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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 회복 그리고 환희 (시편 1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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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날씨의 절정을 알리는 말복입니다. 오늘의 이 무더위만 지나면 점차 가을을 알리는 높은 하늘과 오곡백과를 여물게 하는 가을바람이 불어와 우리의 마음을 분주하게 해 줄 것입니다.

거룩하고 복된 주일을 맞이하여 예배드리는 여러분 위에 주님의 평강이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일제 36년 동안의 잃었던 주권을 다시 찾은 광복 60주년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나라 잃은 서러움에 울어가면서, 한지에서 밤을 지세우면서도 옥중에서 신음하면서도 잃어버린 나라를 다시 찾아야 한다고 부르짖었습니다.

내 나라의 깃발을 앞세우고 운동 경기에 나서 보지도 못하고, 전쟁터에 나가 보지도 못한 당시 젊은이들의 서러움들이 얼마나 컸겠는가를 오늘의 젊은이들은 알아야 합니다.

1945년 8월 15일 연합군의 승리의 소식과 함께 일본의 패망은 우리 에게 복음(Good News)이었습니다.

오늘 날씨와 같이 뙤약볕이 내리 쬐는 8월에 대한독립만세! 만세! 만세! 라는 함성과 함께 빛은 그렇게 왔습니다. 서울 종로통과 함경도 산골, 전라도 어느 5일 장터에서 겨레가 뛰쳐나와 부르던 만세의 함성이 귀에 들려오는 듯 합니다.

감히 끝날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던 일제 36년, 오랜 세월 서러움 속에서 다시 찾은 해방이요 자유요 독립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이 나라를 마음껏 사랑하며 소중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제2의 해방, 평화 통일의 날을 향해 함께 전진하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시편에 기록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120편 ~134편)중 그 일곱 번째 노래입니다.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이 70년 만에 성전을 향해 올라가면서 그 사실이 “믿을 수 없는 꿈만 같은 사실”임을 고백하면서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이 민족에게 고난과 회복을 주셨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앞으로 이루어 갈 평화통일을 위한 새 힘을 얻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고난에서의 해방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최대의 비극과 수치는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 살게 되었다는데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 살았던 영적으로 곤고한 삶 못지않게 삶의 수치와 천대 속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 포로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초등학교 2학년 국어책 제 1과에는 “옛적에 우리는 이집트에서 바로의 노예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강한 손으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라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그들의 교육은 수많은 역사적 경험 속에서 이런 수치의 역사부터 가르친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다윗이 중동을 제패한 역사도 아니고 솔로몬이 나라를 세계에서 제일 부강하게 만든 역사도 아닌 이집트의 전제군주 바로에게 민족적으로 강제 노역을 당했던 그 수치의 역사를 어린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되었을 때에 비파가 버드나무에 걸려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에 하나님은 울고 통곡하라고 부르셨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저희를 슬퍼하시며 그들을 애곡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포로생활은 꿈꾸는 것 같이 돌려졌습니다. 그들은 기뻐하며 춤을 추게 되었고 더 이상 비파는 슬픔을 위해 쓰여 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소망이 얽매였던 것들로 부터 자유하게 하였고 기쁨으로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정부는 광복절 60주년을 맞아 도로교통법 위반 사법과 불법 대선자금 관련 사범, 그리고 공안, 노동비리사범까지 422만여 명이 광복절 특사로 사면된다고 발표했습니다.

특별 사면 조치란 잔형집행면제를 의미합니다. 현행법상으로는 죄값을 치루어야할 기간이 더 남아 있지만 면제해 준다는 것입니다. 여기 앉아 계신 분들 중에는 이 특별사면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서 감격도, 감동도 되지 않는 분들이 더 많겠지만 실제적으로 여기에 해당되어 고난 중에 있던 분들에게 사면은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불편함과 고통이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수많은 후회와 깨달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다시는 죄를 범치 말자”고 수없이 다짐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던 것은 하나님의 선민이 타락의 형벌로 치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포로를 돌리신 것은 그 징벌의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깨닫지 못하면 그만큼 형벌의 시간이 길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똑같은 일로도 어떤 사람은 하루 만에 끝나게 하시지만, 어떤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이 마치 사흘길을 40년을 돌아서 가는 것처럼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생각하셨던 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자유와 해방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고난이 올 때는 더욱더 빨리 깨닫도록 노력해야 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에 포로로 보내신 것은 불에 태우기 위해 풀을 집어넣은 것 같지 않고 오히려 순전한 금을 만들기 위해 금광석을 깨뜨려 용광로 안에 집어넣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하나님의 백성들의 얼굴과 삶에 어두움과 비참함이 드리워져 있고 혀에서 악한 말과 거짓이 나온다면 진정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인가를 의심케 하는 표징이 될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급하게 주차할 곳을 찾아 주위를 몇 바퀴 빙빙 돌다가 할 수 없이 주차 금지 구역에 차를 세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쪽지를 적어 차창에 꽂아 두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목사입니다.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참석하러 왔으나 주차할 곳이 없어 주차 위반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듯이 우리 죄를 용서 하소서]”라고 써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회의를 마치고 차에 돌아와 보니 자기가 쓴 글귀 밑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법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제 상관은 아주 철저한 사람입니다. 목사님!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그리고 쪽지 옆에는 벌금 딱지가 꽂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속에는 죄의 속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알고도 모르고도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속성을 깨뜨리시고 고난을 주시기도 하시며 또한 구원하시고자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의 귀환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요 구원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목격한 이방인들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셨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도 구원받은 자답게, 은혜받은 자답게 세상 사람들에게까지 칭찬받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삶이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무너진 삶의 회복입니다.
본문 2절 말씀에 보면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일제로부터의 속박과 억압으로부터 해방은 회복을 의미합니다. 빼앗겼던 성도, 이름도 다 회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도 죄의 멍에로 마귀에게 빼앗긴 자유와 기쁨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이름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최근 제주도의 여성사업가 김만덕 여사를 기리는 모임이 많이 생겼다고 합니다. 김만덕 여사는 조선 정조 때의 여인입니다. 전염병으로 부모를 잃고 기생의 집에 수양딸로 들어간 그녀는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수양어머니의 대를 이어 기생이 됩니다.

기생으로서 김만덕은 꽤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기생으로 살기를 포기한 그녀는 관가를 찾아가 기녀의 적에서 이름을 빼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기생이 되기 전에 양인이었으니 다시 양인의 신분을 갖게 해달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녀는 결국 양인의 신분을 회복하였고, 사업가로 새로운 출발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제주도의 양반 규수들에게 육지에서 온 화장품이나 장신구들을 팔고, 제주도 특산물인 표고버섯, 귤 등을 육지에 내다 팔며 시세 차익을 챙겼습니다. 그녀가 57세가 되었을 때 이미 그녀는 제주도의 으뜸가는 상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주도는 4년 동안이나 흉년이 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서 죽게 되었습니다. 설상가상 조정에서 보낸 구휼미 운반선마저 침몰하는 바람에 제주도민은 동요하였습니다. 이때 김만덕 여사는 자신의 재산을 털어 육지에서 곡식을 사들였습니다. 제주도민중 세 명 가운데 두 명은 그녀의 도움으로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최근 김만덕 여사를 기리고, 그녀의 얼굴을 새롭게 만드는 화폐에 넣자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생에서 양인으로서의 신분을 회복한 그녀는 회복한 신분 이상으로 헌신적이고 보람 있는 삶을 살아 후대에도 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분을 회복시켜 주신 것은 이웃의 삶과 관계가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도 죄에서 갇힌 자를 풀어주고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막힌 담을 헐고 갈라섰던 이웃과 화합하고 오해했던 대립했던 사이가 풀어지고 미워하고 시기하던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냉대와 멸시를 받던 인간들이 인간적인 대접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오셨고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습니다.

최근 아시아나 항공의 노사분규로 많은 국민들이 불편을 겪었습니다. 재정적으로도 3000억 가까이 손실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더 많은 것들을 잃었으며 인격적으로는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들을 입었습니다. 노도 사도 아무도 십자가를 지는 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난달 11일 서울 아산 병원에서 신장이식수술이 있었습니다. 30여명의 직원이 일하는 성실아이종합건설회사의 김병호 사장은 자신의 회사에 근무하는 현장소장의 아들이 2003년 6월부터 신부전증으로 고생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신장을 기증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다행히도 혈액형과 조직검사에서 김사장과 그 청년은 일치한다는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김사장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며 기쁜 마음으로 신장을 떼어주었다고 합니다. 노사간에 갈등이 심화된 우리 사회에 귀감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최근 병영에서 일어난 사고들은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전 육군 20사단 신병교육대에서 1주차 신병교육을 마친 9기 훈련병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 머리를 깍고 함께 잠자며 신병교육을 받았던 210번 강봉구 훈련병이 자신들의 중대장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으로 부모들이 자식들을 군에 보내놓고 걱정하는 상황에서 인권침해가 있는지, 훈련병들이 어떤 애로사항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머리를 깍고 신병으로 위장해 가장 훈련받기 힘든 시기를 선택해 입소했다고 합니다.

훈련병들은 강봉구대위를 단지 신병으로 알고 개인적인 어려움과 불만을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강대위는 훈련병 9기가 되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신병들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애로사항들을 해결하는데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본문 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고 했습니다. 이 큰일은 구원이요 회복입니다. 회복이란 행복한 변화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격렬한 고통에서 평안으로 옮겨졌습니다. 책망 받고 멸시 받는 자들에게 명성이 주어지고 그들을 괄목하게 되었습니다. 별로 관심을 받지 못하던 자들이 관심을 끌게 되었고 바라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과거에 웃었던 자들이 다시 웃으며 새 노래가 그들의 입에 가득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질병에서, 가난에서, 무능에서, 불신앙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회복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슬픔에서의 환희입니다.  시편 126편 5절 말씀에 보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유를 얻었지만 아직 돌아오지 못한 동족들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은 10대에 포로로 끌려가서 70대~80대 노인이 되었습니다. 언제 돌아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이 속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눈물의 씨를 뿌려야만 기쁨의 단을 거두게 된다는 진리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귀한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동족상잔의 전쟁이 끝나고 반세기를 훨씬 넘긴 우리 민족에게는 지금도 1000만의 이산가족이 아직 식구들의 생사를 확인하지도 못한 채 신음하고 있습니다.

멀지도 않은 곳에 살면서도 고향에 엽서 한 장 못 보내는 쓰라림과 함께 부끄러움도 모른 채 운명처럼 받아들여 체념하고 있습니다.

평화 통일의 길! 이 길이 좁은 길이요, 가시밭길 이지만 남과 북이 함께 가야 하는 길입니다. 총과 칼을 내려놓고 용광로에 녹인 다음 보습과 낫을 만들어서 논밭과 숲을 일구어 나가야 합니다.

지금 북녘 땅에는 우리의 피붙이인 동포들이 세상에서 일곱 번째로 영양실조에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씨앗도, 농기구도, 비료도 한 없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이제 7천만이 사랑과 화해로 군병이 될 때 세계는 우리를 존경하며 따라올 것입니다.

또한 휴전선 천리 길에 철조망과 총포가 사라지고 노루와 멧돼지, 꿩과 기러기처럼 남북가족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날이 속히 오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심으로

7천만이 함께 겨레사랑의 노래, 화해의 노래  영광스러운 새 노래를 부르게 하실 날이 곧 다가 올줄 믿습니다.

또한 지금 한국은 세계 172개국에 600만 명의 교포가 나와 있으며 150개국에 13000명의 선교사가 나가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한국 교회의 사명이 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로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로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로로 갈 것이며, 애굽사람이 앗수로와 함께 경배하리라고 했습니다.

25절에는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로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 지어다. 하실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이사야의 비젼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우리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동안 한국 기독교가 한 가지 잘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원수를 사랑하지 않은 과실입니다. 오히려 원수를 미워하는데 앞장 서 왔습니다.

일본도 우리의 화해 의지와는 반대로 역사왜곡, 독도에 대한 영토권주장, 정치인들의 야수쿠니 신사참배 등 우리의 화해의지를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들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적대국가로 만들어 배척하기 보다는 일본이 범한 잘못에 대해 객관적 증거를 가지고 비판해야 하며 또한 국가가나서 독일처럼 반성하고 상식을 갖춘 나라가 되게 해야 합니다. 세계 속에서 당당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만큼 힘을 길러야 합니다.

바라옵기는 우리나라가 세계 열방에 빛을 발하여 배고프고 굶주린 이웃들에게 나눠주며 섬길 수 있는 선교 한국을 꿈꾸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고난에서의 해방, 무너짐에서의 회복, 슬픔에서의 환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큰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행하시는 이 모든 역사를 통하여 이 땅에 진정한 환희와 평화가 이루어지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은총이 이 민족과 온 성도들 삶속에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김 명 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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