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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1세기의 선악과 (엡 4: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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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에서 인간의 타락을 그려낸 모습은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자기의 의지에 따라서 선악과를 따서 먹은 내용입니다.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로 인하여 자신의 부정한 모습에 대하여 눈을 뜨게 되었고 하나님에 대하여 무서움과 거부감을 가지게 된 것으로 창세기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과연 창세기에서 그려낸 선악과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이 남아있지만 지난 1월 16일 기독교의 사회단체인 기독시민사회연대는 "21세기의 선악과는 '돈'이다."란 정의를 내렸습니다. 그 이유는 한국교회의 갖가지 어두운 그림자의 원래 모습은 전부 돈 문제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라는 기본의 입장에서 나온 선언입니다. 단순히 교회만을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교회, 기업, 시민단체, 언론, 누구보다 나 자신이 돈의 문제를 신앙인의 입장에서 올바르게 쓰자는 목적이었습니다.

구약성서에서 나타난 교회는 주로 성전을 중심으로 한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이 때의 재정은 주로 십일조에 의존하였습니다. 십일조는 3년을 주기로 1년 분은 구제에 사용하였고, 나머지 2년 분은 제사장을 비롯한 레위인들 즉, 성전봉사자들의 생계와 성전보수 관리에 사용되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그 전통에 따라서 오늘날의 교회도 헌금의 30%를 사회선교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지키지 않는 것은 '성서의 십일조에 대한 가르침을 교회 스스로가 거부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특히 신약성서에서 증거 하는 예루살렘교회를 비롯한 초대 교회가 그랬듯이 재정이 넉넉한 큰 교회는 재정이 상대적으로 빈약하여 자체 유지도 어려운 개척교회와 농어촌교회, 사회선교단체의 재정을 돕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입니다. 나날이 심화되는 사회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에 대하여 교회가 단지 설교강단에서 외치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교회부터 스스로 나서서 헌금을 올바르게 사용하면서 우리사회의 재정적인 문제를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드리는 헌금은 단순한 물질이 아닌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니 하나님께 돌려 드린다는 신앙고백의 한 표현이지만,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헌금이 바로 사용되지 못함에 대하여 스스로 자기 개혁과 정화를 통하여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기독연대가 '교회 헌금 바로 사용하기'를 외치는 이유는 사회개혁은 물론 교회개혁의 중심에는 대부분의 타종교도 그렇듯이 돈(헌금)의 문제가 중심에 놓여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돈과 헌금의 문제에 자기 정화를 통하여 대 사회개혁과 대안적인 경제윤리와 전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대의 신앙인은 '돈의 족쇄'로부터 구원받아야 하는데 왜냐하면 돈이 우리로 악의 구렁에 빠져들게 하고 있으며, 돈이 하나님이 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돈으로부터의 자유를 실현하고, 돈으로부터 고통받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해방의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노력을 실천할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교회재정은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합니다. 물질이 하나님께 드려질 때는 헌금이지만 사용될 때는 단순한 '돈'으로의 전락하기 쉬워집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에 있다는 성서의 말씀처럼, 헌금으로 드려진 물질에는 교인의 신앙과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돈에 대한 유혹과 범죄는 재정에 대한 정보의 비공개와 폐쇄된 운영에 의하여 시작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를 할 경우 그 만큼 돈에 대한 유혹과 범죄문제로부터 자유롭게 되며 우리 사회가 돈의 문제로 인하여 각종 범죄와 비리가 발생하는 것은 돈의 움직임이 음모적, 폐쇄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사용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재정의 공개화 운동을 통하여 모든 사회의 투명한 재정운영의 투명성과 재정운영의 공정성에 대한 요구를 해야하며 목회자는 하나님 앞에서와 교인 앞에서 교회재정의 투명화 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며 교회 스스로가 제도적으로 투명화의 길을 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도 재정위원과 목회위원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서 여러분들이 봉사하고 계십니다.

궁극적으로 교회헌금의 30%는 정의를 세우고,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에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의 확대를 위하여 작은 자(고난받는 자, 가난한자)들과 교회 그리고 교인들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해 나간다. 성서는 우리에게 '너희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과 같다'(마태복음 25장 40절)고 가르치고 있다. . 기독인은 구체적으로 '약자를 지키고 보호하는 성서의 희년법'을 지키고 이러한 가르침을 사회적으로 확대하려는 자기 사명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우리도 교회의 헌금을 조금씩 우리만을 위하여 쓰는 모습이 아니라 1/3은 교회의 사역자를 위하여 1/3은 교회의 운영을 위하여 그리고 1/3은 사회의 선교를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에베소서에서 새롭게 거듭난 신앙인은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헌금으로 우리의 책임을 다했다고 안심해서는 절대 않된다는 경고의 문구입니다. 정말로 내가 몸으로 수고하여 우리의 이웃을 돕고 있는지 다시 한번 돌이켜 봐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유산을 자녀에게 모두 물려주기보다는 사회에 환원하려는 노력도 이러한 실천방안으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기독인의 부의 세습과 가난한 기독인의 가난의 대물림 역시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빈익빈 부익부의 20/80의 부의 편중 구조와 부의 세습의 문제 역시 우리 사회에서 추방되어야 할 요소입니다. 교회의 헌금과 재정문제는 목회자나 평신도 누구나 어렵게 생각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어려운 문제라고 해서 회피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더욱 심각한 처지에 놓이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제부터라도 헌금에 대한 우리의 신앙적인 자세를 다시 한번 돌이켜보고 내가 가진 돈에 대한 가치관을 하나
님의 기준에서 올바르게 세우는 계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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