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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버지께 영원한 것 (마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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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향한 일곱 가지의 기도가 끝나고 오늘은 기도의 마지막 송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나 예배 순서 가운데 대표기도가 끝나면 반드시 성가대가 송영을 불러 기도를 끝마무리하는 예배의 모본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고 당신의 평화를 내려주소서♪” 이렇게 성가대가 기도자의 기도를 다시 뒷받침해서 하나님께 송영으로 예배의 기도를 마치게 하는 순서가 있는데 주기도문의 마지막도 오늘 말씀과 같이 송영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과 실제 우리들이 드리는 주기도문의 차이가 하나가 있는데 실제 주기도문은 “대개”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과 성경 은 이러한 “대개”라는 말이 안 쓰여 있는 차이가 있습니다. 왜 “대개”라고 했는가? 이 말은 왜 우리 주기도문에 들어있는가? 그래서 역사적으로 보면 여기서 “빼자”라고 해서 뺐던 시기도 있고 “다시 넣자”라고 해서 다시 넣었던 시기도 있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 “대개”가 무슨 뜻인가? 먼저 오늘 말씀을 들어야 될 부분이 있는데 성경을 보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이 말이 괄호 안에 되어 있습니다. 양쪽에 괄호를 쳐놨습니다. 왜 괄호를 쳤을까? 이것을 우리가 생각해보면 됩니다. 모든 성경은 원본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원본을 보고 여러 사람이 여러 시대에 베껴서 사본을 만들었고 그 사본도 보존할 길이 매우 힘들어서 온갖 방법으로 보관되어 왔는데 이 사본은 한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썼기 때문에 사본이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을 우리가 인정합니다. 성경을 보다보면 성경의 맨 아래쪽에 아주 작은 글씨로 “어떤 사본에는 없음” 이런 말이 많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사본이 많다보니까 어떤 사본에는 이 말이 있고, 어떤 사본에는 없습니다. 성경에 지금 나오는데 어떤 사본에는 이 말이 없으니까 그런 줄 알라고 이렇게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괄호를 쳤다는 말은 이 대목이 어떤 사본의 기록자는 썼고 또 어떤 사본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혹시 이 대목이 원문에는 없는 것을 기록자들이 자기의 뜻을 삽입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괄호 안에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넉넉히 그럴 수도 있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기록하는 저자가 이 대목을 기록하다가 성령님의 아주 강한 인도를 받아 뜨거운 감격을 가지고 기도문의 끝을 장식해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하고 기도를 마쳤기 때문에 이것이 삽입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연구 결과로 괄호를 치고 기록하게 된 겁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그 당시 기도의 마지막을 다 이렇게 끝을 맺었습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고 일반적으로 기도의 마지막이 통용화 되었던 것을 이 대목에 자연스럽게 삽입시켰을 것이라고 보는 경향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기도 자체가 고백적 행위가 되므로 “이러한 우리의 모든 기도 응답자는 하나님이시다라는 고백을 하기 위해 초대교회에서 기도의 마지막을 이렇게 했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주님의 가르친 기도에 삽입되어 기록된 것이다.”라고 해석을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신학적 태도는 무엇인가? “이 대목이 기록자의 감격적 삽입이 되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이 기도의 마지막을 그대로 기도하자라는 결론을 그대로 사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일곱 가지 기도의 마지막을 송영으로 끝냈는데, 첫째 단어인 “대개”라는 뜻이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이 단어의 잘못된 해석이 있습니다. “대개”는 글자 그대로 “대략”, “대충” 이런 뜻으로 해석하면 아주 큰 착오가 생깁니다. 이 단어의 번역은 “왜냐하면”, “일의 원칙을 말하자면” 이런 뜻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이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일곱 가지 기도를 열심히 드리지 않았습니까? “왜 그렇게 기도를 해야 하느냐 하면”이라는 뜻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라고 주님이 가르쳐주신 것입니다.”라고 기도문을 끝내는 것입니다. 자, 이제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왜냐하면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에” 그런 뜻이고,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왜냐하면 하나님은 권세가 있으시기 때문에”, 그래서 이 “대개”라는 말은 “왜냐하면”, “그 일의 원칙을 말하면”, “왜 이렇게 기도하라고 했느냐 하면”라는 의미이며, 그 당시에 모든 기도의 끝을 맺었던 아름다운 성령에 의한 문장으로 성경에 삽입이 되어 괄호 안에 기록되어진 것입니다. 앞에서 열심히 기도한 내용의 이유를 밝혀주는 접속사 역할을 “우리의 기도를 사하여 주옵소서. 왜냐하면 하나님이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셨기 때문에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있는 기도라는 말입니다.

여기 보면 몇 가지 단어 가운데 두번째 단어인 “나라”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라”는 하나님의 우주 통치권을 말합니다. 교회 헌법에 보면 “국가는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존재하며 하나님의 허락 안에서만 지상 권세를 행세할 수 있다.” “국가의 존립 목적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유지하고 인류 구원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전파를 국가가 도우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성장과 발전에 협조하여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촉진하는데 국가 존립의 의미가 있다.” 이렇게 교회 헌법이 되어 있습니다. “만약 지상의 권세가 하나님의 우주 통치권을 부인하고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심과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구주가 되심을 부인하거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그의 지체인 그리스도인을 박해할 때 교회는 성경이 허락하는 모든 방법으로 이에 대해서 항거한다.” 그래서 핍박이 생기고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고 지금도 세상에는 핍박받는 국가가 그렇게 많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두 가지 국적을 소유하고 살아갑니다. 지상 국가의 국적과 하늘나라의 국적입니다. 그런데 이 두 국적은 상호 배타적이거나 적대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입니다. 서로 도와주는 국적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살고 있는 지상의 어떤 나라가 두 국적 중에 양자택일을 강요당했을 때 지상의 국적을 버리고 하늘나라의 국적만을 택합니다. 만약 대한민국 정부가 “우리에게 당신은 하늘나라 시민권을 버리고 이 지상의 국적만을 소유하라.” 그랬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하느냐?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적 같은 것은 내가 쓰레기통에 집어넣어도 괜찮습니다. 그런 경우에 나는 하늘나라의 시민권만 소유하겠습니다.” “그러면 너는 죽는다.” “죽이시오. 나는 하늘나라 시민권이 있기 때문에 그 국적만을 가지고서 내가 하늘나라 가겠습니다.” 그래서 다 순교 당해서 죽은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지상의 국적이 하늘나라 시민권을 도와주고 협조할 때만 필요한 것이지 하늘나라의 시민권이나 하늘나라의 국적을 포기하라고 할 때는 지상의 국적은 어느 나라 국적이든지 상관없이 초개같이 집어던져 버리고 하늘나라의 시민권만을 고수하는 것이 우리 크리스천의 삶이다.”라는 것이 교회가 지향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이 “나라”는 하나님의 우주 통치권을 인정하는 나라이며 “우리나라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주 통치권자입니다.”라는 뜻으로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시편 24편 1절에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요” 그래서 뭐라고 합니까?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고 돌릴지어다.” 이렇게 아주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지상의 국적은 우리 삶에 필요한 대로 왔다 갔다 할 수도 있고, 지구촌이라는 세계에서 외국 사람도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다인종 국가의 문화가 형성이 되고 있고, 우리나라 사람도 외국에서 수없이 살고  있는 지상에서 서로 보완, 협조하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 국적은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영원한 국적이다. 영생을 얻는 직위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 나라가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오며”라고 살아가는 성령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의 마지막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나라가 가야할 길이 무엇인가? 지상의 나라는 하늘나라의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의가 성취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나라의 목표가 됩니다. 그러니까 지상의 나라가 열심히 해야 될 일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는데 국가 존립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질서, 무정부 상태, 혼란이 야기됩니다. 예수님을 보면 하늘나라의 그림자인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죄를 범할 때 그 나라를 보고 슬피 울면서 탄식하지 않으셨습니까?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를 돌로 치는 예루살렘아! 오히려 선지자를 보호하고 선지자를 위해서 있어야 될 나라가 선지자들을 전부 죽이고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적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하늘나라의 그림자인 예루살렘이 가장 먼저 하나님 나라의 의를 전해야 될 나라가 그 반대의 일을 행하고 있도다.” 그래서 슬피 울면서 예루살렘을 책망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져버린 지상의 나라를 보시고 한탄을 하십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그렇게 하지 않지만 선진국들은 대통령 취임식 날은 반드시 성경책이 나와야 됩니다. 성경책 위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안 됩니다. 국민이 100퍼센트 투표를 해주었어도 그 일을 거부하면 대통령으로 취임을 못합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된 것은 이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 그림자로 하나님의 뜻이 이 나라에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당신이 이제 앞으로 몇 년 동안 수고하시겠습니까?”하는 말에 “예!”라고 대답을 하고 선서를 해야만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것입니다. 선진국들은 하다못해 대통령이 아니고 시의회가 모일 때도 그 시에서 살고 있는 목사가 가서 시작 기도를 해주어야만 회의가 시작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회의를 안 합니다. 저도 몇 번 불려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지금 이 시에서 결정하려고 하는 중요한 일들이 있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 하늘의 그림자가 이 땅에 실현되는 그런 역사를 우리가 오늘 시의회를 통해서 결정할 수 있도록 반드시 목사의 시작 기도를 통해서 시작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상의 나라가 무엇인가? 하늘나라의 그림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하고 지상의 나라는 영원하지 아니한대 다만 하늘나라의 그림자로서 이 땅에 존립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가 영원할 것입니다.”라고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나라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온 우주가 다 하나님의 것이요, 바울은 자기 자신도 하나님의 소유라고 했습니다. 일전에 목사 안수식이 있었는데 제가 설교를 하고 58명에게 목사 안수를 주었는데, 일본에 가서 선교를 열심히 한 선교사들이 일본 교인들을 전부 데리고 와 기모노를 입고 일본어로 찬양을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랬습니다. 그때가 바로 독도 문제가 심각했던 그런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분위기가 이상해졌단 말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와서 찬양을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일본 선교는 한국 목사가 했는데, 그 사회 보는 목사가 나와서 “독도가 일본 땅입니까? 한국 땅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온 우주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세번째 단어는 “권세”입니다. 우주 통치권자는 자연히 우주적 권세를 가집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우주를 멸망시킬 권세도 가지고 계십니다. 영어 성경에 이 대목을 “power”라고 그랬습니다. 마태복음 마지막 성경구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나는 가질 권세도 있고 멸망시킬 권세도 있다는 뜻입니다. 권위 있는 권세자 앞에서는 누구든지 꼼짝 못합니다. 권세자의 말 한마디에 생명이 달려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사람의 말에 따라서 죽고 삽니다.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권세가 다 하나님의 것이요, 주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아버지께서 그것을 내게 주셨으므로 내가 또 너희에게 주노니”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상 모든 권세가 다 하나님의 허락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둬 가시면 당일에 그 소모가 다 소멸하리로다.” 지금 우리들은 주님으로부터 큰 권세 하나를 얻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권세가 얼마나 힘이 있는가? 여러분! 고속도로를 120, 130km로 막 달려가면 그때 그 충격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뭐, 조그만 돌멩이 하나가 부딪쳐도 차가 파손될 지도 모르고, 날아가는 새 한 마리가 유리창에 부딪쳐도 그 힘 때문에 유리창이 와장창 깨져 버릴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가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달려가는 그 힘을 교통경찰은 손가락 하나로 저지합니다. 손가락으로 딱 서라고 가리키면 꼼짝 못하고 섭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가 지닌 권세 때문입니다. 교통경찰의 복장을 입고 모자를 쓴 사람이 그렇게 힘차게 달려온 자동차를 손가락 하나로 단속합니다. 그 사람은 고속도로 상에서 차 수백 대를 다 자기 맘대로 세울 수가 있습니다. 왜? 국가가 그 일에 그 권세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교통질서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밤새도록 못 가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권세가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권세는 그렇게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권세가 무엇인가? 요한계시록 2장 26절에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일을 지키는 그에게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권세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에 권세라는 단어를 쓰는 것입니다. “오늘 그 권세가 하나님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이렇게 기도하는 거란 말입니다.

지상의 권세는 대통령일지라도 몇 년 그 나라와 약속한 연수만 지나면 끝이 납니다. “영원토록 왕 노릇하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 그 권세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주셨음을 우리가 찬양하고 노래합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은 그렇게 큰 권세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내가 드린 이 기도를 모두 능력으로 응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권세를 쥐고 있는 사람은 말 한마디로 모든 문제를 해결합니다. 우리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주의 권세를 가지고 우리 모두를 항상 다스리고 계십니다. 권세자의 마음대로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바리새인들이 듣고 항의를 합니다. “네가 무슨 권세로 죄까지 사해 주느냐?” “나는 정죄할 수도 있고 사할 권세도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큰 죄가 있어도 권세가 있는 사람이 “네 죄가 사하여졌다.” 라고 하면 그 시간으로 사해지는 것입니다. 큰 죄를 짓고 재판을 받는 죄수가 있다고 합시다. 검사가 그가 지은 죄를 열심히 고발했습니다. 재판장이 “그래! 너는 죄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너희의 살아온 모든 정상을 참작해서 이 시간으로 너를 석방하노라.” 하면 두 말 할 것도 없이 나와 버리면 끝나는 겁니다. 미국의 O. J. 심슨 같은 사람은 두 사람을 죽였다고 해서 1년 반이나 재판을 끌었는데 마지막에 재판관이 “너는 죄 없다.” 그 한마디에 나와서 골프 치며 재미나게 삽니다. 미국 사람들 70퍼센트가 ‘그가 사람을 틀림없이 죽였다’라는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약한 그런 재판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재판관이 마지막에 “너는 죄 없다.”라고 선언한 그 한마디 “Not guilty”라고 하는 그 한마디 단어 때문에 그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정말 그가 살인자일지라도 사함을 주는 자가 선언하면 무죄가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권세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렇게 한다라고 하면 끝이 나는 겁니다.

저는 무슨 죄 지은 사람이 목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서 법정에 가서 재판 받은 적이 있는데 재판관이 나더러 너는 왜 왔느냐고 묻기에 “저는 목사인데, 이 사람이 도움이 필요해서 내가 같이 와준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죄 지은 것은 당신이 도와줄 맘이 있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죄 지은 것을 다시는 죄 짓지 않도록 교육시켜줄 수 있나요?” “시켜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데리고 나가십시오.” 그래서 데리고 나왔습니다. “나는 당신을 교육시킬 책임이 있으니까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마십시오. 자, 교육했으니 가십시오!” 재판관이 하라고 하면 끝나는 겁니다. 아니, 그러면 그 사람은 나를 냉면이라도 한 그릇 사줘야 될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냥 갔단 말입니다. 기도의 마지막은 권세자로 부각시켰습니다. 만약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드리면 줄 수 있는 권세자가 얼마든지 줄 수 있습니다. 죄를 사해달라고 하면 사해줄 수 있는 권세자가 얼마든지 사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많은 회의와 협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장관급 협상을 날마다 하고 실권을 쥐고 있는 사람 “OK”라고 하는 이 말 한마디를 얻어내기 위해서 그런 회의가 필요한 것입니다. 최고의 결재자가 누구인가? 그 사람이 “OK”할 수 있는 회의를 위해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진땀을 빼고 밤을 새우고 그렇게 오랫동안 회의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시여! 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한 권세자이시오니 나의 죄도 사해 주시며 일용할 양식도 주시오며 시험에 들지 않게 악에서 구원해 주소서. 하늘나라의 뜻이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 이것이 너희의 기도니라!”

네번째는 “영광”입니다. 영광이란 모든 선한 빛, 뿌리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왜 사는가?” 이 질문에 첫 번째 대답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이다.” 입니다. 하나님을 표현할 때 “영광”이라고 구약과 신약에 나타나 있습니다. 출애굽기 16장 10절에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서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출애굽기 40장 30절에 “구름이 회막에 덮히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자연과 성전 안에는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했다”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레위기에 보면 9장 23절에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들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라고 했습니다.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번제를 드릴 때에도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했다”라고 성경에 기록되었고,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시는 일을 나타내는도다.” 그래서 역대상 16장 28절에 보면 “만방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2장 23절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영광이 이렇게 큰 문제가 된단 말입니다. 예수님과 관계된 말씀인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말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제자들이 영광이 무엇인가 이해가 되었을 때 예수님께 간청을 합니다. 마가복음 10장 37절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소서.” 바울 서신인 로마서 8장 18절에 “생각건대 현재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사도행전 7장 55절에 “스데반은 순교 당하는 현장에서 하늘을 우러러보니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영광! “그 영광스러움이 지상에서 나를 통해서 나타내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란 말입니다.

자,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훌륭하게 했을 때 “아! 이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다.”라는 말을 하고, 혹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아! 그 교회는 언제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혹시나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게 하옵소서.” 이런 말들을 쓰지 않습니까? 우리 성가대들이 첫 번 송영할 때 많이 부르는 찬송 “♬ 영광~ 영광~ 영광~♪” 그러면서 시작하는데 “이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해주옵소서.”라고 성가대의 송영으로 선포하고 예배가 시작되는 겁니다. 이러한 것, 즉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영원히 하나님께 있사옵나이다.” 우주 통치권과 이 통치의 힘과 거기서 나는 빛이 영원하다는 하나님의 영원성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영원”이라는 것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포함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도 그러하셨고 현재도 그러하시며 미래도 똑같습니다.”라고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똑같은 거룩과 영광을 표현하십니다. 지상의 역사는 흘러가고 수없이 변했어도 하나님의 소중한 역사성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해마다 메시야 찬양할 때 우리 성가대원들이 메시야의 마지막 부분을 열심히 부릅니다. “♬ 찬송과 존귀 영광 지혜 능력 주님께 돌리세 보좌 위에 앉으신~♪” 이렇게 부른단 말입니다.

주님이 그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는 이렇게 끝을 맺는데 맨 마지막에 “아멘”이 있습니다. 기도의 마지막은 “아멘”인데 무슨 뜻인가? “우리 기도를 응답해 주옵소서.” 지금 우리들은 헬라어를 번역하지 아니하고 쓰는 두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할렐루야”이고 또 하나는 “아멘”입니다. 사실 기도의 마지막 “아멘”은 힘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무엇과 같은가 하면 모든 계약서 체결의 마지막 도장과 같습니다. 도장 찍었으면 끝난 것입니다. “아멘. 그렇게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믿고 기도하십시오. 주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하시면 됩니다. 기도를 잘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음에 있는 대로 말하면 됩니다. 기도문이 잘 안나오면 예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주기도문만 열심히 해도 훌륭한 기도가 됩니다. 여러분의 모든 기도,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분명히 들어주신다고, 그러니까 이렇게 기도하라고 예수님이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 내 영혼 속에 있는 모든 기도가 응답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마지막을 송영으로 응답했습니다. 이 의미가 무엇인가 저희들이 잘 깨닫고 일상적으로 항상 기도해서 내 삶이 주님의 자녀로서 훌륭하게 이 땅에서 성취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을 드러내는 하늘나라의 그림자로 내가 살고, 우리 교회가 살아가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이 필 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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