구 하나 인생길이 그렇게 순탄하였습니까? 우리 인생은 순탄하지 않습니다. 끝없는 유혹이 다가오고 끝없는 환난과 도전이 다가 옵니다. 그럴 때 우리가 신뢰하고 따르는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믿고 나아가면 결국 형통을 거두는 것입니다. 잠시 고난을 당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병들었을 때 히스기야의 고백을 보십시오. "주여 사람의 사는 것이 이에 있고 내 심령의 생명도 온전히 거기 있사오니 원컨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 주옵소서 (사 38:16)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사 38:17)"
심각한 병으로 고생하는 예레미야의 고백을 보십시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애 3:33)"

하나님은 오늘날도 우리를 향하여 말씀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렘 29:11)"
"네가 만일 여호와께서 모세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든 율례와 규례를 삼가 행하면 형통하리니 강하고 담대하여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지어다 (대상 22:13)"

3. 감사는 풍요를 위한 관계의 종자씨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 가지가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포도 나무에 붙어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 중에는 많은 요소들이 필요하겠지만 그 중 종자씨와 같은 것이 감사입니다. 우리가 입술로 감사를 표현하는 것, 우리가 삶으로 감사를 실천하는 것, 십일조하는 것, 헌금하는 것 다 감사의 종자씨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다 헛된 것이 아닙니다. 때가 되면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감사는 헛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감사하는 자 좋은 것으로 받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신뢰하라고 강조한 여호사밧은 위기 앞에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지금 적들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따르고 있지만 이 전쟁은 비교가 되지 않는 전쟁입니다. 수적으로 감당할 수 없고 전략이나 전술면에서도 뒤떨어집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나아갔지만 승리를 보장할 수 없는 전쟁입니다. 그 때 무엇을 합니까? 성가대를 세웁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성가대를 세우고 무엇을 합니까? 찬양하게 합니다. 찬양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이기게 해 주십시오." 이런 찬양입니까?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합니다. 찬양을 통하여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작전 계획을 세워 총력전을 해도 부족할 때인데 감사찬송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적을 일으키는 신앙입니다. 감사의 씨를 뿌리면 감사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아직 전쟁은 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미래의 일은 아직 다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미래의 일을 이루게 하는데 감사는 종자씨와 같습니다. 감사하면 감사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감사하면 감사한 만큼 풍족함을 거두는 것입니다. 마음에 불평을 심지 말고 감사를 심어 보시시오. 가정에 감사의 조건들이 주렁주렁 열리게 됩니다. 감사할 조건이 있어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하다 보면 감사의 조건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기도한대로 신뢰한 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감사한 것입니다.

감사하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22절을 보십시오. 신비한 일이 일어납니다.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피차 살육합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재물을 취합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즐거움이 찾아 옵니다. 29절을 보십시오. 외적들이 두려워 합니다. 전쟁에 승리함으로 즐거워합니다. 30절을 보십시오. 태평과 평강이 찾아 옵니다.
감사는 미래를 이루는 종자씨와 같습니다.
인간적인 지혜로 판단해 볼 때 참으로 암담한 미래가 보이고 있습니까? 미래를 바라볼 때 희망이 없이 보이십니까? 오히려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멋지게 한 시대를 사용할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며 영광과 찬송의 감사를 드려보십시오.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요 6:11 이하를 보십시오. 사람들이 장정만 5천명이 있습니다. 아이들과 여자까지 합하면 적어도 2만명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먹을 것이 없습니다. 겨우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입니다. 그런데 없는 것보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현실 속에 없는 것 보면서 불가능하다고 불평하고 원망하지 않습니다. 큰 것과 비교하여 불평하지 않습니다. 주신 작을 것으로 감사합니다. 현재의 조건에 근거해 미래를 비관하지 않습니다. 미래를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며 현재의 것으로 헌신함으로 감사합니다. 축사합니다. 감사 기도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죽은 나사로의 무덤에서도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감사합니다. 실패의 현장에서도 감사합니다(마 11:20-26). 고라신과 벳세다야에서 복음을 전했지만 그들이 믿지 않았을 때 절망하고 좌절하며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인의 삶의 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영원한 천국에 가서 살 사람들입니다. 현재에 근거하여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며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성적으로 볼 때는 현재를 근거로 하여 미래가 아무리 암울하게 보일지라도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감사로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빌헤름 웰러는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는 단지 불평을 하느냐 아니면 감사를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합니다. 거친 식사, 험한 잠자리, 힘든 일과........ 환경은 비슷합니다만 감옥에서는 하루하루가 대개 불평으로 가득하고, 수도원은 감사로 하루가 지낸다고 합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의 교부였던 크리소스톰은 "사람에게는 근본적인 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감사하지 않는 죄"라고 지적합니다. 아리스토 텔레스는 "인간의 마음 중에 가장 쉽게 늙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곧 감사하는 마음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 50:23)"

지금도 93세로 총장일을 맡아 하시는 강석규 장로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50대에 예수를 믿어 지금까지 한 주도 거르지 않고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충남 천안에 자신이 호서대를 건립하여 20여년 동안 총장을 맡아 왔습니다. 그리고 올해 설립한 서울벤처정보대학원대학교 총장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일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주십니다. 인간사에서도 아버지 뜻에 합당하려고 애쓰는 아들이 사랑스럽거늘 하물며 하나님께 있어서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생각을 바꿔보라 희망이 보인다’어릴 때 무척 몸이 약하고 기억력이 나빴다고 합니다. 찢어지게 가난해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 지독한 열등감까지 있었답니다. 장로님은 ‘100전101기’의 인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초등학교만 나온 상태에서 독학으로 초등 및 중등교사 자격증을 차례로 따내고 뒤늦게 서울대 공대에 입학해 학생회장까지 맡았다고 합니다. 그 뿐 아니라 대성중고교 서울호서전문학교 호서대를 설립하였답니다. 지금도 늘 가지고 다니는 두 소지품이 있는데 일정관리 및 성경구절 등을 기록한 수첩 2권과 ‘나의 신경’이라고 이름 붙인 자신의 기도문을 가지도 다닌답니다. 한 달에 꼭 한 번씩 금식기도원에 가신다는 장로님은 “신앙인들에게 항상 쉬지 말고 기도하며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꼭 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맥추 감사절입니다. 넘치는 감사의 마음을 회복하고 감사로 다시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감사는 미래의 소원을 이루는 종자씨와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두려운 일이 있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불평하고 원망하지 마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감사가 종자씨가 되어 결국 미래에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움 평안 태평이 찾아 올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 처한다 할지라도 감사의 종자씨가 있으면 시간 지나면 감사할 만한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됩니다. 괴로울 때나 슬플 때나 환난 때나 어려울 때 감사만큼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감사할 만한 일이 생기고 감사의 경쟁력이 생기고 감사의 열매들이 풍성하게 맺히게 됩니다.

아무리 배고파도 종자 씨는 먹지 않습니다. 기도는 승리를 위한 사역의 종자씨와 같습니다. 믿음은 형통을 위한 존재의 종자씨와 같습니다. 감사는 미래의 풍요를 위한 관계의 종자씨와 같습니다. 믿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어떤 일이 있어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김필곤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