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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목적대로 사는 인생 (고전 12: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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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께서 큰 은혜와 사랑으로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목적이 있는 삶"이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면서 우리는 이 세상에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과 분명한 목적에 의해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목적이 있는 사람은 형통하고 또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서 복을 받는다는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시간에는 하나님의 목적대로 사는 인생은 어떻게 사는 것인지에 대해서 그 방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서 같이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대로 사는 인생은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한 방법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인터넷 메일로 배달된 이야기 중에 어느 대학원생이 겪은 일인데요, 감동적인 글이 있어서 소개 하려고 합니다.

『조금은 무료하고 일상적인 퇴근 시간, 오랜 만에 집으로 일찍 가게 되는 날이었습니다. 매일 실험으로 반복되는 대학원 생활에 지치고 또 지친 하루, 그러나 이날 집으로 가는 길은 참 행복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10분이나 지났을까요? 맹인학교 앞 버스 정류장에서 장애우 한분이 타시더라고요. 앞이 보이지 않으시면서 긴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서 어떻게 버스를 타셨는지. 간신히 버스카드를 찍고는 버스 가운데 쪽으로 걸어오시는 동안 이상하게도 버스가 출발을 하지 않았습니다.
앞을 볼 수 없으신 장애우 분께서 손잡이를 잡고 중심을 잡으니 그제야 버스 운전기사께서 출발을 하셨습니다. 정말 조심조심 운전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 멋지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정거장 지나 그 분이 내리려고 하실 순간, 자기가 벨을 누르려는데 "삐~" 하는 소리가 먼저 들려 주위를 보니 벨을 눌러 드리려는 사람이 자기뿐이 아니었습니다. 그 순간 문득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이 '아직 세상 살만 하구나' 하면서 가슴 깊은 곳에서 새 힘이 솟아오르며 살포시 웃었습니다. 버스기사 아저씨는 버스를 최대한 인도에 붙여서, 근처 지하철역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세우시려고 천천히 멈춰 섰습니다. 다른 버스였다면 이미 출발해 모습을 감춰 버리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3,4분 이상 멈춰서 있는 버스 안에서 승객들은 짜증을 내기는커녕 저마다 행복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답니다.

'우리나라, 우리사회, 우리이웃의 마음, 아직은 세상을 살맛나게 만들어 주고 있구나!' 행복한 깨달음을 간직한 저녁이었답니다.

작은 배려가 만들어 내는 훈훈함이 버스 가득 퍼져 나가 가슴과 가슴을 하나로 엮어 주는 풍경. 행복의 단비가 내리는 시간, 참 착해지고 싶은 시간이었습니다. 』는 내용의 글입니다.

아름다운 이야기지요? 흐뭇하지 않습니까? 작은 배려,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마음, 사랑 때문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기억하세요. 행복은 사랑에서 나옵니다. 사랑하면 행복해 집니다.
저는 어머니날 노래를 부르면 그렇게 눈물이 나요.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님의 사랑은 가히 없어라”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립고 감사하고 좀 더 잘해드리지 못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리고... 그래서 눈물이 나고.... 왜 그래요? 부모님의 사랑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 감사한 것은 사랑 때문이예요! 찬송가 405장 “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이 찬송을 부르면 눈물이 나지요?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와 같은 죄인들을 위해서 예수님으로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새 생명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나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까?
에베소서 2:10에서 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나, 우리가 새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나, 우리가 믿음 잃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게 하시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선한 일을 하게 하려시기 때문입니다. 착한 사람,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왜요? 행복을 위해서 착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착하게 삽니까? 사랑하고 있습니까?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느냐? 는 것입니다. 행복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고린도교회를 향한 사도바울의 편지 중의 일부입니다. 이 고린도 교회는 능력이 많은 교회가 아닙니까?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분쟁이 있는 시끄러운 교회, 교회답지 못한 그런 한마디로 우스운 손가락질을 당하는 교회입니다. 왜요?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첫사랑을 잃어버린 것처럼 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가르치시기를 "교회는 몸의 지체와 같다!" 하면서 오늘의 머리와 몸의 비유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성도는 몸의 지체입니다. 이 말은 교회의 주인은 단 한 분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머리와 몸의 관계는 생명의 관계입니다. 머리와 몸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떨어지면 죽습니다. 머리는 몸을 움직이도록 명령을 합니다. 몸에는 많은 지체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지체로는 손이 있고 발이 있습니다. 손안에도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애지가 있습니다. 다 다릅니다. 그 역할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 중요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은 지체도 있습니다. 피를 움직이는 심장이 있고 숨을 쉬는 폐가 있고 밥을 소화시키는 위장이 있습니다. 다 다릅니다. 폐가 나빠서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심장이 나빠서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다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해서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머리와 몸의 관계, 몸의 지체끼리의 관계 다 중요합니다.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합니까? 사랑의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을 유지 할 수 있습니다.
머리 되시는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그의 몸이 된 우리는 사랑이신 주님의 명령대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때 건강하고 균형 잡힌 인생을 살아가는 법입니다.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들이 많이 있듯이 몸의 지체는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더 귀하고 못한 것이 없습니다. 다 귀합니다. 그러기에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대로 사는 인생은 사랑입니다. 선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한 일을 해하기 위해서, 착한 일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 크게 두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첫째는 이웃에 대하여 요구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본문 말씀에 21절을 같이 보시다.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나의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찾으려고 하는 어리석음입니다. 이런 행동을 책임전가라고 하는데 이 책임전가는 에덴동산에서 죄를 지은 인간이 했던 행동이며 이는 다툼과 분열시키는 사탄이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에 대한 요구는 결국 어리석은 죄인들의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4세기 말부터 5세기 초까지 활동했던 교부 중에 포이멘(Poemen)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사막에서 수련을 하는 사람입니다. 사막은 그늘이 없고 물도 없는 곳입니다. 얼마나 고생이 많겠습니까? 이런 곳에서 수련을 하는 것은 대단한 수행입니다. 그런데 이런 수련자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수련을 해도 마음에 평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기쁨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더 잘 믿겠다고 가정을 떠나고, 남들이 가지 않는 사막에 와서 많은 희생과 헌신과 그런 도를 닦고 있는데 문제는 자기 자신에는 평안이 없다는 것 큰 문제 아닙니까? 수도자 포이멘은 크게 고민이 됐습니다. 그래서 많은 수련을 통하여 존경을 받을 뿐 아니라 인생의 경험도 많고 연세가 높은 수도사 요셉을 찾아가 “제가 어떻게 하면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나이 많은 수도사 요셉은 “어디선가 평안을 찾고 싶다면, 행동을 할 때마다 "나- 나는 누구인가?" 하고 말하고, 아무도 판단하지 마시오!” 라고 했습니다. 평안은 남을 비판하지 않는 데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즉 이웃에 대한 요구를 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면 남을 비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어떠했습니까? 은사가 많고 기적이 많은 교회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교회는 평안이 없습니다. 시끄럽습니다. 그 이유는 은사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평안이 없는 이유는 이웃에 대한 요구, 비판과 정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평안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목적대로 사는 인생, 선한 일을 하려면 우선 비판을 멈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훈련을 받아도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도 이렇게 남을 비판하는 나쁜 버릇을 버리지 아니하면 평안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인간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우리 모두 불완전하고 부족합니다. 우리에게는 연약함이 있고 흠이 있으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에게는 좋은 뜻과 의지대로 살 수 없는 무능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신앙인인 사도바울도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로마서 7:19, 24). 이러한 바울 사도의 진솔한 자기 직면을 보아야 합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는 자기의 죄가 많음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더 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부족합니다. 허물이 많습니다. 누가 누구를 비판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목적대로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하여 아니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얻기 원한다면 제일 먼저 이웃에 대한 요구를 멈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미완성이라는 유행가도 있잖아요.

'인생은 미완성'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가야 해
사랑은 미완성 부르다 멎는 노래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불러야 해
사람아, 사람아 우린 모두 타향인걸.
외로운 가슴끼리 사슴처럼 기대고 살자
인생은 미완성 그리다 마는 그림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그려야 해
친구야, 친구야 우린 모두 나그넨걸
그리운 가슴끼리 모닥불을 지피고 살자
인생은 미완성 새기다 마는 조각
그래도 우리는 곱게 새겨야 해....
인생은 모두가 다 부족합니다. 그래서 미완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완전무결한 인생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부족한 미완성입니다. 그러므로 부족한 우리들이 서로 부족한 것을 들춰내는 것은 절대로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평안함을 원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예수님도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인을 잡아서 모세의 율법을 거론하며 죽여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고 하신 것인데 사람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래요 다 물러갔습니다. 우리도 물러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정죄하거나 비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는 사랑이 넘쳐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서로 비판을 하면 상처받고 마음 상하고 신앙을 잃게 됩니다.

미국의 기독교 잡지인 무디지에서 교회를 분열시키고 망하게 하는 10가지 대표적인 사례를 실었습니다. 교회를 망하게 하고, 자신을 망하게 하고, 우리의 신앙을 망하게 하는 사례가 다 있습니다.
①교회 내 특정 교인의 요구 사항에만 철저하게 초점을 맞춰라
②교회 안에 떠도는 모든 소문과 비평을 다 귀담아 들어라
③목회자의 약점만 찾아내 이야기 하라
④사랑 안에서 결코 참된 것을 말하지 말라
⑤불평불만의 씨를 마음 속 깊이 간직해 두라
⑥남을 용서하되 오직 스스로 잘못을 시인하는 자만 용서하라
⑦자신의 죄는 덮어두고 위선으로 가장하라
⑧공중기도 시간을 통하여 교회에 대한 불만을 다 토해내라
⑨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항상 이기기에 힘써라
⑩하나님이 당신에게 교회를 분열시키라는 사명을 주셨다고 믿고 행하라.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도 이같이 남을 비판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악한 영인 사탄의 역사에 앞잡이 노릇을 하면 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늘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 갈등의 원인도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웃에 대한 요구, 비판하는 일 때문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비판하니까 가정에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진솔하게 직면하고 지목하지 않는 결과가 서로에 대한 비난과 공격 그리고 집요한 요구로 나타나서 결혼 생활을 지속적으로 힘들게 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직장이나 교회생활도 이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목적대로 사는 인생이 되기 위하여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이웃에 대하여 요구, 비판과 정죄하는 것을 멈추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사는 인생은 온유해야 합니다.
온유하다는 말은 착하다는 말입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기에 착한 것입니다. 선한 영이신 하나님을 따르기에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몸의 지체에는 머리는 머리되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22절부터 27절까지 같이 봅니다.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

모세는 온유한 사람입니다. 모세는 많은 기적과 위대한 업적을 쌓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모세를 칭송할 때마다 그런 기적들과 업적들을 모두 말하지 않습니다. 그를 단지 온유함에 뛰어난 사람이라 말합니다. 민수기 12장 3절을 보면 “이 사람 모세는 온유(溫柔, humble)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塍)하더라” 하면서 그의 신앙적 성품을 칭찬을 합니다.
여러분 성령의 충만하다고 하면 무슨 일을 했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온유와 절제. 이 열매들은 무엇을 하는가? 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성품이 좋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온유한 분으로 기억되기 원하시며 또한 우리에게 그런 삶을 배울 것을 권면하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로 29절을 보면 “나는 마음이 온유(gentle)하고 겸손(humble)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도 단 하나입니다. 온유하시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마음을 따라가면 마음에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온유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1)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서 믿음이 있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몸은 머리의 명령대로 움직일 때 건강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몸은 언제나 머리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비로소 우리 몸은 건강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24절을 같이 봅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 하사” 하나님이 우리의 몸을 움직이게 하는 거에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두 권사님이 똑같이 암에 걸리셨습니다. 병원에서 6개월 안에 죽는다고 했습니다. 한 권사님은 기도합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6개월 내내 “하나님,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그런데 돌아가셨습니다. 죽으시면서 “하나님 없네.” 그리고 죽으셨습니다.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반면에 다른 권사님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6개월 만에 죽게 된다는 말을 듣자마자, “할렐루야, 6개월이나 기간을 주시는 군요. 6개월 동안 나에게 오는 모든 사람을 다 전도하겠습니다.” 오는 사람들마다, 위문 오는 사람마다 “김 집사, 박 집사, 이 집사 우리 천국에서 만날세.” 하시면서 위문 온 사람들을 오히려 위로해 버립니다. 사람들이 감동을 받습니다.
친구가 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지 않는 친구입니다. “이 사람아, 당신은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사나? 아직도 예수를 안 믿다니, 그래가지고 죽을 자신 있나?” 깜짝 놀라서 예수 믿게 됩니다. 6개월 동안 위문 온 모든 사람들을 다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났는데도 죽지 않습니다. 계속 살아계십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이런 온유함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절망적인 상황이 벌어졌을 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떠한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그 상황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축복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은 누가 이깁니까? 믿음의 사람이 이깁니다. 찬송가도 있잖아요.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여러분이 오늘 믿음이 있다면 여러분은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일의 99%는 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1%만 인간의 지식으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지식으로 이 세상을, 인간의 지혜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초라한 인생을 살지 않기 바랍니다. 우리는 아이큐 100이나 많아야 200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아이큐 100이나 200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일어나는 모든 일의 99%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누가 지구를 돌리고 있습니까?
지금 누가 바람을 일으켜 불어오게 합니까?
누가 우리에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갖다 줍니까?
누가 우리에게 물을 공급하고 있습니까?
누가 우리에게 공기를 공급하고 있습니까?
누가, 누가 물고기를 키우고 있습니까?
누가 쌀을 만들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는 것이란 1%밖에 되지 않습니다. 99%는 다 하나님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살려면 99% 이상을 움직이는 그 분을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 지식으로, 여러분 아이큐 200으로 사는 여러분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됩니다. 믿음으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언제나 그분을 의지합니다. 매사에 그 분 앞에 삽니다. 사람 앞에 살지 않아요. 하나님 앞에 삽니다. 믿음으로,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악수합시다! 믿음으로 삽시다.”

온유한 사람, 선한 일을 하는 사람,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2) 온유한 사람은 이웃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25절을 같이 봅니다.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우리의 지체와 지체는 서로 도와가는 것입니다. 섬기는 것이 온유한 것입니다.
우리교회의 신앙적 목표가 무엇입니까? 3S- Salvation(구원), Sanctification(성화), Service(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변화는 삶의 변화입니다. 이것이 바로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구원받아서, 성장하면서, 반드시 남들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의 최종목표는 섬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정을 섬기고 교회를 섬깁니다. 이웃을 섬깁니다. 직장에서도 잘 섬겨서 누구든지 인정하는 섬김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 이 나라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입니까?
경제가 발전해서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나라보다 가난하고 약한 나라들을 돕고 그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나라는 세계유일의 분단국가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통일이루는 그 자체가 우리의 나라의 목적은 아닙니다.
저는 이 나라가 선한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같은 동족들끼리 서로 섬기고 사랑하고 더 나아가서 어려운 나라를 도와주는 그런 나라. 이것이 우리나라의 목적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 나라를 하나님이 어떻게 지켜주셨는데요. 정신없는 어떤 분들이 "이 나라가 공산화가 되도 좋으니 어떤 모양으로든지 통일만 이루면 된다." 고 합니다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절대 기뻐하시지 않으실 줄로 믿습니다.
이북에서 전쟁을 일으켰을 때에 하나님이 이 남한 땅을 지켜주셔서 대한민국을 이끌어 오셨습니까? 감사한 줄을 모르고 오늘의 자유와 이 믿음 안에 사는 것을 귀한 줄 모르고 어리석은 우리들이 돼서는 안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하는 온유한 사람, 착한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옆으로는 이웃을 섬기면서 살아가는 그런 삶,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목적대로 사는 인생인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람을 바라보고 사람을 기대하고 실망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책임전가와 같은 행동으로 악한 영인 사탄의 앞잡이 노릇인 비판과 정죄를 멈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머리되시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하나님만을 믿고 섬기고, 우리들끼리는 서로 사랑하면서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나라,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 가는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사는 인생을 사는 참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다시 한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는 나의 반석이시며 나의 요새시라
주는 나를 건지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그는 나의 여호와 나의 구세주
하나님만이 이 나라를 지키시고 하나님만이 이 나라를 승리하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 창  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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