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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하자 (행 26: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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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독일의 강제노동 수용소벽에 이런 글이 씌어 있었다고 합니다. “나는 햇빛이 비취지 않을 때에도 태양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나는 사랑을 느낄 수 없을 때에도 사랑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나는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에도 그분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다.”이는 절망하고 싶고 모든 것을 닫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상황이 악해져 있을 때 거기에서 결론을 내리지 않고 그 다음의 자리로 자신을 옮겨가는 삶을 보여주는 자리를 말합니다. 즉 자신의 삶을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고 깊이 새겨 두고 싶은 심정의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나를 깊이 새겨두고 싶은 자리는 세상의 물질적 개념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며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라도 그 가치가 변함없이 지속되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주인공 바울은 자신의 삶을 변호하기를 “오늘 내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는 바울보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외치는 말입니다. 바울 앞에 있는 사람들은 바울을 도울 수도 있는 권세를 가졌을 뿐아니라 바울을 즉결심판에서 처형시킬 수도 있는 사람들입니다. 즉 자신과는 비교가 되지 않은 사람들 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향해 자신의 지금 모습이 더 자랑스럽다고 외친 것입니다. 성도가 가진 신앙의 삶은 깊이 새겨 두고 싶은 자리에 자신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유는 자신의 삶이 대대로 물려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였으나 하나님은 온 인류 속에 예수님을 새겨 두었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자랑스럽게 세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1.자랑해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5)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나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경쟁사회라고 말하고 전쟁마당과도 같다고 합니다. 이는 세상을 살아가는 자리가 그렇게 순탄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나를 대접해 주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입니다. 남을 이겨야만 영광스런 자리가 보장되고,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임을 당한다고 한다면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불안함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자신의 자랑스러움을 변호하고 있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만행이며 삶을 포기하는 자리하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지금 처해있는 자리는 말 한마디를 실수해도 생명이 위태로운 그런자리 입니다. 그곳에서 거침없이 쏟아내는 바울의 말을 듣던 사람들이 놀란 나머지 정신나간 미친 사람이라고 하며 측은히 여기는 상황으로 까지 바뀌면서 바울의 삶이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바울이 힘있게 외친 것은 자신은 미친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것이며 나처럼 죄수가 되는 것외에는 나에게 있는 것을 당신들에게 주고 싶은 마음 밖에 없다고 한 것입니다. 자신을 인정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을 주고 싶어하는 이 마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그 주고 싶은 것이 바로 예수라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 때문에 자신에게 있던 모든 좋은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겼다고 했으며 지나간 일들에 전혀 미련을 갖고 싶지 않을 만큼 지금 자신이 믿는 예수가 최고의 자랑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고소를 당할만한 죄목거리도 없는데 그 예수 때문에 결박을 당했는데도 그 예수를 자랑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현대는 전문가가 대접받는 사회입니다. 그것은 자기 영역에 대한 확신과 그 삶을 자랑스럽게 여김을 말합니다. 성도는 예수가 자랑거리가 될 때 대접받는 것입니다.

2.증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26)-“한편 구석에서 행한 일이 아니로소이다”

증인의 삶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분명한 사실은 은밀하게 행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며 반드시 진실은 밝혀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증인에게는 세상을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바르게 판단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축복의 근원이 되신 분이었지만 그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공개가 되지 않은 비밀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비밀을 온 세상에 공개하신 자리가 바로 예수의 자리이며 그 예수가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을 참람하다 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입니다. 정말 예수가 하나님의 비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의 죽음은 너무나 모순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을 이길 수 있다는 결론이 내려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또 다시 하나님의 비밀은 예수를 부활시키심으로 온 세상에 공포된 것인데 그것이 한편구석에서 은밀히 행해진 것이 아니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박당할 죄목도 없는 바울이 억울하다고 도움을 요청하기 보다는 자신이 그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힘 있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는 연약한 나의 삶 속에 성령으로 함께 하시면서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 세상에서 증인의 삶을 살게 하여 세상을 바르게 세우게 하는 것입니다. 그 바울을 통해서 성경을 기록하게 했다면 지금 우리는 닫혀진 세상을 열어가도 어둠속에 빛을 비추는 자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비밀을 맡은 증인의 자리는 인간의 자라가 아니고 하나님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가 세상을 힘있게 살게 하는 것이요 이것이 자신을 자랑스럽게 세우는 자리인 것입니다.

3.하나님께 소원을 두며 사는 것입니다.(29)-“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

패트릭 헨리라는 사람은 그가 남긴 유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 모든 재산을 가족들에게 다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주고 싶은 것이 하나 데 있다, 그것은 기독교 신앙이다. 그들에게 그것이 있다면 내가 한푼도 남겨 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들은 부자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것이 없다면 내가 온 세상을 다 물려 준다 할지라고 그들은 가난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가끔 연인들의 사랑하는 자리에는 상대방을 차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어도 자신만은 상대방을 차지할 때 가장 큰 부자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쉽게 시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처럼 더 큰 세상이 없으며 자신의 삶을 부요케 하는 자라는 없는 것입니다. 이 자리를 발견한 바울은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하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빌3:8-9)”라고 자랑스럽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그곳에 집중하여 쏟아 부어도 부끄럽지도 않고 자신의 삶을 영광스럽고 가장 명예롭게 해주는 자리는 하나님께 소원을 두며 사는 삶인 것입니다. 자기 인생을 걸 수 있는 것이 세상에 무엇이 있습니까? 링컨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면 언제라도 제 목숨까지 내어 드릴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본문의 바울은 그 하나님께 소원을 두고 산 것이 참으로 자랑스러웠으며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이 하나님을 미고 사는 것을 원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소원을 두는 자리가 자랑스럽습니다.

결  론

바울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가 자신을 최고로 영광스럽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서 자신을 자랑스럽게 세우는 성도로 살아갑시다.
(공재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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