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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와 베다니 마리아 (요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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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에는 바리새인과 막달라 마리아사이에 일어난 예수님의 교훈을 들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주인공들이 달라집니다. 12제자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와 베다니 마리아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장소도 지난번에는 바리새인 시몬의 집이었는데 오늘은 마르다와 마리아, 나사로의 집이 나옵니다. 내용에도 좀 차이가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막달라 마리아의 예수님 세족 사건은 회개와 죄사함 구원의 감격에 초점이 있고, 오늘 베다니 마리아의 예수님 세족은 감사와 헌신에 초점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약 일주일 전에 일이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도 이것을 더욱 의미화 해서 말씀하셨고, 나사로의 집에서 이런 일이 있었던 것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나사로의 집에서는 큰 잔치를 벌어졌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잔칫집에 가신 기록이 여러 번 나와 있습니다.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에 가신 것을 시작으로 해서 군중들 가운데 많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참여하신 잔치는 모두 다른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잔치 자리에 예수님이 손님으로 참여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주인공입니다. 2절에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라고 아주 명백하게 나와 있습니다. 나사로의 집은 예루살렘 동쪽에서 약 4킬로 정도 되는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마지막으로 전도하시던 예수님과 이 집이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성경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이 평소에 제일 심방을 많이 가신 집이 나사로 삼남매의 집입니다. 오늘 말씀 12장뿐만 아니라 11장에도 나사로의 집에 가신 것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이때도 예수님이 심방을 오시니까 마르다는 음식을 만드느라고 바빠서 마음이 분주하다고 나와 있습니다. 동생 마리아가 자신의 부엌일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다소 불평스럽게 말을 한 기록도 나와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나사로의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시더라.”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셨던 세 번의 기록 가운데 한번이 나사로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무덤을 찾아가서 죽어있는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이 우시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였는가?” 다른 사람들도 이 집 식구들과 예수님은 특별관계에 있다고 인정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 이후를 보면, 대제사장들이 예수와 나사로를 함께 죽이려고 모의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럴 정도로 관계를 맺고 있는 집이었습니다. 오늘 잔치는 죽은 나사로를 예수님이 살려주신 후이기 때문에 마르다와 마리아가 감사 차원에서 예수님을 향한 일종의 헌신예배와 같은 의미의 잔치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열두 제자, 그 동네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하는 잔치 자리가 되었습니다. 나사로의 소생 사건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큰 선물이었다면 오늘은 주님을 위한 충성입니다. 지금 이렇게 잔치를 함으로 무엇인가 또 다른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막달라 마리아 때와 공통점이 나타나는데 발 씻는데 비싼 향유를 부었다는 것과 머리털로 발을 씻었다는 것입니다. 그날 예수님과 제자들, 동네 사람들이 그 집에 모여 밥 한 끼 잘 먹고 헤어졌다면 요한은 이렇게 기록으로 성경에 남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발 씻는 것을 본 가룟 유다가 심하게 참견을 하는 바람에 그것에 대해 예수님의 설명을 기록으로 남기게 된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마리아를 책망했고, 예수님은 마리아를 칭찬했습니다. 왜 책망했고, 왜 칭찬했는가? 무슨 교훈이 들어있는가? 이것을 조명해 봄으로 주님을 향한 우리들의 마음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먼저, 예수님이 마리아를 칭찬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상식 수준을 넘는 엄청난 가격의 향유를 발 씻는 데다 투자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오늘 나오는 향유는 분명하게 가격이 나타나 있습니다. 계산을 잘하는 가룟 유다가 300데나리온이라고 가격을 측정했습니다. 그러면 300데나리온이면 우리 돈으로 얼마나 되기에 이것이 이렇게 문제가 되었나? 성경에 나타나있는 대로 해석하면 가격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부흥회를 하셨습니다. 모인 사람이 여자와 아이 외에 남자만 5천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자와 아이를 합치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예수님 시대에도 신도들 가운데는 여인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오병이어를 내놓은 사람도 어른이 아니고 어린아이입니다. 어린아이는 또 얼마나 많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니까 아무리 줄잡아도 1만 명 정도는 모인 큰 부흥 집회를 인도하셨습니다.

제 목회 경험으로 보면, 그렇게 많은 부흥회를 다니고 그렇게 많이 설교했는데, 군인 교회만 빼놓고는 언제나 여신도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이 자리도 여인들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이들, 여자 다 빼고 남자만 5천명이라고 했으니까 1만 명이 넘는 군중집회를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종일 늦게까지 부흥회를 하셨습니다. 해가 저물어가는 데까지 예수님이 계속 설교를 하셨는데 제자들이 좀 짜증을 부렸습니다. “그만 돌려보내소서. 해가 저물었나이다. 사람들이 지금 몹시 배고파하고 있습니다. 부흥회도 신체적인 조건을 맞춰가면서 해야 은혜를 받든가 말든가 할 것이지, 배는 고픈데 계속 붙들고 설교만 하십니까?” 아마 교인들이 많이 모이니까 예수님도 신나셨나 봅니다. 제자들이 짜증을 부리니까 예수님이 “아, 그러면 먹을 것을 주면 될 것 아니냐?”, “이곳은 빈들이요 해도 저물었나이다.”라고 빌립이 말합니다. “이 많은 사람을 먹이려면 200데나리온의 돈이 필요합니다. 돈도 없지만 있다고 해도 어느 음식점에 가서 1만 명 먹을 음식을 준비해 먹이겠습니까? 이 위기 상황을 해결하려면 빨리 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200데나리온이면 1만 명 정도가 한 끼 먹을 수 있는 돈이 됩니다. 우리 돈으로 한번 계산해 보면 지금 나가서 설렁탕이라든가 햄버거라든가 간단하나 음식을 5천원 정도로 계산해 본다면 5천원씩 1만 명 계산하면 얼마입니까? 아니, 어느 학교들을 나오셨기에 그렇게 간단한 수학도 모르십니까? 5천만원이 되지 않습니까? 그게 200데나리온입니다. 사실상 1만 명이 한 끼 먹으려면 5천만원은 있어야 1만 명이 한 끼 먹을 수 있다고 계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향유의 가격은 300데나리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얼마입니까? 7천5백만원 정도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옛날 유대 사회에 어떻게 이런 비싼 향유가 있었는가? 저도 몰랐는데 가보고 알았습니다. 전 세계에서 향유 산업이 제일 발달한 곳이 그쪽 지역입니다. 카이로에 가시면 선물센터의 90퍼센트 이상이 향유입니다. 누구든지 호기심 때문에 한 박스씩 사오게 되어 있습니다. 요만한 병에서부터 이만 한 병까지 “옛날 임금님이 쓰시던 향유 어쩌고….”하면서 설명을 하는데 안 살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쓰려고 하는 것보다도 재산 증식용으로 보유하는 것으로서 오래된 향유를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더 비싸집니다. 우리가 금덩어리 사두는 것과 마찬가지로 재산 증식용 향유가 그 사회에는 많았다는 말입니다. 2,000년 전에 유대 사회에서 이만하면 마리아는 부자에 속합니다. 비록 부모 없이 삼남매가 살아왔지만 물질 능력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마다 잔치 수준의 음식을 차리고 지금 마르다는 부엌에서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을 씻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향해서도 사람들이 제일 아까워하는 것이 물질, 돈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요한 웨슬레는 “하나님을 향하여 주머니가 열려있지 아니한 사람들을 보고 믿음 있다고 말하지 말라.”라는 말을 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 문제가 얼마나 큰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니까 하나님의 인격과 재물이 상대적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고 성경에서도 인정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계약 관계라고 신학에서 설명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관리를 잘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다 주었다.” 창세기에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완벽하게 창조하시고 맨 나중에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인간이 이만하면 넉넉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모든 조건을 완비하신 다음에 인간을 만드시고 모든 세상 창조물을 인간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인구가 많아지면 뭘 먹고 살 것인가 생각하면서 그렇게 전쟁을 많이 해 왔습니다. “뭘 마실까 뭘 먹을까 걱정하지 말라.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이 다 만들어놓으셨습니다. “너희들이 생각을 잘못하고 관리를 잘못해 굶주릴 뿐이야.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인구가 많아질수록 잘 삽니다. 여러분, 선진국들이 왜 이민을 받아들입니까? 남의 나라 사람들을 왜 받아들이겠습니까? 사람이 와야만 자기들도 잘 살 수 있다는 계산을 해서 받아들이는 겁니다. 미국에 있는 모든 경제학자들이 미국에 와 있는 불법 체류자들이 경제에 도움이 되느냐 손해가 나느냐를 연구 발표했는데 단 한 사람의 경제학자도 손해가 난다고 발표한 사람이 없습니다. 괜찮다고, 그 사람들 다 여기서 살게 하라고, 미국 경제에 도움을 준다고 발표했습니다. 사람이 많을수록 경제가 발전하고 더 잘 살게 됩니다.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원리입니다. 지금보다 인구가 10배나 더 많아져도 인간은 넉넉히 살 수 있는 조건을 하나님이 다 만들어놓으시고 “전쟁하고 싸움질하지 말고 관리만 잘 하라. 그러면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 그겁니다.

계약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다 주시고 하나를 도로 찾으시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계약입니다. 자, 그 대표적인 것을 보시면 오늘날의 안식일이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여러분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덥다고 요즘 영화구경 많이 하시죠? 또, 해수욕장에 가서 재미나게 가족들과 함께 노셨죠? 돈도 버셨죠? 노래도 불렀죠? 춤도 추었죠? 연속극도 보셨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해라! 죄가 되지 아니하는 한에서 너희들 마음대로 행복하게 해라!” 하나님이 “이건 하지 말라, 저건 하지 말라.” 안 그러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고 행복감을 누리고 내 의사가 결정하는 대로 뭐든지 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는 도로 가져와라!” 이것이 안식일의 개념입니다. “이 날은 내 날이니까 나한테 와서 예배드려라!” 이것이 계약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십일조 헌금 내시는 교우님들이 많이 계실 겁니다. 어느 교회나 보면 십일조 교인은 25퍼센트 정도입니다. 아주 잘하는 교회가 30퍼센트가 조금 넘고 그렇습니다. 70퍼센트 이상은 안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물질을 우리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았습니까? 밥 사먹고 옷 사 입고 집사고 필요한대로 다 썼습니다. 내 능력껏 내 행복에 필요한 대로 써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금반지 산다고 사지 말라고 하십니까? 하나님이 좋은 집 산다고 “그건 사지 말라!” 그러십니까? 아닙니다. “네가 결정해서 네 맘대로 해라! 다 쓰라! 그러나 하나는 도로 가져와야 한다.” 그것이 십일조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계약입니다. 우리가 가끔 헌신예배를 드리게 되는데 헌신 예배의 뜻이 뭡니까? “마땅히 드릴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살겠습니다.”라는 약속의 예배입니다. 만약 마땅히 드릴 것을 드리지 아니할 때 도둑의 개념이 됩니다. “너희들 왜 도둑질 해? 내가 다 주었잖아? 마땅히 나한테 가져와야 할 것 있잖아? 그거 왜 안하지?”

그러면 왜 하나님이 이 계약을 하셨는가? 하나님이 욕심이 많아 무엇을 많이 가져오라고 이렇게 가져오라고 하신 것인가? 계속 주시려고 그런 것입니다.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의 소원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행복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얻어질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만들어놓으셨고, 이 관계를 벗어나면 있는 것마저도 없어지는 진리를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이것은 너희가 지키라! 이 계약을 깨뜨리지 말라!” 지금 마리아가 300데나리온의 향유를 소비한 그 마음을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 마리아는 이것보다 더 큰 보물이 있었다면 그것을 드렸을 것입니다. “내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는 이것이라도 드려야 만분의 일 보답하는 기쁨이 생기기 때문에 헌신 예배로 드리겠습니다.” 얼마 전 오라버니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려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헌신에 초점을 맞추어 잔치를 벌이고 향유를 깨뜨린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된 하나님의 선언이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데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알았다.” 사랑하는 독자 이삭도 아끼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을 정했을 때 그 마음을 보시고 결정하신 것입니다. 이삭이 죽었습니까? 180세까지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하나를 언제나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생각해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낭비적 성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발 한번 씻는데 그렇게 많은 물질을 허비할 필요가 있는가? 이 점에 있어서는 가룟 유다의 말이 더 합리적입니다. “이 향유를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는데….” 만약에 7천5백만원 가지고 우리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면 1만원씩만 나눠주어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습니까? 만약 이 돈을 가지고 한 끼 일만 명의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그런 돈이 아닙니까? 또, 그렇게 하는 것을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낭비하느냐? 이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지금 갈보리교회에 일주일에 돈을 달라고 오는 사람들을 세어보니까 250명 정도 됩니다. 만약 이때 예수님도 상식적으로 말씀하신다면 “마리아야! 유다의 말이 옳다. 이런 일을 하려면 나와 상의했어야지. 더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는데 이게 무슨 짓이야?”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잘했다.” 마가복음에 보면 이 말씀이 어떻게 나오나 하면 옥합을 깨뜨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향유 뚜껑을 열고 아까워가지고 ‘졸졸졸’ 이렇게 따른 게 아닙니다. ‘팡!’ 깨뜨려서 한꺼번에 왈칵 쏟아 부은 것입니다. “유다야! 너 말 참견하지 마라! 마리아야, 잘했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내가 말했지? 이제 며칠 있으면 나는 십자가에서 죽어야 해! 나를 위해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해!” 마태복음을 보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복음을 전할 때 이 여자의 행한 일도 전하라!” 발 씻는 사건을 복음화 하여서 말씀하셨습니다.

같은 사건을 놓고 예수님과 가룟 유다의 시각이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지난번에는 바리새인과 예수님의 시각이 또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지금 우리 갈보리교회는 빚을 잔뜩 지고 쩔쩔 매면서도 일 년에 15억원 이상을 선교비로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북한동포 구제 사업에 밀가루 보내기 운동을 4년 4개월 동안, 5천명 식량을 헌금해서 보내준 사람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것 먹고 앞으로 언젠가는 예수 믿게 될 것이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복음화를 위해서 했습니다. 그렇다고 밀가루 먹고 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도 세례 받았다는 소식도 없고 신학교 들어갔다는 소식도 없습니다. 그러면 낭비한 것인가? 괜찮습니다. 열매는 언젠가는 하나님이 거두십니다. 열매를 내가 뿌리고 내가 거두려고 자꾸 계산을 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낭비했어! 다 뿌렸어.’ 거기서 끝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역사가 흐른 다음에 다 열매를 거두십니다. 그것을 생각하고 우리가 선교를 하고 선교여행을 하는 것입니다. 선교사가 외국 가서 예수 믿는 사람 하나도 얻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해도 나는 선교 잘했다고 늘 말합니다. 왜? “당신이 그곳에 가서 몇 년 동안 살아있었던 것만 해도 선교입니다. 지금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역사가 흐른 다음에는 열매를 주실 것입니다. 낙심하지 마세요.” 나는 항상 그렇게 말합니다.

저희 교회 교인이 아닌 이웃교회 어느 장로님이 절 찾아와서 저더러 1시간 정도 상담을 하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더니 오시자마자 저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분이 대성통곡을 하는 겁니다. “아니, 얘기를 해야 같이 울든가 말든가 하지요.” “예, 목사님! 저는 헛수고 했습니다. 그게 억울해서 우는 겁니다.” “뭘 헛수고하셨는데요?” 일이 이렇게 된 겁니다. 미국에 가서 보석가게를 해서 돈을 많이 벌었어요. ‘어떻게 살까 했는데 하나님이 돈을 많이 주셔서 부자가 되었으니 주님의 일을 이제부터 열심히 하자! 뭘 할까? 그래, 교회 하나 세우자!’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교회를 세우려면 목사가 있어야 해서 제 친구목사와 어떻게 둘이 만났다고 합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를 하나 세웁시다. 돈은 제가 다 대겠습니다. 목사님은 목회만 열심히 하세요.” 그러니 그 목사님은 이런 좋은 사람을 만나서 너무 너무 좋았을 것입니다. “아, 그럽시다.” 그래서 둘이 합의를 해서 교회를 하나 세웠는데, 교인이 그 장로님 한 가정이니 목사님 월급도 혼자 드리지요, 목사님 아파트비 내드리지요, 자동차도 사드렸죠, 교회 경비도 혼자서 다 헌금하지요. 뭐, 자기 사업을 해서는 교회에다 다 쏟아 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안 됩니다. 그래서 오늘 이 목사님과 상의하고 제가 간판을 떼려고 합니다. 이게 얼마나 억울합니까? 헛수고 했습니다.” 막 우시는데, 제가 “그래, 왜 안됐습니까?”하고 물으니, “몰라요. 하여튼 안돼요. 목사님, 저는 너무 억울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제 친구 목사를 좀 원망하는 것 같이 들렸습니다. “장로님! 장로님이 여기에 와서 헛수고라는 말을 10번도 더 썼는데 그게 왜 헛수고입니까? 장로가 성경도 안 읽어보셨습니까? 성경에도 ‘소자 중에 냉수 한 그릇이라도 준 자는 결단코 네가 그 상을 잃지 않겠다.’했습니다. 왜 헛수고입니까? 지상의 교회는 불안전의 요소가 있는 것이 신학의 정의요, 있던 교회가 없어지기도 하고, 없던 교회가 새로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장로님께서 그 열심히 헌금하고 수고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내가 수고하고 내가 열매를 따먹으려고 하고 눈에 보이는 걸 좋아하지. ‘수고하셨습니다. 그 교회는 간판 떼려면 떼십시오. 그래도 당신의 헌신한 것은 하나님의 기억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것을 헛수고라고 생각하는 신학의 기초가 지금 문제가 되는 겁니다. 어디서 장로가 되셨나요? 간판 떼세요. 그리고 다시는 교회 세우지 마세요. ‘ 이 교회는 내가 수고하고 내가 세운 교회다!’라고 생각하시는 것이면 다른 교회에 교인으로 그냥 나가세요. 간판 떼세요. 다음 주일부터 다른 교회 나가요! 우리 교회는 오지 마세요. 왜 헛수고입니까? 하나님의 일은 낭비적 성격이 있는 겁니다. 했으면 그만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그것이 나한테 복이 약속되는 겁니다. 헌금 좀 했다고 뭘 헛수고다 어쩠다 하고 떠드십니까?” 저한테 무척 야단맞고 “어휴, 정말 그러네.” “정말 그렇다니? 당신 같은 사람이 장로 되었기 때문에 그 교회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헛수고가 없습니다.

지금 보세요. 가룟 유다의 말대로 300데나리온의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 것과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을 씻긴 것 어느 것이 더 유익했습니까? 이 사건은 성경에 남아서 길이길이 영원히 주님을 향한 마음 자세의 헌신에 대한 진리의 빛을 우리에게 비춰주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을 향해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가룟 유다! 말참견 좀 그만해!” 이렇게 된 겁니다.

여러분이 판단해 보십시오. 마리아는 그때 그 일을 함으로 그 아름다움이 주님의 말씀대로 지금까지 남아 온전하게 빛이 나고, 가룟 유다는 그렇게 말함으로 그의 욕심과 어두움이 영원한 저주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바리새인과 시몬 막달라 마리아, 가룟 유다와 베다니 마리아! 왜 예수님이 이 마리아들을 칭찬하셨는가? 이런 진리가 있습니다. “마리아와 같이 주님을 향한 마음의 자세로 낭비적 성격이 있지만 지금까지 주님을 위해서 했던 모든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이런 사람만이 아름다운 헌신을 계속 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모두 그렇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베다니 마리아가 했던 일에 예수님이 본 시각과 가룟 유다가 본 시각의 차이가 무엇을 말해주는가? 주님을 향해서는 어떤 마음으로 헌신을 해야 되는가? 오늘 말씀을 따라서 우리의 마음을 결정하고 실천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필 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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