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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로 나아갑시다 (삼상 14:36-52, 히 10:19-25, 요 14: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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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동안 우리 대통령의 “편지정치”가 정가의 가십(gossip)으로 등장했었습니다. 대통령이 인터넷을 통하여 국민들에게 서 너 번 편지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그 편지에서 오늘 우리나라의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 것은 정치가 안정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일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줄 수 있는 정치체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또는 직접적으로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여기서 야당과의 연정(聯政)이나 내각제로의 개헌이야기도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대통령은 그 편지 때문에 비판 내지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삶이 이렇게 어려울 때 대통령이 편지를 쓰려면 희망을 주고 용기를 줄 수 있는 그런 편지를 써야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현실에서 대통령을 향한 이런 비판이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2차 대전 때 독일 공군의 공습을 받아 온통 런던 시가지가 쑥대밭이 되어 국민들이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은 온 교회에 종을 울려주도록 요청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을 향하여는 라디오 연설을 하였습니다.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힘을 모아 이 난국을 극복하자면서 국민들을 위로 격려하며 용기를 주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처칠을 위대한 정치가라고 평가합니다.

저는 우리 서부교회가 오늘과 같이 큰 사역을 감당해 나갈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저를 비롯하여 우리 교회에 앞장 서있는 이들의 신앙적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앞서있는 우리가 먼저 확고한 신앙과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요새 한창 유행하는 말대로라면 “목표 지향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앞장서야 합니다. 정말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앞장서서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사울 왕을 보십시오. 왕이 확고한 목표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용기도 담력도 없었습니다. 왕이 흔들렸습니다. 그러니 군인들도 국민들도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위기는 밖에 있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에게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최고 통치자였던 사울 왕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많이 맡긴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한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문제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 자신이 어떠냐가 문제입니다.

달란트 비유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다섯 달란트를 맡긴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의 충성을 요구합니다. 두 달란트를 맡긴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의 충성을 요구합니다. 한 달란트를 맡았으면 한 달란트만큼만 충성하면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을 받고 상급을 받습니다.

우리 찬송가 387장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 피 흘리며 나가 싸울 때 / 나 혼자 편히 앉아서 바라만 보리요....곧 나가 전쟁 마당에 다 어서 나가자 / 거룩하신 주님 위해 싸우러 나가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목숨을 버리시면서 까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 놀라운 사랑을 받은 우리가 우리의 목숨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교회를 섬기는 것도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이요,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도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 옛날 저 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던 주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주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블레셋의 강한 전력 앞에서 잔뜩 위축되어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사울 왕에게 제사장의 조언이 있습니다. 36절 마지막 부분에 “이리로 와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사이다”라고 했습니다.

사울은 이 국난을 당하여 먼저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을 의지하고 나아갔습니다. 그는 이 전쟁을 자기 힘으로 승리하고 나서 자기 이름을 잔뜩 높일 계획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떠난, 하나님 외면한 사울과 그 군대, 그 국가는 더 이상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초라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에는 이 땅에서 강한 사람까지도 단지 그 호흡이 코에 있을 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저 유명한 느부갓네살 왕도 한번 하나님께서 내치시니까 마치 짐승처럼 추락하지 않았습니까? 누가복음에 나오는 저 부자도 하나님께서 “오늘밤 내가 네 영혼을 취하리라”고 했을 때 그의 백년대계는 일장춘몽(一場春夢)이 되고 말지 않았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했든지 “내가 아니라 주님이시라”고 고백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리로 와서 하나님께 나아가사이다”. 이 말은 “먼저 하나님과 상의합시다” 그런 뜻입니다. 먼저 기도하라 그 말입니다. 왕을 향한 제사장의 권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을 위한 계획이 있으십니까? 하나님과 함께 감당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사무엘서 본문 45절에 보면 요나단은 “하나님과 동역하였다”고 했습니다. 사실 사울왕의 맹세대로라면 요나단은 죽어야 했습니다. 비록 그가 왕자라고 해도 그 앞에는 죽음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어떻게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과 동역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고, 망하지도 않고, 죽지도 않습니다. “아무도 내 손에서 너희를 빼앗아 갈 자 없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너희를 빼앗아 갈 자 없다”고 했습니다.

나는 우리 교회가 정말 힘들 때, 아니 지금도 큰일을 경영하면서 기도하는 일꾼들이 있는 것을 감사합니다. 더울 때는 무척이나 뜨겁고, 추울 때는 또 무척이나 차가운 저 콘테이너 박스에서 일년 12달 365일 기도소리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나중에도 이 일 즉 콘테이너 박스의 기도는 우리 교회의 신화가 될 줄 믿습니다.

“우영”이라는 회사가 우리 공사를 궁지로 몰아넣었습니까? 물론 그랬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가 기도에 전념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 자신들의 힘으로 그것을 해나가는 양 불신앙으로 교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새 업자로 선정된 “양문”이 우리 새 성전 건축을 하는 것으로 아십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성전 건축위한 새로운 도구로 들어 쓰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게 다가 아닙니다. 우리 새 성전을 지으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우리의 믿음과 기도를 통한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일에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심지어 100세에 난 아들까지도 요구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아멘”하는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그 일을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하나님이 이 큰일을 하시면서 우리에게 기도와 헌신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우리가 모든 일을 다 하고도 “우리는 무익한 종이로소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교만한 자는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이 은혜를 받는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교회가 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3. 그런데 사울이 하나님께 상의를 하는데도, 하나님께 기도하는데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습니다. 사울의 기도가 도무지 하나님께 상달되어지지를 않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야고보 사도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우리 주님은 “구하라 주실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겠다”고 했을 때 그 열쇠가 무엇이겠습니다. 우리 기도가 그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기도는 하늘 창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세례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눅3:21-22에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강림하시고...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다”고 했습니다. 기도할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기도할 때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교회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늘 문을 여시고 응답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구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죄악이 가로막혀 우리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사울은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하지 못할 만큼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앞에서 정결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결하게 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 앞에 정결하게 되어 인정받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범 교회적인 회개가 있어야 할 것은 두 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저 다시스행 배가 풍랑을 만나 모두 죽게 되었을 때 요나가 “이 풍랑이 나 때문이라”고 회개했습니다. 그때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얼결에 요나를 삼켰던 고기가 배탈이 나서 견디지 못할 때 그 배안에 있던 요나가 회개했습니다. 그때 요나를 토해내고 고기도 살고 요나도 살았습니다. 요나가 다시 니느웨로 가서 외치니까 왕을 비롯해서 온 국민들이 회개했을 때 니느웨는 용서받고 살아남았습니다. 기도가 천국 문을 여는 열쇠라면 회개는 기도문을 여는 열쇠라고 하겠습니다. 

사울이 회개 없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을 때 일은 점점 더 꼬여만 갔습니다. 제비를 뽑았더니 아들이 뽑혔습니다. 해결은커녕 더 어렵게 되었습니다. 왕이 맹세한바가 있기 때문에 요나단은 사형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을 죽이는 것을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왕은 그렇게 큰 소리를 쳤지만 결국 왕의 말은 헛구호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왕의 권위도 땅에 떨어졌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짐승나라와 새나라가 전쟁을 하는데 그 사이에 박쥐란 놈이 있었습니다. 짐승들이 승리할 것 같을 때 박쥐는 잽싸게 짐승인척 했습니다. 그러다 새나라가 승리할 것 같으면 그는 또 날래게 새 노릇을 했습니다. 결국 나중에 발각이 되어 짐승편도 못되고 새 편도 못되었다는 이야기를 어릴 때 들었습니다. 이런 것을 우리가 흔히 잔머리 굴린다고 합니다. 혹 세상에서는 이런 잔 머리가 한때 통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성실해야 합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고 하셨을 때 다윗은 선하고 충성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가장 큰 소원이 무엇입니까? 우리 찬송가에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 하면서 주게 더 나가기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 만나고, 주님께 은혜 받고 주님의 복을 받으며 주님과 함께 살기 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초청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기도로, 헌신으로 주님께 나아가십시다. 주님은 여러분에게 안식을 주시고, 은혜와 복을 주셔서 누리게 하실 줄 믿습니다. (김 오 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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