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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Do Your Best !! (수 7:4, 마 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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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 중 삼천 명쯤 그리로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 (여호수아 7:4)”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여리고성을 매일 한 바퀴씩, 일곱 째 날 일곱 바퀴를 돌고, 여호와께서 이 성을 주셨다고 외칠 때 구약의 여리고성은 돌로 산의??중턱에 쌓았던 성벽 때문에 철옹성이라는 별명을 가진 견고한 성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무너뜨려 주심으로 기생 라합 가정은 구원 받았지만, 여리고성은 점령하여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의 진입지인 여리고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큰 성 여리고성 함락에서는 승리했으나 작은 성 아이의 정복에서는 실패했습니다. 여리고를 함락한 이스라엘이 이제는 아이 성을 공격하려고 할 때 여호수아는 여리고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아이로 보내서 그 땅을 정탐하였습니다.

아이 성을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은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마소서"(7:3)라고 말합니다. 정탐꾼의 말대로 이스라엘은 백성 중에서 삼천 명을 보내서 아이를 치게 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있었습니다. 여리고인 큰 성을 함락시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여리고성에 비해서 작은 아이 쯤이야 삼천 명만 가도 능히 이긴다는 계산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아간의 사건도 있었지만 가볍게 여기고, 적은 성이기에 삼천 명만 올라간 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여호수아 7장 1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 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정복한 후에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을 취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만약 하나님께 바친 물건을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수 6:18)

여리고 성의 정복은 이스라엘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승리였습니다. 그렇다면 전쟁에서의 전리품은 당연히 승리자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때문에 이스라엘이 '승리자는 여호와입니다'라는 믿음으로 존재하는 증거는 모든 전리품을 말씀대로 여호와께로 돌려야 합니다. '내가 승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전리품에 손댈 자격이 없다.'는 것은 전리품을 모두 하나님께 바치는 것으로 전쟁에서 승리케 하신 하나님께 영광돌려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여리고성에서의 승리를 자기들의 힘으로 여긴 결과였습니다. 여리고 성은 강하고 견고했습니다. 강한 나라를 쳐서 이겼다는 것은 더 강하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여리고성을 훼파하고 정복하게 하시고, 이기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결국 강하신 분은 하나님인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우리가 여리고를 이겼으니까 우린 강하다.'고 생각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여리고와 비교해 볼 때 3천명만 가도 이긴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 바쳐진 것에 손을 댄다면 승리를 하나님의 승리로 여기지 않는 것이 됩니다. '나도 뭔가 한 것이 있으니까 나에게도 돌아오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에 손을 대게 한다는 것입니다. 아간이 하나님께 바친 물건을 취합니다. 이것은 여리고의 승리를 하나님의 승리로 여기지 않는다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나도 한 것이 있다.'는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한 결과가 하나님께 바친 물건을 취하는 행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6:18절에서 하나님께 바친 물건을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이스라엘이 취한 것으로 여기겠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화를 당하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아이 사람에 의해서 36명이 죽고 쫓기게 됩니다. 그렇다면 아이에서의 이스라엘의 실패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우린 그 원인을 단순히 아간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에의 실패의 원인이 단지 아간의 죄로 국한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아간은 이스라엘 안에 숨겨진 죄입니다. 마치 우리들 속에 숨겨진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내 속에 있는 죄를 모르고 '하면 된다.'고 설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죄를 모르고 스스로 강한 자로 여기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이 성을 칠 때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여리고보다 작은 아이 성을 무시하는 정탐꾼의 말대로 삼천 명만 보내서 아이 성을 공격하게 합니다. 이것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것을 하나님의 힘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힘으로 보는 결과라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물건을 훔친 아간이나 이스라엘이나 같다는 것입니다. 아간이 하나님의 물건을 훔친 것은 하나님의 것을 제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탐욕이었습니다. 즉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기 보다는 나에게도 뭔가 남겨 두고 싶은 탐욕입니다. 이 탐욕이 결국 실패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대적을 능히 당치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고 말합니다. 자기도 바친 것이 되었다는 말은 이스라엘도 하나님 앞에 바쳐진 여리고성처럼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이스라엘도 더러운 존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 것으로 취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승리를 마치 자신들의 힘으로 승리한 것처럼 여긴 것이 바로 더러운 존재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라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잊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약자로 살아라. 는 의미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능력이 있으면 되기 때문에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어도 힘이 없어도 괜찮은 존재가 바로 약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이었던 것입니다.

아간은 하나님께만 바쳐져야 할 물건 중에서 좋은 것을 자기 것으로 챙겼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주신 교훈을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은 항상 좋은 것은 자기 소유로 하고 싶은 탐욕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승리를 자기들이 승리한 것으로 여김으로서 자기 힘을 의지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죄가 어떤 것인가는 아간 한 사람을 통해서 확실시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신앙관으로 결국 그들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였습니다. 아간의 범죄(1절)와 백성들의 자만심(3절)등으로 인해 아이(Ai) 성의 1차 전투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군대와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군대는 전사자만 남긴 채 비참하게 패주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삼상 17:47)이라는 교훈을 뼈저리게 깨달아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실패의 원인을 알아야 했습니다. 즉 실패하게 하는 인간의 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성공하기 위해서 자신의 재주와 힘을 의지하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중에 하나님께 바친 물건이 있는데 그 물건을 제하기 전에는 대적을 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바친 물건을 몰래 가진 자를 뽑아내기 위해서 먼저 지파를 뽑고 다음에 족속을 뽑고 다음에 가족을 뽑고 다음에 바친 물건을 가진 자를 뽑아내라. 고 말씀합니다.

본문 16-18절을 보면 "이에 여호수아가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가 뽑혔고 유다 족속을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세라 족속이 뽑혔고 세라 족속의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삽디가 뽑혔고, 삽디의 가족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더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대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지파대로 나오게 하였더니 유다가 뽑힙니다.

이 유다 족속을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족속 중에서 세라 족속이 뽑힙니다. 세라 족속의 남자를 나아오게 하였더니 삽디 가족이 뽑힙니다.

이 삽디 가족의 남자를 나오게 하였더니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면서 어떤 방법을 통해서 유다 지파를 뽑고 유다 지파 안에서 세라 족속을 뽑고 세라 족속 안에서 삽디 가족을 뽑고 삽디 가족 중에서 아간을 뽑았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으로 뽑아내었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 속에서 아간을 바로 뽑아내시는 것이 아니라 지파에서부터 족속과 가족으로 그리고 한 개인으로 점진적으로 내려갔느냐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 중에서 아간을 바로 뽑아서 징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유대 지파부터 시작해서 점차 개인으로 내려가는 번거로운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은 아간을 뽑아서 아간 한 사람을 징벌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아간을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시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죄를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한 지파의 죄를 보시는 것도 아니고 한 가문의 죄를 보시는 것도 아니고 가족의 죄를 보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직 개인의 죄를 보실 뿐입니다. 이것은 불의한 일에도 해당되지만 선한 일에도 적용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날들은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나와 관계있는 날만을 특별한 날로 여기고??다른 날들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거나 허비한다면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슥4:10)말씀하십니다. 동시에 우리에게 주신 직분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마 25:21)말씀합니다. 여리고 성의 교훈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아무리 승산이 있어도 패전할 것이고, 동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교훈을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아이성은 적은 성이지만 아무리 작은 성이라고 할찌라도 가난안 진입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만 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달란트 비유에서 열심히 일한 두 종은 두 배로 남겼습니다. 그러나 땅에 묻어둔 종은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두 배로 남긴 두 종은 칭찬과 상을 받았고, 그대로 땅에 묻어둔 종은 책망과 벌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작은 것에 대한 두려움과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교훈을 통하여 교구 헌신예배를 드리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모든 것은 심판할 때가 있습니다.

아간의 죄악 된 행동에 대한 심판이 있었습니다. 탐욕은 자신과 가족 전체가 망하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1년도 정초가 있으면 세모가 있습니다. 학생이 학교에 입학을 하고 공부를 하면 졸업할 때가 있습니다.

인생 모두는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습니다. 역사도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하시고 마지막 최후의 심판을 하십니다.

우리 삶에도 마지막 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히브리서 9:27절에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맡겨주신 구역과 교구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결산하실 날과 순간이 옵니다. 이런 저런 핑계로 구역예배에 게을리 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젊은 날에 흘리는 땀과 눈물은 참으로 귀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꿈과 비전이 분명하고 삶의 목적이 분명한 젊은이라면 시련을 뛰어넘고 더 나아가 역경을 뚫고 이겨내고야 맙니다. 어느 분야에서고 성공한 사람들은 성공한 만큼 시련과 역경을 잘 이겨낸 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자기 능력의 15퍼센트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자기 능력을 최대한 개발해낸 사람은 스스로도 놀랄 만한 뛰어난 능력을 드러내며, 일을 성취합니다. 이것은 바로 자신감과 도전정신과 열정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사용하지 않는 85%를 활용해서 사용해야 능률이 있고, 발전이 있고, 신앙생활에도 변화가 나타납니다.

미국 시인 휘티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말 가운데 가장 슬픈 말은 '그렇게 될 수도 있었는데...'라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삶에 후회 따위는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 찾아드는 모든 기회를 맞아 우리는 늘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인생의 마지막에 결산하는 순간에 후회가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 미스바교회 구역원들은 최선을 다하여 모이는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하며, 전도하여 구역을 부흥시켜야 합니다. 주인이 돌아올 것을 알지만 결산을 대비하여 준비하지 못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은 있는 것 마져 빼앗아 버립니다.

적은 것이라도 구역부흥을 위해, 귀한 사명을 감당하기위해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지혜롭고, 착하고 충성된 구역원들이 모두 되시기를 복 빌어드립니다.


2. 달란트(재능)을 활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주님으로부터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순간에 달란트는 부여됩니다. 이것은 선택의 사건이 아니라 필수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것으로 거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누구나 다 받은 것입니다. 교회 성도들이라면 교구와 구역을 통하여 신앙훈련과 교재를 해야만 합니다. 주님의 고난 받으심을 잊지 않고, 구역원의 사명을 다하여야 합니다.

아간은 전쟁에 참여한 것 까지는 자신의 임무에 최선을 다했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을 나쁜 쪽으로 활용했기에 심판을 받아 아골 골짜기에서 죽임을 당하고, 불사름을 당해 돌무더기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우리 구역의 달란트는 복음사역을 위해서 각각 그 재능대로 다르게 받았습니다. 즉 각자 다른 복음의 사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 "각각 그 재능대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달란트를, 두 달란트를, 다섯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오늘은 내가 감당해야 될 몫이요, 내일은 주님의 몫입니다.

성도들은 누구나 세 가지를 하나님게로 부터 위임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재능과 직업과 직분인 것입니다.

1) 재능의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가르침을 잘 하는 것, 미술과 공예를 잘 하는 것, 음악을 잘 하는 것, 말을 잘 하는 것, 봉사하는 일을 잘 하는 것, 기계를 잘만지는 것이나 다른 사람보다 재주를 가지고 태어났거나 박주영선수처럼 축구를 잘 하는 등 개인적으로 모두가 각각 다르지만 재능들을 타고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이 재능을 잘 개발해야 합니다.

2) 직업의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사업가, 직장인, 공무원, 교사, 상인, 농부, 어부, 군인 등 그 외의 직업들은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요. 선물입니다.

3) 직분의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교회에서 집사, 교사, 찬양대원, 권사, 장로 등으로, 교구에서는 인도자, 구역장, 구역 서기 등의 각각 모두 직분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미스바교회 교구원들과 성도 여러분!

이처럼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재능, 직업, 직분의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원래 종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인인 하나님께서 자신의 소유를 우리들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즉 주님의 사역을 우리에게 전적으로 맡겨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몫만 충실하게 사명을 책임있게 감당해야 합니다.

본문 14절에 "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따라서 각각 사명의 종류는 다르지만 동일하게 하나님의 사역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사명과 타인의 사명을 비교해서도 안 되고, 자신의 받은 것에 대해서 항의 할 수도 없습니다. 여기에 불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소와 사자가 있었습니다. 둘은 죽도록 사랑했습니다. 둘은 결혼해서 살게 되었습니다. 둘은 서로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소가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풀을 날마다 사자에게 대접했습니다. 사자는 싫었지만 참았습니다. 사자도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살코기를 날마다 소에게 대접했습니다. 소도 괴로웠지만 참았습니다.

결국 참을성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둘은 마주 앉아 얘기합니다. 문제를 잘못 풀어 놓으면 큰 사건이 되고 맙니다. 소와 사자는 다투게 되었고, 끝내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헤어지고 서로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난 최선을 다 했어...!" 였답니다.

소가 소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고, 사자가 사자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면 그들의 세상은 혼자 사는 무인도와 같습니다. 소의 세상, 사자의 세상일 뿐입니다.

나 위주로 생각하는 최선이나 상대를 못 보는 최선을 다한 결과 그 최선은 최선일수록 최악을 낳고 맙니다. 나는 지금도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만 어쩌면 그것도 나 위주로 생각하고, 상대방을 보지 못하는 최선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야 합니다. 구역 예배를 잘 드리지 못한 구역은 이런 이유 때문에 구역 예배를 온전히 드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구역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나 중심으로 살았던 아간과 같은 삶을 살아서는 안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원금은 손실을 입히지 않았습니까? 내 잘못은 무엇입니까? 달란트는 재능, 능력직분인데 이것을 어떻게 사용해 왔습니다. 바울은 사나 죽으나 나는 주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고 고백합니다.

나의 구역에서의 현재 사용해야하는 달란트, 은사, 직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나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구역부흥과 하나님의 여광을 위해 우선순위를 바로 하여 잘 활용하고 있습니까? 나의 재능을 활용합시다. 우리에게 보존하라고 달란트를 주신 것이 아니라 활용하라고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도의 신분, 재능, 직업, 직분을 땅에 뭍어 두듯이 보존하지 말고, 구역 부흥을 위해 마땅히 잘 활용하는 구역원들이 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3. 결과도 중요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본문 30절에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감추었습니다. 그러므로 돌아와서 셈하던 주인에게 책망 받았습니다. 그는 악하고 게을렀습니다. 귀하게 받은 달란트를 활용하지 못하고 묻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들었습니다.

한 달라트 받은 종이 "땅에 묻었다"는 것은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재능, 직업, 직분을 자신과 육체의 소욕을 위해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위해서 소모한 것입니다. 자신의 유익과 물질주의에 쏟아버린 것입니다. 이기주의에 쏟아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지 못한 것입니다.

수세기 전, 이탈리아의 조각가 도나텔로는 거대한 대리석 덩어리를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흠과 갈라진 틈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대리석을 반품했습니다. 그의 곁에 있던 미켈란젤로도 대리석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역시 흠이 있음을 발견했지만, 그 흠을 예술가로서 자신의 기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도나텔로가 반품한 대리석 덩어리를 다시 사들여서 그것으로 시대를 초월한 불후의 명작을 만들어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다윗상입니다.

어떤 사람들(도나텔로)은 자신의 부족함은 뒤로 숨긴 채, 현재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고 부족한 것만 탓합니다. '대리석의 흠'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고 푸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또 어떤 사람들(미켈란젤로)은, 모든 것이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피아노 연주가가 있었습니다. 그의 연주를 들은 사람이면 누구나 뛰어난 그의 연주력에 감탄하곤 했습니다. 하루는 영부인이 그의 연주회에 와서 연주를 듣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당신은 정말 천재군요. 당신처럼 연주할 수만 있다면 나는 일생을 바치겠어요." 그 연주가가 진지하게 대답했답니다.

"아닙니다. 저는 천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연습에 몰두한 사람일뿐입니다. 나는 실제로 연주에 내 일생을 바쳤습니다.” 라고 하더랍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국내 최고 재벌 자리에 올랐던 정주영 회장은 성공비결에 대해 "모든 알을 할 때 목숨을 걸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80년대 일본 바둑계에서 '대삼관'을 차지한 조치훈 기사 역시 늘 목숨을 두고 대국에 임한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의 성공을 위해서도 무슨 일이든 목숨 걸고 하는 사람에게는 못 당하는 법인데 우리는 지옥에 갈 영혼을 건져내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의 군사들인데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국 스탠다드 석유 회사의 점원이었던 <아치볼드>라는 사람은 유난히도 그의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었는데, 심지어는 호텔에서 숙박계를 쓸 때에도 자기의 이름을 쓰지 않고 “한 통에 4달러 스탠다드 석유”라고 자기 회사의 석유 가격과 이름을 적곤 했습니다. 그리고 누구와 대화할 때에도 “한 통에 4달러 스탠다드 석유”라는 말을 먼저 한 후 용건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한 통에 4달러 스탠다드 석유”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소문을 들은 사장 <록펠러>가 이 <아치볼드>라는 사원을 불렀습니다. 록펠러는 이 평사원과 함께 앉아 식사를 하면서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스며 있는 애사심(愛社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록펠러>는 그가 얼마나 회사를 위해서 열심 있게 충성하는지 알고는 마음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록펠러>는 <아치볼드>야말로 스탠다드 석유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아치볼드>는 후에 <록펠러>의 뒤를 이어 세계 최대의 석유 회사 사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신 일이 어떤 종류의 일이든지 충성된 청지기로서 맡겨진 일들을 최선을 다하여 감당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을 믿으시고 더 많은 일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소원이 응답받기위해서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는 구역 부흥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야 할 줄 믿습니다.

바울은 딤후 4:7절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선언했습니다.

결국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주인에게 책망을 듣고 어두운 곳에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어두운 곳은 지옥입니다. 슬피 울며 이를 간다는 것은 지옥의 고통이 큼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은 결과는 어느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결산이 다가옵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이 같은 게으르고, 최선을 다하지 못한 모습이 너무도 많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구역 부흥을 위해 헌신하며, 전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1년이 지났지만 구역원은 그대로 유지되고, 심지어 구역원이 줄어들었습니까? 이 시간 달란트를 가지고 하나님께 남기지 못했다면, 땅에다 묻었다면, 철저히 회개하시고 돌이키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계시록 22:12절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습니다. 그러나 상급은 믿음의 행위로 얻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지난날의 신앙을 결산해야 할 때가 오고야 맙니다. 이 결산 곧 주님이 오실 때의 결산이요, 내가 이 땅을 마감할 때의 결산입니다. 아직도 결산의 때는 시간적으로 기회를 주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처럼 게으르지 말고 일해야 합니다.

1898년, 파리에서 리쯔(Ritz)호텔이 개관되었습니다. 당시의 사장이었던 시저 리쯔(Cesar Ritz)씨는 개관식 전 주문한 침대 매트리스를 매일 한 장 씩 깔고 자곤 했다고 합니다. 만일 그 다음날 일어나 어딘가 몸이 찌뿌듯하면 그 매트리스는 하자 있는 것으로 보고 즉각 돌려보냈습니다. 자신의 건강을 담보로 자신의 사업을 일으켰습니다. 그리하여 신뢰받는 호텔이 되었습니다. 최소한 우리 구역은 책임감 있게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그런 자세로 해야만 합니다.

아름다운 헌신의 기준은 지식이나 재물이나 능력의 많고 적음, 그 크기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최선을 다하는 데 참된 헌신, 아름다운 헌신이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주님을 위해 어떤 헌신을 하고 있습니까? 금년 남은 기간 동안 구역의 부흥이 정체되어 있다면 철저히 회개의 기간으로 삼고 더욱 열심히 사명을 감당함으로, 구역을 성장 시켜야 합니다. 열매를 맺어야 하나님께서 구역을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모든 구역이 최선을 다하므로 주님께 착하고 충성된 종이요, 구역이라는 칭찬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황 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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