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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는대로 됩니다 (마 9: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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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믿음이란 참 귀한 보배입니다. 믿음은 인간의 생각과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믿음은 과학보다도 초월적인 것입니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고 없는 것을 있게 하며 못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하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이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믿음은 크게 믿으면 크게 되고 작게 믿으면 작게 되는 것입니다. 또 안 믿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은 금보다 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 수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는데 모두 믿음대로 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앉은뱅이가 걷고, 믿음으로 귀신이 떠나가고, 믿음으로 소경이 눈을 떴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길을 걸어 가실 때 두 소경이 따라오면서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즉시 고쳐 주시지 않고 먼저 집안으로 데리고 가셔서 “내가 능히 너희들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다고 믿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저들은 주여 “그러하오이다”라고 . . . 예수님은 저들에게서 믿음 있는 것을 확인하신 다음에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고 선포하실 때 그들의 눈이 떠 졌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님이 고쳐주실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느냐 안믿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다같이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믿고 부르짖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똑같은 세례를 받고, 똑같이 기도를 하고, 똑같이 하나님의 베푸시는 은혜를 입고 살아가고 있는데 믿음의 체험에 있어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모든 일에서 날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풍성한 은혜를 체험하고 살고 있고 또 어떤 분들은 믿음의 변화가 별로 없이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은혜의 체험을 우리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비록 소경일지라도 주님이 넉넉히 고쳐주신다고 믿으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고 현대 의술에만 의지하는 사람들은 불완전한 현대 의술 정도밖에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17:20에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믿으면 표적이 따릅니다. 막16:16-18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표적이 따른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신앙입니다.

1. 마음속에 그리는 영상대로 됩니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자동차의 변속 기아를 후진으로 놓으면 자동차는 뒤로 갑니다. 그러나 전진으로 놓으면 앞으로 갑니다. 기어를 어디에다 놓느냐에 따라 차가 앞으로도 가고, 뒤로도 갑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부정적이면 부정적인 결과, 긍정적이면 긍정적인 결과가 옵니다.
사람은 평상시에 무슨 생각을 하며 마음에 무슨 영상(imagination)을 그리느냐에 따라 그의 운명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영상을 그리는 사람은 성공적인 사람이 될 것이고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그런 영상을 그리는 사람은 패배적인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 중의 하나는 상상력이다”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부정적인 환상을 보여주며 불안과 공포를 갖다 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마귀는 거짓말로 사람을 속여서 비극에 빠뜨리려는 계략을 알고 그런 나쁜 환상과 영상을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찢어 버리고 지워 버려야 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즉, 마음으로 믿고 그대로 행하는 확신입니다. 믿음은 미래를 내다보게 하는 능력이 되어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확신 있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요약하면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며 그것은 하나님에게 자신을 완전히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막10:46절에는 소경 바디메오가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고통속에서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언젠가 자신의 눈이 뜨일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예수님이 그 마을을 지나가시게 되었고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무엇을 원하냐?” 물으셨습니다. “눈이 뜨여지기를 원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 주님은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맹인은 그 자리에서 보게 되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는 거지인생이었지만 주님을 만남으로 환경이 바뀌었습니다. 존귀한 몸이 되었습니다. 눈만 치유된 것이 아니라! 구원도 선물로 받았습니다.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하루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불러 놓고 “자, 오늘은 우리가 산에 올라가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자. 모두 길을 떠나기 전에 돌을 하나씩 준비하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갑자스런 말씀에 제자들은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러나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우직스런 베드로는 큼직한 돌을 둘러메었습니다.
의심 많은 도마는 예수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의심하면서 안가져 갈 수는 없으니 조약돌 두 개를 주어가지고 호주머니에 넣고 따랐습니다. 계산에 빠른 가롯 유다는 ‘산에가면 돌들이 많을텐데 . . ’왜, 미련하게 돌을 가지고 오라는 지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불평을 하면서 빈손으로 올라갔습니다.

한참 산을 올라가서 정상에 다달았을 때 지치고 땀도 나고 배도 고팠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가지고 온 돌을 다 자기 앞에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들이 가지고 저 돌들이 빵이 되게 해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하니 막쪄낸 빵이 되었습니다. 베드로앞에는 큰 빵이 놓여 있었습니다. 도마의 빵은 조약돌 만한 빵이 두개, 가롯유다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모두 먹는데 가롯유다는 먹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일을 마치고 산을 내려가게 되었는데, 예수님께서는 “모두다 조그마한 돌을 몇 개씩 주어 가지고 가자.”고 하셨습니다. 배가 고파 혼이 난 도마는 머리통만한 돌을 다섯 개 주어 가지고 땀을 흘리며 들고 내려 갔습니다. 가롯 유다는 큰 돌 두 개를 어깨에 메고 내려 갔습니다.

산을 다 내려오신 예수님은 “애들아 저기 보이는 포도원으로 들어가자”. 하시고 포도원으로 들어가신 후 “너희들이 가져온 돌로 저 포도송이의 포도를 맞추어서 떨어 뜨려 주어 먹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제각기 자기 방식으로 포도를 따서 맛있게 먹었는데, 도마는 큰 주먹만한 돌을 아무리 던져도 포도송이에까지 미치지 못하여 먹지를 못했고, 가롯 유다는 너무 큰 돌이라 아에 던져보지도 못하고 먹지를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언제나 자기 마음대로 산 도마와 가롯유다 같은 사람은 중요한 때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2. 믿음의 말이 믿음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말’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데 쓰는 음성 또는 그것을 문자로 나타낸 것.”입니다. 말은 입으로 하지만 말은 그 마음의 표현입니다.
영국의 역사학자이며 평론가였던 칼라일은 “같은 말도 불가능하다고 말하면 그에게 행운이 따르지 않는다. 자기 입으로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에게 좋은 일은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마12: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말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좋던 나쁘던 힘이 있습니다.
말은 우리의 영적상태를 나타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것이 영적상태를 체크할 수 있다는 체크리스트입니다. 말은 생명이며 능력입니다. 말 한마디로 나의 영혼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며, 말 한마디에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고 평화가 오기도 하며, 개인간의 갈등이나 국가간의 관계도 말 한마디로 풀어지기도 하고 더욱 악화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죽고 사는 것이 혀 끝에 달렸다고 했습니다. 혀를 잘 써야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갈6:이하를 보면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7:16-18)라고 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말을 심느냐에 따라서 그 열매를 거둔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어떤 부부가 잘 살다가 3년만에 이혼했습니다. 그 남편이 기타 치는 것을 좋아하는데
집에만 들어오면 ‘이별의 부산항’으로부터 ‘목포의 눈물까지’ 13곡을 불러야 끝이 난답니다.
그렇게 부르던 그 가정은 결국 이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들려 오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어디서부터 옵니까? 말씀을 믿음에서 옵니다. “내가 너희에게 눈을 뜨게 할 수 있다고 믿느냐?” 물으실 때 “주님 우리가 믿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데서 능력이 나타납니다. 말씀을 믿을때 확신이 생기고 능력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롬10:9-10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하나님은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고,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고, 성령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고 말씀을 통하여 하늘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하는 것을 들어보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창조적인 말, 생산적인 말, 신앙적인 말을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말하는 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고 불평하며 죽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 마디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의 맹인 두 사람은 자신의 입으로 믿음의 말을 했습니다. 저들은 앞을 못 보았지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만 만나면 저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믿고 혼신의 힘을 다해 예수님께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인지 모르기에 체면도 따지지 않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자세가 참 훌륭한 자세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믿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존심도 접어 두고 . .

3. 행동하는 용기가 믿음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믿음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지는 것이 좋겠습니까? 사람들은 저마다 꿈과 소망이 있습니다. 그 꿈과 소망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집을 짓기 전에 도면을 그리듯이 청사진을 마음속이나 머리에 그리라는 것입니다. 가끔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하는 것을 위하여 끊임없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분명한 그림이 되게 . .
쉬지 않고 간구해야 합니다. 눅18에 나오는 과부처럼 끈질기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실행해야 합니다. 생각만 좋아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림이 완성되도록 기도를 하였다면, 이제는 그것이 실현이 되도록 우리들의 행동이 뒤따라야 합니다.

믿음은 모험이요 용기입니다. 안될 일을 될 줄 믿고 해보는 것이요 가보지도 않았지만 말만 듣고 가보는 것이며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신앙의 위인들은 믿음으로 모험을 건 자들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한 번도 가보지도 않고 들어보지도 않은 가나안 땅을 행하여 고향과 친척과 아비집을 버리고 나아갔습니다.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장군은 속국인 이스라엘의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모험을 하여 요단강에 들어가 모욕을 하여 문둥병을 고쳤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마9:20-22절)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기적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왕하4:1-7 선지자 생도중 남편이 죽고, 채주가 두 아이를 데려다 종으로 삼으려하는 것입니다. 그 때 과부는 엘리사에게 찾아와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엘리사는 그에게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해주기 원하냐? 물으며!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물었습니다. 과부는 한병 기름이 있다고 했습니다. 엘리사는 동네에가서 그릇이란 그릇을 모두 빌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과부는 순종을 하였습니다. 그 순종을 통하여 온전한 문제 해결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말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실행되지 않습니다. 목적이 이룰 수 없습니다. 아무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음의 광야를 하나님의 은혜로 인도함을 받아 바란 광야 가데스에 도착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한 총 거리의 8-90%을 완료한 것입니다. 이제 몇 발자국만 더 가면 그토록 꿈에도 그리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눈으로 목격하면서 체험하면서 한걸음 한걸음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부푼 가슴으로 가나안 땅을 그리워하며 각지파별로 한병씩 12명을 뽑아 정탐을 했습니다. 12정탐꾼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의 거민들을 보고 믿음을 상실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 봤자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믿음대로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 . .
이 사람들이 믿음이 전혀 없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홍해를 기적으로 건넌 다음 모세, 아론, 미리암과 함께 여호와의 이름을 높여 춤을 추며 찬양한 사람들입니다. 광야의 만나생활 구름기둥은 은총을 함께 받았던 자들입니다.
여러분! 믿음대로 됩니다. 믿으면 되고 안 믿으면 안되고 작게 믿으면 작게 되고 크게 믿으면 크게 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믿고, 바르게 행동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임 경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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