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당신의 사명을 회복하라! (느 13:28-31)

  • 잡초 잡초
  • 370
  • 0

첨부 1


어떤 아주머니가 오랜 노력 끝에 운전면허를 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큰 마음 먹고 중고차를 뽑아 차의 뒷면에 ‘초보운전’이라고 붙이고 다니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차가 많은 골목에서 운전 미숙으로 시동이 꺼지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꺼진 시동으로 당황해하고 있는데, 뒤 따라 오던 남자 운전수가 열을 받았던지 “야, 집에 가서 밥이나 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주머니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운전을 안 한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다시는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아주 급한 상황이라서 결국 차를 몰고 나갔습니다.  이 아주머니의 차 뒤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밥하러 가는 중임”

여러분, 생각이 나를 바꿉니다.  자신을 좁은 생각의 틀 속에 가두어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보다 적극적인 생각으로 당신 앞에 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생각에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느헤미야 선지자가 하나님 앞에 드린 기도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여러분, 여러분은 살아오면서 이런 절박한 삶의 기도를 드려본 적이 있었습니까? 
“나의 하나님!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시옵소서”  느헤미야 선지자가 드렸던 이 기도가 여러분의 삶에도 그대로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즐겁고 의욕적인 사람을 붙들고 일하십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다가 여러분의 영혼에 불이 붙어서 기쁨의 탄성이 터져나오기를 바랍니다.  인생에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 온 여러분들은 모두가 다 보이지 않는 손길에 이끌려 인도함을 받아 왔습니다.  그 보이지 않는 손길은 바로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시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내 자녀들을 기억하사 복을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몰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아십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미래의 소망이 끊어지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실, 성공이나 행복이라는 것도 소질보다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아무리 소질이 많고 재능이 좋아도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행복할 수도 없고, 성공할 수도 없습니다.  예배의 핵심, 신앙의 핵심은 다름 아닌 마음의 자세입니다.  자신을 너무 심하게 취급하지 마십시오.  기가 막히고 분하고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할지라도 자신을 학대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아끼던 재산의 일부가 도망갔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의지하던 사람이 배신을 하고 인간관계가 엉망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감당할 수 없는 어떤 한계 속에 짓눌렸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여러분 자신을 심하게 취급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고 극복하리라!”는 이 마음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극복하리라!”는 이 믿음만 있으면 우리는 더 크고 위대한 일을 이루어 갈 수가 있습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기억하십오.  변화만이 살길입니다.  우리는 오늘 왜 이곳에 왔습니까?  변하러 온 겁니다.  변하면 살 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정말로 변화만이 살길임을 믿으십니까?

어느 단체나 어느 조직을 보더라도 변화에 앞장을 서는 사람은 그 무리 가운데 10%입니다.  하나님은 놀랍게도 한 시대, 한 역사가 바뀔 때에 변화의 흐름을 감지하고 그 변화를 따라가는 10%의 사람들을 붙들고 새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어도, 아무리 성경을 달달 외워도, 아무리 기도를 잘해도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변화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하고, 10%의 무리 속에 들지 못하면 종교꾼이 되고 맙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이 종교꾼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찾아볼 수 없는 종교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종교꾼들을 통해서는 아무 일도 못합니다.  이것이 지금 이 시대가 갖고 있는 아픔입니다.  의인 10명이 있으면 그 도성은 살아납니다.  의인 10명이 있으면 그 시대는 살아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지금 나는 통제 받기를 싫어하고 변화를 싫어한다고 하지만 지금 여러분이 앉은 자리에 불행하게도 물이 뚝뚝 떨어진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누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바로 다른 자리로 옮겨가고 말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변화는 고난과 고통 가운데서는 스스로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고통 가운데 있을 때는 변화는 스스로 주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내 인생에서 당하는 모든 고통이나 고난이라고 하는 것을 저주라든가 징벌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것들은 하나님이 더 나은 장래, 더 나은 앞날을 만들기 위해서 내게 주신 사랑의 채찍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표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위대한 변화의 흐름에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내 생활의 방식이 어떠했든 과거 지향적인 본능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오늘 다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뒤엣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서 부르는 부름의 상을 향해서 깨어 버리십시오.  변화를 거부하는 이 마음이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질병입니다.  그래서 변화를 보면 대개 다음과 같은 반응의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무조건 거부하는 단계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무관심의 단계입니다.
세 번째 단계에 나타나는 것이 탐색의 단계입니다.  처음에는 눈치를 보다가 모든 사람들이 움직이고나니까 그제서야 움직이게 되는 단계입니다.  소극적으로 따라가는 단계입니다.
네 번째 단계는 흐름을 본 사람들은 따라가지만 흐름을 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따라가지 않거나 못 따라갑니다.
다섯 번째 단계는 분리되고 맙니다.  흐름을 따라간 사람들은 시대에 어떤 흐름을 만들고, 흐름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시대의 낙오자가 되고 맙니다.  배척의 무리와 헌신의 무리로 갈라지고 맙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의 감화와 감동과 은혜를 힘입고 하나님이 일으키는 새로운 변화의 역사에 앞장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변화를 주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변화는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사명에는 언제나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이 있습니다.  바른 사명을 가진 사람 속에는 언제나 변화의 물결이 일어납니다.  변화의 역사도 일어납니다.  사명을 붙든 사람 속에는 감당할 수 있는 변화의 힘도 주십니다.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란,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왜요?  이 땅에 영원한 안전은 없고 다만 변화의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에 미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위를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보입니까?  삶의 모든 표현은 대개 시각에서 옵니다.  따라서 어떤 사물의 한 곳만 본다면 그것밖에 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의 생각도 완전할 수가 없습니다.  인생을 가장 답답하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의 시각이 옳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부부싸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에게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자신의 시각만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시각은 각각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라보는 위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차이점을 통해서 위대한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고 불평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바라보는 시각과 같지 않다고 배척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시각의 차이를 통해서 당신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시각의 싹쓸이가 독재자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 시각 싹쓸이의 독재자들이 나타나면 사회가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는 이 시각의 싹쓸이가 지금 우리 나라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멍청하게 만들고,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를 정말 고통스럽게 만들고, 나를 제한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나의 시각일 뿐입니다.

인생에 커다란 변화란 결국 시각의 전환에서 옵니다.  과거의 회상시각이 아닌 미래를 창조하는 사명의 시각으로 자신의 시각을 전환한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시각의 종입니다.  자기가 보는 것만큼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보는 것만큼 말하기 때문입니다.  보는 것만큼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왭니까?  그 사람의 시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보는 시각을 통합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위대한 지도자란 누구입니까?  시각을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우리 정치가 제일 힘든 이유가 무엇입니까?  시각을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나와 같지 않으면 전부가 원수입니다.  내 시각과 같지 않으면 무조건 무너뜨려야 할 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문제라는 단어를 씁니다.  그러나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문제를 보는 시각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변화를 얻기 위해서 왔습니다.  우리가 달라지기 위해서 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문제를 보는 시각을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고 바꿀 수 있다고 하면 돌아가는 길에 문제는 변할 것입니다.  내가 문제를 보는 시각을 바꿀 수만 있다고 하면 문제는 항상 변합니다.  과거에 일어난 어떤 문제를 과거의 시각으로 풀려고 하면 절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그 일은 오늘의 시각으로 풀어야 풀립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 이상으로 믿고 나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을 붙잡고 몸부림치는 존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미래의 꿈을 붙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생각이 오늘 여러분을 이 자리에 앉게 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지금 만들어 내시기 바랍니다.
지도자의 질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머니든, 아버지든, 국가의 지도자이든, 교회의 지도자이든지 지도자가 질병에 걸리면 큰일입니다.  그 질병을 이 시간 한 번 스스로 진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질병은 무변화라는 질병입니다.
두 번째 질병은 상상력이 뒤떨어지는 질병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 하면 놀라운 상상력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나를 돕기 시작하셨다! 이제 하나님이 뒤집기를 하실 때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신다!”면서 뛸 듯이 기쁨이 샘솟습니다.  이것이 영적 예배의 특징입니다.
세 번째 정력과 열정의 질병입니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열정이 없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아무리 재능이 있고 기회가 와도 열정이 없는 사람은 어떠한 일도 못합니다.  하나님은 재능이 많은 성도가 아니라 정력과 열정이 넘쳐흐르는 성도를 원하십니다.
네 번째 핑계와 변명의 질병입니다.  자꾸 핑계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사람은 오해할 권리가 있고 나는 해명할 의무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만이 내가 가는 길을 아신다는 사실을 믿고 나아갈 뿐입니다.
다섯 번째 질병은 불끈불끈 화를 잘 내는 질병입니다.  어떤 일에든지 쉽게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지금 심각한 영적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화를 내지 않습니다.
여섯 번째는 모험하지 않으려는 질병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강하고 담대하게 모험하시기 바랍니다.
일곱 번째는 안일함을 즐기려는 질병입니다.  안전지대라고 하는 안일함 속에서 깨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땅, 가나안에 가려면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박차고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여덟 번째 배짱이 없는 것입니다.
아홉 번째 불안하고 자기 방어적인 질병입니다.  자꾸 자신을 방어하기만 합니다.
열 번째는 유연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굳어버렸습니다.
열한번째는 협동정신이 부족해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열두 번째는 절대로 변화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힘입고 조직 내에서 변화를 주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가면 변화가 일어난다!  그 조직의 변화를 유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조직 내에 변화를 일으키시기를 바랍니다.  꿈은 인생의 틀을 바꾸어 놓습니다.  어느 날인가 어느 시간인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다가, 예배하다가, 찬양하다가 내 속에 꿈이 나타나면 내 인생의 틀이 그때부터 바뀌기 시작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이 틀림없이 바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장래를 예견할 수 있은 유일한 길은 장래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의 몫이며 고유 영역입니다.  꿈과 사명은 보통 사람들로 하여금 특별한 일을 해내게 만들어냅니다.  지도자는 따르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가지 않으려는 그곳으로 그들을 데려다 주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변화의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를 따르라!  상황에 굴복하는 사람들이 아닌 상황을 극복하는 사람들입니다.  삶의 길잡이인 비전과 사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지금 이 시대는 이런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다가 내 속에 나타나는 사명된 영감 속에 펄펄 뛰는 삶의 감사와 감격이 가득 차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들에 앞장서 보십시오.  왜 세상의 일에는 앞장서기를 좋아하면서 하나님의 일은 싫어하십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동업자인데 하나님의 일에 우리가 앞장선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도우시겠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명함의 직함들은 사실 다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어느 순간에 하나님이 불어 버리면 그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미래를 창출하며 사람을 키워내는 사람이 되십시오.  어떻게 하든지 나 때문에 키워진 사람이 있다!  나 때문에 변화된 사람이 있다!  이것처럼 귀한 보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어디를 가든지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그런 신뢰할 수 있는 진실한 사람이 되려고 발버둥쳐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면 세우는 자의 수고는 헛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지킴이 다 헛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 가운데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  이 말씀을 마음 깊은 곳에 새겨두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손길에 잡히려는 몸부림을 치시기 바랍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내게 주신 사명을 선언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재능이 있는 사람보다 귀합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기회가 있는 사람보다 중요합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지식이 있는 사람보다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재능 있는 사람이라든가 지식이 있는 사람보다도 사명이 있는 사람 속에서 역사 하십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교회 부흥이라는 사명 앞에 서 있습니다.  아시는 대로 우리 교회에는 넉넉한 재벌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연약한 자를 들어 역사를 일으키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명을 붙잡기만 한다면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일으키실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명의 힘은 저항의 힘보다 훨씬 강합니다.  사명의 힘은 고난의 힘보다 훨씬 강합니다.

어느 바닷가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지나가던 사람이 아이들에게 물었답니다.  “애들아, 너희들 뭐하니?”  “보면 몰라요? 물장난하고 있잖아요.”라고 한 아이가 대답하더랍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아이에게 또 물었습니다.  “너는 뭐하니?”  “보면 몰라요 모래집 짓고 있잖아요”  다른 아이에게 또 물었습니다.  “너는 무엇하니?”  “예, 저는 새 도시를 만들고 있어요! 아직 이 땅에 나타나지 않은 내가 만들어야하는 새 도시를 만들고 있어요. 앞으로 제가 이룩할 거예요. 제가 만들어야 할 새 나라를 만들고 있어요.”  “누가 맡겼지?”  “하나님이 제게 준 사명이에요”  그 아이는 훗날 나라를 이끌어 가는 대통령이 됐다고 합니다.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사명을 가지고 하는 사람과 사명 없이 하는 사람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는 일은 사명입니다.  “나는 사명적 존재다!”라고 하는 자기 사명선언이 기적을 일으키는 겁니다.  사명이 없는 사람은 너절한 것들이 판을 칩니다.  너절한 것들이 소중한 시간을 다 빼앗고 맙니다.  그러나 사명에 사로잡힌 사람은 질서가 있습니다.  소중한 것들로만 가득차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사명을 가질 만큼 중요한 인물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하나님은 중요하지 않은 생명을 이 땅에 보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한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너무너무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런가 하면, “사명에는 고통이 따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사명에는 고통이 따르는 것입니까?  인간의 행복이라고 하는 것, 기쁨이라고 하는 것, 보람이라고 하는 것은 사명을 수행하는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보너스입니다.  따라서 사명은 절대로 고통이 아닙니다.  사명은 보람입니다.  사명은 삶의 의미입니다.  사명은 인생을 바꾸어 놓습니다.  사명이 위대한 삶을 만듭니다.  그래서 사명은 재능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여러분,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위대하게 태어난 사람은 이 땅에 아무도 없습니다.  어느 날인가 그 생명 속에 하나님이 주신 위대한 사명을 깨닫는 순간 위대한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누가 더 위대한 삶을 살았느냐?  위대한 삶의 사명을 끝까지 실행하는 사람은 위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사명 없이 너절한 삶을 산 사람들은 너절하게 살고 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지금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위해 재물을 모으고 있습니까?  인생이 무엇입니까?  인생이 속도입니까?  축적입니까?  인생은 속도보다도, 축적보다도 더 중요한 방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고, 더 중요한 사명이 있을 뿐입니다.  행복이나 성공은 삶의 사명의 실현을 통해서 오는 보너스일 뿐입니다.  이런 함정들에 근심하거나 빠지지 마십시오.  무능하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현재의 상황과 환경과 어려움 때문에 사명을 이루지 못할 거라고 미리 판단하지도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세도 바꾸어 놓으십니다. 사무엘도 바꾸어 놓으십니다.  사울도 바꾸어 놓으십니다.  다윗도 바꾸어 놓으십니다.

물론 사명을 가진 사람도 때로는 마음에 혼란이 올 수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나를 붙드셨을까? 정말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마음속에 혼란이 있습니다.  두려움도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때로는 조바심도 있고 답답할 때도 많습니다.  왜 이렇게 어려울까? 그래서 나는 실격자다.  나는 할 수 없는 사람인데 괜히 혼자 나섰나보다.  이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표현입니다.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근심하지 마십시오.  오늘 하늘의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십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셔서 내게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한 뜻을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다만 우리의 할 일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만을 바라보면 됩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붙잡기만 하면 됩니다.  이 작은 생명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해 달라고 나를 하나님의 맡기시면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잃어버렸거나 생활 속에 묻어두었던 사명을 다시 회복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시옵소서”
느헤미야의 이 기도는 바로 저와 여러분의 기도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복 받을 짓을 해야 합니다.  변해야 합니다.  사명을 붙잡아야 합니다.
이 시간 이 작은 생명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다.  다시금 내게 주신 주의 사명을 회복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다.
“나의 하나님!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시옵소서”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추천인 1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