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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한 사람 (시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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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행복의 조건으로 철학자 플라톤은 다섯 가지를 말했다고 합니다. "첫째, 먹고 입고 살고 싶은 수준에서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용모. 셋째, 사람들이 자신이 자만하고 있는 것에서 절반 정도밖에 알아주지 않는 명예. 넷째, 겨루어서 한 사람에게 이기고 두 사람에게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연설을 듣고서 청중의 절반은 손뼉을 치지 않는 말솜씨." 이 다섯 가지가 있으면 행복한 줄 알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백 퍼센트 만족이 없습니다. 적당히 모자란 가운데 그 부족함을 채우려고 성실히 노력하는 일상의 삶 속에서 사람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도종환 산문집,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좋은생각, 2005, 57쪽 참조). 나는 부족한 것이 없다, 나는 이만 하면 남부러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불행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년 2월 28일자 타임지에서는 "행복학"(the science of happiness)에 대한 전문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소개하였습니다. 지난 20세기에 심리학자들은 주로 인간의 병리적인 현상들인 노이로제나 히스테리, 우울증, 편집증, 정신분열증 등에 관해 집중적인 연구를 해왔는데, 지난 1980년대 이후로는 그 방향을 바꾸어 좀 더 인간의 "행복"에 관해서 연구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화란의 롯테르담에 있는 에라스무스대학에서 행복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뤼뜨 베인호우번(Ruut Veenhoven) 교수는 이 특집 기사에서 "당신은 천국에서도 불행할 수 있다... 행복의 비밀은 당신이 당신의 인생을 좋아하는 것이다."(You can be miserable in paradise... The secret of happiness is liking the life you have.)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모든 조건이 좋고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졌다고 해도, 결국 자기가 자기 자신의 삶을 지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좋아하지 않으면, 행복을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현재 여러분이 하고있는 가정생활, 직장생활, 교회생활에서 전혀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아마 천국에 가서도 행복을 느끼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말입니다. 지금 교회에서 1시간 남짓 드리는 예배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따분하고 지루하게만 느껴진다면, 천국에 가서는 영원무궁토록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주된 생활일 텐데, 지루하고 답답해서 어떻게 살겠느냐는 것이지요.

금년 4월 3일 로마 천주교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종하면서 남긴 말이 대중매체를 통해 전해졌습니다. 그것은,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라는 짤막한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특히 21세기 인류는 그 무엇 보다 행복에 관해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나 저도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행복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우리말 국어사전에서 보면(국립국어연구원 표준국어대사전, 1999년 판), 행복(幸福)이란 "복된 좋은 운수;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흐믓한 상태"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새문안 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흐믓한 상태"에 있습니까? 아니면 행복과는 반대로, 충분한 불만과 슬픔을 느끼며 원망과 짜증나는 상태에서 불행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요즈음 "웰빙"이란 말이 유행하는 것도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내용과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웰빙이란 영어는 우리말로 풀이하면, 행복을 느끼거나 느끼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웰빙밥상, 웰빙음식이란 먹어서 만족스럽고 그 음식을 먹는 것이 기쁘고 흐믓한 그런 밥상을 말합니다.

앞서 소개한 타임지의 행복에 관한 연구보고서에서는, "자고 일어날 때 대체로 행복하다고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미국인들은 80%가 그렇다고 응답한 반면, 14%는 아니다, 나머지 6%는 모르겠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응답하였습니다. 세계 각국의 행복도 조사에서는, 가장 높은 행복도를 보이는 나라가, 아일랜드, 네덜란드, 스위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이며, "South Korea" 한국은 헝가리나 그리스, 크로아티아 등과 함께 약 73%로 중상위권에 나타나 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필립핀, 인도네시아, 싱가폴이 한국보다 높은 행복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장 행복감을 가져다 준 것 한 가지를 말하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가장 많은 35%의 사람들이 자녀나 손자, 손녀라고 했고, 가족이 17%, 하나님, 신앙, 종교가 11%, 결혼의 배우자가 9% 등의 순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행복학의 심리학자들은 보다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다음의 8가지 단계를 실행하라고 권고합니다: 1) 받은 복을 세어 보라(Count your blessings). 이것은 우리 찬송가 489장의 가사에 나오는 말로서, 교인들은 이미 다 아는 것입니다. 가능한 한 일주일에 한 번 쯤 자기 전에 현재 감사하는 것을 3-5개씩 적어 보라는 것입니다. 2) 친절한 행동을 연습하라. 3) 삶의 기쁨을 맛보라. 4) 스승에게 감사하라. 5) 용서하기를 배우라 6) 가족과 친구들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라 7) 자신의 몸을 돌보라. 8) 스트레스나 역경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을 개발하라. 행복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현대 심리학자들의 이러한 행복학 연구 결과도 흥미가 있고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오늘 아침 유명한 시편 1편을 통해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에 관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 히브리어에서 복을 표현하는 단어로는 "바라크"가 있는데, 시편 1편 1절에 사용된 첫 단어인 히브리어 "아쉬레"는 복을 받아 누리는 만족한 상태, 즉 행복한 삶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우리 한글 개역 번역 전통에서는 "복있는 사람은 ... "이라고 옮기고 있으나, "아쉬레 하이쉬"는 우리말로 "행복한 사람은..."이라고 해야 그 맛이 살아납니다.

시1편 1절에서 보면,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먼저 "하지 말아야 할 것" 세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무엇을 해야 기쁘고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오늘 시편의 말씀은 그 반대입니다. 먼저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지 않아야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이제부터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는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즉 악한자들의 의견(또는 충고, 조언, 계획)을 따라가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악인은 히브리어로 "라샤"인데, 이 단어는 "의인"의 반대말로서, 그 의미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 하나님을 떠난 사람,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을 뜻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생의 자랑을 따라가는 세상지혜를 버리고(요일 1:16), 하나님을 경외하는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사모해야합니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평소에 안 믿는 사람들과 어울려 "안 할 짓, 못할 짓" 다 하면서 살면, 결코 행복한 삶이 될 수 없습니다. 주색잡기 뿐 아니라, 교인들 중에서도 도박, 마약, 가정폭력, 조직범죄 등에 빠진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악습을 벗어 버려야 행복하게 됩니다. 우리 조선왕조 시대에 이덕무라는 학자는 자기가 하지 못하는 것 4가지를 자랑하였습니다. "바둑과 장기를 두지 못하고, 소설을 볼 줄 모르며, 여색에 대해 말할 줄 모르고, 담배를 피울 줄 모른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네 가지 것은 비록 죽을 때까지 못하더라도 해될 것이 없다. 나로 하여금 자제들을 가르치게 한다면 마땅히 먼저 이 네 가지 하지 못하는 것으로 그들을 인도하겠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오늘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마땅히 하지 못하는 것으로 자랑할 것이 있어야 합니다. 불신자들과 꼭 같이 속이고, 싸우고, 폭탄주 마시며 방만한 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음행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6:9-10)고 말씀했습니다. 악한 일을 떠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삶을 사는 것이 곧 행복한 삶입니다.
 
둘째로, 행복한 사람의 조건은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죄인"은 히브리어로 "하타"인데, 그 의미는 목표에서 벗어나는 것, 가야할 길을 버리고 다른 길로 가는 것을 뜻합니다. 죄라는 뜻이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라고,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진리의 길, 영생의 길을 따를 때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학교에 간다고 집을 나선 학생이 학교로 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간다면 불행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터키에 가면 옛 에베소 유적지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 도시의 중심지에 번화한 상가가 모여 있는 시장인 "아고라"라는 광장이 있는데, 거기에는 당시의 도서관 건물 유적도 남아있고, 그 주변에는 유흥가와 홍등가도 모여 있었다고 합니다. 여행 안내인이 설명하는 옛 기록에 의하면, 고대 에베소 사람들은 아고라에 있는 홍등가나 유흥가에 갈 때에는 으레 "도서관에 간다"하고는 놀러 다녔다고 합니다. 가야할 길은 가지 않고, 가지 말아야 할 다른 길로 다니는 것이 죄인의 길에 서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 중에도,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벧후 2:15).

셋째는,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만한 자"는 히브리어로 "레츠"인데, 그 의미는 비웃는 사람, 냉소적인 사람을 뜻합니다. 말라기서 3장 15절에서 오만한 자들은,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라고 비웃고 있습니다. 오만한 자들은 말로써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자들입니다.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는 것은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빈정대며 비방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어릴 때 어떤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려면 내 주먹을 믿어라"고 교회를 비방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오만한 자들입니다. 말라기서 2장 17절에서도, 오만한 자들은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라고 비꼬는 말을 하면서 비웃고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터무니없이 교회를 비방하고 예수 믿는 것을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인들도 때때로 이러한 오만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오만하고 냉소적인 말로써 교회를 비난하고 하나님을 괴롭게 하지 않는지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만한 사람들처럼 하지 않아야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시1편 2절에서는 위에서 지적한 세 가지를 하지 않을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의 지혜와 능력이 어디서 나오는 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비밀은 "야훼(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데 있으며, 그래서 그 사람은 야훼의 율법(토라, 즉 가르침)을 주야로 묵상한다는 것입니다. 야훼(여호와)의 율법은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나의 사랑하는 책이요 나의 즐거움이요 기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매일 가까이 하며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묵상한다는 히브리어 동사 "하가"는 "작은 소리로 읊조리다, 비둘기가 구구 소리를 내다"는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되새기며 반복하여 공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양의 경우로 표현하자면, "學而時習之 不亦悅乎"(배우고 때로 그 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의 경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며 그 말씀을 양식으로 삼고 그 말씀에서 위로와 소망과 기쁨을 맛볼 때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최근 한국갤럽에서 발표한 한국 개신교인의 기도와 성경읽기 빈도에 관한 조사통계에 따르면, 하루 한차례 이상 기도하는 사람은 59.3%로 나타나 있습니다. 성경읽기는, 매일 한 번 이상이 21.9%, 가끔 생각날 때마다가 제일 많은 39.7%, 전혀 읽지 않는다가 11.1%로 나와 있습니다. 통계 수치가 언제나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기대 이하의 성적이 나왔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기도는 호흡과 같고, 성경 말씀은 양식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매일 기도하며, 성경읽기와 성경공부에 힘쓰십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제대로 호흡을 하고 좋은 음식을 섭취해야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현재 무엇으로 기뻐하며 만족하고 흐믓해 하십니까?  어거스틴은 오랜 방황과 방탕한 생활을 되돌아보면서,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누리기까지는 진정한 만족이 없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될 때 거기에 참 만족과 행복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 잘 믿는 것이 행복입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라는 말씀을 남겼습니다.  목사님들만 잘 믿으면 됩니까? 저는 이 시간 저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 예수 잘 믿고 행복한 사람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시1편 3-4절에서는,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을 직유법으로 비교하였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마치 관개수로에(시냇가에) 따라 심겨진 과실수처럼 제 때에 열매를 맺고 번성하지만, 불행한 사람은 마치 타작마당에서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다고 했습니다. 유대인의 속담에, "세상은 가벼운 것은 띄워 올리고, 무거운 것은 가라앉힌다"는 말이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도 무엇이 "뜬다" 든지, 아무개가 "떳다"는 말을 하는데, 그것은 대체로 쭉정이나 겨와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행복은 이리 저리 세상풍조에 따라 날리고 떠다니는 쭉정이 같은 삶이 아니라, 좋은 과실나무와 같이 주어진 한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열매 맺는 삶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러분도, 세상 행복을 쫒아 이리 저리 바쁘게 자리를 옮기며 떠돌아다니지 마시고,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자리를 잘 지키면서 행복한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제 시편 1편의 마지막 5-6절은 행복한 의인과 불행한 악인으로 구별되는 인생의 두 갈래 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삶이 행복했느냐 불행했느냐의 최종판단은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에서 가려지게 된 다는 것입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른 것입니다. 사람이 판단할 때는 불행한 생을 살았다고 보이는 사람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세상기준으로는 성공했고, 행복했다고 보이는 사람도 하나님의 기준으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악인은 결국 멸망하게 되고, 의인의 길은 하나님이 알아주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문안 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아침 우리는 시편 1편을 통해 행복한 사람에 관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을 듣고 읽고 그것을 지키는 자가 행복하다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옥토에 떨어져서, 혹은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결실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은 알아주지 못해도,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이 여러분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여러분의 일상생활을 알아주시는 것으로 여러분의 기쁨과 만족과 행복을 삼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새문안 교회에 다니는 것으로 기뻐하지 마시고,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기록된 것을 인하여 기뻐하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김 중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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