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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의 만나 (출 16:11~18, 행 2:42~47, 요 6: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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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말씀: 출애굽기 16:11 ~ 18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스라엘 자손이 원망하는 소리를 들었다. 너는 그들에게 '너희가 저녁이 되면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빵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 그렇게 될 때에 너희는 나 주가 너희의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하고 말하여라."  그 날 저녁에 메추라기가 날아와서 진 친 곳을 뒤덮었고, 다음날 아침에는 진 친 곳 둘레에 안개가 자욱하였다. 안개가 걷히고 나니, 이럴 수가, 광야 지면에, 마치 땅 위의 서리처럼 보이는, 가는 싸라기 같은 것이 덮여 있는 것이 아닌가! 이스라엘 자손이 그것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서로 "이게 무엇이냐?" 하고 물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입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명하시기를, 당신들은 각자 먹을 만큼씩만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당신들 각 사람은, 자기 장막 안에 있는 식구 수대로, 식구 한 명에 한 오멜씩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대로 하니, 많이 거두는 사람도 있고, 적게 거두는 사람도 있었으나, 오멜로 되어 보면,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다. 그들은 제각기 먹을 만큼씩 거두어들인 것이다. 아멘.
 
서신서의 말씀: 사도행전 2:42 ~ 47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빵을 떼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사도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과 표징이 많이 일어났던 것이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아멘.

복음서의 말씀: 요한복음서 6:30~ 35
  그들은 다시 물었다. "우리에게 무슨 표징을 행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보고 당신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이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는 하늘에서 빵을 내려서, 그들에게 먹게 하셨다' 한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다 주신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참 빵을 너희에게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하나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그 빵을 언제나 우리에게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아멘.

오늘 출애굽기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부족해서 하나님께 밤낮으로 불평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해결책으로 만나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저녁에는 고기를 먹으라고 메추라기 떼를 주셨으며 아침에는 떡을 먹으라고 만나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모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쉬는 안식일 바로 전날에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만나는 생명의 떡, 생명의 물, 먹을 것, 마실 것, 풍족한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만나 없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이는 하루도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필요에 따라서 먹고 마시는 것을 절제한다거나 금식을 하는 등의 이유가 아니라면 먹고 마시지 않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만큼 음식은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각자에게 생명의 떡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생명의 떡이 되어서 오늘 우리에게 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밤에 이런 꿈을 꿀 때가 있습니다. 아마 일이 잘 안 될 때, 답답해서 날아다니는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제가 나무 위를,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마음으로는 불안해하면서 날아다닙니다. 한참을 그렇게 날기만 하다가 결국에는 아무런 목적도 이루지 못하고 땅에 떨어집니다. 그래서 그 꿈에서 깨고 나면 굉장히 마음이 허전합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는데 지금의 나에겐 날개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지하철 벽에 있는 명언과 경구들을 유심히 보다가 어떤 시 한 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시가 너무 좋아서 읽고 또 읽다가 한 소절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날개가 있는 동물은 발이 두 개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팔과 다리가 두 개씩 있는 사람을 포함하여 발이 네 개인 동물들은 모두 날개가 없습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멀리 뛰고 높이 뛰는 경기를 보셨을 것입니다. 발을 땅에 디디지 않고 많이 가거나 점프해서 높이 뛰면 금메달을 받습니다. 사실 날개 달린 짐승이 보면 참 우스운 일일 것입니다. 사람이 한 번 뛰어가지고 얼마나 멀리, 높이 갈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금메달이 수여됩니다.

사실 날개만 있다면 하늘로 얼마나 높이 날아갈 수 있겠습니까. 얼마나 멀리 날아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날개 두 개 달린 동물들에게는 날아가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대신에 사람을 포함하여 발이 네 개인 동물들에게는 날개 대신 유용한 손과 발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소중한 팔과 다리를 가지고 하나님께 어떤 축복을 받았는지 찾는 일이 중요한 것이지, 왜 저에게는 날개를 안주셨냐고 불평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매일 운전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저는 운전할 때 시간은 없는데 길이 막히면 자동차에 날개가 달리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곤 합니다. 하지만 사실 땅을 달릴 때는 네 바퀴로 달리면 됩니다. 하늘을 날 때는 이륙, 착륙할 때 외에는 날개로만 날면 됩니다. 또한 바다를 가로지를 때는 둥둥 뜨기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 비행기, 자동차, 배에는 각각의 가치가 있는 것이지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땅에서는 자동차가, 하늘에서는 비행기가, 바다에서는 배가 각자의 역할을 합니다.

만나란, 모든 인간에게 생명을 연장하고 지켜줄 수 있는 풍족한 먹을거리를 주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필요한 만큼 풍족하게 만나를 주시고 남는 것은 반드시 썩게 하셨습니다. 남는 것을 염려하고 모아 두는 것은 반드시 썩을 것이다. 풍족한 만큼 받고 그에 감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배고팠고 목말랐던 적이 있습니다. 개인뿐만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차원에서도 굶주렸고 힘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서로 부족할 때 나눠 쓰고 아껴 쓰며 살아왔습니다. 우리의 경험상으로도 사회가 병드는 시기는 부족할 때가 아닙니다. 너무 많이 남아돌아서 썩는 냄새가 날 때가 바로 부패할 때입니다. 부족할 때는 하나님께 간구하지만 남을 때는 간구하지 않습니다. 왜 많이 가져다가 썩게 놔두고서는 하나님께 부패한 불평하십니까. 부패한 삶과 부패한 세계를 위해 기도하지는 않고 불평만 하십니까. 오늘 하나님께서는 만나 이야기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배고플 때 찾으며 반드시 주겠다. 그러나 남는 것은 반드시 썩을 것이다. 불필요한 것은 썩는다. 가져가지 말아라.

하나님께서는 사람마다 축복과 재능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재능을 찾고 축복에 감사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시에는 이런 이야기가 더 있었습니다. 뿔이 난 소에게는 강한 이빨을 주시지 않았지만, 이빨이 강한 사자에게는 뿔이 없다. 꽃이 아름답게 핀 나무의 씨앗은 별 볼일 없지만, 좋은 열매 맺는 과일 나무일수록 그 꽃은 별 볼일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으면서 꽃까지 좋아야 한다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면서 열매까지도 좋아야겠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천지창조 질서가 아닙니다.

꽃을 피우라는 축복을 받은 사람은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서 노력합시다. 열매를 맺으라는 하나님의 뜻을 받은 사람은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노력합시다. 왜 열매가 있는데 남이 피운 꽃까지 시기하고 질투 합니까. 열매는 열매대로, 꽃은 꽃대로 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마다 은사를 주셨습니다. 이렇게 받은 은사를 가지고 감사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자 행복지수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남이 가진 것에 대해서 불평하는 것은 불행지수입니다. 오늘 남의 것을 보고 불평하기 전에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인지 확인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귀한지 각자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만나의 뜻입니다.

서양의 사상사를 죽 읽어보면, ‘정의’란 무엇인가 하는 항목에 이런 라틴어가 나옵니다.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모든 사람에게 자기의 몫을.” 플라톤의 시대부터 오늘까지 집단의 정의든지 개인의 정의든지 정치, 사회, 어떤 분야의 정의든지 정의를 말할 때 고전처럼 쓰여지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각자에게 자기의 몫을”이라는 말의 원천은 오늘 성경에 나온 만나 이야기 같습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택한 모든 생명체에게 생명이 생명으로 유지될 수 있는 몫을 풍만하게 주십니다. 여러분의 몫을 오늘 찾아서 감사하십시오.

요한복음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만나의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만나는 생명체에게 준 풍족한 양식만이 아닙니다. 생명 그 자체가 원래 만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먹을 것으로서의 만나를 주신 것만이 아닙니다. 니라, 저라는 생명체가 바로 하나님의 만나입니다. 이것을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예수가 오심으로 인해서 인간은 하나님을 공유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공유된 생명체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오늘 만나의 핵심적인 뜻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해서 만나를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공유하시는 생명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는 것도, 십자가에 죽는 것도, 부활의 축복도 하나님과 함께 합니다. 이 만나를 오늘 받으십시오. 하나님과 공유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매일같이 베풀어 주시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십시오. 생명의 축제. 이것이 오늘 여러분의 성만찬 축제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박 종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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