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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세워주시기만 하면(행 7:2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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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진실은 모든 것을 내려 놓았을 때에 비로소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옷을 입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을 사는 유형은 옷을 입은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옷이 사람을 세운다고 할 수 있고 때로는 사람을 새롭게 만든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람을 평가할 때 그가 입고 있는 옷을 보고 먼저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이 갑자기 나에게 닥친 것입니다. 그것은 옷을 갈아 입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옷이 나에게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때 옷을 입는다는 것이 무엇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옷이란 자신에게 맞는 최상의 삶을 말합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옷을 입었고 또 옷을 입는다고 생각했는데 그 옷을 갈아입지 못하면 내가 옷을 입은 것이 아니고 옷이 나에게 걸쳐 있었을 뿐입니다. 나 자신이 옷을 입는다는 사실을 알 때에 그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 본문에 나오는 모세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애굽나라 바로 왕궁에서 공주의 아들의 옷을 입었는데 어느날 그곳에서 쫓겨나게 되어 도망가는 사람이 된것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해야 할일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할일이 없는 도망자가 되어 산에서 짐승을 치는자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이 입어야 할 옷이 아니고 단순히 걸쳐져 있는 옷으로 바뀐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이십니까? 벌거벗은 인간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은 본문에서 도망자 모세에게 새로운 옷을 입게 하시고 그를 세워 주시는 자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세워주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1. 나의 삶이 하나님의 계획속에 있음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29, 33).

  잠언서에 인간 삶을 지혜롭게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16:9)"고 했습니다. 더 신비한 지혜는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16:4)"는 자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 삶이 하나님의 계획속에 있다는 것을 믿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계획속에 있음을 믿고 살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좋을 때도 있는가 하면 고통속에 빠뜨려 질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그 고통이 나를 괴롭히는 도구가 아니고 그것이 나를 위한 계획을 이루게 하는 과정이 된다는 것을 깨달을 때 즉 하나님의 계획속에 있음을 알 때 그 고통의 자리에서 자기 관리의 지혜를 나타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무가 어릴 때에는 주변의 잡초가 고통스럽고 큰 장애물처럼 느껴져서 저 잡초만 없으면 빨리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잡초에 붙들려 있지 말고 나 자신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되어 숲을 이루고 나면 그 잡초들은 누가 뽑아내지 않아도 저절로 사라지는 것이 자연 법칙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잡초가 있어서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이것을 이겨 내면서 자신의 미래를 향해 자라갈 수 있을 때 이 잡초도 하나님의 계획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되고 오히려 자신에게 감사의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자신이 실수를 해서 도망을 칠 수 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은 그 사건을 모세를 위한 계획속에 포함시켜 그를 세워주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피처의 광야가 아니고 훗날 이스라엘민족을 광야로 인도하기 위해 그 삶을 경험케 한 것이라면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이 아닙니까? 잡초같은 광야가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결코 우연이 아니기에 아무렇게나 살지 말고 하나님의 계획속에 나의 삶이 있음을 믿고 살아갑시다.

2. 나를 향한 하나님의 때가 있음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30).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하늘의 복된 자리가 있는데 그것은 나를 위한 하나님의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가 있기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메시지는 소망의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때의 의미를 잘못인식하므로 자신을 소망의 자리에 세우지 못하고 쉽게 결론을 내려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때란 나 자신이 존재하는 모든 시간 더 나아가서 나는 가고 없을지라도 역사가 진행되는 모든 시간속에서 찾아 주시는 기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믿는 성도에게 주시는 삶의 의미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새로운 시작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는 나의 세계를 회복시켜 주시는 영원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영원한 세계란 어쩔 수 없어서 일어서는 것이 아니고 신선함을 열어주시는 시간입니다. 이 축복을 주시고 있는 자리가 본문의 사건입니다. 본문에 보면「사십년이 차매」라고 하는 분명한 때를 기술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십년이라는 시간은 인간 모세에게는 어떤 미래도 있을 수 없었고,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자위하면서 이 모습이 가장 적합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때를 대변해 주는 말씀입니다. 이유는 모세의 나이 팔십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신선함의 축복 곧 새로운 시작으로 복된 인생을 열어가게 하려고 새로운 옷을 입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때라는 것입니다. 모세의 위대함은 그 하나님의 때 속에서 절망의 늪속에 빠져 있는 자신을 일으켜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하나님의 때가 있음을 믿고 세상을 살아갑시다(사55:6).

3. 도망자를 찾아 세워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35-36).

  사람은 가끔 훌쩍 세상을 떠나고 싶고, 아무도 모르는데 가서 살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여기는 무엇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세상을 없이 사는 자리도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이 계획했던 것에 차질이 생기면서 자기속에 의욕을 상실 했을 때 일어나는 심리적 현상입니다. 좋은 것이 좋게 보이지도 않고 같이 웃어 주기는 하지만 웃음을 소유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활을 한 사람이 본문에 소개된 모세라는 사람입니다. 모세는 40년전에 높은 이상을 품고 자기를 통해 민족의 아픔을 청산하여 새로운 세계의 비젼을 열어 보이기 위하여 남다른 열정을 쏟았는데 그것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버린것입니다. 그것도 자기 동족의 한 사람때문에 자신의 계획이 탄로가 나면서 반역자라는 누명을 쓰고 도망자가 된 것입니다. 그 세월이 40년이 되었고 40년 동안 자기 자신에게는 그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이 모든 사람에게서 도망치고 싶은 삶으로만 살아온 것입니다. 이 모세의 자리가 지금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대변해 주는 것입니다. 이런 도망자 모세를 하나님이 찾아주셔서 그에게 새로운 옷을 입혀 주시면서 40년전에 이루어 보겠다고 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세워주신 것입니다. 이 도망자 모세는 이것까지도 거부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했느뇨 나여호와가 아니뇨"라고 하셨습니다. 약한 나를 찾아 세워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새로운 삶을 열어가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결  론

  하나님을 기대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은 결코 나를 버리지 않으시는 미쁘신 하나님이십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음을 믿고 하나님의 때가 되면 나에게도 신선한 삶이 있다는 것과 그 하나님이 나를 세워 주심을 믿고 최선의 삶으로 살아갑시다.  (공재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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