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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복(1) - 왜 회복을 말하는가? (렘 3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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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주일까지 저는 "성경적인 성공"이란 주제로 8차례에 걸쳐 다윗의 생애를 중심으로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오늘부터는 "회복"이란 주제로 앞으로 7회 정도에 걸쳐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성공하게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다."
우리는 보배요, 존귀한 사람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막혀 있어서 그렇습니다. 막혀 있다면, 뚫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 막힌 것을 뚫어 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넘치게 누리는 성공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공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게으르고 열정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또, 비전을 잃어버려서 그렇습니다.
막힌 관계를 뚫고, 열정과 비전을 회복하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성공합니다.
제가 성경적인 성공을 말씀드리고나서, 회복에 대한 주제를 시리즈로 말씀을 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성공에 대해 말하여도, 실제로 누리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우리 안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들을 제거하면, 성공하게 될 것입니다.

2. "회복" 이라고 말하면, 좀 불쾌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른지 모릅니다. 회복이란 단어의 의미가, 아프거나, 뭔가를 빼앗겼거나, 잃어버렸을 때 되찾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엇을 잃어버린 것도 없는데, 뭘 회복하란 말인가? 몸이 건강하지, 가정도 평안하지, 안정된 직장에서 일하고 있지, 매주일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교회에서 봉사도 하고, 평일에 이웃의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서 봉사하기도 하는데.' 라고 항변하실른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왜 회복을 말해야 하는지 세 가지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서울의 교회에서 목회할 때였습니다. 봉고차를 중고로 매입하여 수년간 잘 타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일산에 사는 교인을 심방하려고 자유로를 거쳐 일산시내로 접어 들었습니다. 신호등에서 정지했다가 출발하고자 하는 데 갑자기 차가 서 버리는 것입니다. 아찔했습니다. 참 감사한 것은, 만약 자유로에서 100km 이상 달리다가 차가 서 버리면,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만해도 끔찍합니다. 엔진오일이 다 새 버려 엔진이 붙어버린 것입니다. 수리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그 차를 폐차해버렸던 적이 있습니다.
가끔 엔진오일을 점검하였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귀찮아서 점검하지 않았습니다. 그 전부터 엔진오일이 새고 있었음에 분명합니다만, 제가 거기에 무관심했습니다. 자동차를 주차하고 차를 뺄 때, 바닥을 잘 관찰했다면, 이런 손실은 없었을 것입니다.
사소하고 작은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지만, 소홀히 하면 대형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해 소홀히 합니다.
그냥 주일예배 드리고, 십일조 생활하면 괜찮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분들은 겉으로는 아무 문제없는 듯이 보이지만, 속으로는 곪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요한계시록 3장을 보면, 주님께서 사데 교회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셨습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 우리가 잘 쓰는 말로, 유명무실입니다.
또,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평가는 이렇습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이 두 교회의 공통점은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나, 실제는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혹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회복을 말합니까?
생각보다 훨씬 더 절실하게 우리에게 회복이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회복 시리즈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잘 점검해보는 기회로 삼으면 영적 부흥과 은혜가 있게 될 것입니다.
여기 나무 물통의 그림을 보세요. 길이가 다른 널빤지로 만든 물통입니다.
건강, 기도, 예배, 전도, 말씀 묵상, 봉사, 교제, 훈련, 열정, 사랑 등의 널빤지입니다.
한 널빤지가 짧으면, 그 쪽으로 물이 다 새어 버립니다. 가장 짧은 널빤지 이상으로 물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이것을 최소치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은혜의 물을 부어주시는 역할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러나, 그 은혜의 물을 담는 그릇의 준비는 우리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그릇의 준비에서 어느 부분이 취약한지, 그 약한 부분을 회복할 때, 훨씬 더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담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약한 부분이 무엇입니까? 그 부분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왜 회복을 말합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더 많이 담고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3. 회복을 말하는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질병이 회복될 수 있습니까?
우리의 가정이 회복될 수 있습니까?
식어버린 신앙의 열정이 회복될 수 있습니까?
깨어진 인간관계가 회복될 수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의 상처가 치유받고 회복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의사로부터 "이 병은 의술로는 고칠 수 없는 병입니다." 라는 말을 들을 때, 얼마나 좌절합니까? 앞이 캄캄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회복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막9:27)

오늘 본문말씀은 남 유다가 바벨론에게 완전히 멸망하기 일년 전에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의 핵심은 나라가 망할 것이지만,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국으로 되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회복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베푸신 회복이 어떠한지 살펴봅시다.
치료와 포로에서의 귀환이 있습니다.
넘치는 평강과 성실함으로 은혜주십니다.
죄를 씻어주고 용서해주실 것입니다.
주변 나라들에 수치를 당하고 모욕당하던 이 나라가 세계 여러 나라들에게서 찬송과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제 이 도시에 복을 주겠다. 도시가 황폐하고,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던 황량한 도시에 이제 사람사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즐거워하는 소리, 기쁜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나라가 망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6절, 7절, 8절, 11절에 "내가.. 내가... 내가... 내가" 라고 합니다.
"나"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합니다. 나라가 망해서 회복이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고치지 못할 사람은 없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전 서울구치소 경비대대장이셨던 박효진 장로님이 쓰신 책입니다. 그 책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형수도 고쳐 새 사람이 되게 하셨다는 내용입니다. 사형수도 새 사람으로 만드시는데, 하나님이 못 고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고치지 못할 병은 없습니다. 화병, 신경성 질환, 마음의 상처 등. 모든 질병을 고치시는 의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없습니다.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기만 하면 풀어주십니다.

지금 한국교회에서 Again 1907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1907년 1월14일, 평양에서 일어난 영적 대부흥이 100년째 되는 2007년 1월14일까지 한국교회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는 운동입니다.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났던 1907년 1월14일, 교회의 성도들이 공적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밤을 새워 기도하며 성령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였습니다. 한 선교사는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날 성령님을 한국교회 위에 어마어마하게 쏟아부어 주셨다."
그들은 죄를 고백할 뿐 아니라 실제로 죄를 청산하였습니다. 그 다음 날, 사람들은 거리에서 서로 죄를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둑맞은 물건들이 되돌아왔다고 합니다. 평양대부흥운동은 개인의 회개로 그치지 않고 심령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사회변혁의 동인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소돔과 고모라로 불리웠던 평양이 한국의 예루살렘,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바뀌었습니다. 죄악으로 가득찬 평양이 거룩한 도시로 변화되었습니다.
한국교회여 다시 일어서라. Again 1907.
이번 캠페인으로 한국교회가 회개하고 다시 일어서서 한국사회를 새롭게 하는 데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이번 회복 시리즈의 설교를 통하여 매주일 회복의 역사, 부흥의 역사, 인생대역전의 역사, 새로운 변화의 역사가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에서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회복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회복의 역사에 순종하면 됩니다.
왜 회복을 말합니까?
우리는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우리가 회복을 말하는 세 번째 이유는, 우리가 회복되어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에 동참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을 조금만 눈여겨 살펴보면, 상처입은 사람들, 정신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들, 파괴되어 가는 가정들, 부모의 돌봄에서 방치된 아이들, 길거리를 배회하며 사고치는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교회 안에도 하나님의 회복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볼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위기의 가정에서 회복을 경험한 사람은 다른 위기의 가정을 도울 수 있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의 사랑을 별로 받지 못하고 홀로 자란 분들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방황하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가난의 위기에서 회복된 사람은 다른 가난한 사람들을 가장 잘 도와줄 수 있습니다.
이것을 헨리 나웬은 '상처입은 치유자' 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어두운 그림자가 있습니까? 마음의 상처가 있습니까?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치유사역에 동참하는 치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문제 없는 사람, 상처 없는 사람, 완벽한 사람을 쓰시기보다 오히려 상처입은 사람, 문제 있는 사람, 그러나 회복을 경험한 사람을 쓰십니다.
왜 회복을 말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에 동참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5.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힌 어느 성공회 주교의 비문은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내가 젊고 자유로와서 무한한 상상력을 가졌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마지막 시도로,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나는 깨닫는다. 만일 내가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누가 아는가. 그러면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
내가 변하면, 가족이 변하고, 교회도 변하고, 나라도 변합니다.
내가 회복되면, 가정이 회복되고, 교회가 회복되고, 우리 민족이 회복됩니다.
오늘 우리가 내딛는 회복을 위한 첫 걸음, 이것은 곧 우리 가정과 교회와 민족의 회복을 위한 첫 걸음입니다. 이 시간 진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갑시다.
"하나님, 저는 회복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저의 취약한 부분을 보여주옵소서.
하나님, 저는 회복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회복시키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제가 회복되게 하옵소서. 저를 통하여 제 가정, 교회, 직장, 이 도시, 우리 민족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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