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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이란 (시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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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했다는 사람들의 배경에는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이 그러한 특징을 가지고 일할 수 있었다는 것에는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없고서는 무엇하나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러한 열정과 인내와 창조적 생각들을 해냈던 것입니다.

시편 18편은 절박한 위험가운데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회상하면서 찬양한 찬양시입니다. 다윗이 지난 세월 어려웠던 일들을 회상하면서 그때마다 “하나님은 어떻게 도우셨는가?”, “도우시기까지 다윗 자신은 어떠한 믿음을 가졌는가”를 잘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말씀속에서 믿음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깨닫고 돌아 갈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믿음은 긍정적인 것을 바라보는 힘입니다.

고난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알 수 없는 고난의 시련에서 절망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진리가 슬픔과 절망에 얽매인 자를 자유케 할것입니다. 고난과 시련중에서 긍정적인 눈을 가지고 바로 바라볼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욥기는 실패하고, 고난당하고, 병들고, 두려워하고, 낙심하는 자에게, 특별히 가난하고 약하고 절망하는 자들에게 소망을 주는 책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시련의 기간중에 믿음의 눈을 가지고 바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믿음의 눈으로 인하여 ①단련하신 이후에 정금같이 될것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②복이 내게 임할것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③지금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어느날 조각가 로댕이 청년들과 함께 산에 올랐습니다. 청년들은 길을 가로막고 있는 바위에 귀찮은 눈길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로댕에게는 이 화강암이 ‘인생을 고민하는 젊은이’로 보였습니다. 그는 이 화강암을 갈고 닦아 명품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쥐를 징그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리해고를 당한 월트 디즈니는 창고에서 잠을 자다가 쥐들이 노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평화와 자유의 상징인 미키 마우스를 만들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눈을 떠서 하나님을 어떻게 보는냐에 따라 인생이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어떻게 보았습니까? (시18: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를 건지시는 자, 나의 하나님, 나의 피할 바위,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 나의 산성>이라고 보았습니다. 나의 하나님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다른 사람의 하나님의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건지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피할 바위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방패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의 뿔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십니다.

복음성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203장>을 같이 부르시겠습니다.

시편은 수많은 상처받은 영혼들에게 활력소의 역할을 해 왔습니다. 이유인즉, 고난중에서도 인내함으로 인생을 승리한 사람들의 고백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다윗이라는 인물은 후대의 자손들에게 존경을 받는 인물입니다. 그가 존경을 받을만한 이유는 수많은 어려움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인내함으로 고난을 딛고 일어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수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난을 통하여 더욱 성숙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시편119편에서는 다윗이 고난당함이 유익이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난 당함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0).

그는 수많은 고난과 고통을 받을때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신념에 찬 고백을 하였습니다. (시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2. 믿음은 의심치 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가장 어려운 시기에 주를 의지하는 믿음과 주께 향하는 기도를 통하여 좌절치 않고 잘 극복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로서 시련의 장애물을 건너기 위해서는 낙심과 좌절의 장애물을 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큰 적은 낙심과 좌절입니다.

낙심치 말고 기도할 것을 주님께서 교훈하고 계십니다. (눅18: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마귀는 성도가 선을 행하고자 할 때에 낙심하게 만듭니다. 잘 믿고 충성하고자 할 때에 시험거리를 제공하여 낙심하게 됩니다. 그래서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치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할 때에 낙심하지 말고 그 고비를 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충성스럽게 하려고 할 때에 이상하게도 시험을 받아 낙심하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마귀는 충성못하게 만들며 주님의 일을 중단하게 하여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서 기도해야 하며, 낙심이 되고, 좌절이 될 때에 사단 마귀의 궤계임을 깨닫고 사단 마귀를 물리쳐서 강건한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충성하고 봉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다윗은 어려운 고비를 넘기기 위해서 간절한 기도를 드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간절히 드린 기도는 열납되어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시18:6)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여러 성도들은 시련의 장애물을 기도로 넘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의심치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리 의지가 강한 사람일지라도 환경이 어지러워지고 복잡해지면 낙심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주위 환경이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울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더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견고한 믿음으로서 환경을 헤쳐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려운 상황속에서 나를 바라보면 낙심하고 좌절하게 되지만, 반석이 되시며, 힘이 되시고, 바위가 되시고, 요새가 되시며, 산성이 되시며,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구원의 날을 바라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어려움속에서 (시18:3)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여호와께 기도하면 어려움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고백입니다.

마귀는 의심하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심하게 만들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만들며 의심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에게 마귀가 찾아왔습니다. 마귀의 하는 말이 “정말로 하나님께서 이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하고 물었습니다. 물음표를 붙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와로 하여금 의문이 생기게 하고, 의심이 불과 같이 일어나도록 만든 것입니다. 만일 그때에, 하와가 그 마귀에게 “사단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폭적으로 믿노라”고 사단 마귀의 꿰임을 뿌리쳤다면 밤죄하지 않았을 것이고, 자자손손(子子孫孫)이렇게 비참한 형벌을 당하는 죄악의 씨를 뿌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탄마귀는 지금도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자들을 찾아와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여러분들의 꿈을 의심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기도하면서 의심을 멀리하여야 합니다. 마음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막11: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를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

의심하는 자의 특색은 요동하는 물결과 같습니다. (약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또한 의심하는 자는 두마음을 품습니다. (약1:7-8)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그리함으로 의심하는 자는 모든 일에 주저합니다. (행10:20)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두마음을 품는 자는 언제 어느때 마음이 변할지 모릅니다.

3. 믿음은 절제하면서 덕을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자유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어서는 안됩니다. 바울은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자유란 남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배하는 것이며, 절제를 통해서만 진정한 자유가 될 수 있습니다.

벤자민 플랭크린, 그는 가난한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학교라고는 1년 밖에 다녀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의 교육과 마아트 목사님의 청교도 교육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열심히 일하는 것과 독서하는 것을 체득했습니다. 그는 미국의 철학회 창시자가 되었고, 피뢰침의 발명가가 되었고, 초대 프랑스 대사로 파견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재산을 얻기 위해 덕을 팔지 말고 권력을 얻기 위해 자유를 팔지 말라"는 뼈있는 말을 남겼습니다. 또한, 그는 어릴 때부터 13가지 덕목을 정해서 평생 지켰습니다. 그 덕목의 첫번째는 '절제'입니다. 사도 바울도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였습니다. 성경에서는 덕의 최우선 지침을 ‘절제’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미는 멸망해도 덕은 멸망하지 않는다"는 속담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롬15:2). 우리 모든 성도들은 모든 일에 절제함으로 덕을 세워야 합니다.

어느 사람들은 시련이 찾아올 때 더욱 무절제한 삶을 살게 됩니다. 실패와 대적으로 인한 분노의 감정도 절제치 못합니다. 어려움이 왔다하여 덕을 세우지 못하여 더욱 타락하며, 더욱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어렵다고 하여 더욱 폭력을 일삼으며, 실패했다고 하여 더욱 술과 마약, 약물중독으로 분노를 다스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여러 성도들은 고난이 올 때 도리어 절제하여 덕을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적은 하나님께서 갚으시는 것입니다.

절제란 성령의 열매이며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제는 곧 생명운동이며 기독교인의 중요한 미덕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절제하지 못하면 없는 것보다 못합니다. 절제란 돈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절제해야 합니다. 특별히 절제함으로 쓰레기도 줄이고, 절제하여 생태계를 보호해야 하며, 절제하여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음성가 46장(시편40,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기도하면)을 부르시면서 기도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의심하게 되고 원망, 불평 낙심하게 되고, 고통과 환난 등의 핍박이 많이 다가옵니다. 이렇게 수많은 고비를 하나님만 의지하고, 신뢰하여 기도로써, 믿음으로써 그 담장을 뛰어넘어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어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고신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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