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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연수(年數)를 깨닫는 법 (단 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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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 가운데는 지금 어려운 처지에 있는데 그 어려움이 쉽게 끝나지 않고  오래 계속되고 있는 분들이 여럿 계실 것입니다.
건강의 어려움, 경제적인 어려움, 가정적인 어려움이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원하는 것이 있는데,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있는데,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분들에게 오늘 본문은 깊은 교훈을 주고 또 소망을 줍니다.

다니엘서는 예루살렘이 망하고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그것은  기원전 605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때의 일입니다.
오늘 본문, 다니엘서 9장의 1절과 2절에 나오는 다리오 왕 원년은 기원전 538년입니다.
다니엘서 1장에서 9장까지 67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다니엘서 1장 4절을 보면 포로가 되었을 때 다니엘은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운 소년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80대의 노인이 되었습니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고 머리에는 백발이 성성해졌을 것입니다.

그 60여 년 동안 통치자가 여러 명 바뀌었습니다.
느부갓네살, 벨사살을 거쳐 이제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갈대아는 바벨론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 사이, 다니엘은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첫 번째 꿈을 풀어주었습니다.
그 일로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는 자리에 올랐습니다.(단2: 48)
금 신상에 절하는 것을 거부하다가 풀무불에 들어갔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두 번째 꿈도 풀어주었습니다.
벨사살 왕이 큰 잔치를 벌였는데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쓰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썼지요. 이 글자의  뜻도 풀어주었습니다.
왕 외에 다른 존재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지게 된 법을 어기고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사자 굴에도 들어갔었습니다.
우여곡절,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환상도 여럿 보았습니다.
사자, 곰, 표범, 쇠로 된 큰 이와 열 뿔을 가진 짐승, 이와 같은 큰 짐승 넷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두 뿔 가진 숫양과 한 염소의 환상도 보았습니다.
이 환상에 대한 설명도 들었습니다.

다니엘에게는 세 친구가 있었습니다.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 이들은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가 된 사이였습니다.
이들은 같이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거부하고 채식과 물만 들었습니다.
바벨론의 벼슬살이도 같이 했습니다.  풀무불에도 같이 들어갔습니다.
그야말로 생사고락을 함께 한 동지들입니다.
다니엘서 4장 이후에는 이 세 친구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아마도 세 친구는 나이 많아 세상을 떠났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다니엘은 혼자가 되어, 외롭게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여러 가지가 변했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자신이 포로민족이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아직도 황폐한 상태로 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황폐한 상태로 있다는 것은 곧 예루살렘 성전이 황폐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제대로 드릴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9장 17절을 보세요.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이것은, 지금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입니다.
우리는 “주의 황폐한 성소에”를 ‘북한의 무너진 제단들에’로 바꿔서 ‘하나님, 주의 얼굴 빛을 무너진 북한의 제단들에 비추시고 그 제단들을 재건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가운데서 다니엘이 성경을 통해서, 예레미야의 예언을 통해서,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곧 그칠 것을 깨달았다는 내용입니다.
다니엘은 이것을 깨닫고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회개의 기도를 드립니다.
4절부터는 그 기도문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깊은 감동을 주는 기도문입니다.

다니엘은 연수를 깨달았습니다.
이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상태가 언제 끝나나, 원하는 것이 언제 이뤄지는가, 예루살렘 회복을 위한 간구가 언제 응답되는가,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도 연수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연수를 깨달을 수 있습니까?

먼저, 연수를 깨달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춰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비밀을 택한 사람에게 알려 주시는데 비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일들에는, 특히 고통스러운 일들에는 정해진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아야 연수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입추입니다. 다음 주일은 말복입니다.
오늘도 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제 더위가 곧 끝난다는 것을 압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 사람의 삶, 세상의 여러 가지 일들, 그리고 정권, 그밖의 모든 것에도 정해진 때가 있습니다.
전도서 3장 1장은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에 다 때가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일들이 정해진 때가 없이 그저 끝없이 계속되고, 반복되고, 돌아간다는 것은 기독교적인 사고가 아닙니다.
그것은 불교의 대표적인 사고입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윤회전생(輪廻轉生)이라고 부릅니다.

특히 고통스러운 일에, 무거운 짐이 되는 일에는 끝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통은 그 안에 두 가지를 품고 있습니다.
하나는 의미입니다. 고통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바로 끝입니다. 고통에는 끝이 있습니다.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자기가 겪는 고통이 제일 큰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이 고통은 끝이 없을 것으로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둘 다 틀린 것입니다.
나보다 더 큰 고통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제일 큰 고통을 겪은 분은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고통에는 끝이 있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애굽 노예생활의 고통, 400년 만에 끝났습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의 고통, 70년 만에 끝났습니다. 
기원후 70년, 로마군의 예루살렘 점령에서 시작된 이스라엘의 디아스포라 생활, 나라 없는 백성으로서 떠돌이 생활은 주후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됨으로써, 1870여 년 만에 끝났습니다.
1870여 년, 매우 길었습니다. 그러나 끝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끝이 있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연수를 가르쳐주십니다.
끝이 있는데 곧 있을 것이라고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욥은 형언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 고통의 끝이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욥은 끝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끝이 있다는 것을 믿지 못했으면 그 심한 고통 가운데에서 욥이 어떻게 버틸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은 욥에게,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옷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욥 36: 9~11)

알러주셨습니다.
바다의 물결에도 한계가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 몰려오는 고난의 파도에도 ‘여기까지!’ 한계가 있습니다.
거기까지 오면 하나님은 고난의 파도를 향해 ‘동작 그만!’ 하십니다.

욥이 겪는 고통 가운데 제일 큰 것은 ‘내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욥은 ‘언제인가는 하나님이 이것을 밝히 알려줄 것이다.’ 하는 믿음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욥이 믿은 대로 되었지요.
하나님은 욥에게 큰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믿음의 대 성숙, 대 전환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고통에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일제 때 많은 사람들이 일제 통치의 끝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특히 지도층 인사들이 생각을 바꾸고 친일행위를 했습니다.
언제인가는 일제의 통치가 끝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독립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끝까지 지켰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매년 광복절은 당사자들에게나 그 후손들에게 영광스러운 날이 되었을 것입니다.
광복 60년인 올해는 더욱 영광스러운 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요즘 도청 문제로 나라가 참 시끄럽습니다.
집권자들이, 정권은 언제인가는 바뀌고,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들의 내용도 알려 주셨고 그 뜻도 알려 주셨습니다.
여러 가지 환상을 보여 주시고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그 환상의 뜻도 알려 주셨습니다.
그 꿈들과 환상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땅 위의 나라들은 끝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만이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2장 44절에 기록된 대로 하늘의 하나님이 세우신 나라만이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고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선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4장 3절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하나님의 통치는 대대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동굴과  터널은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 점이 있습니다.
동굴은  끝이 막혀 있습니다. 
터널은 끝이 뚫려 있습니다.
왜 애써 터널을 뚫습니까?
지름길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깨달아야 할 것을 빨리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이 민족이 깨달아야 할 것을 빨리 깨닫게 하기 위해서, 다니엘이 깨달은 것을 여러분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고통이라는 터널, 분단이라는 터널을 통과하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터널 속에 있으면서 동굴에 있는 것으로 여기지 마세요.

세상의 일들에는, 특히 고통스러운 일에는 정해진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 하나님이 정하신연수를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을 통해서 연수를 깨닫게 됩니다.

2절을 보면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다고 하였습니다.
“책을 통해,” 여기에서 책은 곧 성경을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진 성경과는 물론 다릅니다. 신약은 물론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구약 가운데에서도 예언서의 일부였을 것입니다.
여기 책이라고 번역된 말은 ‘밤파림’이라는 히브리어를 번역한 것인데 ‘예언의 글’이라는 뜻입니다.
복수로 되어 있으니까 정확하게는 ‘예언의 글들’로서 다른 예언들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먼저 우리는 다니엘이 성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감동을 받고 교훈을 얻습니다. 
다니엘은 어떻게 해서 이 성경을 가지고 있었을까?
중간에 다른 경로를 통해서 구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십중팔구는 포로로 끌려올 때 가지고 왔을 것입니다.
그 때의 성경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런 책이 아니라 두루마리 형태였습니다.
분량이 많았고 부피가 컸습니다.
포로로 끌려올 때 다른 것도 가지고 올 것이 많았을 텐데 그것을 소중하게  품고 와서 육십 여 년 동안 보관하면서 늘 읽었을 것입니다.
다니엘서 6장 10절을 보면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다고 했습니다.
그와 함께 다니엘은 시간을 정해 놓고 성경을 읽었을 것입니다.
기도와 성경 읽기, 이것이 성전도 없고, 제사 드리는 일도 없는 바벨론 땅, 말둑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는 이방 땅에서 다니엘을 신앙의 사람으로 지탱해 준 두 개의 기둥이었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도대체 예루살렘은 언제 회복될 것인가?’ 하는 질문을 품고 성경을 읽다가 예레미야서 중간 부분에서 그 답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다니엘 때는 성경에 장과 절이 매겨져 있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장과 절은 중세 시절에 읽기 편하도록 구분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다니엘은 예레미야서 중간 부분에서 그 답을  발견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답은 이것입니다. 예레미야서 25장 9절에서 13절까지의 말씀인데요,

보라 내가 북쪽 모든 종족과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주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하여 그들을 놀램과 비웃음 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원한 폐허가 되게 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 중에서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와 맷돌 소리와 등불 빛이 끊어지게 하리니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 내가 그 땅을 향하여 선언한 바 곧 예레미야가 모든 민족을 향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라

다니엘은 ‘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예정하신 일이로구나!’ ‘정해진 기한이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니엘은 평소에도 이 말씀을 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평소에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갔을 것입니다.
심각한 질문을 갖고 읽을 때 이 말씀이 답으로 깨달아졌을 것입니다.

여러분, 평소에도 성경을 열심히 읽으세요.
그리고 어떤 심각한 문제가 있을 때에 성경을 더욱 열심히 읽으세요.
성경에서 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답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런 체험을 한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평소에 성경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성경을 열심히 읽지 않는 분들은 급할 때 성경을 열어도 성경이 좀처럼 답이 되어주지 않습니다.
이런 체험을 한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미 여러 환상을 통해서 세상의 여러 왕국은 끝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환상이나 그밖의 신비체험들도 연수를 알려주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특별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지요.
성경은 누구나 읽을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환상을 통해서 깨달은 것은 일반적인 진리였습니다.
성경을 통해서는 아주 구체적이고 명확한 답을 얻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의 문제에 대해 우리에게 구체적이고 명확한 답을 줍니다.

여러분, 칠십 년입니다. 무한대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겪는 고통, 정해진 기간이 있습니다.
이제 그 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평화의 주 바라 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 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이런 가사이지요.
여러분,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 고통이 언제 끝나는지 주님이 연수를 알려 주실 것입니다.

성경을 소중하게 여기고 평소에도 성경을 읽는 가운데, 성경을 통해 나의 중요한 문제의 해답을 얻는, 연수를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 연수를 깨달았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야합니다.
경건을 가다듬으며 준비해야 합니다. 이것이 연수를 깨달은 사람의 바른 자세입니다.

연수를 깨달은 다니엘은 어떻게 했습니까?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기도하며 간구했습니다.
자복하며 회개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합하여 저는 ‘경건을 가다듬으며 준비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왜 이렇게 했을까?
‘예언의 기간은 거의 다 차가는데 예루살렘이 회복될 조짐이 보이지 않아서 안타까워졌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저는 그보다 연수가 다 찬 이후의 새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라고 믿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회개 자복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뜨뜻미지근한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철저한 회개였습니다.
5절을 보세요.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4절에서 19절까지 화개의 기도문 가운데 ‘우리가 범죄했습니다.’는 고백이 다섯 번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회개는 마음의 목욕입니다.
예루살렘의 황폐가 끝나고,  주의 거룩한 산 예루살렘에서 주의 분노가 떠나고, 예루살렘 성소에 하나님의 빛이 다시 비치는 날을 바라보면서 다니엘은 지금 동족들이 그 날을 잘 맞이할 수 있도록 동족을 대표하고 대신해서 자신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13절을 보세요. 다니엘은 자기 민족의 역사를 돌아봅니다.

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이 명성을 얻으신 우리 주 하나님이시여

그 다음에 이어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죄의 고백입니다. 회개입니다.
다니엘은 회개라는 안경을 쓰고 자기 민족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다니엘의 역사관은 회개사관(悔改史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연수가 다 차가는 것을 깨달으셨습니까?
그것이 확신으로 다가옵니까?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마음을 가다듬는 것입니다.
마음이 들뜨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숙연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할 수 없다면 하나님은 ‘아, 이 사람에게는 연수를 깨닫게 하는 것이 오히려 유익하지 않겠구나!’ 하실 것입니다.

작년 가을에 교회당 준공을 앞두고 새해 교회 표어를 정할 때 여러 가지를 생각했으나 ‘겸손히 주의 일을 행하는 교회’ 이것을 표어로 한 것은 바로 이런 필요 때문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큰 죄를 범했습니다. 이 사람은 재판에서 무기징역 형을 받았습니다.
이 사람은 체념을 하고 교도소 생활에 순응을 했습니다.
성실한 교도소 생활이 인정을 받아 감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 이 사람은 조바심을 하고 날이 왜 이리 더디 가느냐고 짜증을 냈습니다. 같이 고생하는 재소자들이나 교도관들에게 화를 내고 심지어는 행패를 부렸습니다.
이런 생활 태도는 그의 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사람은 건강이 악화되어 결국 살아서 교도소를 나올 수 없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우리 민족의 현실에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통일을 바라고 있습니다.
최근에 북한 관광이 확대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고, 남북 남녀 축구 경기가 열리고, 여러 분야의 교류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부분적인 것들입니다.
전체적으로는 우리나라는 엄연한 분단 상태입니다.

우리는 올해 광복 60년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광복 60년은 곧 분단 60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분단 상태로 60년째, 사람으로 말하면 환갑, ‘이 나라는 정말 통일이 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회의를 품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분단, 끝날 때가 있고, 이제 그 끝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올해는 광복 60년이 되는 해인데 동양에서는 60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동양에서는 육십갑자라는 것이 있습니다.
갑, 을, 병, 정, 이렇게 나가는 천간(天干)이 있고, 자, 축, 인, 묘, 이렇게 나가는 지간(支干)이 있는데 이 둘이 순차적으로 배합되어 갑자, 을축, 이렇게 나갑니다.
이렇게 해서 육십 가지로 늘어놓고 육십이 끝나면 다시 시작하지요.
올해가 광복 60년이라는 것이 강조되고, 정부와 각 기관들 광복 60년 행사들을 여러 가지 진행하고, 올해 광복절 행사는 성대하게 준비되고 있는 이유도 이런 동양적인 관습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십진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고대 바벨론에서는 육십진법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 육십진법은 지금도 일부 남아 있어서 각도를 정밀하게 잴 때도 60분법을 사용합니다.
시간에서는 60초가 1분, 60분이 한 시간, 이렇게 진행됩니다.
지금은 분단의 57분쯤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곧, 58분이 되고, 59분이 되고, 그리고 새 시간, 새 역사가 열릴 것입니다.

올해, 광복 60년이 되는 해가 분단 문제 해결에 획기적인 전환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다니엘은 화개의 기도를  드렸는데, 분단 문제 해결에 있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우리의 회개가 부족해서 하나님은 아직 통일을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상품을 만들 때 마지막으로 거치는 공정이 무엇입니까?
불량한 부분이 없나 점검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거쳐야 그 상품을 소비자들에게 내 놓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민족이 이 과정을 거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다니엘은 경건으로 70년 이후를 준비했는데 분단 문제 해결에 있어서 우리에게 필요한 또 한 가지가 준비입니다.
통일 이후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 준비에는 북한의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좀 못 살고, 북한 사람들의 가치관이 워낙 달라져 있기 때문에 갈등과 혼란을 겪을 것을 감수할 마음의 준비도 포함되어있습니다.

통일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통일 이후를 준비하지 않는 것은 일제 말기에 해방이 올 것을 알지 못하고 변절하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며 마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겪는 일, 우리 민족의 분단에는 정해진 연수가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는 가운데, 오묘한 비밀이 다 들어 있는 성경을 읽는 가운데 그 연수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경건함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새로운 날들, 새로운 역사를 준비하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고 이 민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 관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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