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살인하지 말찌니라 (출 20:13)

  • 잡초 잡초
  • 332
  • 0

첨부 1


서론

“살인하지 말라” 하는 것은 십계명중 여섯 번째 계명입니다. 지난주에 연천지방 최전방 GP내무반에서 김일병의 총기 난사사건으로 소대장 1명, 상병 8명이 죽고 일병 6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많은 젊은 청년들이 아까운 생명을 잃었으니 얼마나 비통하고 안타까운 일입니까? 저는 그 사고의 원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보면서 ‘오늘날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생명을 너무 경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인하지 말찌니라”는 계명을 이해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큰 명령입니다. 큰 명령은 언제나 작은 명령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찌니라”는 명령은 “해롭게 하지 말찌니라”하는 명령을 포함합니다. 또 “말찌니라”와 같은 부정적인 명령은 긍정적인 명령을 내포하고 있으며, 살인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생명을 보호하라는 적극적인 계명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간단하지만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남을 해치지 말찌니라”, 두 번째는 “자기 자신도 해치지 말찌니라”, 셋째는 “자기 자신이든 남이든 생명과 영혼을 보호하고 양육하고 지키라”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1. 남을 해롭게 하지 말라

먼저 남을 해롭게 하지 말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람은 영혼도 있고 육신도 있고 이름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세 가지 가치는 영혼과 육신과 이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해치지 말찌니라”고 할 때는 먼저 우리는 남의 육신을 해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직접살인은 절대적으로 금지된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9장 6절을 보면 “무릇 사람이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사람이 피를 흘렸다는 말은 고의적으로 살인을 했다는 것입니다. 고의성
을 가지고 사람을 살해한 사람에 관해서 하나님은 그 사람도 피를 흘려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에 포함이 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모세가 받기 훨씬 이전에 노아가 하나님에게서 받은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보호하시기 위한 창조법칙에 속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사형제도를 반대하고 사형제도 폐지에 앞장서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기독교는 그런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사람을 고의적으로 살해한 사람에 관해서는 국가가 판단하고 심판을 해서 생명을 빼앗을 필요가 있을 때에는 국가가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국가는 복수심에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는 공의를 집행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고의적인 살인자에게 정당한 공의를 부과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개인적인 복수를 금하고 있는 것이지 국가가 공의를 집행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절대 아닌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실수로 남을 살인한 자에게는 대단한 자비를 베풀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서 20장 1-9절까지를 보면 하나님이 ‘도피성’이라는 것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도피성은 여섯 개가 있는데 요단강 동편으로 세 개가 있고 서편으로 세 개가 있습니다. 사람을 죽인 사람이 일단 도피성으로 도망을 합니다. 그러면 국가에서 그 사람을 불러다가 고의성이 있는 살인이었는지 판단을 합니다. 고의성이 밝혀지면 사형에 처하지만 실수라고 하면 도피성 안에서 주민이 되어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도피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다면 실수로 죽임을 당한 사람의 가족이 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피성 안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실수로 살인한 사람의 생명은 보호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토록 도피성에서 살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대제사장이 바뀌게 되면 그 사람은 도피성에서 해방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고의적인 살인을 금지하신 것이지 과실의 살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보호해 주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보면 또 정당방위의 개념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2장 2절에 보면 “도적이 뚫고 들어옴을 보고 그를 쳐 죽이면 피 흘린 죄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살인죄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정당방위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너무 정당방위라도 지나치게 하는 것은 경계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2장 3절에 보니까 “그러나 도적이 들어와도 해 돋은 후이면 피 흘린 죄가 있다.”고 했습니다. 해가 떠서 누가 누구인지 다 보이는데 죽였다고 하면 그것은 과잉방위이기 때문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주제에 관해서 오늘날 한국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황우석 교수님의 줄기세포 문제입니다. 줄기세포 문제가 제 6계명에 어긋난 살인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입니다. 저도 그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바는 이렇습니다. 사람의 난자와 정자가 처음 합해질 때의 세포가 온갖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줄기세포인데, 그것을 가지고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데 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줄기세포를 희생시켜서 세포를 얻어서 사람의 난치병을 치료하는데 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난자와 정자가 합쳐졌을 때의 세포가 생명인가?’ ‘그것을 살인죄로 여겨야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가 논란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단호하게 “그것은 살인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인간이 난치병을 치료하기 위한 과학의 연구를 막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연구의 자유를 주장합니다. 부시 대통령은 “줄기세포도 생명이다.”고로 줄기세포를 죽이는 것은 살인이라고 해서 절대 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과학자들은 “이런 문제를 연구를 해서 인간 복제로 가는 것은 나쁜 것이지만 난치병을 치료하는 성과는 얻어야 할 것이 아닌가?” 라고 주장을 하기 때문에 과학자들과 대통령간의 갈등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6계명과 관련해서 생각해 볼 때 한국에서는 ‘낙태’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서 출애굽기 21장 22절에 희미하게 답을 비춰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아이 밴 여인을 다쳐 낙태케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재판장의 판결을 좆아 낼 것이니라.” 사람이 싸우다가 실수로 낙태를 시키면 살인죄입니까? 아닙니까? 구약성경은 살인죄로 보지 않습니다. “재판장의 판결을 좆으라.”는 말은 참으로 지혜로운 말입니다. 이런 문제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상황 속에서 생가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의 부인의 아이를 출산하다가 생명이 위태롭게 되었다고 해 봅시다. 누구를 살리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런 문제에도 “낙태는 살인이다.”라는 명제를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예를 들면 흉악한 강간범이 강간을 해서 원치 않는 잉태를 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낳아서 길러야 합니까? 이런 문제는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줄기세포 문제도 “어떤 경우에도 살인이므로 안 된다.”라고 말한다면 간단하겠습니다만 여러분이 어떤 난치병을 앓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가족이 허리를 움직일 수 없는 난치병에 걸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황우석 교수가 연구해서 일년 뒤면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줄기세포연구를 반대했으므로 치료를 안 받겠습니까? 저는 이 문제에 관해서는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과학적인 정보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획일적으로 선을 긋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프란시스 쉐퍼 목사님은 “너희 그리스도인들이여 낙태하는 사람을 정죄하지 말고 낙태를 정죄하기 위해서는 먼저 낙태를 반대하는 교회나 집단은 혼전 임산부들이 마음 놓고 해산하고, 마음 놓고 아기를 맡길 수 있도록 실제적인 도움을 베풀면서 그런 충고를 해야 한다.” 는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 한국 사회가 미혼모도 잘 돌봐주고 냉대하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다 낳아서 기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우리사회는 압도적으로 후진국입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 있어서 대부분이 남의 일이기 때문에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지 내가 직접 당한 일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렇게 쉽게 결정하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들에 대한 고려를 제외하고는 남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그것 자체가 악한 짓임을 제 6계명은 말하고 있습니다.

또 두 번째로 살인에 이르도록 하는 간접적인 원인, 감정적인 원인도 제거해야 합니다. 과격한 분노는 종종 살인이 됩니다. 여러분 마음에 분이 가득하십니까? 가득하더라도 너무 과격하게 표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분이 가득하면 그것을 밖에 나가서 잘 승화시켜 버리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분노의 표현 방법이 너무 지나쳐서 조금만 성질이 나면 마구 표현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좋지 않습니다. 미리 제거하고 미리 약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시기심도 살인의 원인이 됩니다. 성경에 보면 살인한 사람은 대부분 시기심에 지배를 받은 사람이 많습니다. 첫 번째 살인자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가인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도 시기심 때문입니다. 아벨의 제사만 받으시고 자기의 제사는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죽이고자 한 원인은 무엇입니까? 요셉은 꿈도 잘 꾸고 아버지에게 좋은 옷도 얻어 입었습니다. 대 제사장들이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시기심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기심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미움입니다. 미움은 살인에 가장 가깝습니다. 성경 에스더서에 보면 하만이라고 하는 사람이 아주 미워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모르드개라고 하는 유대인이 성문 문지기로 있으면서 자기에게 인사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말렉 족속에게는 절을 하지 않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만이 마음속에 미움을 갖게 됩니다. 모르드개 한명 죽이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을 것 같았던 하만은 유대인 전체를 죽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기도 죽고 자기가 자랑하던 자식들도 죽고 아말렉 족속도 다 죽게 된 것입니다. 미움은 다른 사람을 죽이려다가 결국은 자기 자신을 다 죽이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직접 살인도 하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겠고, 살인에 이르는 악한 감정들도 잘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의 영혼도 해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을 죄로 유혹해서 빠뜨리는 것은 남의 영혼을 해치는 것입니다. 잠언 7장 26절에 보면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였더라.” 여기서 그는 음녀를 의미합니다. 사람의 영혼을 해치게 하고 결국 사람의 생명도 빼앗는 짓입니다. 그러므로 죄로 유혹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나쁜 이단사상, 철학을 가르치는 것도 영혼을 해치는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것도 사람의 영혼을 해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 중에는 6・25가 남침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쁜 사상을 가르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칼 막스가 그런 사람입니다. 이 공산주의 사상이 세상에 들어오면서부터 생명들이 무고하게 희생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쁜 사상, 나쁜 교리를 가르치는 것도 영혼을 해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바른 교리와 바른 윤리를 추구하며 사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바르게 믿고 바르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로 다른 사람에게는 이름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의 이름을 해롭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이름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이름을 아시고 우리 이름을 각각 불러내서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이름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유 없이 남의 이름을 훼손하는 일은 제 6계명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6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라” 그러나 누가복음 6장 22절에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그런 경우를 당할지라도 상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의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 자기 자신을 해롭게 하지 말라

우리는 남을 해치지 말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해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도 육신이 있고 우리도 영혼이 있는데 우리가 우리 영혼과 육신을 바로 지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첫째로 자살은 금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성도들 있습니까? 포기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 자살한 사람치고 잘된 사람 없습니다. 사무엘하 17장 23절에 보면 아히도벨이라는 사람은 압살롬을 도와서 다윗에게 반역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기 계획이 실패하자 결국은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지니까 칼을 놓고 엎드려서 자살했습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은 은 삼십에 팔았습니다. 그리고 양심에 가책이 드니까 목매달아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끈이 끊어져서 가룟유다의 배가 터지고 창자가 흘러 나왔다고 했습니다.

옛날 희랍 사람들은 사람의 자살은 세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영웅적 자살입니다. 이것은 “내가 수치스럽게 죽기보다는 국가를 위해서 영웅적으로 죽겠다.”해서 자살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낭만적 자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같이 따라 죽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염세적 자살입니다. 세상을 비관해서 자살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왜 이런가? 내 자녀도 내 뜻대로 안되고 사업도 내 뜻대로 안 되는구나.’ 이런 생각으로 삶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지 자살은 악한 것이요 자살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자기 스스로 파괴하는 반역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자살은 금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 예수 이름으로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우리 몸을 해롭게 하는 일도 금해야 합니다. 몸이 아플 때는 병원에 가시기 바랍니다. 기도해서 낳겠다고 하는 믿음은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의사도 주시고 병원도 주셨으니 기도하면서 치료받고 수술도 받으시기 바랍니다. 질병치료를 게을리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해로운 음식을 너무 많이 드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할 것입니다. 또 자기 영혼을 해롭게 하는 일도 금해야 합니다. 너무 미워하고, 너무 시기하고, 너무 분노하고, 너무 탐심과 욕심을 갖고, 지나치게 슬퍼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우리가 누구와 사별했다고 해서 너무 슬퍼하고 너무 괴로워해서 자기 몸을 해치는 일은 좋지 않은 것입니다. 인간사에는 그런 일은 다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겪는 슬픔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교회를 멀리하고 성경을 멀리하는 것도 자기 영혼을 해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 6계명의 말씀을 통해서 남의 육신, 남의 영혼, 남의 이름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나의 육신, 나의 영혼, 나의 이름도 중요하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절대고 이것을 해롭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3. 자기 자신과 남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우리는 자신의 생명과 남의 생명을 잘 보호해야 합니다. 교회는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해야 합니다. 약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부족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구제하고 도와주고 사랑하는 일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약한 사람들을 돌보는 선한 사업들을 확대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나 자신과 관련해서 언제나 성령으로 충만하도록 내 영혼을 잘 보양해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나와서 30분만이라도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남의 생명도 중요하고 내 영혼도 중요합니다. 남의 이름도 귀중하고 내 이름도 귀중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귀중한 하나님의 선물로 알아서 잘 관리하고 잘 보호하고 양육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아들이 둘 있습니다. 저는 아들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은 무슨 직업을 가져야 하느냐? 생명을 양육하는 일이나 육신을 보호하는 일이나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해라.” 그랬더니 큰 아들은 의사가 되겠다고 합니다. 작은 아들은 목사가 되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영혼을 살리는 일이든지 육신을 살리는 일이든지 이런 일을 해야 합니다. 제가 그렇게 이야기했더니 아들 둘이 그 뜻을 받아서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강남중앙침례교회 성도들도 이 악한 세대에서 생명의 선한 청지기로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 영 민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