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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빛을 발하는 눈 (사 2:1~3, 엡 5:8~14, 요 9: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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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말씀: 이사야서 2:1 ~ 3
  이것은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을 두고, 계시로 받은 말씀이다. 마지막 때에, 주님의 성전이 서 있는 산이 모든 산 가운데서 으뜸가는 산이 될 것이며, 모든 언덕보다 높이 솟을 것이니, 모든 민족이 물밀듯 그리로 모여들 것이다. 백성들이 오면서 이르기를 "자, 가자. 우리 모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어서 올라가자.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님의 길을 가르치실 것이니,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길을 따르자" 할 것이다.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며, 주님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  아멘.
 
서신서의 말씀: 에베소서 5:8 ~ 14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님 안에서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오.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와 진실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십시오. 여러분은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끼여들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폭로하십시오. 그들이 몰래 하는 일들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것들입니다. 빛이 폭로하면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드러나는 것은 다 빛입니다. 그러므로, "잠자는 사람아, 일어나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일어서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환히 비추어 주실 것이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멘.

복음서의 말씀: 요한복음서 9:35~ 41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 사람을 내쫓았다는 말을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만나서 물으셨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선생님, 그분이 어느 분입니까? 내가 그분을 믿겠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이다." 그는 "주님, 내가 믿습니다" 하고 말하고서, 예수께 엎드려 절하였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못 보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있던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나서 말하였다. "우리도 눈이 먼 사람이란 말이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눈이 먼 사람들이라면, 도리어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지금 본다고 말하니, 너희의 죄가 그대로 남아 있다."  아멘.


여러분이 보도를 통해서 보셨듯이 이번 주에는 엄청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오늘 영국의 각 교회들이 얼마나 아픈 가슴을 안고 예배를 드릴까 생각하면 가슴이 저립니다. 2012년의 올림픽 유치를 하게 되었다고 기뻐한 지 하루도 못 되어서 이러한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기쁨과 슬픔이 하루 사이에 교차하는 사회. 우리는 지금 그렇게 하루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예전에 9.11 테러가 일어났을 때, 영국 사람들이 뉴욕에 종 하나를 기증 했었습니다. ‘평화와 사랑과 위로의 종’이라고 이름 붙여진 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런던 테러 사건이 일어나자, 뉴욕 시민들은 영국 사람들이 선물로 주었던 사랑의 종을 울리면서 위로의 복음을 영국시민들에게 주었습니다. 미국 성공회의 여성 신자 한 분이 나와서 폭력과 테러가 이 땅에서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타종을 했습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묶었던 상징적인 행위였습니다.

테러는 막아야 합니다. 폭력도 막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들에 굴복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아마도 테러를 한 사람들은 폭탄으로만 테러한 게 아니었을 것입니다. 분명히 그 사람들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이미 테러를 해야겠다는 어떤 이유와 함께 마음으로의 테러가 함께 자리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양적인 테러를 막기 위해서 그것을 결심했던 마음속의 테러의 원인까지도 찾아서 막아야 할 것입니다. 육신의 테러만이 아니라 마음의 테러까지 막기 위하여 그 원인을 규명해 보는 것이 저희가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같은 시간에 영국의 북쪽 스코틀랜드에서는 회의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소위 세계에서 가장 잘 살고 강하다는 여덟 개 나라의 수뇌들이 글랜 이글스(Gleneagles)에 모여서 여러 가지를 논의하였는데, 그 중에 중요한 의제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배고프고 가난한 나라들의 외채를 탕감해 주어서 먹고 살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세계 최빈국 18개 나라의 대부분이 아프리카 나라들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들이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과 world bank에 진 빚이 400억 달러, 즉 우리 돈으로 400조원 쯤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탕감해 주어서 기를 펴고 살수 있도록 하자는 논의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아프리카 나라들의 반응은 아니지만, 이러한 반응이 있었습니다. 빚을 탕감해 준 것은 참 고마운데 그것만 가지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일해서 살 수 있도록 기술 원조도 해주시고 무역 조건도 개선해 주십시오. 우리들이 가난한 원인을 잘 포착해서 우리가 좀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빈곤의 문제와 테러의 문제. 이것들을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잘 극복해가면서 함께 살 길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문명이 최고도로 발달된 오늘도 빈곤과 테러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전혀 상관없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9.11 테러나 이번 런던 테러는 밤이 아닌 대낮에 이루어졌습니다. 밝은 대낮에 테러가 일어나고 편리한 문명 속에서 빈곤이 엄습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살던 사람들, 눈을 뜨지 못한 채 소경으로 사는 사람들은 잘못을 범한다 하더라도 용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낮에 살면서 눈을 뻔히 뜬 사람들, 빛 속에 사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악행에 대해서는 결단코 용서하지 않겠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범하는 잘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된 사람들이 알면서도 범하는 잘못은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누구는 용서하고 누구는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분노와 좌절로 가득 차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평생토록 주야로 묵상하며 살던 사람들, 하나님의 빛을 알고 살던 사람들이 사랑이 뭔지 알면서도 행하지 않고 미워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미워하는 모습에 분노하신 것입니다. 소위 잘나고 많이 알고 배부르고 힘 있던 유대 백성들이 실천하지 않는 모습에 예수님께서 너무나 분노하여 말씀하십니다. 빛 속에 사는 자녀들이여. 빨리 회개하고 광명을 찾으십시오. 힘있고 많이 알고 밝은 빛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오늘 예수님께서는 경종을 울리십니다.

우리에게는 두 개의 눈이 있습니다. 한 눈으로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보고, 다른 한 눈으로는 사람들 속에 있는 마음을 보라고 두 눈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두 개의 귀가 있습니다. 한 귀로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다른 한 귀로는 사람들의 깊은 가슴 속에 있는 이야기와 무엇보다도 하늘의 음성을 들으라고 두 귀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려 보냅니다. 한 눈으로 보고도 다른 눈으로 묻어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눈을 밝히 떠서 세상과 하나님을 보고 살아야 할 사람들이 두 눈을 감아버린 것을 보고 분노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제가 언어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각 나라 사람들이 쓰는 언어 속에는 신기하게도 그 나라의 삶의 방식이나 사고방식, 그리고 문화가 많이 배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우리말을 배우고 우리 문화를 익히며 살아가는 외국 사람들이 저에게 물어보던 우리말 질문 중에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왜 한국 사람들은 자꾸 버린다고 그러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먹으면 되지, “먹어버려”라고 하고 입으면 되지, “입어 버려”라고 하고 마시면 되지, “마셔 버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치워 버려, 부숴 버려 등등 한국 사람들은 자꾸만 버린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자꾸 이렇게 버린다는 말을 쓸까요. 버릴 것은 쓰레기 같은 것, 잘못된 것, 어둠 같은 것들입니다. 버린다는 것은 부정적인 말입니다. 버리는 문화는 참 부정적인 우리의 문화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렇게 부정적인 것만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좋은 문화도 있습니다. 바로 보는 문화입니다. 잡수시지요 대신에 “잡숴 보시지요”라고 말합니다. 입어 보시지요, 눈 떠 보시지요, 감아 보시지요 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여기에서의 본다는 말은 그냥 눈으로 본다는 것이 아닙니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고 했듯이, 보고 깨달아 알고  믿는 것입니다. 살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 보아야 합니다. 이는 옛 사람이 죽고 어떻게 새 사람이 태동하는 지 깨달아 알고 믿는 것입니다. 믿음에 있어서도 유대인들처럼 대강 믿어 버리지 말고, 제대로 믿어 “보셔야” 합니다. 믿어서 알고 깨달아 지키셔야 합니다. 혹시 우리 중에서 오늘 예배 드려 버리자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다면 오늘 예배는 완전히 헛것입니다. 예배를 드려 봅시다. 제대로 드려 봅시다.

우리 언어에 있어서도, 가능하면 버립시다 하는 용어는 쓰지 마시고 봅시다 하는 말을 쓰셨으면 합니다. 한 번 제대로 믿어 봅시다, 살아 봅시다, 사랑해봅시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대로 깨달아 알면서 실천하며 살아갑시다. 이런 훌륭한 언어와 문화의 전통을 잘 살렸으면 합니다.

오늘 이러한 전통을 마음에 새기고 오늘의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 빛이 임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선한 것인지 보십시오.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보고 사십시오. 무엇이 참된 것인지 보고 사십시오. 이 세 가지의 “보고 삶”이 없으면 여러분은 빛의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빛의 열매는 선, 의, 진실, 이 세 가지입니다. 선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알고 깨달아 선행을 행하는 것입니다. 의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공의로우신 것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공의를 깨달아 알고 준행하는 것입니다. 진실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진실하다고 믿는다면 하나님의 진실을 보고 깨달아 알고 지키는 것입니다. 빛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지 못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할 제목의 현실, 하나님께 호소해야 할 아름다운 이야기, 간구해야 할 죄 된 이야기들을 정확히 보고나서 본 만큼 아는 만큼 하나님께 상달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봄에 있어서 눈을 감아 버리고, 어려운 일에도 눈을 감아 버리고, 그렇게 못 본 척 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받아주시지 않습니다. 눈은 있으나 실제로는 어둠속에 사는 사람들의 잘못은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보고 믿읍시다. 믿고 또 보십시다. 믿고 보고 알고 행하는 삶이 오늘의 우리에게는 부족합니다.

세계 열강들이 아프리카의 부채를 탕감해 주기로 한 결정은 “도와줘 버리자”는 뜻이 아니어야 하겠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가난한 것은 다만 물질만이 없어서 가난한 것이 아닙니다. 배운 게 없어서 무지하고, 가난해서 배고프고, 힘이 없어서 세계 무대의 결정 과정에 참여할 능력과 힘이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방법은 먹을 것만 주는 것이 아닙니다. 무지함을 깨닫게도 도와주고,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힘도 보태주고 자연 재해의 가장 큰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튼튼한 집을 세워 주는 것이 도와주는 것입니다. 가난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십시다. 그래서 정말 필요한 것을 하나씩 도와주어야 합니다.

다시 우리의 이야기로 돌아와 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양하며 살 때에 하나님의 무엇을 보고 기도하십니까. 말씀을 읽어서 깨달아 알고 그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러나 보지 않고, 하나님의 얼굴도 말씀도 보려 하지 않고 깨달으려고 하지도 않고 기도하면 중언부언할 뿐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모두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알고 아는 만큼 감사하면서 기도드립시다. 오늘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깨달아 감사드리는 예배를 드립시다. 예배는 육이 아닌 진실과 영으로 해야 합니다. 세계의 폭력과 죽음의 문화에 있어서도 육의 문제만이 아니라 영의 문제를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복음의 사람들도 예수님께 비난 받았던 유대 지도자들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보고 믿고 깨닫고 실천합시다.

오늘 성경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사랑하는 유대 백성 여러분, 주님의 말씀을 제발 꿰뚫어 보십시오. 어둠에 있을 때에는 무지해서 몰랐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지혜를 주셨고, 가르쳐 주셨고, 문명을 주셨지 않습니까. 주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모두 아시잖습니까. 그 말씀은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말씀임을 깨달아 알고 믿어주십시오. 또 이사야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율법은 시온산에서 나오고 주님의 말씀은 예루살렘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을 탄생시키는 예루살렘이 어둠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밝은 빛을 담은 주님의 말씀이 예루살렘이라 하는 음지 속에서 죽어갑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삶의 거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에 비춰진 나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울에 비춰진 우리들의 진실을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볼 수 있어야 빛의 사람입니다. 어둠은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통해서 세상이 보이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당신의 얼굴이 보입니다. 보고 믿겠느냐. 믿겠습니다. 그렇다면 믿은 대로 할 지니라. 이제 보고 믿으며 삽시다. 오늘 여러분에게 이러한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박 종 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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