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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 일을 이루시는 주님 (사 43: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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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일을 이루시는 주님" "The Lord, the Creator of a New Thing" 
이사야 Isaiah 43:18-21

하나님께서 새 일을 약속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바벨론 포로 중에 절망하는 유대인들에게 주신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흩어진 이스라엘 민족을 새로 모아 창조하시고, 뿌리까지 드러내고 파괴된 예루살렘을 다시 건설하신다는 계획입니다.

신명기에 따르면, 이스라엘 역사는 1. 하나님의 부르심과 축복, 2. 말씀 불순종, 3. 하나님의 징계, 4. 회개하고 돌아옴, 1. 하나님의 축복 등 네 가지가 하나의 사이클을 이룹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 사이클은 무수하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절망했습니다. "이제는 정말 끝이구나! 소망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은 그 때가 절망의 때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분명히 하나님의 새 역사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에스겔 골짜기 환상에서 보듯이, 저들은 골짜기의 마른 뼈와도 같았습니다. 아무도 그들의 부활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뼈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따라 그들은 큰 군대를 이루었습니다. "말씀순종"의 결과요 그 열매입니다.

나는 8월 첫주부터 '8.15 해방'과 관련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대한민국이 광복 제6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이런 뜻깊은 때, 하나님께서 역사 가운데 어떻게 섭리하시는가 돌아보는 것은 큰 은혜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아브라함부터 시작합니다. 창세기 1-11장은 아브라함 이전의 역사로, 전세계를 대상으로 기록한 내용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70여 명의 이스라엘 족속은 국무총리가 된 요셉의 초청으로 애굽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게 된 것을 "출애굽"이라고 부릅니다. 이 때는 벌써 430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남자 장정만 60만을 헤아리는 거대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인도를 받아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요단강을 바라보는 모압 땅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모세는 출애굽 2세들에게 일련의 설교를 전합니다. 그 내용이 '신명기'입니다.

모세는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느보산에 올라 죽음을 맞이합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넙니다. 거기서 여리고성부터 시작해서 가나안의 모든 성읍들을 정복하고 이스라엘 12 지파에게 땅을 배분합니다.

여호수아가 죽고 나자, 이스라엘에는 혼란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마다 사사들을 세우셔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민족을 통치하게 했습니다.

마지막 사사요 제사장인 사무엘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드디어 "왕을 요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셨지만, 백성들은 끝까지 주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의 뜻을 받아들여 세우신 첫번째 왕이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처음에는 참 좋았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꾀를 의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세우셨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도망다니며 큰 고생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도망하던 시기에 다윗은 오히려 하나님을 깊이 만났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전을 지을 마음이 났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성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그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짓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지혜롭게 나라를 통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방 나라의 여자들을 많이 얻었습니다. 그 결과, 이방신이 이스라엘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솔로몬의 말년은 참 비참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벌을 내리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솔로몬의 생전에는 하지 않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나라는 둘로 갈라졌습니다. 북쪽의 열 지파는 '여로보암'의 통치 아래 들어갔습니다. 남쪽의 두 지파는 유다와 베냐민입니다. 그것을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통치했습니다.

이렇게 분열된 나라는 200년을 공존했습니다. 서로 합력한 시기가 조금 있었지만, 대부분 서로 물고 싸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사악한 북 이스라엘을 치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앗시리아라는 강대국을 막대기로 사용하셨습니다. 분열된 지 꼭 200년 만의 일입니다.

이후 135년간 유다가 생존했습니다. 유다 역시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앗시리아를 물리치고 일어선 강대국 바벨론을 사용하셨습니다. 바벨론은 유다의 모든 성읍들, 그리고 예루살렘을 완전히 파괴하였습니다. 바벨론이 3차례 끌고 간 유다의 포로들은 주로 젊고, 건강하며, 지위가 높은 집안의 자녀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서 떠났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에는 소망이 없다고 했습니다. 폐허가 된 성읍에는 야생동물들만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예언자들이 일어섰습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의 예언자들입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스라엘의 범죄와 불순종을 지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셔서 이런 결과가 왔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소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씻으시고 위로하셔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해 주신다는 메시지였습니다.

그 가운데 이사야의 메시지는 특이합니다. 그는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선포하시는 하나님을 소개했습니다.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이스라엘을 이끌어내신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있던 유대인들을 돌이키시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던 중에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만 이스라엘을 새롭게 창조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이 두번째 출애굽, 두번째 창조는 참 중요한 신학적 주제입니다. 오늘 여기서 성경을 읽는 우리에게 적용되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아서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하신 자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귀하게 지음받은 우리 생명, 이 모든 것이 일그러지고 파괴되었습니다. 입술에 찬양이 가득차야 하는데, 한숨과 절망의 탄식 뿐입니다. 헐크러지고 망가진 탓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기만 하면 회복될 수 있습니다. 예전의 아름다움과, 예전의 은혜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공식"이라면 공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얻은 모든 종류의 형벌은 주님께 돌아가 회개하고 용서를 빌면 다 회복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얽매임을 풀어 해방시키실 것입니다. 모든 죽음을 깨뜨리시고 부활의 소망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님의 품에 나아오셨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상처를 입고, 우리는 날마다 고통을 주고받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인생은 축복이 아닙니다. 인생은 기쁜 날보다 걱정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은혜로 감사할 때보다는 불평 불만할 때가 많습니다. 사랑할 때보다는 불화할 때가 더 많습니다. 도대체 이런 인생에 어떤 소망이 있습니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세상에 수도 없이 많은 해법이 제시되고 있지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 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누구든지 지혜를 말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말고 다른 지혜는 없습니다.

학교 가면 학교문제, 직장 가면 직장 문제, 집에 오면 가정 문제... 세상을 살아가면서 문제 없는 곳에 가 보셨습니까?

그렇지만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그 문제가 해결됩니다. 여기 진정한 소망이 있습니다. "오직 주님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이 조건은 바로 우리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세상을 지으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선언입니다. 주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기로 하시면 우리는 온 세상이 온통 달라지는 '변화'를 체험할 것입니다. 어제 보던 해가 다시 어제의 해가 아닙니다. 어제의 사람들이 더이상 어제에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는 온통 새로운 세계에 살게 될 것입니다.

아, 새롭습니다. 어제의 슬픔이 오늘 우리를 얽어맬 수 없습니다. 어제의 눈물은 이미 흘러 땅에 떨어졌습니다. 어제의 원한은 잊혀졌습니다. 어제의 원수는 용서하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전혀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보십시오! 모든 것이 새것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시랑과 타조도 그 새로움을 알아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우리가 그 새로움을 몰라서야 쓰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겠다면, 우리는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도 '새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새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셔서 '거듭나는 것' 즉, '중생'을 말합니다. 똑같은 말씀입니다.

젊은 사람들 보면, 아, 나도 다시 태어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요? 다시 난다면 정말 잘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은 한갓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현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로 창조해 주십니다.

재미있는 은유가 있어요. 우리를 토기(질그릇)으로 본 것입니다. 일그러져 잘못된 토기를 새로 거듭나게 하는 것, 그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깨뜨려서 가루로 만들어서는 다른 흙과 함께 섞어서 새로 빚는 것입니다. 그리고 뜨거운 불에 넣어 구워 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전에 어떤 그릇이었든지, 어떤 과오를 품고 살았던지 아무런 문제가 되지를 않습니다.

또 다른 은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겉옷'(두루마기)으로 본 것입니다. 깨끗하게 세탁한 겉옷 말입니다. 이렇게 두루마기를 빠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에 묘사한 '복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천국에 갈 것입니다.

말하자면, 다시 난 사람들, 거듭 난 사람들, 새로운 창조를 입은 사람들, 날마다 새로움을 맛보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전혀 새로운 사람들입니다. 이 사실처럼 우리를 기쁘게 하고 들뜨게 하고 은혜와 사랑에 충만하게 하는 말씀이 또 있을까요?

날마다 새로운 금문교회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은혜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우리를 불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온전한 몸과 맘으로 주님을 섬기면서 새로 난 기쁨을 날마다 체험하게 하옵소서. 지나간 것은 지나갔습니다. 거기 연연해 하지 말게 하옵소서. 날마다 새로움으로 단장하고 우리 주님을 만나뵐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봉헌기도

축도
May the grac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the love of God our Father, and the fellowship of the Holy Spirit be with you all. Amen. (조 은 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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