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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으로 함께 하시는 주님 (요 14: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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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창립 13주년. 돌아다보면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이 생각납니다. 즐거운 순간들도 생각나고요.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함께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어령교수가 쓴 <이들이여, 이 산하를>에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옛날 어느 시골에 수염을 길게 기르고 다니는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에 사는 어떤 꼬마가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궁금한 게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를 만나자 꼬마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밤에 주무실 때 그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주무세요? 아니면 이불 밖에 내놓고 주무세요?”
할아버지는 그 아이의 질문을 받고 금방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껏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야, 미안하다. 나도 미처 생각을 못한 일인데, 오늘 밤에 한 번 자면서 보고 대답해 부마.” 하고는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드디어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웠는데, 그 수염이 이불 속에 넣고 자면 답답하고, 그렇다고 이불 밖에 내놓고 자자니 이상하고……. 해서 밤새도록 수염을 가지고 씨름을 했다고 합니다. 30년 동안 달고 다닌 수염이지만, 그래서 잠 잘 때 그것이 이불 속에 있었는지, 밖에 있었는지 미처 생각조차 하지 않다가 막상 이불 속인지 밖인지 생각해 보니까 그렇게 불편할 수 없더라는 겁니다.
우리가 그렇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지, 안 하시는지, 그렇게 신앙생활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령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 내가 성령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또는 성령님께서 내 안에 계신지, 밖에 계신지 선뜻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진실로 진실로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더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한 일도 하고, 나의 하는 일보다 더 큰일도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가시면 제자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도 할 수 있고, 이보다 더 큰일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계셔야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까지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내가 가면 너희들은 나의 하는 일, 그보다 더 큰일도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1) 나를 믿으라.
2) 기도하라. “이때까지는 내가 직접 모든 일을 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너희를 통해 시행하리라.”
3) 보혜사 성령께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있도록 하겠다.
4) 순종하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21절,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며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그렇게 성령에 관한 말씀이 14장부터 16장까지 네 번 반복됩니다. 그만치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자주 반복되는 말씀일수록 정신 바짝 차리고 들어야 합니다.

분명 예수님은 성령임재를 약속하셨고, 제자들은 그 성령과 함께 온 세상에 나아가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20:21-22,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파송과 성령의 관계. 성령이 없이는 결코 파송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없으면 여전히 나약한 인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4-5,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누구든 나아가서 주님께서 하신 일을 하고자 하거든, 주님께서 하신 일 보다 더 큰일도 하려고 하거든, 무엇보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라는 겁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주님의 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이 주님의 일 하겠다고 나서면 오히려 주님의 일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뜻대로가 아니라 자기 뜻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능력으로가 아니라 자기 능력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쉬운 예로, 다윗이 하나님과 함께 골리앗에게 나갔으니까 이겼지, 만약 다윗이 하나님 없이 골리앗과 싸웠다면 어찌 되었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매일 예수님으로부터 책망 받았습니다. 땀방울이 피 방울이 되도록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제자들은 잠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실 때 그들은 다 도망쳤습니다. 죽어도 예수님을 버리지 않는다고 큰 소리 치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제자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고작 하는 일이라고는, 다락방에 숨어서 “앞으로 어찌될꼬?” 근심하거나, 아니면, “이제 고향을 가자” “나는 물고기나 잡으러 가겠다.” 그런 정도입니다.
그런 그들이 성령 받자 나가서 복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세상에 살아 계실 때 보다 더 큰일을 감당하였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그리고 수많은 죽은 영혼을 사랑하기에 그런 큰일을 감당한 것 입니다.

·15절,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16절 이하, 그들에게 곧 주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서 영원히 함께 계시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동안 부흥회나 기도원 가면,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성령 받아라.” “불 받아라.” 그럽니다. 그러면 소리소리 지르고, 마루 바닥 뒹굴고 그럽니다.
그러나 성령은 받으란다고 받아지는 물건이 아닙니다. 내가 얻으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 아닙니다.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도행전 8:9-24에서, 마법사 시몬이 돈 주고 성령을 사려 하다가 오히려 저주 받았습니다.

성령은 복음을 전하는 능력입니다. 사도행전 1:8,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은 생명을 살리는 능력 입니다. 에스겔 37장,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 그 뼈들이 살아나 큰 군대가 되게 한 그 위에 부는 바람. 그 바람은 ‘루아흐’ 곧 ‘하나님의 기운’ ‘하나님의 숨’ ‘하나님의 영’입니다.

성령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예수님을 처녀의 몸에 잉태케 하신 하나님의 영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그에게 능력과 권세를 주신 하나님의 영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무덤에 장사 되었을 때, 그를 죽음에서 일으켜 주신 하나님의 영입니다. 선지자와 사도들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신구약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영입니다. 이 세상에 교회를 탄생케 하시고, 그 교회에 생명을 불어 넣으시며, 하나님의 권세를 입혀주신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 하나님의 영이 바로 성령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부께서 하나님이시듯, 성자께서 하나님이시듯, 성령께서도 하나님이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보아야 있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지식으로 알아져야 있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마치 요한복음 20:25의 도마의 말,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으로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그것이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은 결코 성령을 받지 못합니다. 본문 17절의 말씀처럼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가진 사람만 압니다.
19절에서 예수님은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승천하시면 아무도 예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20절, “그날에” 성령께서 임하시는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서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가면 너희는 나를 다시 볼 수 없다. 그러나 내가 가서 너희에게 보내는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나를 알고 나와 함께 있게 된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시고, 성자 예수께서 내 안에 거하시는 사건을 신학적으로 ‘내주하심’이라고 합니다.

제자들의 걱정과 두려움은, 예수님께서 가시면 우리는 뭐냐 싶은 겁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되나 싶은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니다. 걱정하거나 두려워 말아라. 나는 너희와 함께 한다. 곧 너희에게 성령께서 임하시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18절,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제자들에게만 주신 말씀인가요? 오늘, 여기 앉은 여러분에게도 주신 말씀인줄 믿습니다. 성령님은 제자들뿐만 아니라 우리와도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8:20에서 예수님께서 분명 말씀하셨어요.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믿습니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성령으로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하심을 믿으셔야 합니다. 아멘?
능력은 다른 게 능력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성령으로 나와 항상 함께 하심을 믿는 것이 바로 능력인 것입니다. 믿습니까?
처음 교회의 사람들, 우리처럼 성경을 잘 몰랐습니다. 성경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들은 능력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 그들은 성경에 있는 예수님은 잘 몰라도, 내 안에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산꼭대기에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이름도 다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나의 구세주이시며, 내 안에 항상 계셔서 나를 주관하시는 분이신 것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은혜의 삶은 살았던 겁니다.
고린도후서 4:8-9,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꺼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어떻게 그럴 수 있다는 겁니까? 7절,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10-11절, “예수의 생명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교회, 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셨습니다. 영원히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그들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러니, 누가 그들의 기쁨을 억누를 수 있었겠습니까? 누가 그들의 입에서 찬송을 빼앗아 갈 수 있었겠습니까? 누가 그들의 용기를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가난 속에서도 찬송하고 기뻐하는 그들을 누가 감히 꺼꾸러뜨릴 수 있었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겠습니까? 심지어,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 8:35)
그런데 여러분은 왜 근심하고 두려워합니까? 왜 고독하며 무기력합니까? 왜 마음들이 텅텅 비어있습니까?
문제는, 머리에는 주님이 계신데, 가슴에는 주님이 안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는 들은 게 있어서 좀 아는데, 그 예수님께서 내 생활에 아무 간섭도 못하십니다. 그저 막연하기만 한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내게 능력 주시는 자가 내 안에 안계시기 때문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성령은 어떤 힘을 나타나는 능력만이 아니라 인격입니다.
부처는 아무리 절하고 빌어도 대답이 없습니다. 갈멜산 꼭대기의 바알 신은 종일 소리 지르고 불러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부르면 응답하십니다. 엘리야의 기도에 하나님은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부르면 응답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십시오. 성령의 능력은 단순히 힘을 나타내는 능력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에게 알려 주시고, 가르치시고, 대답하시는 인격이십니다. Power가 아니라 Person입니다. Personality라는 말입니다.
그분은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의 삶에 직접 간여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생명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도 예수님과 함께 한 여러분을 꺾을 수 없습니다. 아무도 예수님과 함께 한 여러분을 꺼꾸러뜨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성령을 보혜사라고 하신 것입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돕는 자’(helper)라는 뜻입니다.
요한일서 2:1,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보혜사는 희랍어로 “파라크레토스”라고 합니다. 이 단어가 요한일서 2:1에는 ‘대언자’로 번역된 겁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주신 성령은 어떤 분인가요?
보혜사, 곧 우리 곁에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분입니다. 범죄 한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분입니다.
로마서 8:34, “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는 죽으셨지만 오히려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하여 주십니다.”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보혜사가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이 보혜사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들 입니다. 언제까지? 영원히.

더욱이 이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이 곧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입니다.
로마서 8:0-11,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위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니라.”
그래서 오늘 본문 20절, “그날에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 곧 그리스도의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인 것입니다.

17절에 보면, 성령은 곧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6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신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니라.” 하셨고, 요한복음 16:13은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은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진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려주시는 진리만을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6: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정리 하자면, 성령은 진리를 말씀하시는 진리의 영이십니다. 성령은 자기 자신에 대해 말씀하지 아니하십니다. 성령은 자기 임의대로 말씀하지 아니하십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성령은 사람들에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을 알게 하고 그분을 찬송하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 영이 나를 위하여 증언하실 것이다.”
성령은 예수를 증거 하십니다. 성령은 예수를 전파 하십니다.
그렇기에 교회와 성도들 역시 예수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래서 27절,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이라 함은,
우리의 생각이 그리스도의 생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의 체질이 그리스도의 체질로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함이 그리스도의 행함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할아버지의 수염이 이불 속에 있었는지 밖에 있었는지 그거 분명하게 기억할 수 없어도 그 수염은 할아버지와 함께 있었습니다.
주님, 곧 성령이 이 교회와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함께 하셨는지 분명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늘, 언제나 이 교회와 함께 하심을 분명히 믿습니다.
주님, 곧 성령의 사랑이 여러분과 저에게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함께 하셨는지 분명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늘,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심을 분명히 믿습니다.
성령의 충만하심과 주님의 사랑은 영원히 이 교회와 여러분 그리고 저와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 영 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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