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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의심하였느냐? (마 14: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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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서들은 각기 나름대로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경우 다른 복음서들과는 달리 주로 유대인 독자들을 겨냥하고 쓰여진 복음서입니다. 때문에 유대인들의 경전인 구약의 말씀들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단순히 나사렛 목수의 아들이 아니라 그들이 그토록 오래 기다려온 메시야라는 사실을 마태복음은 특히 강조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오병이어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바로 그 날 저녁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사실 갈릴리는 바다가 아니고 호수입니다. 그런데 수면이 해수면보다 낮고 그 주변에 높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기류의 변화가 심해서 갑자기 큰 풍랑이 일어나곤 한다고 합니다.

  하여간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예수님이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직접 지시하셨고, 또 주님이 서둘러 보내셨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주님의 지시에 따라 배를 띄웠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는 길에 큰 풍랑이 일어나서 그들은 심한 고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구원의 은총에 감격하여 신앙 생활을 잘 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 뜻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맡겨진 직분도 힘써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풍랑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왜 시련과 역경을 겪게 되는 것입니까? 어째서 환난과 핍박을 당하게 되느냐는 말입니다. 어찌 된 영문입니까?

  제자들은 갑작스러운 풍랑 때문에 심한 고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데 그토록 심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까? 왜 주님은 제자들을 편한 길이 아닌 거센 풍랑이 이는 바다로 내모셨습니까? 왜 그 옛날 출애굽한 히브리 노예들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바로 들어가게 하시지 않으시고 거친 광야로 내모셨습니까? 자신있게 맑은 날씨를 장담했는데 갑자기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난처해진 기상 예보관처럼 주님도 잘못 예측하실 수 있습니까?

  하여간 갈릴리 바다에 갑자기 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언제 어디서 우리의 삶을 뿌리채 흔들 수 있는 거센 풍랑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사실 우리의 삶의 현장에도 크고 작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풍랑이 이는 이유를 일일이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주님의 제자들이 당하는 어려움에는 뭔가 뜻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주님은 큰 풍랑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금붕어는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자연 상태에서는 약 일만 개의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 위험도 없고 적당한 온도와 충분한 먹이가 있는 어항 속에서는 삼,사천 개의 알밖에 낳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냐 하면 어항이 금붕어에게 고통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고통을 겪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또 건강한 삶인 것입니다.

  큰 풍랑이 일고 있는 바다에서는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풍랑이 이는 바다에 배를 띄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잔잔하다고 해서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고난이 건강에 훨씬 더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고 정채봉 님의 작품 중에 ‘콩씨네 자녀 교육’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 시에 이런 재미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광야로 보낸 자식은 콩나무가 되었고, 온실로 보낸 자식은 콩나물이 되었다.” 그렇습니다! 자식을 품 안에 품는 것만 능사가 아닙니다. 찬 이슬을 맞고 자란 자식이 훨씬 강하게 자랍니다. 때문에 주님은 제자들을 온실로 보내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풍랑이 이는 바다로 내모셨던 것입니다.

  풍랑이 점점 더 거세지더니 제자들의 삶 전부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들의 생명마저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도저히 그 위기를 면할 수 없었습니다. 서서히 죽음의 공포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사실 제자들 중에는 노련한 어부들이 많았습니다. 바다에 처음 나간 사람은 조그만 풍랑에도 당황하지만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은 웬만한 풍랑에 눈도 깜짝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주위에도 여러 가지 풍랑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심한 불경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사회, 정치적으로도 매우 어지럽습니다. 엊그제 국정원장이 DJ 정권 때도 불법 도,감청이 있었다고 고백하고 국민 앞에 사과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도청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불안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또 인천에서는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자는 측과 보존해야 한다는 측이 서로 맞서서 으르렁거리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좀 살게 되었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사치와 향락을 좇아서 흥청거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풍조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 나라와 민족을 병들어 죽게 할 큰 풍랑이 되어 갑자기 우리를 덮칠 것입니다. 큰 풍랑이 일고 있는 바다가 바로 오늘 우리가 처한 실제 상황인 것입니다.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제자들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노를 저어보았지만 역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살다 보면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 아무리 큰 풍랑이 몰려온다 할지라도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만 있다면 그리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죽음의 공포에 싸여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지식과 기술과 경험을 고집했습니다. 주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도저히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 비로소 제자들은 주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이 여기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이 주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고 주님을 찾기 시작하자 주님은 기도를 마치시고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풍랑과 싸우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걸어오셨습니다. 그들의 고난의 현장에 주님이 친히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유령이라고 소리지르며 두려워 떨었습니다. 거센 풍랑이 일고 있는 바다 위로 걸어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알아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친히 찾아오셨지만 믿음이 없는 제자들은 오히려 더 큰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마 14:27) 히브리 문화에서 이 표현은 하나님의 자기 선언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비로소 제자들은 하늘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과연 주님의 말씀은 어둠을 몰아내는 빛입니다. 또한 그 말씀은 모든 공포를 물리치는 참된 위로와 소망의 말씀입니다.

  주님을 알아본 베드로가 외쳤습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마 14:28) 참으로 엉뚱한 요구였지만 주님은 허락하셨습니다. ‘모두들 두려워 떨고 있는 마당에 감히 물 위로 걸어갈 생각을 하다니 저 친구는 정말 이상한 친구야...’ ‘아니 무모한 것이지, 아니 저 친구가 어쩌려고 저런 무모한 짓을 하는 거야?’ 다른 제자들은 어처구니 없는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 물 위로 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걸음... 그러나 얼마 못 가서 그만 물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가 당황하여 소리질렀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님은 즉시 손을 내미사 그를 붙잡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주님은 그가 믿음으로 걷기를 원하셨습니다. 베드로뿐 아니라 모든 제자들이 믿음으로 주님을 따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 기도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의 초점은 거센 풍랑이 아닙니다. 성경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는 거센 풍랑이 아니라 흔들리고 있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주님을 신뢰하지 않는 제자들의 마음 가짐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을 잊고 지내는 우리의 신앙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큰 풍랑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믿음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자들의 고난의 현장에 친히 찾아오셨던 주님, 그리고 바람과 물결을 잔잔케 하셨던 주님, 믿음이 흔들려 물에 빠진 베드로를 붙잡아 건져 주셨던 주님이 오늘 여러 가지 풍랑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 때, 그리고 답답하고 앞이 캄캄할 때 더욱 그 주님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주님을 더 가까이하고 주님을 더욱 의지해야 합니다!

  그 주님은 모든 풍랑을 잔잔케 하실 것입니다! 행여나 바다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우쭐대지 말아야 합니다. 혹시라도 평생 신앙으로 살아왔다고 으시대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도 내가 주님의 수제자라고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큰 풍랑을 만날지라도 오직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끝까지 그 주님만 따르기로 결단하는 여러분 모두의 삶의 현장에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항상 넘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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