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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을 유지하라 (창 22:1-2, 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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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에 훌라이 휠이 있습니다. 쇠로 된 큰 바퀴입니다. 처음에는 돌리기가 힘들어요. 그러나 일단 돌아가기 시작하면 가속도가 붙어 다른 부품들을 일정하게 돌려줍니다. 신앙도 이런 면이 있어요. 처음에는 잘 굴러가지를 않아요. 확실하게 무언가 보이지도 나타나지도 않아요. 그래서 실망하고 포기하지요. 하지만 꾸준히 하면 때가 되면 굴러갑니다.

영적인 것들은 다 그래요. 사랑은 영적입니다. 남녀간 사랑이나 친구간 사랑도 힘이 있지만, 하나님 사랑은 영적 권능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로 시작해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사랑이 아니라 사랑은 그렇게 합니다. 영적인 것은 사랑도 믿음도 소망도 끈기가 있어요.

1. 시험의 여러 모습

누구나 살다보면 시련을 당합니다. 불신자들에게는 그냥 시련입니다. 마치 고목이 바람불고 비오면 썩어가듯 그렇게 계속 무너져갑니다. 하지만 신자는 그렇지 않아요.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시련을 통해서 강해지고 성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자는 시련을 시험이라고 부릅니다. 시험은 풀어가는 방법이 있고요 점수가 나오고요 상도 있어요.

시험은 여러 종류입니다. 그냥 시련이 올 수 있어요. 신자들의 습관이 있지요? 어려운 일 일어나면 스스로 물어봅니다. “내가 뭘 잘못했지?” 성령께 물어보세요. 아무 것도 없으면 계속 찾지 말고 말하세요. “이건 그냥 오는 시련이구나.” 그리고 풀어 가면 됩니다. 시련은 중립적이니까 신자는 쉽게 풀 수 있습니다. 하나님 의지하고 참으면 됩니다.

다음으로 사탄이 주는 시험이 있습니다. 결혼한 사람이 이성에게 유혹을 느낍니다. 옳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벌려합니다. 남에 불이익을 주어 내가 덕을 보려고 합니다. 모든 부정한 욕심이 다 그래요. 이건 분명 사탄이 주는 겁니다. 그 목적은 타락시키고 망하게 하는 겁니다. 결국 악한 인간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 밖으로 쳐지게 만드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주는 시험도 있습니다. 목적은 신자를 유익하게 하는 겁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 하시느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시험을 당하셨고 또 하나님도 신자를 시험하는 내용이 성경에 나옵니다. 이 말씀은 악에 넘어가지도 않고 신자를 망하게도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말씀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부르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시험을 하십니다. 시험은 쉽지 않습니다. 어려우니까 시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실력이 늘어납니다. 미국 가는 사람은 토풀시험을 봐야 합니다. 그 준비가 만만치 않아요. 책 읽고 단어 외우고 듣기 훈련합니다. 점수도 잘 받지만 실력도 크게 늡니다.

시험의 형태는 가지각색입니다. 가정에서부터 시작해 직장에 교회에 여러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불평 비판부터 시작해 여러 문제가 나타납니다. 몹쓸 병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작은 갈등 나쁜 소문 억울한 소리부터 시작하여 큰 사고와 실패가 있습니다. 술 한 잔부터 시작해 일어나는 각종 유혹들이 있습니다. 모두 시험입니다. 성적이 매겨집니다.

야고보서는 말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 시험의 목적은 온전하고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존재로 일어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신자는 예수를 통해 이미 온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 예수 덕분이지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그 온전이 경험되고 나타나려면 스스로 그렇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 효과는 영적권능을 갖게 됩니다. 세상이 두려워하고 사탄이 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을 통과해 자기 삶의 왕으로 나타나기 바라십니다. 이기는 자는 왕관을 받습니다.

2. 시험과 인내

시험 받는 사람은 인내해야 합니다. 여기 인내라는 말에 집중해 봅시다. 인내가 그냥 참는 것인가요? 여름에 밖에 나가 일을 합니다. 숨도 쉬기 어려워요. 그러나 일은 해야 합니다. 아무 생각 안 하고 그냥 억지로 일할 수 있어요. 또는 신세타령하면서 신경질부리면서 할 수 있어요. 아니면 일의 목적을 생각하며 더위를 극복하는 맘으로 할 수 있어요.

모두 다 참는 것이지만 삶의 모습은 전혀 달라요. 교회 일도 그렇습니다. 아예 안 나타나는 건 시험을 포기한 겁니다. 오긴 오지만 불평하면서 일 할 수 있어요. 안 오면 복 못 받을까봐 왔어요. 그러나 억지로 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사랑해서 누가 보든 말든 주의 전을 위해서 일합니다. 어떤 게 더 높은 점수 받고 자신의 신앙실력이 좋아질까요?

그래서 헨리 나우엔은 말합니다. “그냥 참는 건 인내가 아니다. 불평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며 억지로 참는 건 나를 망칠뿐이다. 참아도 내 할 일을 하며 해야 한다. 그것이 인내이다.” 그냥 참는 건 참을수록 망가집니다. 포로수용소에서 살아 나와도 대부분 폐인이 됩니다. 그러나 참으로 인내한 사람은 수용소도 잘 견디고 나와서도 더 멋있게 됩니다.

지난번 말한 짐 스톡데일이 그런 사람입니다. 월남에서 해군중위로 포로가 됩니다. 8년간 닭장에 갇혔어요. 많은 사람들은 고문과 공포와 절망으로 인격이 망가집니다. 풀려나서도 평생 정신과 신세를 집니다. 그러나 스톡데일은 거기서도 비밀리에 포로들을 지휘하고 격려합니다. 혹독한 시련이 강한 지휘관을 만듭니다. 계속 진급해서 제독이 됩니다.

빅터 프랭클은 나치 수용소에서 세계적 정신분석학자로 성장합니다. 코리 텐 붐도 사람들에게 감동과 용기 주는 간증가로 되어갑니다. 어떤 피아니스트는 홀로 아무 것도 없는 책상을 두드렸어요. 그의 귀에는 음악이 들렸어요. 대부분은 무서운 역경에서 절망하고 짐승처럼 되어 사라집니다. 살아 나와도 사회생활 못하게 되요. 이것은 인내가 아니지요.

인내는 성경이 말한 대로 눈부시게 온전한 사람으로 크는 겁니다. 참더라도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소망 속에 참습니다. 그것이 성경적인 인내입니다. 그러면 뭘 하느냐? 돈이 있느냐, 권력이 있느냐? 돈과 권력은 사람을 따라서 옵니다. 인내하는 사람은 능력자가 됩니다. 그 안의 위대한 영혼이 만들지는 겁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이 다 그랬어요.

특별히 아브라함이 그러합니다. 그는 인내로 성공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의 말씀과 약속을 받았습니다. 복의 근원이 되고 심히 창대하게 된다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실생활은 그렇지 못했어요. 기근을 만납니다. 아내를 빼앗깁니다. 조카와 싸웁니다. 목숨 걸고 전쟁도 합니다. 가정불화도 일어납니다. 그 가운데 계속 인내합니다.

아들을 준다 했는데 한 두 해도 아니고 25년을 기다립니다. 자손이 바다가의 모래는커녕 아들 하나도 없어요. 그냥 아무 생각 안하고 살았나요? 아니요, 하나님의 약속을 가슴에 품고 자기 할 일을 하면서 기다립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이 인내입니다. 이 인내만이 나 자신을 능력의 존재로 만듭니다. 이 인내만이 보상이 있습니다. 믿음의 인내입니다.

3. 믿음으로 인내하라

그렇게 해서 결국 100살에 아들을 얻습니다. 아이가 소년으로 자라나자 또 시험이 옵니다. 그 아들을 잡아, 그러니까 죽여 각을 떠서 불에 태우는 번제로 제사를 드리라는 말입니다. 이 보다 더 큰 시험이 있을까요? 누구라도 이런 시험에서는 넘어집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포기하지요. 아브라함은 통과해요. 그래서 믿음의 조상, 영적존재가 됩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바칠 줄 하나님이 몰랐을까요? 아셨지요. 시험은 하나님을 위한 게 아닙니다. 우리를 위한 겁니다. 아브라함이 그만큼 믿음이 성장했으니까 그 수준에 맞는 이런 시험이 오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입니다. 사탄은 감당 못할 시험을 줍니다. 약점을 잡아서 넘어지게 하는 게 목적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통과하게 하는 게 목적입니다.

우리도 어려움을 당합니다. 아브라함처럼 가족을 참혹하게 만들거나 자신의 경력을 모두 망가뜨릴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힘든 상황이 한없이 계속될 수도 있습니다. 사업도 안 되고 병도 오랠 수 있습니다. 시험입니다. 어떤 시험은 여러 해가 걸릴 수 있어요. 그러면 인내해야지요? 인상 쓰면서 억지로 합니까? 자신을 발전시키면서 인내하나요?

물론 참된 인내를 해야 하겠지요. 아브라함이 한 것처럼요. 아들이 물어봅니다. “불과 나무는 있는 데 번제할 양은 어디 있나요?” 아브라함은 대답합니다.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이것입니다. 그는 항상 이것을 믿었어요. 하나님은 시험을 주시되 항상 준비하십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은 일시적인 흥분이 아닙니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느끼는 경건한 감정도 아닙니다. 오늘은 은혜가 충만한데 내일은 식는 그런 게 아닙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이요, 흔들리지 않는 신뢰입니다. 내 확신을 의지하면 흔들립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의 말씀을 믿는다면 흔들리지 않아요. 믿음을 그 위에 세워야 합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나요? 사업이 생각처럼 잘 안 풀리나요? 기도가 응답이 없어요? 그래서 포기했나요? 억지로 참으며 사나요? 그렇게 하지 마세요. 시험은 어떤 형태건 하나님을 의지해 통과해야 합니다. 스스로 말하세요. “문제의 해답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셨다.” 해결을 하나님으로부터 기대하세요. 그리고 할 일을 하세요.

어떤 일을 하건 내 자신이 기준이 되면 안 됩니다. “오늘은 기분이 좋다. 컨디션 좋다. 하나님이 도우신다.” “오늘은 안 좋다. 자신이 없다. 하나님이 도우시면 좋겠는데.” 이건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내가 아니라 말씀이 기준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도우신다고 변함없이 약속하신다. 고로 나는 잘된다. 그러므로 기분과 컨디션을 거기에 맞추자.”

그러면서 할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힘 공급하심을 믿고 생각하고 찾고 배웁니다. 그러면서 영적 훌라이 휠을 돌리세요. 비록 감옥에 있어도 매 맞고 모욕당해도 포로수용소처럼 캄캄한 터널을 통과해도 그렇게 인내하세요. 하나님의 생명과 은혜는 빛을 발합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합시다. 그러면 믿음으로부터 영적 끈기와 이김이 나옵니다.

QT를 위한 질문

1. 영적인 것들은 끈기로 대해야 얻는다는 말에 공감하나요?(서/1,2)
2. 세 종류의 시험을 말해보세요.(1/2-4)
3. 시험의 목적은 무엇이고 그건 어떤 상태인가요?(1/7,8)
4. 신앙에서 나오는 인내는 어떤 것인가요?(2/1-3)
5. 신앙적인 인내는 어떤 결과를 주나요? (2/6)
6. 믿음이 무엇인가요?(3/5)
7. 기분이나 예감이 안 좋을 때 어찌할까요?(3/7,8)

(김 기  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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