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누가와 함께 하는 예수님의 비유연구 3] 강청기도로 문을 열라 (눅 ..

  • 잡초 잡초
  • 596
  • 0

첨부 1


한밤중에 찾아온 친구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11장에는 기도에 관한 가르침 세 가지가 나옵니다. 11장을 눈으로 살펴보십시오. 먼저 1~4절에는 기도의 모범인 주기도문이 나옵니다. 다음으로 5~8절에는 강청기도에 대한 비유가 나오고 마지막 9~11절에는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세 가지 내용 가운데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둘 다 기도의 자세에 대한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 이야기는 기도의 자세 중에서도 ‘적극적인 기도’를 가르칩니다. 오늘은 바로 이 두 가지 본문을 통해 기도의 자세를 생각해 봅니다.

오늘 예수님이 들려주신 비유는 상당히 독특한 비유인데 지난주와 그 전 주에 살펴본 ‘씨 뿌려진 땅의 비유’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비해 덜 알려진 비유라서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 비유는 한 밤 중에 친구 집을 찾아간 사람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그 시간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친구와 가족들이 모두 잠 든 것을 볼 때 상당히 밤이 깊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이 사람은 상당히 무례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친구라지만 친구와 가족들까지 다 잠든 시간에 친구 집을 찾아간 것을 보면 상당히 무례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집 주인도 상당히 당혹스러웠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친구 없지요? 이런 무례한 사람은 친구로 사귀면 안 됩니다.

둘째, 이 사람이 찾아간 친구네 집은 아마도 궁핍한 집이었던 것 같습니다. 깊은 밤이 되어서야 온 식구가 잠에 든 것을 보면 온 식구가 다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며 7절에 나온 대로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소에 누웠다’는 말은 온 가족, 즉 부부와 자녀들이 모두 한 방에서 자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 집도 궁핍합니다. 온 가족이 늦은 밤까지 일하고 이제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밤 중에 난데없이 친구 녀석 하나가 찾아와서 문을 두드립니다. 잠에서 깨어 문을 열어보니 한다는 소리가 자기네 집에 친구가 왔는데 먹을 것이 없어 빵 세 개만 빌려달라는 것입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곤란하기도 하고, 여러분 같으면 신경질 안 나겠습니까? “네 친구가 찾아왔으면 온 것이지 한밤중에 웬 난리냐?”며 화를 내고 쫒아낼 것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정말 별일이 다 일어납니다. 목사에게 있어서 보장된 시간은 없습니다. 밤이든 낮이든 휴일이든 교인들에게 중요한 일이 생기면 달려가야만 하는 사람이 목사입니다. 벌써 오래 전 일입니다만 서울에서 부목사를 할 때 일인데 한참 자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전화를 받아보니 교회 근처에 사는 여 집사님인데 큰일 났다고 목사님 빨리 좀 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정을 알고 보니 그 집 아들이 새벽에 집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 취객들에게 따지다가 시비가 붙어 싸움을 하게 되었고 지금 경찰서와 잡혀와 있으니 목사님 빨리 좀 와서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그제야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였습니다. 부랴부랴 넥타이 매고 경찰서에 찾아가서 몇 시간을 함께 앉아 경찰들에게 사정을 하다가 돌아온 일이 있었습니다. 목회는 별 일이 다 생깁니다. 목사는 별 일을 다 해야 합니다. 때로는 목회 전문가가 되어야 하고, 때로는 음향이나 영상 전문가도 되고, 또 스포츠에도 일가견이 있어야 하고, 어떨 때는 경찰들하고도 친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한편으로 그 집사님이 오죽 당황하고 의지할 데가 없으면 목사를 불렀는가 싶어 이해도 가고 또 한 편으로는 그 때 몹시도 당황스러웠던 느낌이 기억나곤 합니다. 딱한 사정이 이해는 충분히 가지만 내 입장에서는 정말 당혹스럽고 황당한 일들이 있지 않습니까? 아마도 한밤중에 문을 두르려 잠자리에서 일어난 이 친구가 바로 꼭두새벽에 일어나 경찰서로 달려가던 저의 심정과 같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강청함을 인하여

오늘 비유에서 8절을 보면 예수님의 해설이 나옵니다. 먼저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않더라도”라는 말이 나옵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안 주는 것은 당연하다는 뜻입니다. 물론 자기 친구가 밤중에 갑자기 찾아왔는데 먹을 것이 없어 빌리러 왔다는 딱한 사정은 이해가 갑니다. 벗이 여행을 하다가 한 밤 중에 찾아왔다는데 이 말은 당시 상황으로서는 충분히 이해할 만 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사막 지역에서 더운 낮에는 여행을 삼갔기 때문에 얼마든지 한밤중에 찾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야 전적으로 자기 사정이지 그렇다고 해서 이 밤중에 우리 집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며 온 가족 다 깨우면서 빵을 빌려달라고 하는 것은 정말 당황스럽고 무례한 일 아닙니까? 그러니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그 친구관계, 인간관계로는 안 주는 게 당연하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주님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앞서 말한 대로 친구관계 때문에는 얼마든지 안 줄 수 있지만 강청함을 인하여는 준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강청’이라는 말은 한자로는 굳셀 강(强) 청할 청(請) 자를 써서 강력하게 요청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개역 개정판 성경에는 ‘간청’이라는 말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말로도 우리는 그 뜻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도 귀찮고 힘들지만 친구가 워낙 강력하게 요청을 하고 조르다보니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강청’이라는 말을 헬라어로 보면 정말 너무나도 분명하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자가 원어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헬라어에서 이 ‘강청’에 해당되는 낱말은 ‘아나이데이아’인데 이는 ‘아니다’라는 뜻의 부정접두사 ‘아’와 ‘부끄러워하다’는 뜻의 ‘아이도스’가 합쳐져서 ‘부끄러워하지 않다’는 뜻을 가진 낱말입니다. 그래서 사전에 찾아보면 ‘부끄러움이 없음,’ 혹은 ‘뻔뻔함’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강청’이라는 말은 한 마디로 ‘뻔뻔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뻔뻔함’이 오늘 비유의 핵심입니다.

뻔뻔하게 요구하라

흔히 우리말에서 ‘뻔뻔하다’는 말은 상당히 나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전에 찾아보면 뻔뻔하다는 말은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보기에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염치없이 태연하게 군다.” 한마디로 철면피가 되어 얼굴에 철판을 깔고 꼴 보기 싫게 구는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군가에게 뻔뻔스럽다고 말하면 그 사람은 욕 하는 줄 알고 당연히 화를 낼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 주님은 기도에 대해 가르치면서 제자들에게 강청을 해라, 즉 뻔뻔하게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강청기도, 즉 뻔뻔한 기도가 뭐길래 주님은 이 기도를 하라고 가르치시는 것일까요? 여러분, 노숙자 아시지요? 집도 없고 직업도 없이 거리에서 아무렇게나 누워 자는 사람들입니다. IMF 이후에 생긴 사람들인데 전문가들 말로는 아무리 경제가 좋아져도 숫자는 줄망정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이들도 원래는 번듯한 직업과 가정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사업이 망하고 직장에서 쫓겨나서 집을 나오게 된 것입니다. 모든 노숙자가 다 처음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길거리에서 누워 자고 구걸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다 부끄럽고 혹시 누가 나를 알아볼까 싶어 주저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두어 달만 지나면 다 뻔뻔해 집니다. 남들이 다 보고 있어도 태연하게 길바닥에 누워 잠도 자고 밥도 먹고, 옷도 갈아입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한참이 지나면 이 생활에 적응이 되어 아무리 직업을 준다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해도 안 돌아가는 상태까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노숙생활에 길든 이 사람들은 이 생활이 너무 편해서 일을 하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가지도 않는다는 것이지요. 사람이 그 환경에 따라 수치심이 없어지고 얼마든지 뻔뻔해 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일반적으로 별로 안 좋은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멀쩡한 사람이 그렇게 뻔뻔해지고 체면조차 없어질 수 있을까 싶어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신앙의 눈으로 보면 기도에 대해 정말 중요한 깨달음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노숙자가 되어서도 안 되고 이렇게 뻔뻔한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되지만 적어도 기도를 할 때는, 적어도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때는 반드시 뻔뻔한 사람이 되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뻔뻔한 기도’입니다.

뻔뻔한 기도

그렇다면 ‘뻔뻔한 기도’는 무엇일까요? ‘뻔뻔한 기도’란 한 마디로 체면 차리지 않는 기도를 뜻합니다. 우리가 언제 체면을 차립니까? 우리나라는 ‘체면문화’가 극도로 발달된 사회입니다. 음식을 더 먹고 싶어도 체면 때문에 더 달라는 말도 못하고 상대방이 더 먹으라고 권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상대방이 더 먹으라고 권해도 덥석 받아먹으면 예의가 아닙니다. 몇 번이고 사양하다가 못 이기는 척 하고 먹어야 합니다. 어디 먹는 일뿐이겠습니까? 모든 일에 있어 내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무례하다고 생각하고 사양하는 ‘사양문화’ ‘체면문화’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주면 고맙고 안 주면 할 수 없다’는 식의 사고가 만연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하면서도 이 체면을 따질 때가 있습니다. 체면 따지는 기도는 상황 다 봐가면서, 하나님 사정도 생각해 가면서 기도하는 것이지요. “지금 이 순간도 수많은 사람들이 뭔가 달라고 기도할 텐데 나까지 뭘 달라고 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피곤하고 힘드실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기도를 하면서, 뭔가를 달라고 간구하면서 ‘응답해 주시면 좋고 안 해주시면 할 수 없고’ 식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도가 과연 능력이 있겠느냐? 이런 기도에 과연 하나님이 응답하시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라는 것이 어디 체면을 따지는 자리입니까? 기도란 자녀가 아버지에게 구하는 자리 아닙니까? 주님은 어린아이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하셨는데 어디 어린아이가 아버지에게 요구하면서 체면 차리는 것 보셨습니까? 가령 서너 살 먹은 아이가 아버지에게 돈 오백 원만 달라고 하는데 “아빠, 나 오백 원 줘”하고 말해야 자연스럽지 않겠습니까? 마치 자기가 언제 돈 오백 원 맡기기라도 한 듯 당연하고 뻔뻔스럽게 이야기해야 자연스럽지 이 서너 살 먹은 아이가 아빠에게 체면 다 차리고 예의 다 갖춰서 “존경하는 아버님, 제가 오백 원이 필요하오니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안 주시면 할 수 없고요”라고 한다면 이거야말로 어색한 일 아닙니까?

그래서 주님은 이 비유에 뒤이어 9절부터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의 기도는 절대 소극적이어서는 안 된다, 체면 차리고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간구는 항상 적극적이야 하며 적극적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면 반드시 응답하시고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이미 지난번 산상수훈 설교를 통해 자세히 살펴본 내용이므로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핵심적인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는 적극적으로 구해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적극적으로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오늘 이 비유에 나온 사람처럼 한밤중에 굳게 닫힌 문이라도 주저하지 말고 세차게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체면 생각하고 남의 입장 생각해서 안 구하고 안 찾으면 당연히 응답 받을 수 없다. 지금 늦은 밤인데, 친구와 가족들이 다 잘 텐데, 문 두드려서 깨우면 화낼 텐데 하는 생각은 인간관계에서는 충분히 해도 되지만 적어도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때는 안 통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어떤 내용을 가지고 간구할 때는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매달리고 붙들고 늘어지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적극적인 신앙인입니다. 그는 축복을 쟁취하여 받습니다.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사람과 씨름할 때 환도 뼈가 부러졌지만 축복해 줄 때까지 안 가겠다고 우겨서 결국 이스라엘이라는 이름과 축복을 받아냅니다. 야곱처럼 줄 때까지 매달리고 응답 받을 때까지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기도, 이것이 바로 ‘강청기도’요 ‘뻔뻔한 기도’입니다.

그렇다면 ‘강청기도,’ ‘뻔뻔한 기도’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그 다음절인 11절부터 나옵니다. 아무리 악한 아버지라고 아들이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며,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주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아버지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는데 하물며 너희 천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 기도하는 자녀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복음에는 ‘성령’을 주신다고 되어 있고 같은 구절인 마태복음 7장 11절에는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제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기도는 뻔뻔해야 한다, 그 뻔뻔함의 근거는 내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내 아버지시기 때문이다.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 수밖에 없는데, 아무리 친구가 귀찮고 무례하게 굴어도 뻔뻔하게 달라고 자꾸 졸라대면 줄 수밖에 없는데 생각해 봐라, 너희의 기도를 받으시는 분은 바로 우리 하늘 아버지 아니시냐? 그런데 왜 기도하면서 자꾸 체면 차리고, 이런 저런 생각 복잡하게 하고, 그렇게 소극적으로 나오느냐? 무조건 빌라, 무조건 달라고 졸라라, 받을 줄 믿고 적극적으로 간구해라” 이런 뜻 아니겠습니까?

인생의 문제를 열어라! 잘라라!

오늘 주님이 들려주신 비유의 핵심은 적극적인 기도의 자세와 응답에 대한 확신입니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는 반드시 응답을 받는다는 확신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들은 말씀 중에 강청기도의 힘은 무엇일까요? 여는 것입니다. 닫혔던 친구네 집 문을 열고, 닫혀있던 친구의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마음을 열고, 하늘 문을 열고, 기도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제목도 ‘강청기도로 문을 열라’입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문이 닫혀 있습니까?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꽁꽁 닫혀있고 자물쇠까지 채워져 내 힘으로는 도저히 열 수 없어 보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도 이 강청기도의 원리를 배우십시오. 그래서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문제를 풀고, 응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응답이 즉시 안 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친구가 문 안 열어준다고 거절당했다고 쉽게 포기하고 돌아섰다면 절대 빵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는 포기하지 말고 강청하라고, 뻔뻔스럽게 계속 붙들고 늘어지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 반드시 응답이 내려오는데 어떻게 오는가?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기도하고 찬미하니까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감옥 문이 다 열리고 발에 채워진 착고가 다 풀린 것처럼 내 인생을 옥죄는 모든 문제가 다 풀리고 모든 닫힌 문이 일시에 다 열리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꼬인 문제들이 일시에 다 풀리게 됩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원정 할 때 소아시아의 프리기아라는 나라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프리기아의 수도인 고르디우스에는 제우스 신전이 있었고 이 신전 기둥에 짐수레 한 대가 단단히 묶여 있었는데 이 매듭을 푸는 사람이 아시아를 지배한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매듭은 너무 절묘하고 단단하게 묶여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은 알렉산더는 신전으로 가서, 칼을 뽑아 단칼에 그 매듭을 잘라 버렸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 복잡하게 꼬여있는 매듭을 어떻게든 풀어보려고 했지만 알렉산더는 복잡한 매듭을 ‘푸는’ 것이 아니라 단칼에 ‘잘라’버리는 획기적인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오늘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도 지독히 꼬여있는 인생의 복잡한 문제들을 어떻게든 자기 손으로 풀어보려고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그 복잡한 문제들이 어디 그리 쉽게 풀어지나요? 점점 더 꼬이고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바로 이 때, 알렉산더처럼 그 문제들을 일시에 해결할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풀어줍니다. 기도는 열어줍니다. 기도는 해결해 줍니다. 그냥 기도가 아니라 강청기도, 뻔뻔할 정도로 매달리는 적극적인 기도입니다. 여러분도 이 강청기도의 능력을 믿고 오늘도 나의 모든 문제를 이 강청기도로 해결하는 체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