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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족보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창 1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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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보고자 하는 말씀은 홍수 후에 나타난 노아의 아들들의 계보입니다. 오늘날 일부 성도들 중에는 성경에서 족보가 등장하면 따분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족보를 보면서 따분하게 여기는 이유는 족보 기록의 방식이 흔히 ‘누가 언제 누구를 낳고 낳은 후에 얼마 동안 살다가 죽었더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다가 창세기 족보는 오늘날 사람들과는 달리 상당히 오래 살았다는 사실 때문에 사람들이 그 진실성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흔히 족보를 보게 되면, 흔히 쓰는 말로 대충대충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족보에 대한 사람들의 이러하다는 점은 무엇보다도 우리를 염려스럽게 합니다.  염려스럽게 한다는 것은 성경에서 족보가 ‘누가 언제 누구를 낳고 낳은 후에 얼마 동안 살다가 죽었더라’로 되어 있다는 것 때문에 일부에서는 족보가 별로 중요한 것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사람들이 족보를 대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어떤 부분은 중요하고 어떤 부분은 덜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식은 더욱더 발전하여 성경에서 어떤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어떤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되기에 이릅니다. 그러한 인식의 결과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의 신적 권위에 손상을 입힘으로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려는 자들에게 유익을 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 한마디로 쓸모없는 말씀을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다시 말하면 덜 중요한 것을 주실 분이 아니시라는 말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분명한 사실을 믿음으로 오늘 본문에 나타난 족보를 대해야 합니다.

그러면 본장의 구조를 살펴봅시다.  10:1절 서론이며, 10:2-5절은 야벳의 자손들, 그리고 10:6-20절까지는 함의 자손들,  그리고 10:21-31절은 셈의 자손들, 31절은 결론입니다.  사실 우리는 본장에 나타난 셈과 함과 야벳의 아들들이 누구이고, 몇 명이었는지에 대하여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왜 그것을 몰랐느냐 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자세히 알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정작 우리의 관심사는 “족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우리는 족보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 곧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부분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일부에서 족보가 상당히 어렵게 느끼는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족보의 기록을 통하여 분명히 무엇인가를 말씀하시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단순히 성경의 어떤 내용을 암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고,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앎으로서 우리의 눈을 하나님께로 돌리게 하려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제 본장을 살펴보면 두 가지의 분명한 사실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는 함의 자손들이 주축이 되어 자행되었던 어떤 일에 대한 것을 알려주며, 다른 하나는 홍수 후에 노아의 아들들에게서 땅의 열국 백성이 나뉘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본장의 핵심은 ‘홍수 후에 노아의 아들들에게서 땅의 열국 백성이 나뉘었다’는 것에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자는 노아의 아들들에게서 땅의 열국 백성으로 나누어졌는데, 어떻게 하여 백성이 나누어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장이 증거 하는 이와 같은 사실에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홍수 이후 인간의 악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맺으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심으로 노아의 후손들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노아의 아들들로 인하여 땅의 열국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노아와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심으로 이루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본장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 일을 어떻게 이루셨는지 봄으로서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신 그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1. 이제 본장의 족보 이야기를 시작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는 노아로부터 시작하고자 합니다. 창세기는 1장에서 11장까지는 사실상 족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창세기 1-11장에는 다양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는 이유로서 창세기 1-11장 족보라는 사실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엄밀히 말해서 족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족보라는 기본적인 구조 속에 다양한 사건들이 중간 중간 포함되어 있는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예를 노아시대부터 보면, 창세기 5장에 보면 아담에서 노아에 이르기까지 계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5장 32절에는 “노아가 오백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고 증거 합니다. 그리고 6장-9:27절까지 홍수 심판과 관련된 사건을 기록하였습니다. 그 후 9:28-29절에 다시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 오십년을 지내었고, 향년 구백 오십세에 죽었더라”고 증거 합니다.  이것은 9:28-29절의 족보는 5:1-32절에서 나타난 족보의 종결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5장에서 9장까지의 전체적 구조가 이렇게 되어 있다는 사실은 창세기가 비록 홍수 심판과 같은 사건이 증거 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사건은 족보라는 구조 속에 포함되어 있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홍수 심판이 족보의 기록 중간에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차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처음 하나님의 백성으로 창조하셨던 사람이 아담 이후 계속 범죄하였고, 급기야 세상이 죄에 완전히 정복당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시려 하셨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노아를 비롯한 이 땅에 기식하는 모든 생명은 홍수로 끊길 뻔 하는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인하여 모든 생명이 끊길 뻔한 위기에서 노아에게 은혜를 주심으로 그를 살리셨고, 또한 구원하셨습니다.  따라서 창세기 5-9장까지의 말씀은 홍수에 핵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은혜를 주심으로 홍수로 끊길 뻔한 위기에서 노아를 구원하심에 핵심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족보가 증거 하는 것이며,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노아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족보에서 증거 됩니다.

2. 이렇게 노아를 홍수에서 구원하셨던 하나님께서 홍수 이후에 노아와 언약을 맺으십니다.  그 언약은 소위 ‘무지개 언약’으로서 창세기 9:11-13절에는 증거 하기를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무지개 언약을 통하여 모든 생물을 홍수 멸하지 아니함 곧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잊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약속 곧 이 땅에 생명을 보존하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이 언약에서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9:16)하셨습니다. 

그러면 홍수 이후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맺으신 언약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켜졌을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과연 언약을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것을 놓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만약 지켜지지 않았다면 두 가지 원인으로 이해할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언약을 지키실만한 능력이 없으시다 고 생각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언약을 지키실 만한 능력이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언약이 지켜지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처음부터 언약을 지키실만한 의도가 없는 것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께서 노아와 맺으신 언약을 지키셨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지키실만한 능력이 있음은 물론이며, 인간의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자신의 언약을 철저히 지키시는 분으로서 언약에 신실하심을 드러내는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이제 그 대답을 창세기 10장에서 족보가 대답을 합니다. 

3. 창세기 10장의 족보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1절에서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32절에서 “이들은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그 세계와 나라대로라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땅의 열국 백성이 나뉘었더라” 고 증거 합니다. 이것은 본장이 분명히 하나님께서 노아와 맺으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셨음을 증거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을 신실히 지키심으로 이 땅에 모든 생명을 보존하셨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9:7).  그리하여 이 땅에는 노아의 아들들로 인하여 후손이  퍼졌으며, 또한 그들이 나라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이 노아의 아들들에게서 땅의 열국 백성이 되었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열국 백성이 생겨난 것은 곧 하나님께서 노아와의 언약을 이루심으로 그들에게 은혜를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처음 하나님께서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하여 온 땅에 사람을 충만하게 하셨듯이 홍수로 인하여 모든 생명이 죽고 노아와 그의 가족만 남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언약을 맺으시고, 노아에게서 온 땅에 사람들이 충만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노아의 아들들에게서 이 땅에 나라와 열국 백성이 나누일 만큼 사람들이 충만하게 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노아와의 언약을 지키심으로 주신 은혜의 결과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는 곧 하나님께서 철저히 자신의 언약에 신실함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 때문에 본장 32절에는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땅의 열국 백성이 나뉘었더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은 본장에서 함의 자손과 관련된 증거들에서 더욱더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을 지키심에 대하여 만약 인간이 범죄하지 않고, 인간이 심판을 당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아서 그렇게 하셨다고 한다면 오늘날 일부에서는 인간이 범죄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언약을 지키실 수밖에 없지 않느냐 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에 신빙성을 논하자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본장에서 함의 자손들에 대한 증거들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언약을 철저하게 지키셨는지를 분명하게 증거 합니다. 성경은 함의 자손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 합니다. 함의 아들 중에 구스가 있는데, “(8)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9)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고 증거 합니다. 즉 성경은 구스의 아들 니므롯에 대하여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증거 합니다. 여기서 영걸이라는 말은 권세를 가진 자를 의미합니다. 권력을 가졌다는 말은 그가 홍수 이후 처음으로 큰 권세를 가진 왕이었음을 의미합니다. 그가 왕이었다는 사실은 본장 10절 이하에서 “그의 나라는 ...”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이에 대하여 성경에서의 이러한 표현은 권세를 잡은 니므롯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를 증거 합니다.  여기서 분명한 사실은 성경이 니므롯에 대하여 나라를 가진 권세 잡은 자로 묘사하고 있는데, 여기서 다시 또 그를 사냥꾼이라고 묘사하는 것은 그가 일반적인 왕이 아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경이 그를 특이한 사냥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니므롯의 어떤 점 때문에 특이한 사냥꾼이라고 말하는가?  그가 어떤 사냥꾼이었는가 하는 문제는 “여호와 앞에서”라는 말에 나타납니다. 그러면 “여호와 앞에서”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여호와 앞에서”라는 말을 70인역은 ‘여호와를 반대하여’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여기서 분명한 사실은 여호와 앞에서란 니므롯이 사냥꾼으로서 사냥의 대상을 하나님으로 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니므롯은 권세를 잡고 나서 자신의 권세를 이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니므롯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대적하는 그 일로 인하여 세상은 나뉘어졌으며, 그 때를 본장 25절은 셈의 후손 에벨이 벨렉을 낳을 때라고 증거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바벨탑 사건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본장에 나타난 함의 자손들의 증거는 홍수 이후에 인간의 범죄 즉 하나님을 대적하였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곧 인간이 범죄하여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장은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을 완전히 죽이시지 않고, 그들을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심으로 노아와 맺은 언약을 신실히 지키셨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5. 이렇게 본장에서 족보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거 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바로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 한 분 뿐이심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언약에 신실하시다는 사실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해서 더욱더 분명히 나타납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을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로서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자기 백성들을 저희 죄에서 건지시기 위함이었으며, 그러한 이유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곧 하나님께서 창세기 3:15절에서 말씀하신 바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혹시 세상에 살면서 불안하거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여겨질 때가 있습니까?  저도 그렇게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고 있을 때,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답게 증거 하고자 소망한다고 할지라도 누가 우리의 말을 들어 주겠습니까? 그럴 때마다 절망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목사로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절망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 언약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결코 우리의 미래가 어둡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진정한 복음의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신실하신 하나님만을 오직 믿음으로 그 분 앞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절망에서 희망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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