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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노아 (창 6: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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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9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0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평소의 언행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사람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를 보고 그 사람의 됨됨이와 인격과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이 평소에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믿음의 수준을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11:6을 보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우기 전에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거를 받았습니다(히 11:5). 짐작하건대 그의 평소의 언행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처럼 우리의 평소의 언행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대체로 믿음이 적은 사람들은 의심이 많습니다. 무슨 말을 들어도 의심부터 합니다. 또 이런 사람들은 염려가 많고 두려움이 많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세상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더구나 믿는 사람들은 죽으면 천국으로 갈 사람들인데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믿음이 적은 사람들은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날까 봐 괜히 끌어다가 걱정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얼굴빛이 어둡습니다. 또 믿음이 적은 사람들은 죄를 이기지 못합니다. 마귀를 이기지 못하고, 환난과 시험을 이기지 못합니다. 원망과 불평이 많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듣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믿음이 적어 책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큰 사람들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100% 믿습니다. 그리고 모든 염려는 하나님께 맡기고 삽니다. 이런 분들은 두려움이 없고 담대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좋은 것을 준비해놓고 계실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내 생각보다 더 좋게 해주실 것이다.”라고 믿습니다. 따라서 이분들의 얼굴은 항상 밝습니다. 그 얼굴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고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믿음이 큰 사람들은 아무리 주변 상황이 나빠도 긍정적인 말을 합니다. 죄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환난 시험을 이기며 항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살기 때문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 등장하는 백부장을 보면, 그의 하인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하인을 고쳐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직접 가시겠다는 말씀을 전해들은 백부장은 벗들을 보내어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눅 7:6~8).

이처럼 “말씀만 하옵소서.”라고 말하는 백부장은 대단히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기이히 여기시며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라고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십니다(눅 7:9).
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만 대어도 나으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이 군중들에게 둘러싸여 길을 가던 예수님께 나아가 예수님의 옷가에 손을 댔을 때 그 즉시로 혈루증이 그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보시고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8:48). 이처럼 믿음이 큰 사람들은 믿음으로 인해 큰 기적을 체험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산 믿음의 사람인 노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노아가 살던 시대는 윤리 도덕이 파괴된 극도로 타락한 사회였습니다. 본문 5~7, 11~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이 얼마나 악해졌는지, 생각하는 것조차도 악한 생각뿐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여러 번 언급된 단어인 ‘패괴’는 부서지고 무너진 것을 말하고, ‘강포’는 우악스럽고 포악함을 뜻합니다. 이처럼 더 이상 인간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악으로 가득 찬 사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 쓸어버리시겠다고 말씀하셨을까요. 그러나 노아는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산 사람입니다.

본문 8~9절을 보면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악하고 타락한 세상에서 바르게 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성령의 충만한 은혜 가운데 살면 노아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아갈 줄 믿습니다. 만일 노아가 아니었다면 우리도 이 자리에 없을 것이고 이 지구상에서 모든 인류가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노아의 삶은?

1.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가장 사랑했습니다. 본문 9절에서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했듯이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가장 보고 싶어하시는 모습이 바로 이 모습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관계가 중요합니다. 먼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좋은 관계인지 나쁜 관계인지, 서먹한 관계인지 친밀한 관계인지가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부부의 관계, 형제들과의 관계, 성도들과의 관계, 목회자와의 관계에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사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똑똑하고 잘났지만 누구와도 관계가 좋지 않은 고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가장 좋은 관계는 서로 사랑하는 관계입니다. 부부가 서로 끔찍이 사랑하며, 고부간에, 친구 간에, 목회자와 성도 간에 서로 사랑하며 사는 관계가 가장 좋은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좋은 관계를 가지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막 12:30).

호세아 6:6을 보면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라고 말씀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보다 더 원하시는 것은 우리 자신들 속에 사랑이 많아서 마음이 인자하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갖는 그런 사랑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번제를 드리는 것도 귀하지만, 이보다도 하나님을 더 아는 것을 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아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입니까.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시며,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해주시고 신실하시며,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그 하나님을 알게 되면 누구나 그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사랑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사신우상을 찾아가고 어리석은 짓을 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더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려면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부부도 한해에 한번 만난다면 서로 잘 알 수 없습니다. 날마다 같이 먹고 자고 살아가는 동안 서로 잘 알아가듯이, 여러분이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으로 끝난다면 어떻게 그 사람이 하나님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매일 새벽과 수요일에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금요철야와 성경공부 등 날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하나님을 더 잘 알 게 될 것입니다.

또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한마디의 기도로 어떻게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습니까. 두 시간, 세 시간 때로는 철야기도까지 하면서 깊은 기도를 하다 보면 은혜도 받고 응답도 받고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되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깊이 알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시간도 많이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을 점점 더 알아가며,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7을 보면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홍수를 본 적이 없는 노아에게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이 사람들을 심판하여 쓸어버리겠다고 말씀하시고, 배를 본 적도 없는 그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명하셨으니 도무지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구나 방주를 만드는데 120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습니다. 노아가 산에서 방주를 만들 때 많은 사람이 구경삼아 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으로 미친 사람이라고 한마디씩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사람들이 미친 사람으로 놀리든지 말든지 하나님이 홍수로 심판하실 때 구원받기 위해 방주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을 것입니다. 특히 큰 방주를 만드느라고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재료며, 노동 인력이며 많은 돈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이 일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핑계도 대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습니다.

3. 마음을 다해 말씀대로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했다는 말씀이 성경에 여러 번 나옵니다. 창세기 6:22을 보면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라고 했고, 7:5과 9절에서도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더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노아는 자기 생각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했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지체하거나 망설이지 말고 무조건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하셨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하나 무조건 떠났습니다(히 11:8). 이 일이 어디 그리 쉽습니까. 아브라함은 날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떠났습니다.

창세기 22장을 보면,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에 낳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 이삭을 통해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와 같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그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도무지 이성적인 판단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장작과 횃불을 들고 이삭과 함께 모리아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도 무조건 순종부터 해야 합니다. 순종하고 나면 이해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순종하고 원치 않는 것은 순종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부분적으로 순종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 봉사도 잘하고 감사도 잘하는 사람이 십일조는 하기 싫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온전치 못한 쭉정이 신자라고 부릅니다.

순종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정비례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수록 기쁨으로 순종하고 무조건 순종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4:15, 21, 23에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4.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홍수가 끝나고 노아가 방주에서 나왔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는 것을 보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 드릴 때 더욱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노아 시대보다 더 죄악이 관영하고 악한 시대입니다. 그러나 오늘도 우리가 이렇게 평안하게 사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9에서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허물이 크고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아 믿음이 점점 더 성장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된다면, 더 나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려고 애를 쓰는 성도가 된다면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이 노아와 에녹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살아가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정 필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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