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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승리하는 신앙생활(5) - 성령 (롬 8: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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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한흠목사는 평상시 자신의 기도 시간의 80%를 하나님 앞에 탄식의 기도를 드린다고 했다. 이유는 자신이 너무나 연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 분의 인상을 보면 어느 한 구석 빈틈이나 연약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교회 목회자 가운데서 모델적인 목회자요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분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그분을 크게 쓰신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 본문에서도 주목할 만한 사실은 사도 바울 역시 자신을 연약한 무리 중의 한 사람으로 포함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26절에서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영적인 거장 사도 바울이 자신을 연약한 성도들 중에 한 사람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인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연약한 존재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겸손히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 때 우리는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나의 나된 것”이 자신의 공력으로 된 것이라고 생각할 때 결국 버림을 받게 되고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했는데 어떤 면에서 어떻게 도우신다는 것인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보도록 하겠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연약함은 기도생활과 관련된 사항이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연약함”이란? 성도의 기도생활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성공적인 신앙생활은 기도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의 신앙이 점점 약화되는 이유도 기도생활에서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도생활의 실패는 곧 영적 파산을 의미하는 것이요, 그것이 바로 성령을 탄식케 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어떻게 도우시는가? 두 가지 면에서 돕고 계심을 발견하게 된다.


1.성령의 대도 사역이다.
대도 사역이란? 대신 기도해 준다라는 뜻이다. 오늘 본문의 의미는 성령께서 항상 우리를 대신해서 기도해 주신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26절 상반절을 보면..
26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현대어성경,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
현대 그리스도인들 중에 기도생활을 잘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고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한다”라는 말은 기도 생활이 거의 마비되어서 자포자기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예)식사기도, 예배 중의 기도가 전부.
이 정도가 되면 신앙생활이라고 말할 수 없다. 습관적인 종교생활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지난 목요일 아침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목회자 코칭스쿨이란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신정동과 목동 사이에 있는 어느 교회를 찾아 갔다. 지난 주에는 다른 목사님 차를 타고 갔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갔었다. 그러나 그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 주변에서 40분간을 헤멨다. 화가 나서 그 기분으로는 공부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돌아가려고 순환도로로 나오는데 오기가 나서 또 다시 찾아 들어갔다. 공부가 시작되어서 핸드폰 연결도 안 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 쪽 편에 차를 대놓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주여! 어떻해야 합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에서 탄식이 나왔다. 이렇게 찾기 어려운 것을 보니 그 세미나에 참석하지 말라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겨우 전화가 연결되어 찾게 되었다. 그곳에서 500m 정도 목동 방향으로 가보니 내가 헤멨던 곳과 비슷한 곳이 나왔다. 만약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더라면 결국 찾지 못하고 돌아 왔을 것이다.

우리의 기도 생활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도로 곁에다 차를 세워 두고 낙심한 상태에 있는 모습과 같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낙심된 상태에 빠져 있을 때 성령님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나다.

1)우리를 보시면서 탄식하신다.
어떻게 탄식하시는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탄식하신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 현대어 성경이 해석적으로 번역을 해 놓았다.
현대어성경,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 성령께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절실한 감정을 가지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이 말은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데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성령께서 보시고 안타까워 어쭐줄 모르신다는 뜻이다.

2)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신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이것을 우리는 성령의 대도 사역이라 한다. 우리가 제대로 기도하지 못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는 그냥 놔 두지 아니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를 위하여 친히 기도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은혜이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해 주신다. 뿐만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보좌 옆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해 주고 계신다.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기도를 드리시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더욱 큰 힘과 위로를 얻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각 자가 기도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내 대신 성령께서 기도하시기 때문에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오늘의 말씀을 크게 오해한 것이다.

본문 26절 앞 부분에서,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라는 말씀은 일방통행적이 아니다. 여기서 “돕는다”라는 말의 의미는 어떤 사람이 무거운 물건을 들고자 하는 데 혼자 들어 없어서 안절부절할 때 다른 사람이 마주 잡고 물건을 들어 올릴 때 사용되는 말이다.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홀로 서지 못하고 홀로 기도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할 때 오셔서 마주 잡아 주셔서 그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신다는 뜻이다.

주석가 헨드릭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령은 단지 기도하는 이들의 마음 속에서만 기도하신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다라는 뜻이다. 물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성령을 받은 사람이 기도하지 않을 리는 없다. 그러나 우리 속에 남아 있는 죄성이 거룩한 영광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의욕을 꺽어 버리기 때문에 좌절하고 낙심케 되는 것이다. 이때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도우신다는 것이다.

성도들의 앞 길에 고난이 있다. 그러나 그 고난은 장차 우리가 얻을 영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이 사실을 알기에 우리는 주저 앉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영광을 향하여 나아갈 때 많은 고난이 있다.

그러나 낙심치 않을 수 있는 것은 그 때마다 도우시는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긍휼의 마음으로 탄식하신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기도하시기 위해 우리의 손을 붙들어 주신다. 연약함에 싸여 있는 나를 향하여 내미시는 성령의 손길을 붙잡으라.


2.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우리의 기도를 도우신다.
8: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어느 교회에 교인들에게 사랑을 받던 한 목사님이 심한 병으로 몸져 누웠다. 교인들은 금식하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우리 목사님을 회복시켜 주세요.”

그러나 목사님은 마침내 죽고 말았다. 그 목사님의 장례식에서 그 목사님과 절친했던 친구 목사님이 울고 있는 교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다.
“아마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들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지 않으신다고 결론을 내릴 위험에 처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진정으로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이렇게 특별한 경우에는 아마도 두 가지 기도가 서로 상반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 목사님의 생명을 구해 주옵소서. 우리에게는 목사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말없는 기도는
“오 하나님, 그를 데려 가시옵소서. 이는 교인들이 당신보다도 그에게 너무 과하게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는 것이 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간구를 들으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대부분 자기 중심적이기 쉽다. 때로는 기도의 응답을 위해 열심을 내기도 한다. 새벽기도도 하고, 심야 기도회도 나오고, 금식기도도 한다. 그러나 자기의 원대로 응답되지 않으면 낙심해서 그 다음엔 기도생활을 포기하게 된다. 자신의 기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의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인 살로매가 예수님 앞에 나와서 이렇게 부탁을 드린다(마20:21-23).
-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 할 수 있나이다
-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기도의 응답이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의 소망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되어진다고 말씀하셨다.

영적 거장인 사도 바울에게 육체적 고통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 그가 하나님 앞에 기도한 것은 이 육체의 가시가 주의 일을 감당하는데 너무나 불편했기 때문이다. 만약 고쳐주신다면 더욱 힘 있게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종의 질병을 고쳐주시지 않았다.
고후12:7-9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복음성가 중에서 이런 가사가 있다.
약할 때 강함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사도 바울은 자신의 간구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더 이상 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하고 기뻐했고 감사를 드렸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 모습은 어떤가? 하나님의 뜻과는 관계없이 고집부리기, 굶기, 소리지르기, 삿대질하기로 일관할 때가 많다.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애쓸 때 기도는 점점 더 약화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었을 때 성령께서 도우신다. 어떻게 도우시는가?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우리의 생각을 바꾸시고 주께서 원하시는 기도가 되도록 고쳐주신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기도하는 모습이나 내용이 바리새인들이나 이방인들과 같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올바른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그것이 바로 마6장의 주기도문이다. 주기도문은 성도들이 드려야 할 최고의 기도이다. 우리가 주기도문의 내용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드릴 수 있다.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주문 외듯 하지 말고 한 마디 한 마디 의미를 생각하면서 암송해 보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놓쳐서는 안될 중요한 사항이 있다.
성령의 도우시는 역사는 기도하는 사람에게만 나타난다는 것이다. 기도하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은 영적 사망의 상태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 때 성령께서는 지체치 않으시고 도우실 것이다. 삐뚤어지고 정욕적인 기도를 고쳐서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것임을 믿기 바란다.
우리는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상속자요 하나님의 자녀이다. 우리 안에는 성령께서 내주하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 올바른 기도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만들어 주신다. 그리고 이 땅의 주인공으로서 당당하게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도록 인도해 주신다.

이제는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무엇을 구해야 할지 알지 못해 낙심하고 주저 앉아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가 주님을 몰랐을 때는 마귀에게 종노릇하면서 죄 짓고 살았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도 성령의 도우심을 알지 못했을 때는 패배하는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이제는 성령님의 탄식하시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끊임없이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간구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성령은 기도의 영이시다. 능력 있는 기도생활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의 손길을 붙잡으라. 강력한 기도로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성도가 되길 바란다. (송 선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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