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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만 두어라! (마 13: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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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늘의 주제는 <천국(天國)>입니다. 헬라어로 <바실레이야>라 하는데요, 단어의 뜻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이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 곧 하나님 나라를 뜻합니다. 만약 우리 가정을 지금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면 바로 그 곳이 천국인 것입니다. 다시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이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런데요, 믿는 자들 사이에, 천국에 대한 흔하고 오래된 오해가 한 가지 있습니다. 천국이란 우리가 죽은 다음에 가는 나라라는 오해입니다. 그러다 보니 천국, 곧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문제는 그로 인한 예기치 않았던 결과인데요, 역사 속에 오신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이 이렇게 많은데도, 이 세상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제자는 별반 없다는 점입니다. 예수 믿는다 하면서 이 세상의 문제에 대하여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 세상이야 잘 돌아가든 말든,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국민을 대상으로 거짓말을 하든 말든, 세계열강이 다시금 우리 땅을 넘보며 위협하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거지요. 나는 죽어 저 천국만 가면 된다는 거지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시기를 빌라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라 하셨습니다.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셨습니다. 정말입니다. 우리 주님, 단 한번도 이 세상의 문제를 외면한 채, 저 피안의 세계로 회피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중요한 대목입니다. 우리 주님,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는 천국의 열쇠를 맡기시며, 너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니, 이 땅을 천국으로 바꾸어 살라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하나님의 통치권 밖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해서 이 세상과 천국은 상관이 없다는 가르치는 것, 모두 불신앙의 발로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모든 곳이며, 오늘 여기에서 시작되는 나라입니다.

# 2
어떤 통계에 따르면, 교회 다니는 신자 가운데 20%의 사람은 전혀 기도하지 않고, 35%의 사람은 자기 집에서 전혀 성경 말씀을 읽지 않으며, 40%의 사람은 헌금하지 않고, 65%의 사람은 평생 한 사람도 전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 다니는 신자들 100%가 원하는 것이 하나 있으니, 모두가 다 천국은 가고 싶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천국은 허락된 자만이 알 수 있고, 허락된 자만이 갈 수 있는 나라라는 점입니다. 우리 주님의 허락을 받은 자만이 알 수 있는 나라가 곧 천국입니다!

설마요? 아니, 정말입니다. 직접 확인하겠습니다. / 13:11 / (읽기) / 거기 <너희>라는 단어와 <저희>라는 단어에 각각 동그라미 하시고요, 주님의 입장에선 <너희>, 우리 입장에선 <우리>인데요, 저희 곧 우리는 누구라고요? 허락된 사람! 곧 천국의 비밀을 알고, 천국 열쇠를 받은 자이지요. 여러분, 꼭 천국의 비밀을 허락받은 사람 다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저희>는 당연히 허락받지 못한 자들이지요. 천국의 비밀이 허락되지 않은 자, 천국 열쇠를 받지 못한 자, 천국 문의 비밀번호를 알지 못하는 자이지요. 여러분, 무슨 일이 있어도 허락받지 못한 <저희> 무리에 속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린 허락받은 공동체입니다. 아멘!

그런데요, 심각한 문제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에게 예정된 미래가 너무나 차이가 난다는 사실입니다. 천국 비밀을 모른다는 것, 천국 비밀을 허락받지 못한 것이 얼마나 심각하고 또 처참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직접 확인하겠습니다. 13장 41절로 가 보실까요? 맨 뒤, <거두어 내어>, 그리고 42절,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러고 보니, 천국의 비밀을 알지 못한 자, 천국 열쇠를 받지 못한 자, 영원토록 이를 갈며 불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거네요. 한 순간도 아니고, 영원토록 비참해 지는 거지요.

그렇다면 천국의 비밀을 아는 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오늘 나에게 주시는 축복의 말씀으로 받을까요? / 13:43 / (읽기) / 놀랍게도 천국의 비밀을 알게 된 자를 가리켜 의인이라 하시면서, 자기 아버지의 나라, 곧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 다시 말해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는 거지요. <해와 같이 빛나리라!> 할렐루야! 아멘! 그러고 보니 이보다 더 귀한 축복의 덕담이 없군요. 천국의 소망을 품고 옆의 분과 인사!

<해같이 빛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요, 한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아니, 세계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주님이신데, 기왕이면 너나 할 것 없이 다 알게 해 주시지 않고, 왜 어떤 이들은 천국의 비밀을 알지 못하게 하셨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적그리스도 세력들이 이런 질문을 많이 던지곤 하는데요.

그 답이 13절에 나옵니다. 13절 후반부,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 이니라!> 천국의 비밀을 보여 주어도 보지 못하고, 들려주어도 듣지 못하고, 그 결과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한 저희들이 문제라는 거지요. 그럼요, 주님은 이미 다 보여 주셨습니다. 이미 다 들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주님 하시는 말씀, 저들이 직접 보고 들었으면서도 깨닫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젠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저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저들은 직접 보고, 직접 들었으면서, 천국의 비밀을 깨닫지 못한 걸까? 진주를 주는데도 그것이 보물인지도 몰라보고 돌이켜 물려고 덤비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합니다. 15절,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졌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눈은 감기고 귀는 둔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눈과 귀의 문제가 아니요, 바로 마음의 문제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 보고 듣고 깨닫는 것, 그 자체로 축복이라 하십니다. 16절인데요, / 13:16 / (읽기) /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 당연하지요, 이렇게 반문하실 분이 계십니다만,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내 눈으로 천국을 알아 볼 수 있고, 내 귀로 천국을 들을 수 있는 자, 복이 있다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보고 듣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보고 들을 수 있음에 늘 감사하며, 보고 듣는 축복이 항상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3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이야기는 저 유명한 <밭의 가라지> 비유인데요, 마태복음 13장에 기록된 천국에 관한 일곱 가지 비유 가운데 두 번째 비유이기도 합니다.

우선 24절에서 우리 예수님, 천국에 대해 다시 설명해 주시는데요, 아주 중요한 구절입니다. 함께 읽을까요? / 13:24 / (읽기) / 특히 후반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는 대목을 주목하십니다. 아주 짧고 평범한 문장인데요, 엄청난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천국에 뿌리는 씨는 어떤 씨? 좋은 씨! 그럼요, 씨가 좋아야 합니다. 아무리 밭이 좋아도 나쁜 씨를 뿌리면 천국이 되기 어렵습니다. 좋은 씨를 뿌려놓은 밭이 천국이라, 그러므로 천국을 이루기 원한다면 씨를 뿌리는 단계에서부터 좋은 씨를 잘 골라 뿌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 정도로 주님의 말씀이 다 설명되질 않습니다. 해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쭙습니다. 36절,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밭의 가리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그러자 예수님,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는데요, 37절과 38절입니다. 첫째, 좋은 씨를 뿌리는 자는 누구라? 인자, 곧 예수님! 둘째, 밭은 어디라? 이 세상! 셋째, 좋은 씨는 누구라? 천국의 아들들!

저를 보십니다. 천국이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이 세상이란 밭에 천국의 아들들을 뿌려놓은 상태가 바로 천국이라는 겁니다. 주목할 것은 씨 뿌린 밭이 교회가 아니라 이 세상이라는 점입니다. 교회 안에서만 천국을 이루어서는 아니 되고, 이 세상 전체를 천국으로 바꾸라는 거지요. 그런 점에서 교회도 이 세상에 뿌려진 좋은 씨앗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뿌려진 이 세상이 곧 천국입니다. 제자 공동체인 우리 교회가 뿌려진 이 지역 사회가 천국이어야 합니다! 우리를 아직까지 이 세상에 남겨 놓으신 가장 원초적이며 또한 가장 궁극적인 목적, 그것은 이 세상에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라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첫 번째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솔직하게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는 나, 하나님의 아들딸인 나, 동광 교회의 직분 맡은 나, 그런 내가 뿌려진 곳, 그곳이 지금 천국 맞습니까?

멀리 갈 것 없고요, 우선 나로 인해 내 가정이 천국입니까? 나로 인해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의 가슴 속이 천국입니까? 나, 해 같이 빛나는 좋은 씨앗 맞습니까? 나는 어딜 가나 환영받고 사랑받는 천국지기, 곧 베드로의 후예 맞습니까?

혹시 내 이름 석자를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리는 그런 상대는 아닙니까? 혹시 내가 나타나기만 하면 환하던 천국이 오히려 지옥으로 변하진 않습니까? 만약, 만약,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에게 이가 갈리는 상대라면, 나는 그 당신과 더불어 이미 지옥을 살고 있는 겁니다.

문제는 천국을 이루며 살라고 뿌려놓은 씨앗인데, 그 씨앗이 부패하여 오히려 나로 인해 날마다 지옥을 살아야 한다면, 그런 사람, 이미 존재의 이유를 상실했다는 점입니다. 그런 사람을 가리켜, 우리 주님, 가라지라 하십니다.

부디, 내 가정, 내 교회, 내 세상을 천국으로 변화시키는 좋은 씨앗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4
다시 오늘의 본문으로 돌아오실까요? 13장 26절인데요, 거기 보니 드디어 뿌려놓은 씨가 싹이 나고 결실할 때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씨를 뿌려 놓으면 싹이 나고 결실할 때가 옵니다. 그런데 이게 어인 일입니까?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며 결실의 때에 밭에 나가보니, 그 가운데 가라지가 보이니 말입니다.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아니, 가라지가 어디서 왔지? 언제 누가 뿌려 놓은 걸까? 난 분명히 좋은 씨앗만 뿌렸는데? 의아해 하는 자에게 주님이 실상을 가르쳐 주십니다. 13장 25절인데요,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가라지를 뿌린 범인은 원수라는 점이요, 둘째, 그 원수는 <사람들이 잘 때에!> 침입한다는 점이요, 셋째, 그 원수는 가라지를 좋은 씨 위에 덧뿌린다는 점입니다. 해서 28절을 보면,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원수는 꼭 이렇게 합니다. 밤에만 다닙니다. 야심한 밤에 몰래 침입하여, 놓은 좋은 씨 위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도망갑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은혜 좀 받으려고 하면, 어떻게 알고 와서는 찬 물을 끼얹고 도망갑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축복 좀 받으려고 하면 어떻게 알고 와서는 모래를 뿌리고 도망갑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가라지가 어디에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말입니다. 가라지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내 심령 속에도 있고, 내 가정 안에도 있고, 내 직장에도 있고, 우리 사회에도 있고, 심지어 교회와 천국에도 있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가라지는 어디나 있습니다. 그러니 이 엄연한 현실을 잘 깨닫고 더욱 조심하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말씀하시는 원수와 가라지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23장 38절 후반부부터 39절 전반부까지 보실까요? 눈으로 잘 확인하세요. <가라지는 악한 자들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가라지는 누구? 악한 자들의 아들들! 그런데 그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누구? 마귀! 그러니 종합하면, 가라지는 한 마디로 마귀의 자식이군요. 38절,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이라 했으니, 마귀의 자식은 곧 지옥의 아들이기도 하고요.

여기서 우리는 두 번째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 가정엔 <가라지 원수>를 대적하기 위해 깨어 기도하는 기도의 파수꾼이 있습니까? 나 부모는 우리 자녀들의 인생 밭을 넘보는 원수 마귀를 막기 위해 깨어 기도하고 있습니까?

우린 잠을 자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모름지기 인간이면 잠을 자야 할 시간엔 잠을 자야 합니다. 해서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에게 평안한 잠을 주신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잠을 자더라고, 원수 마귀는 조심해야 한다는 겁니다. 온 가족이 방심한 채 잠만 자고 있는 사이,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덧뿌리고 간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겁니다.

한 두 번이야 아직은 좋은 씨에 가려 가라지가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잠만 자면, 어느 덧 좋은 씨는 보이지 않고, 온통 가라지만 무성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해서 가정 마다 기도의 파수꾼이 필요한 겁니다. 그래도 누구 한 사람은 새벽을 깨워 기도하며 우리 가정을 지켜야 하는 겁니다. 부모 중 한 쪽은 우리 자녀들을 지키기 새벽 제단을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조심할 것은, 내 자녀들의 인생 밭에 뿌려진 가라지가 처음엔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해서 기도하지 않으면서도 방심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멀쩡한데요? 부모가 기도하지 않는다고 자식의 인생에 무슨 일이 있으려고요? 아직까지 별 일 없잖아요!>

그러나 그것이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 드러나는가? 그 인생, 결실할 때에 드러납니다. 기도하지 않은 부모의 자녀 인생 밭에선 결실할 것이 별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이 원수 마귀가 밤마다 와서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기 때문입니다. 가라지만 무성한 인생, 생각만 해도 오싹하지 않으세요? 해서 우리 부모들은 죽을 때까지 자식들을 위해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원수 마귀가 우리 자녀들의 인생 밭에 가라지를 덧뿌리지 못하도록, 우리 가정이란 밭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늘 깨어 기도하며 파수해야 합니다. 이런 소망을 가지고 우리 늘 나누는 인사가 있지요. 오늘 이 아침, 다시 한번 진심어린 마음으로, 그리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옆의 분께 복을 빌어 주십니다.

<주 안에서 자식 농사 잘 되시기 바랍니다.>

# 5
그런데요, 오늘 본문에 보니, 안타깝게도 가라지가 보인다는 겁니다. 주님이 좋은 씨앗으로 뿌려놓으신 천국 밭인데도, 원수 마귀가 어느 틈에 다녀갔다는 증거지요. 문제는 필요하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 가라지가, 천국 밭에 나서 다른 곡식들보다 더 왕성하게 자라고 있다는 점입니다. 가라지주제에 알곡의 자리까지 차지하고서, 자기가 주인인 척 행세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가라지로 상징되는 마귀의 하수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41절에서 우리 주님, 친히 답을 주시는데요, 함께 봅니다. / 13:41-42 / (읽기) / 앞으로 영원토록 지옥 불에서 이를 갈며 살기를 원치 않는다면, 다시 말해 가리지가 되지 않으려면, 두 가지를 조심하라 하시는 군요, 첫째 넘어지게 하지 말라, 둘째 불법을 행하지 말라!

그런데 거기 41절 중간에 <모든>이란 단어가 보입니다. 일단 표시하십니다. 무슨 뜻인가? 이유가 어떻든 간에, 나 아닌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모든 경우에, 그는 예외 없이 가라지가 되어 지옥 불로 직행하게 된다는 거지요, 또한 이유 불문하고 불법을 행하는 모든 경우에 그 역시 가라지로 전락하여 풀무 불로 던져진다는 거지요.

여기서 우리는 세 번째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나 자신이 앞으로 내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영생을 살 것이냐, 풀무 불 속에서 이를 갈며 살 것이냐가 판가름 나는 종말론적인 질문이요, 하여 나의 구원 문제와 직결되는 질문인데요, 잘 들으시고 나 스스로를 답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자입니까? 아니면 넘어지려고 하는 자를 일으켜 세우는 자입니까?> <나로 인하여 마음에 실족한 사람이 더 많습니까? 나로 인하여 믿음이 회복된 사람이 더 많습니까?> <나로 인해 주님에게서 멀어지는 영혼이 많습니까? 나로 인해 주님께 전도된 사람이 많습니까?> <나는 불법을 행하는 자입니까? 십계명부터라도 잘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까?>

부디 모든 경우에 가라지는 되지 마시고, 모든 경우에 실족케 하지 마시고, 모든 경우에 불법을 행하지 마시고, 언제나 어디서나 꼭 알곡 성도 되시어, 저 천국에서 영생복락 누리는 천국의 아들딸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6
이제 남은 과제는 저기 보이는 가라지의 처리문제군요. 해서 종들이 주인께 묻습니다. 다시 오늘의 본문, 13장 28절의 맨 뒤,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저들 종들은 지금 당장 가라지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한 듯 합니다.

그런데 주인의 답변이 예상을 빗나갑니다. 29절, <가만 두어라!> 가만 두라는 겁니다. 그대로 두라는 겁니다.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 두라는 겁니다. 왜 그러실까? 29절에서 이유까지 설명해 주시는데요,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가만 두어라!>부터 한번 크게 읽을까요?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알곡이 가라지보다 귀하다는 말씀이지요.

그렇다면 천국에서 알곡과 가라지가 같이 살라는 말씀인가? 알곡 조금 손해 보더라고 지금 당장 가라지를 뽑아 버려야 후환이 없는 것 아닐까? 반문이 생깁니다만, 그러나 우리 주님,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30절,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까지 그냥 놓아두라는 겁니다. 지금은 손 볼 때가 아니요, 그 때가 곧 오나니 그 때를 기다리는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가라지의 처리 문제는 우리의 소관 사항이 아닙니다. 추수 때가 오면 우리 주님, 친히 다 처리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라지를 가만 두는 대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없는 걸까? 아니오, 있습니다. 가라지를 뽑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두 가지나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 말씀부터 받겠습니다. / 13:31-32 / (읽기)

우리를 가리켜 주님 하시는 말씀, 내가 이 세상에 뿌린 좋은 씨앗이라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린 좋은 씨앗입니다. 해서 가라지를 뽑는 대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그것은 공중의 새들이 와서 둥지를 틀 수 있을 정도로 큰 나무가 되는 일입니다. 내가 크지 못하면, 그 밭엔 진짜 가라지만 무성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크게 성장하시기 바랍니다.

가라지를 가만 두는 대신 내가 해야 할 일, 두 번째입니다. / 13:33 / (읽기) / 한 마디로 누룩이 되어 천국을 부풀게 하라는 겁니다. 밀가루에 누룩을 넣어 잘 부풀어야 그것으로 빵을 만들 수 있듯이, 뽑을 능력도 없으면서, 공연히 가라지만 뽑으려 하지 말고, 너 자신이 누룩이 되어 천국의 내면을 부풀게 하라는 겁니다. 번안하자면 내적 성숙을 기하라는 거지요.

그러고 보니, 우리에게 주신 명령은 외적 성장과 내적 성숙입니다. 그렇습니다. 키는 큰 데 허약한 나무 말고, 키도 크고 튼튼한 나무가 되라는 겁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혹시 내 심령 밭에, 내 가정에, 내 직장에, 내 구역에, 내 부서에 가라지가 보이십니까? 혹시 우리 주변에, 우리 교회에, 우리 사회에 가라지가 보이십니까? 해서 그 가라지를 뽑아야 한다고 초조해 하십니까?

아니오, 가만 두라 하십니다. 주님의 명령입니다. 가라지의 처리 문제는 주께 맡기시고, 대신 주 안에서 어서 성장하시고 어서 성숙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크면 클수록 가라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가라지는 더 크게 보입니다. 가라지를 이기는 길, 내가 먼저 성숙하고 내가 먼저 성숙하는 일입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누구 눈치 보지 마시고, 가장 작은 겨자씨가 가장 큰 나무가 되듯, 어서 어서 큰 나무가 되시기 바랍니다. 한 눈 팔지 마시고 누룩이 녹아져 온 가루를 부풀리게 하듯, 우리 공동체의 내적 성숙을 위해 나를 녹여 희생하시기 바랍니다.

내년, 2006년이 우리 교회 창립 25주년 기념의 해입니다. 바라기는 지금까지 살아온 4반세기의 삶을 정리하며, 희년을 향하여 새롭게 출발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 동광이 우리 교단과 우리 사회의 성장 동력으로 우뚝 서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동광의 성숙이 우리 교단과 우리 사회의 성숙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중요한 점은, 바로 그 중심에 내가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노력하는 사람들, 마지막 때에 의인이 되어,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게 해 주신다 하셨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그대로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아멘! (장  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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